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길라잡이

철종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거니는 고즈넉한 즐거움

서울 근대건축 문화 산책 제4편 : 구 벨기에 영사관(현서울 시립 남서울 미술관)
서울 근대건축 문화 산책 제4편 : 구 벨기에 영사관(현서울 시립 남서울 미술관)
철종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거니는 고즈넉한 즐거움

강화도는 걷기에 좋을 뿐 아니라 역사적 사연이 깃든 길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사연을 알고 걸으면 한층 더 마음에 와닿는 강화도의 풍경들.

그 가운데 강화나들길 14코스로 지정된 ‘강화도령 첫사랑길’이 특히 그러하다.
강화의 아픈 역사와 수려한 자연을 배경으로 강화도령 시절의 철종과 첫사랑 봉이의
애잔한 러브스토리가 곳곳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은 철종의 잠저인 용흥궁에서 출발해 철종과 봉이가
처음 만난 장소로 추정되는 청하동 약수터와 강화산성을 지나 철종외가에까지 이르는 길이다.
어쩌면 이 길이야말로 짧은 생을 살다간 철종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든다.

강화도는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의 추억이 담긴 아름다운 길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 강화도는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의 추억이 담긴 아름다운 길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철종이 어린 시절을 보낸 작고 소박한 집

용흥궁(龍興宮)은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잠저(�邸)’이다. 잠저란,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 궁궐 바깥에서 살던 민가를 일컫는 것으로, ‘용이 흥하게 되었다’란 뜻의 용흥궁은 ‘강화도령’으로 불렸던 철종이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에 강화유수 정기세가 원래는 초가였던 집을 새로 지은 것이다.

지방유형문화제 제20호로 지정된 용흥궁으로 들어서는 골목
용흥궁의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라 전해진다
맞배지붕 형태의 내전(안채). 안채와 사랑채 모두 경기지방 한옥에서 볼 수 있는 ‘ㄱ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팔각지붕이 멋스러운 사랑채. 처마도리의 경우 하늘을 상징하는 사랑채는 둥글게, 땅을 상징하는 안채는 네모나게 처리했다

 

1. 지방유형문화제 제20호로 지정된 용흥궁으로 들어서는 골목. 2. 용흥궁의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라 전해진다.

3. 맞배지붕 형태의 내전(안채). 안채와 사랑채 모두 경기지방 한옥에서 볼 수 있는 ‘ㄱ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4. 팔각지붕이 멋스러운 사랑채. 처마도리의 경우 하늘을 상징하는 사랑채는 둥글게, 땅을 상징하는 안채는 네모나게 처리했다.

 

용흥궁은 좁은 골목길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대문을 통과하니 행랑채를 마주하고 옆으로 안채가 있다. 돌계단을 오르면 사랑채가 있으며, 사랑채의 오른편 계단을 올라가면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을 만날 수 있다. 보통 조선시대 사대부의 살림집은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나오고, 안채를 사랑채 뒤편에 배치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용흥궁은 사랑채를 안채 뒤편 구릉 위에 지은 점이 특이하다. 이는 왕이 머물렀던 사랑채의 권위와 전망을 고려해 언덕 위에 배치한 것이라고 한다. 사실 ‘궁’이라는 표현을 썼으나 그리 넓거나 화려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사대부의 살림집 같은 느낌인데,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쓸쓸함마저 감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뚜껑이 덮인 채로 자리하고 있는 우물 두 개도 흐린 날씨 탓인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용흥궁을 한 바퀴 휘 둘러보다 보면, 마치 퇴락한 권력자의 뒷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하여 애잔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들.
사랑채 바깥 쪽에 자리한 비각과 그 안에 세워진 철종조잠저구기비(哲宗朝暫邸舊基碑)의 모습.

1.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들. 2. 사랑채 바깥 쪽에 자리한 비각과 그 안에 세워진 철종조잠저구기비(哲宗朝暫邸舊基碑)의 모습.

Information.  용흥궁 관람 안내

주    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동문안길21번길 16-1
입 장 료 무료
이용시간 09:00~18:00 연중무휴

산책자를 위한 가이드   

잘 걷고 잘 알기 비운의 왕, 철종

비운의 왕, 철종

<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일명 ‘강화도령’이라 불리는 조선의 제25대 왕인 철종 이원범(재위 1849~1863)은 영조의 차자인 장헌(사도)세자의 증손자다. 1844년 가족과 함께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1894년 궁중에 들어와 헌종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했고, 실권은 안동 김씨가 쥐고 있던 때였다. 1859년부터 친정을 시작했으나 안동 김씨 세력의 세도가 강해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이에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민중의 생활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갔고, 결국 1862년 진주민란을 시발점으로 곳곳에서 농민항쟁이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철종은 민심을 수습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고, 자신을 지지해줄 남인들이 노론 벽파의 천주교 탄압으로 숙청당해 완전히 힘을 잃게 되었다.

1862년부터 철종은 줄곧 병석에 누워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1864년 1월 16일 재위 14년 만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짧지만 한 많은 인생을 끝냈다. 당시 그의 나이 겨우 3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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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율
사진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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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0-22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