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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연이은 출장으로 쉬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니, 아내는 기력 보충을 위한 메뉴를 준비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주말 오전.
“아, 곰탕이라니! 일주일 내내 먹게 생겼어. 한 솥 끓인다니까!”
“일주일이 뭐냐. 남은 건 얼려뒀다가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나올걸?”
“그냥 저녁에 나가서 한 그릇 사 먹고 들어오면 안 되나?”
“해주면 또 잘들 먹을 거면서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이게 한 그릇만 뚝딱 집에서 끓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사골 뼈 처음에 사온 거 핏물도 제대로 빼야 하고, 뼈에 구멍 뽕뽕 날 때까지 끓이기 시작하고도 두 번, 세 번, 몇 번을 푹 고아야 국물 맛이 환상적으로 우러나온다니까! 오늘 저녁에 다들 감동 받을 준비하시고! 너 학원 안 늦어? 빨리 준비해! 그리고 나 옆 동 창수네 잠깐 갔다 올 테니까 당신이 냄비 솥 한 번씩 들여다 봐줘요. 한바탕 끓이긴 했는데, 아직 좀 더 끓여야 해.”
아내가 나가고 주말 보습학원을 다니는 딸아이도 나갔다. 나는 나를 위해 아내가 준비했다는 사골국 냄비를 지키는 임무와 함께 남겨졌다. 우리 가족을 배부르게 하는 그 뽀얀 국물을 위해 사골 뼈는 소리 없이 고아지고 있었다.
무심히 그걸 지켜보고 있으니 얼마 간의 일들이 모두 사골 뼈 우려내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우러나지 않을 것 같은 삶이라도 우리는 또 한 번 열심히 한 탕 끓여내고 있는 것이다.
십 년을 우려먹어도
더 우려먹을 것이 있는지
열심히 불을 지핀다
처음 핏기가 가시지 않아
우려내어 버리고
맛 들어 먹을 만하면
이내 바닥을 보인다
물을 넣고
불을 높였다가 줄이고
줄였다가 높이고
천천히 데워도 단단한 뼈에선
쉽게 국물이 우려 나오지 않는다
아내가 화를 내고 간 자리
뼈마디 골병 든 구멍
세상 나오기 전 아이들의 집이다
그 동안 몇 탕째 우려 먹어놓고
국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불을 높인다
등골 빠지게
엿가락처럼 휘어진 일상
내 삶이
몇 탕째 끓고 있는 것일까?
진한 국물처럼
우러나와
너를 배부르게 하고 싶다
- 안정훈의 시 <사골을 끓이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