과거에 급제하면?
과거에 급제하면 곧장 임용이 되는 게 아니라 1~2년이 있어야 관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의 관직은 18품 30계로 되어 있습니다. 장원급제를 하게 된다면 6품 부터 시작합니다.
조선 말기가 되면 관직은 한정되었는데 사람을 계속 뽑아 빈자리가 나질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과거를 치르지 않으면 양반들이 불만을 가지는 고로 어쩔 수 없었고 결국 임용도 안 된 실직자들이 양산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여성에게도 품계가 있었습니다.
정1품은 빈, 공주, 옹주, 군부인, 그리고 정경부인이었습니다. 귀인이나 소의, 숙의는 당상관 곧 정3품 이상이었습니다.
상궁은 정5품이었고 정6품 상침, 정7품 전의, 종8품 전등, 그 아래 종9품 주징 등등
여자들의 품계도 모두 빼곡하게 정해져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꿈이자 희망은 당상관!
당상관 자리는 조선을 톡톡 털어 100개 남짓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높은 관리들이 혼자서
두 세 직을 겸했기에, 고인물의 극치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당상관이 될 수 있을까요?
바로 끝없이 출세하고 승진하면 됩니다!
6품 아래 하급관리는 450일 근무 일 수를 채우면 승진을 했습니다. 하지만 6품 이상은 900일을 근무해야 승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날짜만 채운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1년 중 2번 고과성적을 매기는데, 이걸 10번 해서 모두 상(上)을 맞으면 1급 특진,
2번 중(中)을 맞으면 1)녹봉을 못 받게 되어 2)무록관, 3번 중(中)을 맞으면 파직되었습니다.
단순 계산으로 과거 꼴등, 그러니까 종9품으로 시작한 관리가 정1품이 되려면
고과에 단 한 번도 실수 없이 38년 이상을 근무해야 했다는 것인데, 당연히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니 조선시대에서 출세하려면, 일단 관리가 되었어도 다시 과거를 봐서 전보다 높은 등수를 얻는
'과거 재수'가 필요했습니다. 지금 9급 공무원이 7급 시험을 준비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외에도 관직 임용의 뒷구멍으로 과거 시험을 안 봐도 인맥(아버지)으로 벼슬을 받는 길도 있었습니다.
단, 이런 3)음관은 낮은 벼슬만 할 수 있었습니다. 높은 벼슬에 오르려면 반드시 과거에 합격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권력이 있어도 과거시험을 통과해야만 높은 관직에 올라갈 수 있는 것,
그게 조선시대의 출세였습니다.”
최고의 벼슬은 뭐니뭐니해도 영의정!
조선시대의 관직 중에서 제일 높은 정1품으로는 관리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하면 역시나 영의정입니다.
정 1품이자 모든 관리의 우두머리이고 임금님 아래 가장 높은 벼슬로 지금의 국무총리 자리입니다.
이런 영의정들 중에서도 다채로운 사람들이 많은데요...
영의정 스페셜 리스트
가장 오랫동안 영의정이었던 ‘황희’
황희는 18년 동안 영의정이었습니다.
그는 나이를 이유로 사직하겠다고 했지만, 세종이 놔주질 않았습니다.
그는 87세에 겨우 은퇴했으나 그건 세종이 세상을 떠나기 4달 전이었습니다.
가장 짧은 시간동안 영의정이었던 ‘신경진’
신경진은 인조 21년 3월 6일에 영의정이 되었지만 11일에 사망했습니다.
나이 68세로 영의정이 된 지 6일 만이었습니다.
최연소 영의정 ‘구성준 이준’과 ‘한음 이덕형’
구성준 이준은 실력으로 영의정이 된 게 아닌, 세조가 조카를 낙하산 시켰습니다.
낙하산이 아닌 본인의 실력으로 최연소 영의정이 된 사람은 한음 이덕형 이었습니다.
최연로 영의정 ‘정원용’
‘최연로 영의정도 당연 황희 아닐까?’ 싶겠지만 의외로 고종 때의 정승인 정원용입니다.
황희는 87세에 은퇴했지만, 정원용은 88세에 영의정을 그만 두었습니다.
그 후에 9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영의정의 숫자는 247명,
한 사람이 여러 번 했던 것까지 감안하면 200명 남짓입니다.
평균 458일 동안 재직해 있었습니다.
1)좌의정이 357일이고, 2)이조전랑이 109일,
3)형조판서가 고작 87일의 임기를 지냈던 데에 비하면 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관직에 올라 얼마나 오래 지냈는가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권력과 부를 휘두를 수 있었느냐가 더 중요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