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작은동네> 제3화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작은동네3화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작은동네3화

어머니가 병상에서 했던 이야기 중에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것 중 하나는 어머니의 여동생, 그러니까 내게 이모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병상에 있기 전에도 어머니가 가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아마도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적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는 그 이야기의 결론이 대개 이렇게 귀결되었다.

“하늘 아래 같은 핏줄이라고는 너랑 나밖에 없는 거야.”

나는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버지를 우리 가족 — 그러니까 어머니와 나 — 에게서 배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동해에 있는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나는 어머니가 섬 출신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섬의 정확한 명칭을 알게 된 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의 일이었다. 나는 그 섬의 이름이 어쩐지 익숙하다고 느꼈는데, 나중에 되짚어보니 그 섬의 이름을 남편의 스크랩북에서 읽은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기사였다.

최근에 나는 호기심에 휩싸여서 신문에 실린 그 사건과 어머니가 관련되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애썼지만, 실제적으로 그런 일이 생겼을 가능성은 0퍼센트에 가까웠다. 기사의 내용은 이랬다. 어부 몇 사람을 태운 오징어잡이 배가 북방한계선을 넘었고, 그 바람에 그들은 북한에 압송되었다가 몇 달 후 풀려났는데, 그 후로 그들은 간첩으로 몰려서 고문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고초를 겪은 사람들은 어머니의 아버지, 그러니까 외할아버지보다는 턱없이 어린 아들뻘들이었고, 어머니에게는 — 나중에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 남자형제가 없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자,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그걸 특정한 사람들만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 돼. 그건 우리 모두가 겪은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내 외할아버지는 어부였다.

“그리고 아주 구식이었어.”

이렇게 말한 후 어머니는 웃으며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아니, 구식이 아니라 그땐 그런 게 자연스러운 거였단다.”

그곳 사람들은 대부분 한평생을 그 지역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몇 년 지나지 않은 해에 태어났고, 어머니의 아버지, 그러니까 외할아버지의 지상 과제는 가족들이 굶어죽지 않도록 하는 거였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내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아홉 살 때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는 평생 혼자 사셨는데, 어쨌든 어머니 표현에 따르면 대체로 자신의 과제를 잘 수행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지상 과제는 달랐다. 열 살 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어머니의 지상 과제는 그 섬을 떠나는 거였다.

어머니는 이런 말도 했다.

“너네 외할아버지는 날 그 섬에 두려고만 했어. 내가 스스로 글자를 깨우쳐서 책을 읽거나, 내 생각을 똑 부러지게 말하면 오히려 혀를 차셨지.”

어머니는 육지로 나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보였지만 그 의지는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좋게 받아들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어머니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절대로 품어서는 안 되는 마음을 품은 것처럼 어머니를 대했다. 어머니는 전략을 바꿨다. 그녀는 자신의 소망을 최초로 발설한 이후로는 마치 그런 소망은 한 번도 품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무려 5년 동안 말이야. 숨죽은 듯이 살았단다.”

어머니는 모두를 안심시켰고, 아주 약간의 용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다. 그리고 열아홉 살 여름에, 자신이 그동안 모아둔 돈과 어머니의 아버지가 몰래 부엌에 숨겨놓은 돈을 훔쳐서 아무도 몰래 그 섬을 떠났다.

어머니는 그 섬을 떠나던 날 밤, 대기를 떠돌던 뜨거웠던 공기와 배를 흔들던 파도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두려움 같은 건 없었어.”

새로운 삶이 시작되리라는 기대감밖에 없었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 섬을 떠난 이후로는 가족들을 만난 적이 없어. 알겠니? 그러니까 이 세상에 혈육이라고는 우리 둘밖에 없는 거야.”

작은동네 3화

내가 태어난 건, 어머니가 고향을 떠나 타향에 정착한 지 10년이 지난 후였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나는 허니문 베이비라고 했다. 결혼할 당시, 어머니는 목포에 있는 한 중학교의 행정실에서 근무를 했다. 어머니는 육지에 나와 검정고시를 보고 방통대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그런 식으로 취직을 할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열아홉 살짜리 여자가 혼자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어떤 일을 겪었을지, 그러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했는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어머니는 이렇게만 말했다.

“행정실에서 학교 선생들이 으스대는 꼴을 봐야 하는 건 정말 짜증 나는 일이었어.”

아버지는 원래 서울 출생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목포에 있는 작은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신접살림은 목포에 있는 아버지 집에 차렸다고 했는데, 어떤 경로를 거쳐서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태어난 곳은 목포가 아니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광주였다. 내가 열한 살 때 그 동네를 떠난 이후로 어머니와 나는 종종 이런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러니까, 너 고향이 어디라고?”
“광주.”
“그냥 광주?”
“경기도 광주.”

우리는 이 대화를 아주 자주 나누어서 나중에는 노래를 부르듯이 약간 특유의 리듬을 싣는 지경까지 되었다.

아버지를 만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그 근처 도시에 직접 차를 몰고 나간 적이 있다. 대학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가 곧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점심을 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일본 소설을 번역하는 일을 했는데, 가끔 내게 번역과 관련된 일거리를 넘겨주곤 했다. 나는 친구에게 혹시 윤이소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즈음 나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붙잡고 윤이소의 이름을 대며 그녀를 기억하는지 물어보곤 했다.

“그 사람 옛날 배우 아니야?”

친구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듯이 내게 되물었다.

“그렇게 옛날은 아닌데.”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나 어렸을 적에 이 근처에 살았었어.” “정말? 왜 근데 한 번도 그런 이야기 안 했어?”

나는 커피 잔의 손잡이 부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대답했다.

“모르겠어…… 그냥 잊어버리고 있었나 봐. 아니면 별로 중요하게 생각 안 했거나.” “그런 걸 잊어버릴 수 있니? 어디서 살았는데?” “경기도 광주. 열한 살 때 서울로 이사를 갔었거든. 한번 찾아가보고 싶다. 궁금해. 어떻게 변했을지.”

친구는 그곳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지금은 비싼 타운 하우스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내가 살던 동네는 그럴 만한 곳이 아니었다고, 시내의 중심과는 외따로 많이 떨어져 있어서 거의 폐쇄된 거나 마찬가지인 동네였다고 말했다. 폐쇄? 폐쇄라고?

“그게 핵심이야. 돈 많은 사람들은 그런 조용한 곳에서 자기들만 무리를 지어서 살고 싶어 하는 거거든.”

친구는 내게 살았던 동네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해내려고 애써도 예전에 살던 동네의 이름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걸 깨닫고 나자, 나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가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친구가 눈치채는 게 싫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려고 할 때마다 나는 그게 무슨 형태가 있어서 실제로 잡을 수 있다는 듯이 내 허벅지를 꽉 잡았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조금만 참아, 조금만 참아,라고 주문을 걸듯 되뇌었다. 하지만 친구와 헤어진 후 내 차의 운전석에 앉았을 때, 비로소 나 혼자만의 공간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내가 도대체 무엇을 그토록 참으려고 애썼는지 몰라서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기만 했다.

동네 이름이 뭐였지?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거는 것뿐이었다. 비로소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을 느꼈고,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을 느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내가 그렇게까지 어머니의 부재를 실감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 손보미 소설가
  • 〃 작가소개 〃

    손보미소설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가 당선 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그들에게 린디합을』,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이 있다. 2012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3~2015년 젊은작가상에 선정되었으며, 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제21회 김준성문학상, 제25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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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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