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서울역사는 2004년 지금의 신 역사가 들어서기 전까지
오랜 시간 동안 서울 교통의 중심이자 서울로 들어서는 관문 역할을 해왔다.
우리나라 근대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니만큼 옛 서울역사에 얽힌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고, 공간 곳곳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이제 ‘문화역 서울 284’라는 신개념 복합문화공간으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있는 옛 서울역사.
현재의 미적 기준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그 곳을 찾았다.
‘문화역 서울 284’와 함께 그 옆을 흐르고 있는 ‘서울로 7017’까지, 아름다운 도시 서울의 가을을 더욱 빛내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의 꿈과 희망을 실어 날랐던 옛 풍경 속 서울역
“열차가 도착했는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서울 사람들은 날렵하게 광장을 가로질러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속으로 또는 택시를 타러 흩어졌지만 초행인 시골노인은 마중 나온 사람을 찾아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아무나 붙들고 길을 묻기도 했다.” - 박완서 <그해 겨울은 따듯했네> 중에서
누구에게나 옛 서울역에 대한 추억이 하나씩은 있지 않을까. 꼭 추억이 아니더라도 서울역을 지나며 떠올렸던 인상이나 그 당시 느꼈던 감정 같은 것 하나쯤은 마음 속에 품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우리나라 문학작품 속에는 옛 서울역이 등장하거나 배경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유독 많았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 <그해 겨울은 따듯했네>처럼 말이다.
옛 서울역은 기차를 타는 장소 그 이상의 가치를 품고 있다. 1925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KTX가 개통되고, 신 역사가 생기기 전까지 80여 년간 서울의 주요 관문 역할을 해왔다. 60~70년대 산업화 시대에는 성공을 꿈꾸며 서울로 올라오는 젊은이들의 첫 무대였다. 청운의 꿈을 안고 기차에 몸을 실어 난생 처음 서울에 도착한 사람들은 서울역 광장 밖으로 나와서야 드디어 서울에 왔음을 실감하곤 했다.
한편, 옛 서울역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갖은 수탈과 근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1920년대에 들어서자 일본은 물자와 인력을 원활히 운송하기 위한 새로운 역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1922년 공사를 시작해 1925년에 이 곳을 완공하는데 당시의 이름은 경성역이었다. 서울역으로 이름이 바뀐 건 해방 이후였다.
2004년에는 고속철도 KTX가 개통되면서 새로 지은 역사(驛舍)를 사용하게 되었고 기존의 서울역은 더 이상 기차역으로서의 기능은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옛 서울역사는 한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2011년 내부 복원공사를 마친 뒤 ‘문화역 서울 284’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문화역 서울 284’라는 이름은 문화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는 역이자 서울이라는 지역성, 사적 284호로 지정된 국가문화재라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주 소 | 서울특별시 중구 통일로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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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장 료 | 무료 |
문 의 | 02-3407-3500 |
이용시간 | 오전 10:00~19:00 (월요일 휴무, 매달 마지막 수요일은 21:00까지 연장 운영) |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는 1900년에 건설된, 제물포역과 서대문역을 잇는 경인철도다. 이는 1804년 영국에서 증기기관차가 발명된 지 약 100년 만의 일이었다. 같은 해인 1900년 7월, 이곳에 지어진 서울역은 원래 ‘남대문 정거장’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작고 소박한 역이었다. 그 후 경의선(1902)과 경부선(1905)이 연이어 개통되면서 1925년 지금과 같은 모습의 옛 서울역사가 완공되었다.
1960~70년대에는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과 함께 이용객 수가 급격히 증가해 1988년 서울역 서측에 민자역사를 새로 지어 규모를 확장하기도 했다. 2004년 고속철도 KTX가 개통되면서 현재의 새 역사(驛舍)를 사용하게 되었고, 옛 역사는 2011년 내부 복원공사를 마친 뒤 ‘문화역 서울 284’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우아하면서도 웅장한 르네상스 양식의 석조건축물
옛 서울역사는 르네상스 궁전 양식에 따라 지어진 지상 2층, 지하 1층 구조의 건물이다. 붉은 벽돌과 청동색 돔, 화강암 바닥, 인조석을 붙인 벽, 박달나무 바닥 등으로 이루어진 유럽식의 이국적인 외관은 지금 봐도 아름답기 그지 없다. 르네상스 양식은 인간 중심의 디자인과 화려한 장식보다는 재료의 특성이 잘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특징인데, 옛 서울역사에서도 그러한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옛 서울역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따뜻하고 감성적인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 또한 같은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또, 멀리서 보면 석조 건물 특유의 웅장함과 우아함도 지니고 있다. 서양의 궁전처럼 화려한 느낌을 주는 건물 외관은 붉은색 벽돌과 어우러진 화강석으로 되어 있는데. 중앙 돔을 중심으로 비례가 중시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옛 서울역사에서 특히 아름다운 곳은 돔이다. 돔은 사각형 평면 위에 원형의 돔을 얹는 형식이 특징인 비잔틴 양식으로 되어 있다. 돔 네 귀퉁이에 세워져 있는 탑은 장식적 요소가 더 많은 바로크 양식 기법이 더해진 것이라고 한다.
건물의 정면에 서서 바라보면 중앙에 붙어 있는 시계도 눈에 띈다. ‘파발마’라는 이름을 가진 이 시계는 옛 서울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후반까지는 한국에서 가장 큰 시계였는데, 시계 지름이 무려 160cm에 이른다. 한국전쟁이 있던 시기 3개월 정도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는 이 시계는 1951년 1�4후퇴 때 역무원들이 직접 시계를 분리해 피난을 갔을 정도로 소중히 했다고 전해진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채 세련된 문화공간으로 거듭나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탁 트인 중앙홀이 가장 먼저 사람들을 맞이한다. 첫 인상이 우아하고 기품이 있다. 중앙홀은 석조 건축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열두 개의 석재 기둥, 동쪽과 서쪽의 반원형 창, 상부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이루어져 있고, 석재 기둥은 상부의 돔을 지지한다. 자세히 보면 기둥마다 기단의 높이가 다른데, 이 중 높은 기단은 양쪽 기둥을 연결해 수하물을 부치는 공간으로 사용됐었다고 한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한국전쟁 후에는 태극 문양과 네 마리의 봉황, 무궁화 그림이 있었는데, 지금은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강강술래를 형상화한 그림으로 바뀌었다.
공연·전시·이벤트·카페 등의 다목적 공간으로 탈바꿈한 1층에는 당시의 1�2등 대합실, 3등 대합실, 부인대합실, 귀빈실 등이 있다. 지금으로 따지면 특실표를 끊은 승객들은 1�2등 대합실을, 일반 좌석표를 끊은 승객은 3등 대합실에서 머물렀다. 그 중에서도 여성 승객은 부인대합실에 따로 머물렀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귀빈실은 대리석으로 된 벽난로, 방을 비추는 커다란 거울, 고급 장식 벽지로 마감된 점이 인상적이다. 귀빈실을 거쳐간 사람들은 우리 역사에 기록될 만한 유명인사들이었다. 그 중에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도 있었는데, 이곳에서 일본으로 가는 옹주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가 마음 깊이 더욱 와 닿는 듯 하다.
현재 아카이브·기획전시실·사무공간 등으로 쓰이고 있는 2층에는 당시 지식인들의 사교 중심지였으며, 어마어마한 규모로 유명세를 떨쳤던 대식당 ‘그릴(Grill)’과, 당시의 시공 방법이나 장식 등을 상세히 보여주는 복원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이발소와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로 사용되던 공간에 자리한 복원전시실에는 예전에 사용됐던 나무 창틀을 전시용 프레임으로 그대로 활용하는 등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접점으로 활용한 참신하고 의미 있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암살> 포토 스틸 컷 >
중앙홀은 지금도 그 옛 모습을 잘 간직한 덕분에 근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2015년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에서는 의열단원들이 중앙홀을 통해 잠입하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이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연출된 장면이다.
1927년 1월 30일자 ‘매일신보’에 의열단원들이 당시 경성역을 통해 잠입한다는 첩보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또, 중앙홀 옆 귀빈실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포스터가 촬영된 장소이며, 서울역 내부에서도 영화의 주요 장면들이 촬영됐다.
시민들을 위한 보행로로 다시 태어난 서울역 고가도로
옛 서울역사 바로 옆, 차들로 빽빽하고 삭막하던 고가도로는 이제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곳이 되었다. 한가로이 도심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들이 차 대신 이 거리를 걷게 된 것이다. 옛 서울역사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 옆을 흐르던 고가도로였다. 1970년에 만들어진 이 도로는 2013년 안전점검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아 더 이상 찻길로서의 역할을 못하게 되면서 철거될 위기에 처했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철거가 아닌 재생을 선택했고, 2017년 공원이자 보행로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바로 ‘서울로 7017’이다. 서울역 고가도로가 만들어진 1970년과 보행로로 재탄생한 2017년을 동시에 담은 이름이다.
다른 도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형태의 녹지공간과 휴게공간은 시민들의 새로운 문화공간이 되고 있으며 어두컴컴하기만 했던 고가 아래는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서울로 7017’은 공중에 조성된 일종의 공원인 만큼 멋진 전망을 자랑한다. 서울역과 철길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쉼 없이 지나가는 차들이 도로 위를 내달린다. 특히, ‘서울로 7017’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노을 빛이 사방을 물들이는 해질 무렵이다. 그러다 밤이 내리고 어둑해질 때쯤이면 서울스퀘어빌딩 전면에는 거대한 미디어 파사드가 펼쳐지고, 대도시는 저마다 불을 밝히며 화려함을 뽐낸다.
< 사진 제공: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서울로 7017’의 양 끄트머리에서 퇴계로(남대문) 방향, 혹은 만리재로 쪽으로 가면 다시 소박한 길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남대문 방향으로 가거나 서울스퀘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현대적이고 세련된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즐비해 눈이 휘둥그레지기 일쑤지만 서울역 뒤쪽 만리동광장에서 시작하는 만리재로는 좀 더 소박하고 푸근하다. 1925년 서울역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염천교 수제화거리에서는 1970~1980년대 분위기를 그대로 느껴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꼽히는 약현성당과, 마냥 걷기 좋은 손기정체육공원, 손기정기념관도 함께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1970년 10월 26일, 남산에 구 안중근의사기념관이 건립되고 40년 만인 2010년 10월 26일 현재의 새 기념관이 개관됐다. 새로운 안중근의사기념관은 구관을 철거하고 기존 건물 뒤편의 작은 광장 터에 자리잡았다. 기념관이 자리한 대지 주변은 일제강점기의 조선신사 터로, 신사참배를 종용 받던 곳이었다. 치욕의 땅인 이곳에 안중근 의사의 영정을 모셔 새로운 역사를 쓴다는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기념관은 지하 2층에서 지상 2층까지 제1~3전시실과 추모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실은 을사늑약 체결 전후의 안중근 의사의 활동을, 제2전시실은 안중근 의사의 해외활동을, 제3전시실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서부터 시작한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건물 네 동으로 보이지만 위에서 보면 1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동의단지회(단지동맹) 11명과 안중근 의사까지 12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 사진 출처: 피크닉(Piknic) 인스타그램 >
옛 풍경을 그나마 많이 간직하고 있는 회현동에 자리한 ‘피크닉’은 요즘 최고로 ‘핫’한 곳이다. 피크닉은 전시장, 레스토랑, 카페, 디자인 스토어가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 1970년대 한 제약회사의 사옥을 개조해 설계한 이곳은 도심 속 조용한 휴식처 같은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1층에는 국내외 창작자들이 제작한 잡화와 서적을 판매하는 문구잡화점 ‘키오스크 키오스크’와 통유리창으로 남산을 조망할 수 있는 ‘카페 피크닉’이 있다. 2층에는 전시공간 ‘글린트’가, 3층에는 프렌치 레스토랑 ‘제로 콤플렉스’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4층 테라스다. 1인용 빈백 소파가 듬성듬성 놓여 있는 테라스에선 시원한 맥주를 함께 즐길 수 있는데, 남산과 서울 시내 풍경을 바라보면서 마시는 맥주 한잔이면 도심 속 힐링이 현실이 된다.
일본식 캐주얼 레스토랑 ‘도쿄 스테이크’는 서울역 맛집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곳 중 하나다. 무겁고 딱딱한 레스토랑이 아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과, 일본풍의 인테리어로 꾸민 캐주얼한 분위기의 외식공간이란 점이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이다. 대표 메뉴인 부채살 스테이크와 스테이크 덮밥은 풍부한 육즙과 깊은 맛을 자랑한다. 오전 11시 30분부터 딱 일곱 그릇만 한정 판매하는 ‘1파운드 스테이크 덮밥’을 먹기 위해 점심시간에는 줄 서기 경쟁이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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