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스캔들

함봉련 사건과 박조이 살인사건의 전말

 희대의 스캔들 : 조선을 뒤흔든 살인사건 스캔들 희대의 스캔들 : 조선을 뒤흔든 살인사건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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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최악의 살인사건이자
패륜 스캔들의 진실은?

조선시대 최악의 살인사건이자 패륜 스캔들의 진실은?
정조 9년(1785) 4월 20일, 황해도 평산에 양반집 며느리 박조이가 목 맨 시신으로 발견됐다. 수사 결과, 박조이가 남편의 사촌형제인 조광진과 간통을 한 사실이 발각되자 자살을 선택한 걸로 결론이 내려지는데….

“간통이라요. 말도 되지 않습니다! 제 누이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사옵니다.”

억울한 마음에 한양까지 직접 올라가 정조에게 상소문를 올린 박조이의 오빠. 정조는 곧 근엄한 목소리로 명을 내린다.

“단 한명의 백성도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라.”

정조의 특명으로 비밀리에 평산으로 파견된 암행어사 이곤수. 그런데, 얼마 후 그가 밝힌 사건의 전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조선을 뒤흔든 최악의 살인사건이자 패륜 스캔들. 그녀의 죽음은 자살일까? 아니면 타살일까?

실학자 정약용이 20년에 걸쳐 정리한
형법 연구서 <흠흠신서>

실학자 정약용이 20년에 걸쳐 정리한 형법 연구서 <흠흠신서 />
“살려야 할 사람은 죽이고, 죽여야 할 사람은 살리고서도 태연하고 편안할 뿐만 아니라 비참함과 고통으로 울부짖는 백성의 소리를 듣고도 구제할 줄 모르니, 이것이 바로 깊은 재앙이 아닌가” - <흠흠신서> 서문 중에서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은 무려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흠흠신서>, 일명 조선시대의 프로파일러로 통하는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는다. 흠흠(欽欽) 즉, ‘신중하고 또 신중하라’는 뜻의 형법 연구서인 <흠흠신서>는 약 350건의 사건일지를 아주 세세하게 담고 있으며,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판별하는 방법은 물론, 진짜 정신이상자를 구분하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평생의 절반을 유배지에서 보냈던 정약용. 그가 만난 백성들의 삶은 가혹한 고문과 수사로 인해 억울한 죽음이 넘쳐났고, 그 안에서 그는 조선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노력했다. 그렇다면 그가 <흠흠신서>로 풀어낸 대표적인 사건은 무엇일까.

하급 관리 모갑의 죽음에
주범으로 몰린 머슴 함봉련

희대의 스캔들 : 하급 관리 모갑의 죽음에 주범으로 몰린 머슴 함봉련
정조 23년 4월, 정조는 정약용을 형조참의로 임명하고 이미 확정 판결된 건을 포함해 전국의 형사 사건을 모두 재조사하라고 명령한다. 특히, 정조가 직접 ‘함봉련 사건’에 의문의 꼬투리가 있으니 자세히 살펴보라 일렀는데, 당시 사건은 이러했다. 평창 관아의 하급 관리인 모갑이라는 사람이 세금을 독촉하러 김태명의 집에 갔다가 결국 쌀 대신 송아지를 끌고 간다.

“아니, 이 도둑보다 더한 관리 놈아! 그 송아지가 어떤 건줄 알고 훔쳐가는 게냐?”
김태명은 모갑의 가슴을 무릎으로 짓찧은 후 송아지를 빼앗아 집으로 돌아갔고, 분이 덜 풀린 그는 머슴 함봉련에게 모갑을 더 혼내주라 일렀다. 함봉련은 주인의 명대로 모갑의 등을 살짝 떠밀었고, 잠깐 넘어진 모갑은 곧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모갑이 갑자기 피를 토하며 죽어버린 것이다. 시체 검험 결과 가슴 한 곳이 검붉고 딱딱하며, 코와 입이 피로 막힌 것 외엔 별다른 증상이 없어 타 질병이 아닌 맞아 죽은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런데 또 여기서 희한한 것이 주범이 머슴 함봉련, 이를 목격한 증인으로 주인 김태명이 지목된 것이다.

범인으로 지목된 함봉련의
억울함을 풀어준 정약용의 지혜

범인으로 지목된 함봉련의 억울함을 풀어준 정약용의 지혜
정약용은 모갑의 멍 자국은 가슴에 있으며, 이 부위는 김태명이 무릎으로 짓찧었고, 함봉련이 밀었다는 등에는 다친 자국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다른 증인들에 의해 억울하게 함봉련이 범인이 된 상황이었다.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모갑이 피를 토하고 죽을 때는 자신의 부인한테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은 김태명이다’라고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부인의 진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람들도 함봉련을 범인으로 지목했던 사건입니다. 사람들이 김태명에 대해 증언을 할 수 없었던 건 김태명은 마을 유지였고 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마치 요즘의 대기업 갑질 논란처럼 함구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래서 함봉련이 죽인 것처럼 주변 노비들의 증언이 조작된 부분이 있었던 거죠. 당시엔 신분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노비의 억울함은 풀어주지 않았고, 주인이 죄를 짓고 노비에게 뒤집어 씌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 최한나 <한나의 역사 스캔들> 저자
정조는 그의 보고서를 받자마자 곧바로 10년째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함봉련을 석방하고, 김태명을 긴급 체포하여 사형에서 한 등급을 줄여 처리한 후, 함봉련에 대한 모든 문건을 불태우라 명령했다. 특히 함봉련에 대한 문서를 태우라 명한 것은 무죄를 받은 사람일 경우, 관청에 서류조차 남겨서는 안 된다는 굳은 의지의 표시였다.

최악의 패륜이 낳은 참극,
평산 박조이 살인사건

희대의 스캔들 : 최악의 패륜이 낳은 참극, 평산 박조이 살인사건
이렇게 억울한 백성의 목숨을 살린 <흠흠신서>. 그런데 정약용이 이 책에서 밝힌 조선시대 최악의 패륜사건은 따로 있었다. 바로 ‘평산 박조이 살인사건’이었다. 정조는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암행어사 이곤수를 보냈고, 그는 중국 원나라 왕여(王與)가 송나라의 형사 사건 지침서들을 바탕으로 1308년에 편집한 법의학서 <무원록(無寃錄)>을 토대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쳤다. “<흠흠신서>에도 실린 내용인데, 가장 패륜적이고 요즘으로 치면 <사랑과 전쟁>급의 불륜 때문에 발생한 ‘평산 박조이 사건’이 있어요. 박조이라는 젊은 새댁이 목을 메고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보고 타살이다, 자살이다 하는 이야기가 많았거든요. 박조이 남편 조광선이 주장하기로는 아내 박조이가 자신의 사촌인 조광진과 간통을 했고, 그것이 걸릴까 두려워서 자살을 했다고 밝혔어요. 그런데 실제 내막은 조광진이 죽인 거였는데, 그 옆에 공범이 한 명 더 있었던 거죠.” - 최한나 <한나의 역사 스캔들> 저자
이곤수에 의해 밝혀진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 박조이의 남편 조광선은 아내 박조이가 자신의 사촌인 조광진과 간통을 했고, 그 사실을 들킬까봐 조광진이 박조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광진이 박조이를 죽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공범이 한 명 더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 그는 다름 아닌 박조이의 시어머니이자 조광선의 어머니인 차씨였다.

차씨와 조광진은 서로 숙모와 조카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근친상간을 저질렀고, 차씨는 그 과정에서 조광진의 아이까지 임신하게 된다. 당황한 차씨와 조광진은 그 아이를 낳아 뒷산에 유기해 모든 사실을 은폐하나 싶었는데….

“아니 어머님, 광진 도련님과 이 무슨 흉측스런 짓이란 말입니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둘이 정을 통하는 장면을 며느리 박조이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결국 차씨와 조광진은 입막음을 위해 박조이를 죽였고, 그 시신을 마치 자살한 것처럼 꾸며내 빨리 사건을 종결시키려고 했다. 이에 암행어사 이곤수는 정확하고 세밀한 검시법을 이용해 타살임을 밝혀내며 진짜 범인을 잡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단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신중 또 신중하라

희대의 스캔들 : 단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신중 또 신중하라
이처럼 박조이 살인 사건을 통해 우리는 당시 최고 통치자인 정조의 정의관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영조 때까지 금지됐던 굴검(시체를 파내는 것)마저 허용하며 과학적인 범죄규명을 천명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제는 지문 하나, 머리카락 한 올만으로도 범인을 잡아낼 수 있는 첨단과학 수사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전국의 미제 사건은 약 4만1천여 건. 장기 미제 살인 사건만 260여 건이다. 이 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에서 사라지게 됐는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단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신중하고 또 신중하라는 옛 선조들의 타협 없는 정신. 그것이야말로 불의에 저항하기보다 순응하는 길을 쫓는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정의의 참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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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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