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문학 기행

진실한 한 문장을 위한 사투, 어니스트 헤밍웨이

 다큐 문학 기행 : 진실한 한 문장을 위한 사투 다큐 문학 기행 : 진실한 한 문장을 위한 사투
84일째 물고기를 잡지 못하던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낚싯줄에 묵직한 물고기가 걸린다. 물고기의 정체는 조각배보다 두 배가 넘는 크기의 청새치. 산티아고는 포기하고 않고 청새치의 뒤를 따르고, 그 뒤에는 상어 떼가 따라오고 있다. 산티아고는 청새치를 잡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84일째 물고기를 잡지 못하던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낚싯줄에 묵직한 물고기가 걸린다. 물고기의 정체는 조각배보다 두 배가 넘는 크기의 청새치. 산티아고는 포기하고 않고 청새치의 뒤를 따르고, 그 뒤에는 상어 떼가 따라오고 있다. 산티아고는 청새치를 잡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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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어부 산티아고와 닮아있는 헤밍웨이의 인생

다큐 문학 기행 : 진실한 한 문장을 위한 사투
1952년 발표한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
1952년 <노인과 바다>를 발표할 즈음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84일째 물고기를 잡지 못한 어부 산티아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노인과 바다> 이전에 10년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작품 <강 건너 숲속으로>가 재탕이라는 비판과 함께 평론가와 독자들이 그의 노쇠한 필력을 놓고 입방아를 찧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마지막 작품 <노인과 바다>는 불과 이틀 만에 530만 부가 팔렸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의 인기에 힘입어 헤밍웨이는 1953년 퓰리처상과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부 산티아고가 물고기를 낚기 위해 상어 떼와 벌이는 사투는 헤밍웨이가 진실한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살아온 인생과 닮아있었다.

건조하고 간결한 문체, 하드보일드 문학의 탄생

다큐 문학 기행 : 20세기 최고의 문학 영웅으로 떠오른 헤밍웨이
20세기 최고의 문학 영웅으로 떠오른 헤밍웨이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아니요. 저는 늘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 <작가란 무엇인가> 중에서


헤밍웨이의 꿈은 언제나 작가였다. 1899년 7월, 미국 시카고 교외의 오크파크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 시절 풋볼선수로 활약할 때도 시와 단편소설을 썼다. 고교 졸업 후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캔자스시티의 <스타>지 기자가 되었다. 그가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헤밍웨이는 신문기자 시절에 습득한 건조하고 간결한 특유의 문체로 ‘하드보일드’라는 문학 용어를 탄생시켰다. 그는 비유와 수사를 되도록 줄이고, 단순하고 간결하며, 진실한 문장을 쓰려 했는데, 스스로 자신의 문체를 빙산에 비유하기도 했다.
“물 위로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그 밑에는 그것을 지탱하는 구조와 상징이 작동합니다. 빙산처럼요.”
-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이러한 문체를 완성할 작품의 소재를 찾기 위해 사건 속으로 뛰어드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8년 의용병으로 지원한 것도 전쟁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 다리에 중상을 입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스페인과 터키 내전, 2차 대전 등 전쟁터로 뛰어드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같은 전쟁을 소재로 한 헤밍웨이의 소설들은 모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헤밍웨이는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통과 단절된 젊은 세대들을 일컫는 ‘잃어버린 세대’의 중심이 되었고, 건강하고 거침없는 미국 남성상의 상징이자 20세기 최고의 문학 영웅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다.

진실한 한 문장을 쓰기 위한 끝없는 모험과 도전

다큐 문학 기행 : 풍족한 결혼생활 중에 집필되었던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 />
풍족한 결혼생활 중에 집필되었던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
스물 다섯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헤밍웨이는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아프리카와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사냥과 투우 등에도 거침없이 참여했고, 그 화려한 모험과 도전은 작품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풍족한 생활과 대중의 인기는 한편으로는 집필활동에 부담이 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두 번째 부인과의 풍족한 결혼생활 중에 집필되었던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에는 바로 그러한 고민이 드러나 있다. 주인공인 작가 해리는 킬리만자로 산이 보이는 아프리카의 들판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야전 침대에 누워 자신이 쓰지 못한 글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안일함만을 추구했다.
자기 자신이 경멸하는 인간이 되어 버린 매일의 생활이 그의 재능을 둔탁하게 만들었다.”
- <킬리만자로의 눈> 중에서


작가로서 명성을 얻고 화려한 생활을 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헤밍웨이. 그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회고한 시절은 그로부터 약 10여 년 전인 1921년부터 1926년까지 파리에서 보낸 7년간이었다.

헤밍웨이의 화양연화, 파리에서의 7년

다큐 문학 기행 : 제국 경찰이라는 자신의 직업을 격렬하게 증오했던 조지 오웰
1961년, 6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헤밍웨이
“파리의 겨울이 혹독하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가난마저도 추억이 될 만큼 낭만적인 도시 분위기 덕분이 아니었을까요.”
- <파리는 날마다 축제> 중에서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토론토 소속 기자직을 유지한 채 집필에 몰두했다. 뜨거운 물도, 화장실도 없는 변두리 아파트에서 지내며 무명작가로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매일 습작을 써 내려갔다. 뤽상부르 공원을 산책하면서 글을 쓰고, 책을 살 돈이 없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에서 책을 빌리고, 점심을 굶고 카페에 앉아 있을 때도 늘 스스로를 격려했다.
“걱정하지마, 네가 할 일은 진실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 한 줄을 써봐.”
- <파리는 날마다 축제> 중에서


헤밍웨이는 1939년 쿠바에 정착해 1960년까지 그곳을 터전 삼아 생활하고 글을 썼다. 눈부신 바다와 아드레날린을 내뿜게 하는 바다낚시는 그에게 무한한 모험과 영감의 세계를 선사했다. 그리고 헤밍웨이 스스로 ‘평생을 바쳐 쓴 글. 지금 내 능력으로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글’이라고 밝힌 <노인과 바다>를 완성했다.

그러나 그사이 헤밍웨이의 건강은 같은 해 두 번의 항공기 사고를 당하며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사고 후유증으로 찾아온 우울증도 극복하지 못하고,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거라는 좌절감에 시달리다 결국 엽총을 입에 물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1961년, 그의 나이 62세였다.

“쓴다는 것, 그것은 최고로 고독한 삶이다. 작가는 고독 속에서 작품을 완성하며, 정말 훌륭한 작가라면 날마다 영원성이나 영원성의 부재와 맞서 싸워야 한다.”
- 헤밍웨이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중에서
다큐 문학 기행 :평범한 삶 속에서 진실을 찾다 안톤 체호프



어부 산티아고는 상어에게 뜯어 먹혀 뼈만 남은 청새치를 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해변에 누워있는 커다란 등뼈를 누군가는 쓰레기로 여기고, 누군가는 상어의 뼈로 착각한다.
하지만 산티아고는 분명히 거대한 청새치를 낚았고, 상어 떼와 싸웠다.
헤밍웨이 역시 작가로서 평생에 걸쳐 진실한 한 문장을 남기기 위한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그 사투에서 그는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

“인간은 패배하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파괴될망정 인간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 <노인과 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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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0-22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