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금의 우연

짧은 커피 역사, 긴 커피 명성을 가진 나라

한 모금의 우연 : 커피 문화의 갈라파고스, 일본 한 모금의 우연 : 커피 문화의 갈라파고스, 일본

일본의 커피 음용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의 역사와도 출발 시점이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일본은 미국의 성공한 커피인들이 앞다투어 배움을 청할 정도로 탐하고 싶은 문화가 존재한다. 그들은 왜, 어떻게 독특한 카페문화를 갖게 되었을까. 역시 타고난 ‘오타쿠’적 성향에 기인하는 것일까. 섬나라 특유의 한계 안에서 최대한 차별화하기 위한 본능(?)이 탐구와 기술 연마를 택하게 한 것일까. 저급한 생두를 로스팅으로 활용 가능케 하는 기술, 다양한 추출 방법과 도구 개발은 물론 커피를 대하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일본만의 독특함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을까.

일본의 커피 음용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의 역사와도 출발 시점이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일본은 미국의 성공한 커피인들이 앞다투어 배움을 청할 정도로 탐하고 싶은 문화가 존재한다. 그들은 왜, 어떻게 독특한 카페문화를 갖게 되었을까. 역시 타고난 ‘오타쿠’적 성향에 기인하는 것일까. 섬나라 특유의 한계 안에서 최대한 차별화하기 위한 본능(?)이 탐구와 기술 연마를 택하게 한 것일까. 저급한 생두를 로스팅으로 활용 가능케 하는 기술, 다양한 추출 방법과 도구 개발은 물론 커피를 대하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일본만의 독특함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을까.

계층을 넘어 생활 속에
녹아 든 일본의 커피 문화

커피를 제공하는 곳에서 커피 자체의 맛있음을 제공하는 것은 역사상 ‘의외로’ 드문 일이다. 유럽의 커피하우스나 카페는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교류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커피를 한꺼번에 만들어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맛있음을 추구한다는 것’은 호사가들의 개인적인 취향이었거나 여유있는 계층의 특권이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은 서민층에서 ‘맛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고, 그것이 독자적인 커피 문화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한 모금의 우연 : 커피 문화의 갈라파고스, 일본
한 모금의 우연 : 커피 문화의 갈라파고스, 일본
일반인들이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1910년 이후다. 브라질 정부가 남아도는 생두를 일본에 무상으로 공급하게 된 것을 계기로, 커피 프랜차이즈도 전국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1930년대에는 최초의 킷사텐(커피숍) 붐이 일게 되지만 전쟁이 발발하면서 커피가 전면 수입 정지되었고, 전쟁이 끝나고도 계속된 커피 부족 현상은 전쟁 전의 커피를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커피 부흥의 노력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 생두 수입 자유화로 일본 커피시장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70년대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커피나 할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카페를 오픈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실제로 창업도 간단했다.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원하는 컨셉의 인테리어만 마치면 커피콩과 소모품을 납품하는 회사 정보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했다. 그렇게 일본 최대 커피숍 붐은 1981년 기준에 15만 개 점포를 넘어설 정도였다.

커피를 향한 일본의
끊임없는 연마와 탐구의 역사

한 모금의 우연 : 커피 문화의 갈라파고스, 일본
그러나 이후 일본은 거대 자본을 무기로 원두를 납품하거나 프랜차이즈를 전개하는 회사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개인이 경영하는 커피숍들은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커피숍 붐과 치열한 경쟁은 오히려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한 방울 한 방울 점드립을 하거나, 왼손에는 필터를 오른손에는 포트를 들고 동시에 움직여 내리기도 하는 등 ‘왜 저렇게까지?’ 하는 페이퍼드립과 융드립, 사이폰 등 다양한 추출 기술을 연마했다.

r 또, 납품 받는 콩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나만의 특색있는 맛을 제공하기 위한 로스팅기술과 블랜딩기술에 집착하게 된다. 좋지 않은 생두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생두를 씻어서 건조시켜 볶기도 하고, 두번 볶기도 하고, 천천히 오래 볶기도 하고, 탈 정도로 많이 볶기도 하는 등 다양한 로스팅 방법과 기술을 고민하는 등 이 무렵의 ‘연마와 탐구의 역사’가 일본 커피 문화의 근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융드립 커피의 양대 산맥,
미우라 요시타케와 에리타테 히로야스

한 모금의 우연 : 커피 문화의 갈라파고스, 일본
이러한 ‘탐구, 추구하는 커피’의 시조가 되는 사람이 있었다. ‘융드립 커피를 추구한 남자’라고 불리는 사람, 미우라 요시타케이다. 그는 캔커피를 처음 발명한 사람이자, 녹차에 비타민 성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학자이기도 하며, 다시 만나기 어려운 커피광이라고 알려져 있다. 1930년대에 도쿄에 카페를 오픈하여 독자적으로 개발한 융드립 커피를 선보였고, 이를 함께 공유하는 모임을 만들어 맛있는 커피 보급에 기여했다. 그가 융드립에 쏟은 열정과 탐구는 이후 대를 이어 발전하게 되었다.

커피인이라면 대부분이 한 번은 방문해 보는 곳, 바로 긴자에 위치한 ‘카페 드 람부르(Cafe De L’Ambre)’의 세키구치 이치로(만 103세의 나이로 올해 3월에 서거) 씨도 그 중 한 명으로, 그는 일본에 로스터리 숍을 널리 확산시킨 인물이다. 또 융드립 베테랑들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있는데, 오사카의 에리타테 히로야스가 세키구치 이치로와 함께 일본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추구했던 맛과 기술, 그리고 커피를 대하는 정신을 좇아 이후 많은 이들이 배움과 독자적 기술을 연마하여 시간과 탐구심을 불살랐다. 그렇게 일본 특유의 추출기술과 배전기술을 통해 커피 문화에 깊이를 더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 커피 시장을 이끌고 있는
일본의 커피 브랜드들

1990년 이후 일본은 고난의 경제시대를 맞으면서 중도 퇴사자, 취직에 맞닥뜨린 젊은이, 맞벌이 세대, 일하는 여성들 중에 커피숍을 개업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1970년대 붐과는 달리, 해외여행을 통한 체험을 인터넷에 공유하고, 해외의 음식정보 등을 쉽게 입수할 수 있게 됨으로써 새로운 트렌드의 카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래된 문화로 여겨지는 자가배전 커피점의 분위기와 차별화 하고픈 젊은 층과 여성들이 적극 가세하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쇼와’의 문화와 ‘신시대’의 문화가 공존하는 일본의 커피층은 더욱 두터워졌다.

세계 커피의 기준(?)이 된 스타벅스의 성장과 이에 뒤질세라 분투하는 일본의 도토루, 키커피 등이 경쟁하고 있고, 바하 커피, 호리구치 커피, 마루야마 커피, 미카페토(커피헌터) 등이 각각의 지향성을 분명히 하며 그 뒤를 잇고 있다. 커피가 분명 아랍과 유럽을 통해 아시아로 흘러온 역사가 있다. 유럽에서 전해진 커피지만, 일본에서는 맥을 달리하는 ‘연마하고 추구하는 커피’로 진화하고 있다. 마치 갈라파고스처럼.
한 모금의 우연 : 커피 문화의 갈라파고스, 일본
한 모금의 우연 : 커피 문화의 갈라파고스, 일본
다시 생두 위기가 와도 이겨낼 수 있는 기술이 정보로 축적되어 있는 일본,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여 세계에 통용되는 커피 문화가 싹트려고 꿈틀거리는 한국. 가깝고도 다른 두 나라 문화의 미래가 참으로 흥미롭다.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 대표이며, 《커피교과서》 《스페셜티커피테이스팅》 《커피과학》 《카페를 100년간이어가기위해》 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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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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