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카페 메뉴가 케냐, 콜럼비아, 과테말라, 에티오피아 등 생산지 이름으로 표시되는 곳이 많아졌다.더불어 커피의 볶음 정도에 따라서 라이트(light), 다크(dark) 또는 시티(city), 풀 시티(full city), 프렌치(French)라고표시하는 곳도 많아졌다. 커피 원산지만 확인하는 이들은 아직까지 생소할 수도 있는 호칭이겠지만,커피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나 일부러 카페를 찾아다니며 마시는 이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이름들이다.그런데, 왜 볶음 정도에 시티, 프렌치와 같은 이름이 붙게 되었을까.이유를 모른다고 손해 볼 건 없지만, 알게 되면 커피 맛이 새롭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를 소개한다.
요즘에는 카페 메뉴가 케냐, 콜럼비아, 과테말라, 에티오피아 등 생산지 이름으로 표시되는 곳이 많아졌다. 더불어 커피의 볶음 정도에 따라서 라이트(light), 다크(dark) 또는 시티(city), 풀 시티(full city), 프렌치(French)라고 표시하는 곳도 많아졌다. 커피 원산지만 확인하는 이들은 아직까지 생소할 수도 있는 호칭이겠지만, 커피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나 일부러 카페를 찾아다니며 마시는 이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이름들이다. 그런데, 왜 볶음 정도에 시티, 프렌치와 같은 이름이 붙게 되었을까. 이유를 모른다고 손해 볼 건 없지만, 알게 되면 커피 맛이 새롭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를 소개한다.
커피다운 맛과 향이 만들어지는 과정, 로스팅
생두가 볶아질 때 색이 변화하는 과정
역사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커피 로스팅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자. 커피는 원료가 되는 생두(green bean)를 불에 볶아야만 커피다운 맛과 향이 만들어진다. 커피를 볶는 과정을 로스팅(배전)이라고 하는데, 이 때 두 차례 구간에서 독특하게 ‘튀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그 두 번의 구간-1차크렉, 2차 크렉 또는 1차 팝, 2차 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을 기준으로 향미의 변화가 크게 일어나기 때문에 프로들은 그 구간을 디테일하게 ‘쪼개고’ 선택하여 원하는 맛의 포인트에서 로스팅을 끝마친다.
로스팅을 끝마치는 포인트에 따라서, 라이트(light), 시나몬(cinnamon), 미디엄(medium), 하이(high), 시티(city), 풀 시티(full city), 프렌치(french), 이탈리안(Italian) 등 8단계로 구분하며, 일본, 한국, 대만 등에서는 약배전(light~high), 중배전(high~city), 강배전(city~italian)이라고 하는 등 국가나 시대에 따라서 다르게 불리고 있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탄생! 약배전 커피 ‘미디엄 로스팅’의 역사
1922년에 출간된 < All about coffee >
그러면 언제부터 미디움, 시티, 풀 시티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었을까. 1922년에 출간된 이후 커피의 바이블처럼 여겨지던 라는 책에 로스팅 정도에 따른 구분이 소개되면서 많은 나라의 로스터들이 이를 차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사용하던 표현을 정리한 것이니, 그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표현법이었을 것이다.
묽은 커피를 상징하는 ‘아메리칸 스타일=미디엄’의 역사는, 그 유명한 보스톤 차 사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사건은 영국과의 대립이 차에서 커피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홍차를 대신하여 커피를 묽게 해서 마시게 되었고, 보스톤은 미국 내에서도 특히 ‘약배전 커피’를 대표하는 지역이 되었다. 이것이 미국의 보편적인 기준이 되어 ‘미디엄 로스트’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확한 근거를 찾지는 못했지만, 로스팅 구분이 8단계로 나뉘기 전에는 medium 또는 high라는 선택지밖에 없어서 “미디엄으로 할래? 그거보다 더 high하게 볶을래?”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high라는 단계의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18세기 후반, 미국 커피 발전의 중심이 되었던 보스톤과 뉴욕
원통형 드럼에 배출구가 달린 번즈식 로스터
18세기 후반에는 뉴욕이 미국에서의 상거래의 중심이 되면서 내륙으로 커피 공급을 담당하는 지역이 되었다. 1790년에는 생두 수입업자와 국내 수요를 위한 원두 납품업체들의 활동이 성행하였는데, 커피산업의 활성화와 함께 뉴욕 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도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좋은 환경에 있었다. 그래서 뉴욕에서 즐겨 마시는 볶음 정도를 시티(city), 그 중에서도 더 배전 정도를 민감하게 즐긴다고 하여 풀 시티(full city)라고 불렸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보스톤과 뉴욕이 특별히 미국 커피 발전의 중심이 되었던 이유는 무역항구인 점과 동시에 1846년 보스톤에서 제임스 카터에 의해 대량으로 볶을 수 있는 로스터가 개발되었고, 1864년 뉴욕에서는 원통형 드럼에 배출구가 달린 ‘번즈식 로스터’가 개발되어 커피 소비가 더욱 활성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커피 소비환경이 좋아야 로스팅의 세분화도 가능하다
로스팅 중인 원두
비슷한 무렵의 유럽은 카페나 커피하우스라는 장소를 통해 커피문화가 형성되어 있었고, 대부분이 강하게 로스팅을 한 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특히 프랑스에서 선호하는 정도라 하여 프렌치 로스트로, 이탈리아는 에스프레소 발상지답게 가장 강한 볶음 정도인 이탈리안 로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커피 로스팅 정도의 세분화는 커피 소비환경이 풍요로울 때나 가능하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커피를 파는 사람에게는 단시간에 대량으로 로스팅을 할 수 있으면 연료비를 절약할 수도 있고, 강배전을 하면 수분이 더 많이 증발하고 연소로 소실된 성분만큼 중량이 감소하기 때문에, 약배전인 편이 훨씬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이다. 생산량이 감소하거나 가격이 폭등하면 으레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미국 대공황 이후에는 뉴욕의 대형 커피회사들이 이러한 판매전략을 취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약배전화’가 되어갔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커피 위기- 1970년대 녹병과 서리로 인해 원료가격이 폭등했을 때에도 미국과 수입 국가들에서는 약배전화가 진행되었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내 입에 맞는 볶음 정도를 찾아 마시는 기쁨을 누려보자
내 입에 맞는 맛있는 커피 한 잔
요즘처럼 로스팅 장인의 섬세함을 다양하고 폭넓게 논할 수 있는 환경은 애석하게도 영원히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농산물인 커피는 매년 작황이 다른 것이 현실이며,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다가올 자연의 위기는 인간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의 커피 소비환경은 품질 면에서도 다양성 면에서도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지막으로, 와인을 처음 배우려고 할 때 국가보다는 품종을 골라서 마셔보는 것이 도움이 되듯이, 나에게 맞는 커피를 고를 때에는, 생산지보다 볶음 정도를 찾아서 마셔보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된다. 설볶이지 않고 타지 않은 범위 내에서 입에 맞는 볶음 정도의 커피를 골라 눈치보지 말고 마시자. 입에 맞지 않으면 마시지 말자.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다 잘 볶는 것도 아니고, 비싸다고 다 맛있는 커피도 아니다. 우리는 된장, 간장 등 발효식품을 다양하게 먹고 자란 민족이다. 자신의 입맛을 믿고, 맛있다고 느껴지는 것을 골라서 잘 마시도록 하자.
글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 대표이며, 《커피교과서》 《스페셜티커피테이스팅》 《커피과학》 《카페를 100년간이어가기위해》 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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