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문학 기행

평범한 삶 속에서 진실을 찾다, 안톤 체호프

다큐 문학 기행 :평범한 삶 속에서 진실을 찾다 안톤 체호프 다큐 문학 기행 :평범한 삶 속에서 진실을 찾다 안톤 체호프

1890년, 서른 살이 된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안톤 체호프는 돌연 마차를 몰고 여행을 떠난다. 당시 신문 새시대의 발행자이자 경제적 후원자였던 알렉세이 수보린은 아주 강하게 이 여행을 만류했다. 체호프가 여행지로 정한 곳이 바로 사할린 섬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할린은 주로 죄수들이 가는 유배지였고, 체호프는 폐결핵으로 건강까지 악화된 상태라 시베리아 대륙을 석 달간 마차로 달리는 것은 사실상 목숨을 건 여행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사할린 섬으로 떠났던 것일까?

1890년, 서른 살이 된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안톤 체호프는 돌연 마차를 몰고 여행을 떠난다. 당시 신문 새시대의 발행자이자 경제적 후원자였던 알렉세이 수보린은 아주 강하게 이 여행을 만류했다. 체호프가 여행지로 정한 곳이 바로 사할린 섬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할린은 주로 죄수들이 가는 유배지였고, 체호프는 폐결핵으로 건강까지 악화된 상태라 시베리아 대륙을 석 달간 마차로 달리는 것은 사실상 목숨을 건 여행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사할린 섬으로 떠났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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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의사, 단편소설의 거장으로 우뚝 서다

다큐 문학 기행 : 소설 <1984 />에 등장하는 포스터,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모스크바대 의학부 시절부터 단편을 쓰기 시작한 안톤 체호프
1860년 러시아 남부 아조프해 항구도시 ‘타간로크’에서 태어난 안톤 체호프. 그는 다른 러시아 문학가들과 달리 귀족 계급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농노였고, 식료품 잡화점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파산하면서 모스크바로 쫓겨가 거의 혼자 힘으로 공부해야만 했다.

모스크바대 의학부에 들어간 체호프는 ‘체혼테’라는 필명으로 단편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과 가족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스무 살 때부터 7년간 쓴 단편소설, 콩트, 만평은 무려 500여 편에 달했는데, 이때의 작품으로 체호프는 오늘날 기드 모파상과 함께 현대 단편 소설의 형식을 확립한 가장 중요한 작가로 꼽히게 된다. 그가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발굴했던 원로작가 그리고로비치의 격려 편지를 받고부터다.
“재능을 아끼라.” - 그리고로비치의 편지 중에서

1886년 처음으로 <추도회>라는 작품을 자신의 진짜 이름으로 발표하고, 2년 뒤 단편집 <황혼>으로 권위 있는 문학상인 푸시킨 상을 수상한다. 그렇게 문단과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벌이던 그가 1890년 돌연 유형지인 사할린으로의 여행을 결정했다.

- <1984 > 중에서

슬픔의 틈새, 사할린으로 떠나다

다큐 문학 기행 : 제국 경찰이라는 자신의 직업을 격렬하게 증오했던 조지 오웰
체호프는 <사할린 섬>을 통해 당시 러시아 감옥제도를 비판했다.
사형수와 죄수의 땅, ‘슬픔의 틈새’라고 부르기도 했던 사할린에서 체호프는 민간인 최초의 방문자였다. 여기서 그가 한 일은 유형수와 주민들을 만나고, 실태조사 카드를 만드는 것. 유형지의 환경은 물론, 죄수와 주민들의 질병에 대해서도 조사했는데, 당시 만든 카드는 무려 8,000여 장이었다. 이렇게 모은 기록물과 자료는 약 3년 동안 정리하고 간추려 여행기이자 현장 보고서라 할 수 있는 <사할린 섬>으로 발표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당시의 러시아 감옥제도를 비판하고, 그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교도소에 방치했고,
기준도 없이 야만적으로 그들을 헛되이 죽어가게 했습니다.”
- <사할린 섬> 중에서
체호프가 사할린 섬에 간 것은 작가로서의 매너리즘을 극복하고, 삶을 반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후원자였던 수보린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어느 화창한 아침 자신이 매우 자유로워진 걸 느꼈다고 말한다.

“더 이상 내 혈관에는 노예의 피가 흐르지 않습니다.”
- 체호프의 편지 중에서

안톤 체호프, 4대 희곡을 완성하다

다큐 문학 기행 : 인간이 인간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조지 오웰의 신념이었다.
의사이자 사회활동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창작에 몰두한 체호프
긴 여행이 끝난 후 그의 작품과 인생관은 큰 변화를 맞이한다. 인간의 비참한 삶을 경험한 뒤 인간의 본연을 인정하기 위한 인간성 해방에 눈을 돌렸던 것이다. 사할린에서 돌아온 체호프는 모스크바 근교에서 창작에 몰두하는 한편, 의사이자 사회활동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전염병 방역과 빈민구제 사업을 위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농민들의 실상을 접하고, 그들에 대한 연민과 무력한 지식인에 대한 회의를 자신의 방식대로 그려냈다.

그 대표적인 단편이 바로 <6호실>이다. 열악한 환경의 정신병원에서 주인공인 의사 라긴이 환자와 친해지다가 결국 그 자신도 환자가 되어 병원에 감금당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는 진정한 지식인을 소외하는 러시아 상황을 풍자한 작품으로, 그의 걸작으로 꼽히는 4대 희곡 중 <갈매기>, <바냐 아저씨>도 이 무렵에 완성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다큐 문학 기행 : 제국 경찰이라는 자신의 직업을 격렬하게 증오했던 조지 오웰
안톤 체호프의 4대 희곡 중 하나인 <갈매기>의 한 장면
희곡 <갈매기>에서는 부유한 지주의 딸 니나가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꿈을 위해 먼 도시로 떠난다. 그러나 결국 둘 다 이루지 못하고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온다. 제 자리로 돌아온 삶이지만 삶의 의미를 깨달은 니나는 미래가 두렵지 않다.

“코스챠, 당신이 글을 쓰건 내가 무대에서 연극을 하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꿈꿨던 빛나는 명예가 아니라, 견뎌내는 능력이에요.”
- <갈매기> 중에서
또 다른 희곡 <바냐 아저씨>에서 주인공 바냐는 죽은 여동생의 남편인 교수 세례브랴꼬프까지 후원하며 조카와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젊음을 희생한다. 그러던 중 세례브랴꼬프가 젊은 여인과 재혼하고, 바냐는 배신감과 허망함을 느낀다. 처참하게 망가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 급기야 세례브랴꼬프에게 총을 겨누는 바냐. 그러나 총은 발사되지 못한다. 자살도 복수도 없이 담담한 회한만을 가슴에 안은 채 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바냐와 니나. 자칫 한심해 보이는 이들의 모습을 우리는 비웃을 수 없다. 우리 자신의 초상이기 때문이다. 안톤 체호프가 병든 몸으로 사할린 섬으로 여행을 떠나 체득하게 된 인생의 진실도 아마 그것이 아니었을까. 예상치 못한 시련과 고통을 마주하여 모든 것이 무너졌음에도, 그럼에도 다시 살아가야 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다큐 문학 기행 :평범한 삶 속에서 진실을 찾다 안톤 체호프

“내 손으로 직접 나무를 심은 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나도 좋은 날씨만큼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천년 뒤에 인간이 행복하다면, 나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을 거야.”

- <바냐 아저씨> 중에서

무대에 올린 희곡들이 연달아 성공을 거뒀지만 안톤 체호프의 병은 점차 악화됐고,
요양 차 머물렀던 독일 바덴바덴에서 1904년 여름, 마흔 네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햇빛과 바람, 비를 맞으며 시간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파란 사과는 익어간다.
성치 않은 몸으로 매일 매일 글을 썼던 안톤 체호프의 삶과 작품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건너온 그의 작품들은 15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무대에 올려지고 읽혀지며,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인생의 소박한 진실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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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9-11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