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한복판, 사당역 부근에 독특한 매력을 지닌 미술관이 있다.
서울시립미술관(SeMA)의 분관이면서 과거에 벨기에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던 남서울미술관이 그 주인공이다.
한눈에 보아도 오랜 시간을 견뎌왔음이 느껴지는 이 곳은 100여 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 덕분일까. 건물 자체가 미술품으로 와 닿는 것은. 하지만 감상에 빠지기엔 아직 이르다.
미술관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보면 더욱 오묘하고 환상적인 기분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당동에 이런 곳이?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한 근대건축물
처음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의 위치를 들었을 때 ‘사당동에 미술관이 있다고?’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근래에는 주변 상권이 발달해 사당동을 ‘맛집이 많은 동네’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집이 많은 곳’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답게 ‘사당동(舍堂洞)’은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곳이자 서울 시내와 근교를 잇는 다양한 버스 노선이 지나는 곳이어서 서울 남부권의 최대 교통 요지로 꼽혀왔다. 당연히 유동인구가 많고 복잡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런 의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런데, 사당역 6번 출구에서 나와 1~2분 정도 걸으니 눈 앞에 믿기지 않는 건축물이 갑자기 나타났다.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건물이 은은한 가을 햇빛 아래 우뚝 서 있었다. 붉은 벽돌로 견고하게 지어진 2층 규모의 건물이 직사각형의 빌딩들 사이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어딘가 묘한 느낌을 준다.
사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과의 첫 만남은 놀라움 자체였다. 미술관에 들어가기에 앞서 정원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잠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감상해본다. 정문을 경계로 현실과 비현실, 현재와 과거가 마주하고 있는 듯, 마치 이 순간 시공간을 뛰어넘는 듯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만다.
위 치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20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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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람 료 | 무료 |
문 의 | 02-598-6247,6240 |
이용시간 | 평일 오전 10:00~20:00, 토�일요일�공휴일 오전 10:00~18:00 (매주 월요일 및 1월 1일은 정기 휴관) |
뛰어난 건축미, 관람객의 마음을 사로잡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은 1900년대 신고전주의 건축의 매력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그간 우여곡절의 시간을 겪었지만, 큰 훼손 없이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마저 느껴진다.
일본 건축가 고다마가 설계한 남서울미술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붉은 벽돌과 화강석을 사용하여 지어졌으며, 1905년에 완공됐다. 전면의 화강암과 붉은 벽돌이 발코니의 석주와 조화를 이루면서 풍기는 단아함이 특히 인상적이다. 석주는 고대 그리스 장식 양식의 하나인 이오니아식으로 되어 있어 고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석주의 위아래에는 정교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남서울미술관이 건축될 당시에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좌우 대칭의 구조로 지어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건물은 좌우가 약간 다른 비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문에는 현재 전시 중인 <날씨의 맛> 작품 중 하나인 ‘트와이라잇 존’이 구현되어 있었다. 대형 스테인드 글라스에 비치는 바깥 풍경은 매우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 회현동 시절의 구 벨기에 영사관과 주변 모습. 가운데에서 약간 오른쪽에 위치한 큰 건물이 벨기에 영사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한제국의 탄생과 일제강점기, 광복 등 우리나라 질곡의 근현대사의 흔적을 간직한 건축물이다.
1901년 벨기에와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세워진 벨기에 영사관 건물로 사용되었는데, 본래는 중구 회현동(현재 우리은행 본점 사옥)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1970년 도심재개발로 인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벨기에 영사관 이후에는 일본 횡빈생명보험회사 사옥과 일본 해군성 무관부 관저로 쓰이다가 해방 후 해군헌병대로 사용되는 등 시대에 따라 용도가 바뀌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1970년, 우리은행의 전신인 상업은행이 이 건물을 사들여 상업은행 사료관으로 사용하다가 2004년부터 서울시에 무상 임대해 현재의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으로 일반 관람객을 맞고 있다.
공간과 작품이 하나의 예술이 되는 경이로움과 마주하다
미술관의 외관만큼이나 내부 역시 매력적이다. 마치 오래된 공간과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예술이 되는 장면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처음 지어졌을 때는 꽤나 화려했을 법한 내부 공간이 현재는 형태만 유지된 채 대부분 하얗게 칠해져 있다. 벽난로와 벽면 장식, 기둥 등 일부 실내의 구조물을 통해 화려했을 과거의 영사관 모습을 상상해 본다. 다만 계단 난간의 장식, 천장의 장식, 샹들리에 등이 20세기 초 건축물의 흔적을 여전히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장식들이 미술관 내부의 고풍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배가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그 동안 이곳을 지났을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닳아 있고, 마루바닥은 삐걱삐걱 클래식한 소리를 내며 건물의 나이와 지나온 시간을 알려준다. 르네상스 양식의 커다란 창문들도 무척 인상적이다. 창으로 보이는 미술관 정원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꽤나 즐거운 경험이다.
<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SeMA)>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 이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역시 1900년대를 대표하는 근대건축물 중 하나다.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정동길로 접어들면, 왼편으로 오래된 수목과 꽃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야외 정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정원의 경사진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이다. 이 곳은 1928년 일제에 의해 경성재판소로 지어진 건물로, 광복 후 대법원으로 사용되다가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한 후인 2002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르네상스 양식인 옛 대법원 건물의 전면부는 그대로 보존하고, 후면부에 현대식 건물을 신축했다.
<미술관이 된 舊 벨기에 영사관> 그리고 <날씨의 맛>
현재 남서울미술관에는 두 개의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1층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술관이 된 舊 벨기에 영사관>전은 대한제국 시절 벨기에 영사관으로 세워져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남서울미술관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한제국이 벨기에와 수교하는 시점부터 지금의 장소로 이축하는 과정을 ‘이축 이전 회현동 시절’, ‘이축과 재탄생’, ‘관련 사료, 문헌’, ‘현재’ 등 총 4개 섹션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구 벨기에 영사관이 지닌 근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와 미술관으로서의 현재적 의미를 접할 수 있는 유익한 전시로, 미술관 1층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또 다른 전시인 <날씨의 맛>은 일상 속 날씨를 음미하고 날씨와 맺어온 역사,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됐다. 전시는 감각적으로 인식되는 날씨에 대한 요소를 다룬 ‘날씨를 맛보다’와 점차 시각적으로 확장돼 인지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날씨에 맛을 더하다’라는 두 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날씨를 맛보다’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날씨 현상과 자연이 어우러진 찰나의 순간 속 다양한 감정을 표현했고, ‘날씨에 맛을 더하다’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이 아닌 과거부터 인간의 개입과 관계 맺음을 통해 변화해온 날씨의 다층적 면모에 주목한다. 특히, 바라보는 위치나 각도에 따라 빛이 다르게 느껴지고 바깥의 날씨와 풍경도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박여주 작가의 ‘트와이라잇 존’은 이 오래된 건물에 환상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날씨의 맛>은 날씨와 관련된 감각적이면서도 세련된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품게 만든다. 전시는 9월 30일까지 1층과 2층 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을 나와 사당초등학교를 지나면 ‘서정주의 집’이라고 쓰여있는 간판이 달린 2층 양옥집을 만나게 된다. ‘봉산산방(蓬蒜山房)’이란 이름은 가진 이곳은 미당 서정주 시인이 1970년부터 2000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살았던 집이다. 시인은 친일 행적과 함께 신군부 시절의 처신 때문에 역사적 평가에 있어서는 논란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악구는 시인을 둘러싼 논란과는 별개로, 한국 시문학 발전에 기여한 시인의 공로를 인정해 2003년 이 집을 매입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내부에는 시인의 한복, 모자, 넥타이, 가방, 안경, 지팡이 등을 비롯하여 시 창작 노트와 시집 등 60여 점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남서울미술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까치산공원은 사당역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떨어진 낙성대역에서 가는 것이 조금 더 편리하다. 까치산공원은 ‘까치 고개’라 불렸던 곳이 공원화되면서 오늘과 같은 이름을 갖게 됐는데, 약수터와 산책로가 있는 공원에는 3천여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어 도심 속에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휴식처로 안성맞춤이다.
또, 조선시대 문신인 효간공 이정영 묘역과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된 동래 정씨 임당공파 묘역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전체 구간의 경사가 완만한 편이라 누구나 산책을 즐기기에 무리가 없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음식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 할 만한 떡볶이. 매콤 달콤한 고추장 양념에 떡과 어묵, 라면사리까지 넣어 보글보글 끓여서 먹으면 한끼 식사로도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좀 더 특별한 떡볶이를 맛보고 싶다면 사당역 부근 ‘낙지대학 떡볶이꽈’를 들러볼 일이다. ‘토핑으로 즐기는 명품 떡볶이’를 슬로건으로 하고 있는 이 곳은 차돌박이, 통오징어 튀김, 쭈꾸미 등의 다양한 토핑을 곁들인 즉석떡볶이로 많은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떡은 일반적인 크기가 아닌 얇고 기다란 떡이 나오므로 취향에 맞게 알맞게 잘라 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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