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걷기에 좋을 뿐 아니라 역사적 사연이 깃든 길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사연을 알고 걸으면 한층 더 마음에 와닿는 강화도의 풍경들.
그 가운데 강화나들길 14코스로 지정된 ‘강화도령 첫사랑길’이 특히 그러하다.
강화의 아픈 역사와 수려한 자연을 배경으로 강화도령 시절의 철종과 첫사랑 봉이의
애잔한 러브스토리가 곳곳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은 철종의 잠저인 용흥궁에서 출발해 철종과 봉이가
처음 만난 장소로 추정되는 청하동 약수터와 강화산성을 지나 철종외가에까지 이르는 길이다.
어쩌면 이 길이야말로 짧은 생을 살다간 철종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든다.
철종이 어린 시절을 보낸 작고 소박한 집
용흥궁(龍興宮)은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잠저(�邸)’이다. 잠저란,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 궁궐 바깥에서 살던 민가를 일컫는 것으로, ‘용이 흥하게 되었다’란 뜻의 용흥궁은 ‘강화도령’으로 불렸던 철종이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에 강화유수 정기세가 원래는 초가였던 집을 새로 지은 것이다.
용흥궁은 좁은 골목길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대문을 통과하니 행랑채를 마주하고 옆으로 안채가 있다. 돌계단을 오르면 사랑채가 있으며, 사랑채의 오른편 계단을 올라가면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을 만날 수 있다. 보통 조선시대 사대부의 살림집은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나오고, 안채를 사랑채 뒤편에 배치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용흥궁은 사랑채를 안채 뒤편 구릉 위에 지은 점이 특이하다. 이는 왕이 머물렀던 사랑채의 권위와 전망을 고려해 언덕 위에 배치한 것이라고 한다. 사실 ‘궁’이라는 표현을 썼으나 그리 넓거나 화려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사대부의 살림집 같은 느낌인데,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쓸쓸함마저 감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뚜껑이 덮인 채로 자리하고 있는 우물 두 개도 흐린 날씨 탓인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용흥궁을 한 바퀴 휘 둘러보다 보면, 마치 퇴락한 권력자의 뒷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하여 애잔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주 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동문안길21번길 1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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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장 료 | 무료 |
이용시간 | 09:00~18:00 연중무휴 |
<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일명 ‘강화도령’이라 불리는 조선의 제25대 왕인 철종 이원범(재위 1849~1863)은 영조의 차자인 장헌(사도)세자의 증손자다. 1844년 가족과 함께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1894년 궁중에 들어와 헌종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했고, 실권은 안동 김씨가 쥐고 있던 때였다. 1859년부터 친정을 시작했으나 안동 김씨 세력의 세도가 강해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이에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민중의 생활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갔고, 결국 1862년 진주민란을 시발점으로 곳곳에서 농민항쟁이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철종은 민심을 수습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고, 자신을 지지해줄 남인들이 노론 벽파의 천주교 탄압으로 숙청당해 완전히 힘을 잃게 되었다.
1862년부터 철종은 줄곧 병석에 누워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1864년 1월 16일 재위 14년 만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짧지만 한 많은 인생을 끝냈다. 당시 그의 나이 겨우 33세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성당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풍경
용흥궁을 둘러본 후 바로 옆 그리 멀지 않은 언덕 위에 위치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강화성당으로 향하는 길은 돌담으로 이어져 제법 멋스럽다. 강화성당은 1900년 11월 15일 고요한(Charies Jone Corfe) 초대 주교가 축성한 건물로, 성 베드로와 바우로의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한옥의 건축양식을 따라 지었기 때문에 얼핏 사찰처럼도 보이는데, 이는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지의 전통과 문화를 수용한다는 성공회의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강화성당은 입구 계단, 외삼문과 내삼문, 성당 건물, 사제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삼문은 솟을대문에 팔작지붕으로, 현판에는 ‘성공회강화성당(聖公會江華聖堂)’이라고 쓰여져 있다. 또 내삼문은 평대문에 팔작지붕으로 서쪽 칸은 종각으로 쓰이는데, 종에는 성공회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성당 내부는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을 취하고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흰 돌로 만든 커다란 비석 같은 세례대가 있고 여기에는 수기, 세심, 거악, 작선 등의 한자가 새겨져 있다. ‘자신을 닦고 마음을 씻으며, 악을 떨쳐 선을 행한다’는 뜻이다. 목조가옥과 어우러진 내부의 등과 창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100년이 넘은 이 성당은 아직도 예배당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성당 입구에는 교인들의 세례명이 적힌 카드가 책장 가득 꽂혀 있었다. 성당 건물과 같은 시기 지어진 사제관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사제관 역시 한옥 양식을 그대로 따른 건물이다.
강화성당의 터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범선처럼 보이는데, 방주로서의 의미를 살려 배의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성당이 자리 잡은 곳이 강화도라는 섬이고 교인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는 것을 고려하여 성당 역시 배를 본 뜬 모양으로 설계되었다고도 전해진다. 성당이 위치한 언덕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은 한없이 고즈넉하면서도 아름답다.
주 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길27번길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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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장 료 | 무료 |
문 의 | 032-934-6171 |
이용시간 | 10:00~18:00 연중무휴 |
강화도령 이원범과 첫사랑 봉이가 처음 만난 운명의 장소
강화산성 남문에서 출발해 좁은 산길을 따라 30여 분 정도 오르면 청하동 약수터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나무를 하러 왔던 강화도령 이원범과 첫사랑 봉이가 처음 만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 약수터에서 만나 바로 위 강화산성 남장대를 지나 숲길을 걸어 찬우물 약수터까지 오가며 사랑을 나누었다고 전해진다.
청하동 약수터는 ‘남정(藍井)’이라고도 불렸는데,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이 달면서도 차갑기로 유명했다. 특히 부드러운 목 넘김이 좋은데, 작은 산에서 이런 맛의 약수가 나온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약수터 주변에는 다양한 체육시설과 큼직한 정자가 있어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또 강화도령과 봉이가 그려진 분홍색 안내판도 볼 수 있는데, 수줍게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이 이후 그들의 사연 때문인지 안쓰럽게 느껴진다.
굽이굽이 아름다운 고려시대의 성곽을 따라 걷는 기쁨
고종 19년(1232),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도읍을 강화로 옮기고 이곳에 궁궐을 지을 때 도성도 함께 쌓았다. 이때 지어진 도성은 개성의 성곽과 비슷하게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232년부터 축조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중 내성에 해당하는 것이 현재의 강화산성이다. 산성에 오르는 길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어 운이 좋으면 고라니, 청설모 등이 뛰어 노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강화산성에는 남쪽에서 군사들을 지휘하고 성을 지키는 장수가 있는 일종의 망루이자 지휘소인 남장대(南將臺)가 위치해 있다. 청하동 약수터에서 약 400m 떨어진 곳이다. 2010년에 복원한 남장대는 단아하면서도 위풍당당하며, 2층 구조로 된 지붕은 비례가 날렵하다. 또한, 남장대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감동적이기까지 한데, 북쪽으로는 강화 읍내와 고려궁지가 손에 잡힐 듯 하고, 그 뒤로는 한강 너머 북한의 개풍 땅이 선명하다. 동쪽으로는 서울 북한산과 도심이 한눈에 잡힐 정도로 너른 시야를 자랑한다.
고려궁 성곽길은 강화읍을 에워싸고 있는 강화산성을 중심으로 걷도록 조성된 길로, 남문을 출발해 남장대와 국화저수지 산책로를 지나 서문을 둘러보고, 다시 북문을 지나 북산 북장대를 돌아내려오는 총 11km의 코스다.
그 중 남장대와 북장대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은 단연 최고로 꼽힌다. 남장대에 오르면 강화읍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북장대에서는 저 멀리 북녘 땅까지 내려다 보여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남산에 위치한 청하동 약수터와 아이의 숲, 북산 오읍약수터의 시원한 약수 한 잔은 산책자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보너스 같은 곳들이다.
사대부가의 소박하고 단아한 멋이 흐르는 외갓집
걷다 보니 어느새 강화도령 시절 철종의 추억길 마지막 코스라 할 수 있는 철종외가에 다다랐다. 이곳 또한 철종이 즉위한 지 4년 후인 1853년에 다시 지어진 철종의 외삼촌 염보길의 집이다. 강화에 유배되었던 시절 철종이 도움을 받았던 외가를 보존하기 위해 철종 잠저인 용흥궁과 함께 재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집의 구조는 구한말 경기지역 사대부 저택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원래는 안채와 사랑채가 좌우에 있는 창덕궁 후원 연경당과 비슷한 형태인 H형 구조를 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가운데 행랑채 일부가 헐려 ‘ㄷ’자형을 유지하고 있다. 또 안채와 사랑채를 ‘ㅡ’자로 연결시켜 작은 화장담으로 간단하게 나눠놓은 점이 특이하다.
한적한 시골 동네에 자리잡은 철종외가의 인상은 전체적으로 단아하고 소박하다. 대문 밖으로 펼쳐진 너른 들판이 가을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집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이 먼 곳까지 나무를 하러 다녔다는 강화도령 시절 철종의 모습이 문득 떠올라서였을까, 아니면 외가 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곤 했다는 어린 시절 철종의 고단함을 상상했기 때문이었을까. 용흥궁에서 느껴졌던 쓸쓸함은 이곳 철종외가에서도 그대로 느껴지며 산책자의 발목을 오래도록 붙잡았다.
주 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철종외가길 4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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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장 료 | 무료 |
이용시간 | 09:00~18:00 연중무휴 |
고려궁지는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에 수도를 강화도로 옮긴 후 1234년에 세운 궁궐 터와 관아 건물을 포함하고 있다. 연경궁, 강안전, 경령궁 등 규모는 작지만 궁궐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으며 뒷산 이름도 개경과 마찬가지로 송악으로 불렀다. 고려왕조는 1270년 몽골과 화친조약을 맺으며 강화도를 떠나 다시 개경으로 환도했다. 이때 몽골이 ‘강화도에 있는 궁궐과 성곽을 모두 파괴하고 돌아와야 한다’고 하여 39년간 고려의 수도였던 역사적 유물이 대부분 파괴됐고, 지금은 왕궁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폐허가 된 고려궁지에는 조선시대 왕의 행차 때 사용하던 행궁과 동헌, 외규장각 등이 들어섰지만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때 이마저도 프랑스군에 의해 모두 불에 타 없어졌거나 약탈당했다. 현재는 강화유수가 업무를 보던 동헌, 이방청 등만이 남아 있다.
1934년에 들어선 근대식 방직공장이 강화도에서 가장 트렌디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강화의 부호 홍재묵, 재용 형제가 설립한 조양방직은 우리나라의 섬유산업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폐가로 전락했다. 그러다가 1년간의 리모델링 기간을 거쳐 카페 조양방직으로의 대변신이 완료된 것은 불과 올해 7월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2천여 평이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진다. 건물 내부는 최대한의 자연광을 활용하였으며,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는 점을 살려 옥탑에 바람이 오가는 야외 테이블을 마련했다. 카페 곳곳에 놓여 있는 조형물과 공간의 조화가 놀라울 정도로 감각적이며,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이어주는 듯한 공간이 매력적이다.
강화풍물시장은 2007년 강화민속장 명소화사업을 통해 신축한 2층 건물 상설시장으로, 1층에는 풍물장, 회센터가 있고, 2층에는 풍물장과 식당이 있다. 보통의 전통시장처럼 농산품, 해산물, 말린 생선, 김치, 젓갈 등의 반찬거리와 농기구, 각종 잡화 등이 시장을 방문하는 손님과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풍물시장이라는 이름답게 강화순무, 밴댕이 젓갈, 강화 인삼, 화문석 등 강화도를 대표하는 다양한 특산품을 구입할 수 있다. 시장 인근에는 강화인삼센터와 토산품센터도 있어 함께 둘러볼 만 하다.
TV 프로그램 <수요미식회>에서 ‘문 닫기 전에 꼭 가야 할 꽃게 맛집’으로 소개되기도 했던 강화도의 꽃게요리 전문점 ‘충남서산집’의 대표 메뉴는 바로 꽃게탕이다. 살과 알이 가득 찬 통통한 꽃게와 단호박, 버섯, 쑥갓 등의 부재료를 넣어 끓인 꽃게탕은 달큰하면서도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직접 담근 된장을 풀어 넣어 구수한 맛을 더하고, 기본반찬으로 나오는 순무 깍두기와 어리굴젓도 밥맛을 돋운다. 끓이면 끓일수록 깊은 맛이 나는 꽃게탕 국물에, 라면 사리와 수제비를 추가하여 먹는 것도 별미. 단, 강화도에는 ‘충남서산집’이라는 간판을 내건 가게들이 꽤 많으니 잘 찾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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