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금의 우연

설탕이 없었다면, 지금의 커피도 없었다

한 모금의 우연 : 스타가 된 커피들 - 노예들이 키운커피 설탕이없었다면 , 지금의 커피도없었다 한 모금의 우연 : 스타가 된 커피들 - 노예들이 키운커피 설탕이없었다면 , 지금의 커피도없었다

요즘 우리의 생활을 보면 ‘커피의 노예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커피 없이는 못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리 멀지 않은 과거를 들여다 보면, 커피를 위해 동원되었던 ‘진짜 노예의 역사’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 더 슬픈(?) 설탕에 관한 노예의 역사가 있고, 이것이 커피로 이어졌다. 안방에서 혹은 카페에서, 달콤하고 향기롭게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이면에는 애써 외면하고 싶은 다크 사이드가 있다. 씁쓸하고 슬픈 그 이야기를 굳이 소개하려고 한다.

요즘 우리의 생활을 보면 ‘커피의 노예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커피 없이는 못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리 멀지 않은 과거를 들여다 보면, 커피를 위해 동원되었던 ‘진짜 노예의 역사’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 더 슬픈(?) 설탕에 관한 노예의 역사가 있고, 이것이 커피로 이어졌다. 안방에서 혹은 카페에서, 달콤하고 향기롭게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이면에는 애써 외면하고 싶은 다크 사이드가 있다. 씁쓸하고 슬픈 그 이야기를 굳이 소개하려고 한다.

노예와 전쟁 포로의
피와 땀으로 일군 대형 설탕 플랜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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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생산 프로세스에 대해서도 생소한 사람이 많을 텐데, 오늘은 설탕 만드는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설탕의 원료는 사탕수수다. 키가 4미터 정도 되는 수숫대를 잘라 끌고 온 다음 그것을 으깨서(사람 또는 기계가) 시럽을 만들고, 이를 큰 통에 넣고 끓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수숫대는 베면 바로 직후부터 굳어버리기 때문에 그 전에 빨리 운반해야 하고, 주어진 시간 안에 끓는 통에 넣어 작업을 마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때문에 플랜테이션이라는 대형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고, 이에 필요한 인력은 노예나 전쟁 포로들로 충당했다.

1500년대부터 본격적인 신대륙 탐험이 이어졌고, 사탕수수 재배가 가능한 비옥한 토지를 찾아 나서는 나라가 많았다.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세계 곳곳을 탐험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콜럼버스다. 그가 찾아간 곳 중 하나인 ‘히스파니올라(현재의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라는 섬에는 특히 거대한 설탕 플랜테이션을 만들어 지원과 정책이 아낌없이 실행되었다. 다른 섬들에도 유사한 과정으로 설탕 플랜테이션이 만들어져 가동되었고, 이후 몇 백 년간 아프리카인들이 자메이카나 아이티, 쿠바 등을 향해 대서양을 건너 끌려가게 되었다.

유럽 전역으로 번진 커피,
서인도제도로 끌려간 아프리카인들

나폴레옹의 유럽 점령과 대륙봉쇄령 이후 설탕을 유럽으로부터 수입할 수 없게 되자, 남아있던 플랜테이션은 차차 커피생산을 위한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 전역에 커피가 유행하고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게 되자, 유럽 강국들은 앞다투어 식민지에 커피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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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700년에는 네덜란드가 자바에서 생산에 성공하면서, 이제는 더 많은 아프리카 흑인들이 서인도제도로 끌려와 커피농장에서 일하게 된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중남미 국가들 역시- 독립하여 커피생산국으로 성공하기 전까지는- 식민지 지배를 받아왔고, 수많은 노예들이 끌려와 커피를 만들었다.

18세기 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해산되면서, 정부가 직접 자바와 수마트라의 대농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국도 남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커피재배를 하여 19세기 중반까지는 큰 성공을 거둔다. 이때 수세식 정제 방법이 도입되어 고품질 커피를 만들어냈는데, 다른 생두와는 다른 독특한 색의 커피를 ‘블루 자바’라고 불렀고, 이 커피가 바로 수마트라 섬 북서부의 만델린이라는 지역에서 만들어진 ‘만델린’이다.

가혹한 노동으로 만들어진
커피의 또 다른 이름, 니그로의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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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인도네시아는 세계 어느 곳보다도 혹독한 ‘강제 재배 제도’ 하에 있었고, 저임금으로 식민지 주민들을 혹사시켜 이를 생산했는데, 이 악명 높은 제도를 비판하고자 물타툴리라는 작가가 <막스 하페라르>라는 소설에 현지의 참상을 소개하였다. 결국, 이 작품은 네덜란드 본국에 강제재배에 대한 반대여론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19세기 후반에는 이 제도가 폐지되었다. 이후 중소농가 재배환경으로 점차 변화해 갔으나, 안타깝게도 커피 녹병으로 농장의 나무가 괴멸하여, 커피 대신 홍차를 재배하게 된 것이었다. 참고로 현재 ‘페어 트레이드 커피’를 인증하는 재단 이름이 바로 소설에서 따온 ‘막스 하페라르 재단’이다.
커피 재배는 시간의 간격을 두고 점차 브라질과 아프리카로 옮겨갔다. 오늘날의 커피 플랜테이션은 18세기처럼 노예 노동자에 의해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하지만 착취의 기본 메커니즘이 고스란히 살아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누군가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희생되었던 노예 혹은 식민지 원주민들의 가혹한 노동으로 만들어진 커피는 ‘니그로의 땀’이라는 아픈 이름으로도 불렸다.

또 다른 스타 커피, 마크 트웨인의
하와이 코나와 잭 니콜슨의 루왁

커피는 쌀이나 보리, 옥수수 등과는 달리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소비는 주로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부가 집중된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게다가 생산지에서는 지나치게 싼 가격에 거래되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커피의 생산과 소비 구조는 커피재배라는 가혹한 노동에 내몰리는 가난한 사람과 커피를 마시고 경제와 문화를 거느리는 부유한 사람들이라는 아이러니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달콤함과 향기로움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이면에 존재하는 아프고 슬픈 이야기를 모른 척하기에는 너무나 깊숙히 새겨져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달콤하고 향기로움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생산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그들이 직면한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들의 지속 가능한 커피 소비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 대표이며, 《커피교과서》 《스페셜티커피테이스팅》 《커피과학》 《카페를 100년간이어가기위해》 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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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9-11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