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스캔들

정치와 점술이 만났을 때- 점술가 르노르망 스캔들

희대의 스캔들 : 희대의 점술가, 르노르망 스캔들 희대의 스캔들 : 희대의 점술가, 르노르망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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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을 이끈 국민 영웅의
죽음을 예언한 점술가, 르노르망

프랑스 혁명을 이끈 국민 영웅의죽음을 예언한 점술가, 르노르망
파리의 허름한 골목, 뛰어난 예지력을 지니고 태어난 한 여인이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건 살롱을 열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드무아젤 르노르망(Mademoiselle Lenormand).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의 미래가 궁금한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온다.

“르노르망, 앞으로 내 정치 인생은 어떻게 풀릴 것 같소?”

남자는 프랑스 혁명을 이끈 국민 영웅, 막시밀리앙 로베스페에르였다.

“우선 카드를 한 장 뽑아보시죠.”

당대 프랑스 최대 권력자가 뽑은 르노르망의 카드. 그것은 놀랍게도 죽음을 의미하는 카드였다.
“뭐라고? 내가 단두대에서 곧 목이 날아갈 거라고? 르노르망, 네 목숨은 성할 줄 아느냐?”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전 100세까지 당신 같은 권력자들의 머리 위에서 세상 모든 부귀를 누릴 운명이니까요. 자, 그럼 전 다음 상담자를 만나야 해서 이만.”

지난 수천 년간 공생해온 점술과 정치의 미묘한 상관 관계. 과연 르노르망의 예언은 맞을 수 있을까?

루이 16세의 공개 처형을 끝까지
관철시킨 로베스피에르의 고집

희대의 스캔들 : 프랑스 혁명을 이끈 국민 영웅의죽음을 예언한 점술가, 르노르망
1793년, 프랑스 파리의 콩코드 광장. 단두대 앞에 목을 내놓은 루이 16세.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처형을 주도한 장본인이자 프랑스 대혁명을 이끈 정치가 로베스피에르에게 저주를 쏟아냈다. 당시 프랑스는 성직자와 귀족을 제외한 일반 평민만이 무거운 세금을 부담했는데,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1789년 국민의회를 결성해 불평등한 제도 개선을 요구했고, 루이 16세는 이들을 무력으로 해산시키려다 오히려 프랑스 대혁명에 불을 지피고 만다. 이후, 왕권을 빼앗기고 감금된 루이 16세. 이때 로베스피에르는 왕의 공개 처형을 무려 11차례나 프랑스 법원에 요구하고 끝까지 관철시켰다. 평소 사형제도 폐지에 앞장서며, 인권변호사로 유명세를 떨쳤던 그가 도대체 무슨 연유로 루이 16세에게만은 사형을 고집한 것일까?

1년 후, 르노르망의 예언대로
단두대에서 최후를 맞이한 로베스피에르

희대의 스캔들 : 1년 후, 르노르망의 예언대로단두대에서 최후를 맞이한 로베스피에르
18년 전, 이제 갓 새 국왕의 자리에 오른 루이 16세는 파리의 왕립학교를 방문하여 그해 가장 우수한 학생의 환영사를 듣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며칠 밤을 새워가며 환영사를 준비한 고아 출신의 장학생. 그가 바로 로베스피에르였던 것. 그러나 젊은 왕은 학생 대표인 그의 축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보란 듯이 그를 무시하며 학교를 떠나 버렸고, 그 후 계급사회에 환멸을 느낀 그는 힘없는 서민을 대표하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프랑스 대혁명에 큰 공을 세우게 된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맛을 잘못 들인 탓일까? 아니면 르노르망의 불길한 점괘 탓일까? 루이 16세 사형 후 불과 1년 만에 로베스피에르도 똑같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고 만다. “쯧쯧, 아까운 별 하나가 또 졌구나. 안타깝게도 피에르는 나의 예언에서 벗어나지 못했군. 자, 이제 전 또 다음 손님이나 맞아볼까?”
“르노르망, 나한텐 남자가 왜 이렇게 붙죠? 이미 결혼도 하고 애를 두 명이나 낳았는데요. 그래도 남자가 끊이질 않아요.”
더럽고도 추악한 진흙탕 속에서 가장 고귀한 꽃을 피우게 될 것이오.”

늦은 밤, 화려하고도 깊게 파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이 여인. 굳이 점쟁이가 아니라도 정숙함과는 거리가 꽤 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뽑은 카드는 매우 흥미로웠다. 바람난 유부녀가 뽑은 황후의 카드. 아무리 운명은 알 수 없는 거라지만 이게 가능한 일일까?

황후의 카드를 뽑은 조제핀의 운명을
결정할 스물여섯 젊은 장교의 등장

황후의 카드를 뽑은 조제핀의 운명을결정할 스물여섯 젊은 장교의 등장
르노르망에게 황후의 운명을 전해 들은 여인의 이름은 ‘조제핀’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열여섯 살 때 부유한 청년 장교와 중매결혼을 하여 두 남매를 낳은 유부녀로, 귀족 출신의 남편은 시골 출신인 그녀의 촌스러움이 너무나 싫어 별거 중인 상태였다. 이에 충격을 받은 조제핀은 각고의 노력으로 사교계 예법을 익혀나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남편은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처형당하고 말았고, 그녀마저 투옥됐다. 그런데 이때, 놀랍게도 로베스피에르가 갑자기 처형당하면서 석방되게 된다. 이후 조제핀은 당시 정부 고위 관계자의 애인이 되어 프랑스 사교계에 화려하게 데뷔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파티 장소에서 스물여섯 살의 젊은 장교를 만나게 되었고, 그는 조제핀을 만나자마자 무언가에 홀린 듯 미친 듯이 구애를 해댔다. 하지만 최고 인기녀였던 조제핀에게 촌스럽고 키도 작아 볼품없고 직급도 낮은 하급 장교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조제핀이 그의 손을 붙잡고 함께 찾아간 곳이 바로 르노르망의 살롱이었다.

황제가 될 운명을 지닌 남자,
그의 이름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희대의 스캔들 : 황제가 될 운명을 지닌 남자,그의 이름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하루가 멀다시피 르노르망의 살롱에 들락거리는 조제핀. 오늘도 어리숙한 남자 한 명을 데리고 와서 황제가 될 수 있는지를 캐묻는다. 그런데, 이 남자가 꺼내든 카드가 꽤나 흥미롭다. 화려한 찬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안과 초조 속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당시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소련의 예술가들은 자유로운 창작을 할 수 없었다. 같은 해, 스탈린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공표한다. “오, 영광이어라. 내가 감히 예언하건대, 당신은 곧 다음 황제가 될 것입니다.”
“제가요? 전 뭐 하나 잘난 것이 없이 평범 아니 오히려 모자랄 정도인데요?”
“그건 두고 보면 알죠. 그런데 당신, 40세가 되는 해 배우자를 버린 이후부터 파멸이 시작될 겁니다.”
한 나라를 가진 황제가 되겠지만 한 여인의 마음은 가질 수 없는 사랑의 노예. 르노르망은 오늘도 역사에 길이 남을 예언을 남긴다.
당시 조제핀이 르노르망의 살롱에 데리고 왔던 남자의 이름은 놀랍게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1794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가 끝나자 왕당파의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를 진압한 나폴레옹은 젊은 장군으로서 큰 인기를 끈 것이다. 그리고 결국 르노르망의 예언대로 1804년 12월 1일 나폴레옹과 조제핀이 꿈에 그리던 황제, 황후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승승장구하며 해외 원정을 떠날 때마다 조제핀은 젊은 대위들과 난잡한 스캔들을 터뜨렸고, 결국 나폴레옹은 아이도 갖지 못하는 조제핀을 물러나게 한 후, 1810년 오스트리아의 황녀 마리 루이즈와 결혼을 결정한다.

권력의 정점에 선 영웅들을
무릎 꿇게 만들었던 희대의 점술가들

권력의 정점에 선 영웅들을무릎 꿇게 만들었던 희대의 점술가들
프랑스 권력자들의 정부였던 조제핀과 함스부르크가의 황녀인 마리 루이즈. 나폴레옹의 이 두 왕비는 정반대의 출신 배경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이 숱한 정부를 가지며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었다.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고 엘바 섬으로 유배됐지만, 이때에도 두 여인은 나폴레옹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애인에게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결국 1821년 전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최고의 권력자 나폴레옹은 모든 힘과 사랑마저 잃은 채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는다. “이제 저희 살롱은 문을 닫을 시간입니다. 죄송하지만 내일 다시 들러 주시죠.”
권력의 정점에 선 영웅들을 하나같이 무릎 꿇게 만들었던 점술가들.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높은 자리에 오르면 오를수록, 인간의 마음 속 깊숙이 자리잡는 두려움과 불안함. 그것이 끝나지 않는 한 점술가들은 어쩌면 권력자들보다 더 오래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지도 모른다.

한편, 르노르망 자신은 100세 이상 살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1843년 6월 25일, 정작 사망했을 때 당시 그녀의 나이는 71세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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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9-11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