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재생이 안 될 경우 FAQ > 멀티미디어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성미정 시인의 시 <상추쌈이나 한 상>. 무슨 일인지 시인은 가슴이 답답하고 열천불이 나는가 봅니다. 울다 울다 눈물도 마르고, 이럴 땐 다 잊고 한숨 자는 게 특효다, 그러니 상추에 된장을 척척 발라 한 상 푸지게 먹고는 한 잠 자고 일어나자 하고 있죠.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기후, 질병, 맹수의 공격 등 외부 환경의 도전에 부딪히며 대응해 온 기나긴 노력의 결과 오늘의 문명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한 판 붙자고 덤비는 것들과의 싸움을 이겨냈다는 겁니다.
회사 생활을 돌이켜봐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회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문제가 없는 조직, 이슈가 없는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라, 문제와 이슈가 생길 때마다 앞으로 나서서 그것을 잘 해결해내야 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하죠.
1920년대에 출간된 조리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쌈 먹는 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핵심은 너무 크게 쌈을 만들어서 입을 한없이 벌리고 식식대며 먹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휴식, 문제 해결 과정에서 개인적인 욕심을 금한다는 뜻으로도 풀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의 욕심을 한 쌈에 싸서 입에 넣으려고 하면 남들 보기에 우스워진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겠지요. 상추쌈 한 상 드시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눈물 마른 날에는 상추쌈이나 한 상
먹어야겠다 시들부들 말라가다가도
물에 담그기만 하면 징그럽게
다시 살아나는 상추에 밥을 싸서
한 입 가득 먹으며 지금
눈에서 나오는 물은 상추 때문이라
말하며 목이 메게 상추쌈이나
먹어야겠다 세월이 약이란 새빨간
거짓말에도 아물지 않는 상처에
된장을 척 발라 꾸역꾸역 삼켜봐야겠다
주먹으로 가슴패기를 팍팍 쳐가며
섬겨봐야겠다 상추를 자를 때 나오는
하얗고 끈끈한 진액이 불면증엔
특효약이라니 상추쌈이나 한 상
가득 먹고 뿌리까지 시들게 하는
오래된 상처일랑은 그만 이겨버리고
뉘엿뉘엿 날이 저물 때까지
낮잠이나 자는 척 해야겠다
성미정의 시 <상추쌈이나 한 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