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금의 우연

커피를 좋아하는 민족

한 모금의 우연 : 프레드릭 배크만 저<오베리는 남자 /> 한 모금의 우연 : 프레드릭 배크만 저<오베리는 남자 />

최근 우리가 누리는 커피 환경은 역사상 유례없는 풍요로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원두커피가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의 ‘보리차 같은’ 커피의 시대를 보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고퀄’의 맛있는 커피들이 지천에 널리게 되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카페이고, 굳이 카페가 아니더라도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도 어렵지 않게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골라 마실 수 있는 커피 메뉴는 나날이 발전하여 최근에는 산지나 품종, 정제방법까지 다양한 콩들을 선택하여 마실 수도 있다. 이러한 환경은 어쩌면 전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지만, 특히 한국에서의 발전상은 많은 이들이 주목할 만한 거대한 변화임에 분명하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커피를 좋아하는 민족이 되었을까?

최근 우리가 누리는 커피 환경은 역사상 유례없는 풍요로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원두커피가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의 ‘보리차 같은’ 커피의 시대를 보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고퀄’의 맛있는 커피들이 지천에 널리게 되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카페이고, 굳이 카페가 아니더라도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도 어렵지 않게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골라 마실 수 있는 커피 메뉴는 나날이 발전하여 최근에는 산지나 품종, 정제방법까지 다양한 콩들을 선택하여 마실 수도 있다. 이러한 환경은 어쩌면 전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지만, 특히 한국에서의 발전상은 많은 이들이 주목할 만한 거대한 변화임에 분명하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커피를 좋아하는 민족이 되었을까?

대한민국 커피 역사의 시작과
‘다방’이라는 새로운 공간의 탄생

1896년,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우리 역사 속의 커피사건이 세상에 퍼져 나가게 되었지만 당시 고종의 지원을 받은 해외유학파들이 모이던 손탁호텔에서는 구미의 외교관들에게 커피를 대접했고, 종군기자로 조선을 방문했던 마크 트웨인도 손탁호텔에 머물며 커피를 마셨다고 전해진다.
한 모금의 우연 : 프레드릭 배크만 저<오베리는 남자 />
한 모금의 우연 : 프레드릭 배크만 저<오베리는 남자 />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손탁호텔(좌)과 이를 운영했던 손탁 여사(우)

그러나 1910년8월 한일병합 이후 국권을 상실한 조선에 암흑이 드리워지면서 1919년 3.1운동 이전까지는 일제의 잔혹한 무단통치로 커피와 관련된 기록을 더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3.1운동 이후에 문화통치로 이행되면서 조선인도 문화예술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고, 지식인들이 다방을 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조선인 최초로 다방을 차린 것은 이경손이라는 사람이며, 영화 <밀정>에 등장하는 ‘카카듀’가 바로 그곳이다. 시인 이상은 1933년 종로 청진동에 ‘제비’라는 다방을 오픈했다. 이후 6개의 다방을 열었는데, 모두 창작과 계몽의 의지를 불사르고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각성과 조선인들의 문화교류를 시도한 곳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인스턴트 커피가 가져온
다방의 대중화, 그리고 학림다방

한 모금의 우연 : 프레드릭 배크만 저<오베리는 남자 />
한 모금의 우연 : 프레드릭 배크만 저<오베리는 남자 />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인스턴트 커피가 등장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다방은 원두커피를 다루었기 때문에 추출기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직접 커피를 내리며 즐기는 것을 격조 있는 문화 행위로 존중했었다. 그러나 해방기와 6.25전쟁 속에서 미군을 통해 퍼져 나간 인스턴트 커피는 뜨거운 물을 붓고 설탕과 크림을 섞어 달달하게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어서 ‘기술적 장벽’이 높지 않아 ‘다방의 대중화’로 이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56년 서울대가 있던 동숭동에 오픈하여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학로의 ‘학림다방’. 제25강의실로 불릴 만큼 진지한 지성의 공간이자 수많은 청춘들의 강의실 기능을 했던 곳이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불법 선거로 국민의 불만이 극에 달했을 때, 거국적 민중봉기의 불을 지핀 아지트들 중 하나가 바로 이곳, 학림다방이기도 했다. 이후 1960년대 중반에는 명동, 종로, 충무로 등지에 DJ박스를 설치한 음악다방이 등장하고, 통기타 문화를 꽃피우던 장소가 되었다.

‘커피전문점 춘추전국시대’로 불렸던
2000년대의 커피 붐

1987년 커피수입 자유화의 시행으로 원두커피를 자유롭게 수입하는 업체가 늘면서 1988년 ‘쟈뎅’을 시작으로 원두커피 전문점 시대가 열렸다. 1997년 이후에는 IMF로 커피믹스가 폭발적으로 소비되기도 했다. ‘스타벅스’가 한국에 1호점을 오픈한 이후 커피 프랜차이즈와 커피시장은 급격히 성장했다. 또,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이 인기를 얻으면서, ‘바리스타’라는 직업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드라마 이전부터 증가세를 보이고 있었던 로스터리 카페의 전국적인 확산으로, 한국 커피 역사에서 2000년대는 커피전문점의 춘추전국시대로 기록됐다.
한 모금의 우연 : 프레드릭 배크만 저<오베리는 남자 />
한 모금의 우연 : 프레드릭 배크만 저<오베리는 남자 />
마니아층에 국한되었던 원두커피 음용문화가 일반인으로 옮겨갔고, 다양한 원두커피를 소비하게 되어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모두가 스페셜티 커피를 표방하게 되었다. 미국의 정보를 배우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큐그레이더(커피감별사)를 취득한 나라가 된 것이다.

맛있는 커피를 언제든 만끽할 수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

최근 10년간의 한국 커피시장 변화는 마치 지구의 캄브리아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일본과 같은 시기에 커피가 들어왔으나,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사라져버린 것들의 아쉬움을 복수라도 하듯, 그동안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한꺼번에 해내고픈 기세로 새로움이 움트고 있는 듯하다. 새로운 생물 문이 폭발하듯 생겨난 커피와 커피인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멋지게 빛을 발하고 있다.
한 모금의 우연 : 프레드릭 배크만 저<오베리는 남자 />
한 모금의 우연 : 프레드릭 배크만 저<오베리는 남자 />
참으로 호사스런 환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몇 십 년 후에도 지금처럼 커피를 즐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역사를 보면 커피가 사라질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커피가 농작물이라는 점은 우리가 지금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다시 올지 모를 이 시기를 감사하게 만끽하고 싶다. 이토록 맛있는 커피 한 잔이 어쩌면 우연이 될 수도 있으니까.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 대표이며, 《커피교과서》 《스페셜티커피테이스팅》 《커피과학》 《카페를 100년간이어가기위해》 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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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2-07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