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시

당신의 삶은 몇 탕째 끓고 있습니까?

 생활의 시 : 내 삶도 진한 사골 국물처럼 우러나와 너를 배부르게 하고싶다 생활의 시 : 내 삶도 진한 사골 국물처럼 우러나와 너를 배부르게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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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시 : 한 달 동안 이어진 강행군 속에서 서서히 바닥난 체력 생활의 시 : 한 달 동안 이어진 강행군 속에서 서서히 바닥난 체력

한 달 동안 이어진 강행군 속에서
서서히 바닥난 체력

이번 달 들어 하루에 지방 도시 두세 군데를 들러야 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팀에서 추진하는 해외 수출 건에 대비해 현장 상황을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 물량 맞추려면 이거 싹 다 갈아야지. 그간 밤낮없이 돌려댄 게 얼만데! 사람으로 치면 골병이 들 대로 들었을 거라니까.”

하지만 본사에서는 이런 사정을 호락호락하게 보기만 했다.

“그쪽에서 늘 하는 얘긴 거 팀장님도 아시잖아요. 급하게 오더 내려가면 또 일정에 다 맞춰준다니까요.”

이런 상황을 조율하는 문제로 지방 현장을 오가고, 또 현장 사람들과 한두 잔 기울이는 것도 일이 되다 보니 체력이 바닥나고 있는 것 같았다.

“자, 한잔 받으시고! 제가 상황 잘 알죠. 제가 모르면 또 누가 알아줍니까? 하하하!”
생활의 시 : 남편의 기력 보충을 위해 한 솥 가득 사골곰탕을 끓이는 아내 생활의 시 : 남편의 기력 보충을 위해 한 솥 가득 사골곰탕을 끓이는 아내

남편의 기력 보충을 위해 한 솥 가득
사골곰탕을 끓이는 아내

그렇게 연이은 출장으로 쉬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니, 아내는 기력 보충을 위한 메뉴를 준비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주말 오전.

“아, 곰탕이라니! 일주일 내내 먹게 생겼어. 한 솥 끓인다니까!”

“일주일이 뭐냐. 남은 건 얼려뒀다가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나올걸?”

“그냥 저녁에 나가서 한 그릇 사 먹고 들어오면 안 되나?”

“해주면 또 잘들 먹을 거면서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이게 한 그릇만 뚝딱 집에서 끓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사골 뼈 처음에 사온 거 핏물도 제대로 빼야 하고, 뼈에 구멍 뽕뽕 날 때까지 끓이기 시작하고도 두 번, 세 번, 몇 번을 푹 고아야 국물 맛이 환상적으로 우러나온다니까! 오늘 저녁에 다들 감동 받을 준비하시고! 너 학원 안 늦어? 빨리 준비해! 그리고 나 옆 동 창수네 잠깐 갔다 올 테니까 당신이 냄비 솥 한 번씩 들여다 봐줘요. 한바탕 끓이긴 했는데, 아직 좀 더 끓여야 해.”

생활의 시 : 더 이상 우러나지 않을 것 같아도 다시 한번 끓여내는 우리의 삶

더 이상 우러나지 않을 것 같아도
다시 한번 끓여내는 우리의 삶

아내가 나가고 주말 보습학원을 다니는 딸아이도 나갔다. 나는 나를 위해 아내가 준비했다는 사골국 냄비를 지키는 임무와 함께 남겨졌다. 우리 가족을 배부르게 하는 그 뽀얀 국물을 위해 사골 뼈는 소리 없이 고아지고 있었다.

무심히 그걸 지켜보고 있으니 얼마 간의 일들이 모두 사골 뼈 우려내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우러나지 않을 것 같은 삶이라도 우리는 또 한 번 열심히 한 탕 끓여내고 있는 것이다.

십 년을 우려먹어도
더 우려먹을 것이 있는지
열심히 불을 지핀다

처음 핏기가 가시지 않아
우려내어 버리고
맛 들어 먹을 만하면
이내 바닥을 보인다

물을 넣고
불을 높였다가 줄이고
줄였다가 높이고
천천히 데워도 단단한 뼈에선
쉽게 국물이 우려 나오지 않는다

아내가 화를 내고 간 자리
뼈마디 골병 든 구멍
세상 나오기 전 아이들의 집이다

그 동안 몇 탕째 우려 먹어놓고
국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불을 높인다

등골 빠지게
엿가락처럼 휘어진 일상

내 삶이
몇 탕째 끓고 있는 것일까?

진한 국물처럼
우러나와
너를 배부르게 하고 싶다

- 안정훈의 시 <사골을 끓이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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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0-22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