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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 후 이야기

1교시 국어영역- 최제훈

기획특집 날개 그후이야기 03 날개, 이어쓰기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이상의 대표작 <날개> 6명의 작가가 모여 다양한 상상력으로 펼쳐 보았습니다. 이상의 소설에서 감동과 여운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3화 최제훈 작가 기획특집 날개 그후이야기 03 날개, 이어쓰기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이상의 대표작 <날개> 6명의 작가가 모여 다양한 상상력으로 펼쳐 보았습니다. 이상의 소설에서 감동과 여운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3화 최제훈 작가
33.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상자 안에 든 지문은 이상의 「날개」. 재재작년에 출제됐기 때문에 절대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총정리 하면서 건너뛴 부분들만 콕콕 찍어 나오는구나. 늘 이런 식이라니까. 재수가 없어. 그러니 재수나 하고 있지. 아니, 이런 말장난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1분 1초가 아까운 순간인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어. 째깍째깍째깍. 내용은 대충 아니까 풀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내용이 뭐였더라? 웬 찌질한 남자가 혼자 횡설수설하는 게 전부였던 것 같은데. 보기를 보면서 생각하자. 일단 ‘않은’에 동그라미 치고.
기획특집 날개 그후이야기 03 날개, 이어쓰기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이상의 대표작 <날개> 6명의 작가가 모여 다양한 상상력으로 펼쳐 보았습니다. 이상의 소설에서 감동과 여운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3화 최제훈 작가
①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심리 소설이다.
혼자 횡설수설, 이건 맞네. 그래, 생각난다. 주인공 남자가 매춘부인 아내한테 빌붙어 살면서 돋보기로 불장난하고 화장품 냄새 맡고 하는 그런 내용이었지. 자기가 박제가 된 천재라고 주장하면서. 천재는커녕 좀 모자란 사람 같던데. 아무튼 그 자신감 하나는 부럽다.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들보다 뭐 하나 잘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하다못해 많이 먹기만 해도 스타가 될 수 있잖아. 먹방 유튜버들 수입이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 먹고 싶은 것 실컷 먹으면서 돈도 벌고, 정말 부럽다.

난 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래도 잘 생각해보면 뭔가 하나쯤 있지 않을까? 음, 그렇지. 사람 얼굴 알아보기. 영화나 드라마에 단역으로 잠깐 나온 배우가 이전에 어느 작품에 나왔는지 떠올리는 건 자신 있어. 나래도 내 눈썰미에 감탄을 금치 못했잖아. 예전부터 CF 볼 때 메인 모델은 제쳐두고 배경으로 나오는 이름 없는 모델들만 눈여겨보느라 단련이 된 거겠지. 스치듯이 지나가는 모델들이 열심히 춤추고 소리 지르고 과장된 표정을 짓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 아니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써먹을 데가 없네. 다른 게 뭐 없을까? 누워서 공상하는 거 좋아하니까 웹툰 작가는 해보고 싶은데. 그림에 소질이 없으니까 힘들겠지? 아, 모르겠다. 앞으로 찾으면 되지. 다양한 경험을 쌓다 보면 내 길이 보일 거야. Everyone can do something well. 그러자면 우선 대학부터 가야 하는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다른 애들이 열심히 펜 놀리는 소리가 들리잖아. ①번은 정답이 아니고,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자.
② ‘아내’와 ‘나’의 관계는 현대 문명과 불화를 겪는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상징한다.
아, 이건 EBS 인강에서 나왔던 내용이야. 기억난다. 매춘부가 현대 문명의 상징이라는 대목에서 다소 어리둥절했었지. 불화는 무슨, 그냥 능력이 없으니까 눈칫밥 먹으며 찌그러져 지내는 거지. 나중에는 아내가 편하게 손님 받으려고 수면제 먹여서 재우고 그러지 않나? 그 아내라는 여자도 이해가 안 가. 그렇게까지 하면서 왜 그 남자랑 사는 건지. 고객들한테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는 초식남이 필요한 건가? 호스트바에서 돈을 쓰는 호스티스들처럼. 아니, 어쩌면 정말 사랑해서 붙잡고 있는 건지도 몰라. 사랑하니까 머리맡에 은화를 던져주고. 사랑하니까 감기약이라고 속여 수면제를 먹이고. 현대 문명이란 참으로 복잡한 존재로군. 아무튼 ‘지식인의 내면세계’가 약간 애매하긴 한데 ②번도 맞는 것 같다. 어휴, 총정리 할 때 한 번만 봤어도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인데. 재수가 없어. 이러다가 삼수생 되는 거 아냐. 이번에도 떨어지면 나래와는 완전히 끝장이겠지. 지금도 간당간당한데. 여름방학 이후부터 눈치가 영 수상해. 공부하는 데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핑계로 연락도 뜸하고, 갑자기 파마를 하고 나타나지 않나. 난 분명히 생머리가 좋다고 했는데. 나 몰래 미팅도 몇 번 했겠지? 정말 남자 친구가 생긴 거 아냐? 하긴 내가 이러쿵저러쿵 참견할 처지가 아니지. 한창 자유를 만끽하고 싶을 때인데 돈도 시간도 잘하는 것도 없는 재수생이 눈에 들어오겠어?

올해 내내 만나면 밥도 거의 나래가 샀네. 걔도 아르바이트해서 힘들게 번 돈인데. 혹시 정 떼기 작업 중인가? 아, 그러니까 작년에 대학에 들어갔으면 좋았잖아. 당당하게 함께 영화 보고 술 마시고 클럽 가고, 아마 지금쯤이면 당당하게 섹스도……. 얘 혹시 남자 친구 생겨서 벌써 한 거 아니야? 우린 키스에서 진도가 멈췄는데. 설마, 아닐 거야. 사실이면 어떡하지? 미치겠다. 이번에 합격한다고 해도 조금 있으면 군대 가야 하는데, 나래가 기다려줄까? 재수하는 1년도 이렇게 아슬아슬한데. 왜 수능 점수 따위로 사랑이 위협받아야 하는 거야. 왜 마음대로 사랑도 못하냐고!

휴, 진정하자. 심호흡을 하고……. 진정.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나도 참 한심하다. 나래는 여전히 날 사랑하고 있어. 오늘도 시험장 앞에서 기다린다고 했잖아. 지금은 시험에 집중하자. 가만, 혹시 오늘 이별 통보를 하는 거 아냐? 그동안 수능 때문에 미루었다며……. 그만! 그만! 입시만 치르다가 군대 가고 싶어?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무튼 ②번도 정답은 아니고, 다음!
③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무력한 지식인의 분열상을 그리고 있다.
식민지, 무력, 지식인, 분열. 이건 딱 봐도 맞는 것 같다. 이런 단어가 다 들어가는데 틀린 보기일 수가 없지. 그런데 자꾸 뭔 지식인 타령이야. 세상 편하다. 골방에서 뒹굴며 화장품 냄새만 맡아도 지식인 소릴 듣고. 차라리 지금도 식민지 시대라면 좋겠다. 최소한 핑곗거리는 있잖아. ‘아아, 시대가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탓에 난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틀어박혀 지내겠소.’ 하긴 요즘 그렇게 지내는 사람들 많네. 지식인 대신 히키코모리나 달관 세대라고 불리지만. 따지고 보면 지금도 식민지 시대나 다름없지. 흙수저로 태어나면 평생 시간과 노력을 수탈당하며 금수저들 배나 불리고 살아야 하잖아. 아버지는 뭐 하셨나, 미리미리 자식들 수저 등급 좀 안 올려놓고. 젊은 시절에 강남에서 살았다면서 근처에 땅만 사놓았어도 지금쯤 떵떵거리며 살 텐데. 아니면 IMF 때 폭락한 주식만 긁어모았어도, 아니면 몇 년 전에 비트코인이라도 사놓았다면……. Born with the silver spoon in my mouth. 국어 시간에 왜 자꾸 영어가 생각나는 거야. 가뜩이나 흙수저는 대학을 나와도 흙길인데.

상호 형도 입학하면서부터 죽어라 학점 관리, 스펙 관리했다는데 취직 안 돼서 맨날 고모한테 잔소리만 듣잖아. 그나마 우리 집안에서 제일 똑똑한 형인데 어쩌다 저렇게 쭈구리가 됐나. 남의 밑에서 수탈당하며 사는 것마저 이렇게 힘이 드니. 나도 일찌감치 공무원 준비나 할까? 아냐, 벌써부터 9급 공무원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싶지는 않다. 역시 요즘은 1인 방송 크리에이터가 개꿀인데. 내가 할 만한 콘텐츠가 없을까? 도대체 누굴 닮아 이렇게 재주가 없는 거야. 식민지 청년의 비애가 가슴을 찌르는구나.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아니, 지금은 박제가 될 시간이 없다. 한 문제당 50초 안에 풀어야 하는데 이 문제 하나 가지고 몇 분을 허비하는 거야? 이러다가는 학점이고 스펙이고 관리할 기회조차 안 생기겠어.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자.
④ [B]에서 날개는 정체성의 회복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의미한다.
이것도 맞는 것 같네. 예전에 수업 시간에 ‘흩어져라 이목구비’가 짚어준 거잖아. ‘날개’에는 정체성, 자아, 자유, 이상, 본질, 현실 극복 의지 등등 좋은 건 다 갖다 붙이면 된다고. ‘흩어져라 이목구비’도 한때 작가 지망생이었다던데, 학생들에게 문학 작품을 그런 식으로 가르치고 있으니, 참. 그러니까 항상 우거지상이지. 조류도 아니고 날개가 돋는 게 왜 정체성이고 자아 회복이야? 사람이 땅에서 적응 못 하고 날아가는 게 현실 도피지 어떻게 현실 극복이라는 거야? 날개가 돋아나면 그게 엑스맨이지 사람이야? 돌연변이 괴물 취급을 받으며 학교에서 왕따 당할 테고, 연애도 제대로 못 하고, 취직도 못 하고. 음, 생각해보니까 취직에는 오히려 유리한가? 고층건물 유리창 청소 같은 건 쉽게 할 수 있겠네. 종수가 지난 여름방학에 유리닦이 아르바이트했는데 위험수당이 붙어 돈을 꽤 많이 받았다고 했잖아. 두 달 바짝 하니까 한 학기 등록금이 나오더라고. 자식, 참 열심히 사는 놈이야. 그러니 엄마가 맨날 종수 반만 닮으라고 구박이지. 아무튼 날개가 있으면 여러모로 유리하겠네. 송전탑 수리 같은 건 위험수당도 훨씬 더 많을 테고, 하다못해 퀵서비스를 해도 오토바이보다 훨씬 빠를 거 아냐.

아, 나도 날개가 돋으면 좋겠다. 취직도 취직이지만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이 답답할 때면 구름 위로 올라가 휴식을 취하고, 아무 때나 해외여행을 갈 수 있고. 그런데 요즘은 미세먼지가 심해서 오래 날아다니지는 못하겠네. 마스크를 쓰고 날아다녀야 하나. 잠깐, 잠깐, 이런 잡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 1년 동안의 노력이 오늘 결판나는데 어쩌자고 이러는 거야. ④번까지 다 맞는 설명이니까 정답은 ⑤번이겠지. 확인만 하고 얼른 넘어가자.
⑤ 이 문제는 답이 있다.
응? 뭐지? 이게 무슨 소리야? 시험지가 잘못 인쇄됐나? 하하, 미치겠네. 너무 긴장해서 헛것이 보이는 건가? 미리 우황청심환도 먹고 왔는데. 마음을 가라앉히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 여전히 그대로네. 감독관한테 문제가 이상하다고 얘기해야 하나? 다들 아무 말 안 하고 열심히 풀고 있잖아. 지금 이 시간이면 대부분 33번 문제를 봤을 텐데. 괜히 나섰다가 나만 이상한 놈 될지 몰라. 그러면 쪽팔려서 시험을 망칠 테고. ①~④번 보기는 다 맞는 것 같으니까 그냥 ⑤번에 체크하고 넘어갈까? 아니야, 이 한 문제에 시간을 얼마나 투입했는데 틀리면 억울하잖아. 조금만 더 생각해서 차분히 풀어보자. ‘이 문제는 답이 있다.’ 그대로 받아들이면 돼. 만일 ⑤번이 정답이라고 치면, 이게 틀린 설명이니까, 이 문제는 답이 없다는 거고, 그럼 ⑤번도 정답이 될 수 없는 거잖아. 그래, 모순이지. 그럼 ⑤번은 무조건 정답이 아니고, 이게 맞는 설명이니까, 이 문제는 ①~④번 보기 중에 답이 있다는 거네. 내가 놓친 게 있나? ①번은 맞잖아. 의식의 흐름, 횡설수설. ②번도 분명히 인강에서 본 거야. ③번 식민지, 무력, 지식인, 분열도 틀림없고. ④번 ‘날개’가 대체 뭘 의미할 수 있겠어. 어떻게 된 거야. 답이 없잖아. 어라, 답이 없으면 ⑤번 설명이 틀린 거니까 ⑤번이 정답이 되는데……. 아니지! 조금 전에 따져봤을 때 그건 모순이었잖아. 뭐야, 출제 오류인가? 혹시 ‘이 문제’라는 게 주인공 남자가 처한 문제적 상황을 의미하는 건가? 남자는 분열된 채 현대 문명과 불화를 겪으며 식민지 시대를 무력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이 꽉 막힌 상황을 타개할 답이 있다. 답이 없어 보이는데. 날개가 돋아서 훨훨 날아가는 것 외에는. 그러니까 ⑤번이 틀린 설명인가? 아니지, 남자에게 답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 문학 작품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건데. 아무리 수능이라지만 그런 엉터리 문제가 나올 리 없잖아.

아, 머리가 빙빙 도네.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나마 가장 자신 있는 게 국어영역인데 이 한 문제 때문에 망하게 생겼어. 1교시부터 망하면 나머지도 다 망하겠지. 그럼 또 대학에 떨어질 테고, 삼수생이 돼서 1년을 또 눈칫밥 먹어가며 독서실에 처박혀 지내야 되고, 나래는 파마머리 휘날리며 다른 남자를 만날 테고, 대학 가봤자 금방 군대에 끌려갈 테고, 가뜩이나 취직하기 어려운데 나이까지 많아지면……. 아, 땀난다, 땀나. 겨드랑이가 가렵네. 왜 이렇게 가렵지. 사흘 동안 목욕을 안 해서 그렇구나. 총정리 한 게 날아갈까 봐. 빨리 끝내고 목욕탕에 가고 싶다.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정신 차려! 이렇게 풀어지면 안 돼. 지난 1년을 어떻게 보냈는데. 오늘 하루에 내 인생이 걸려 있다고. 자, 정신을 집중해서 다시 시작해보자. 풀자. 풀자. 풀자. 한 문제라도 더 풀자꾸나.
최제훈 작가 사진

〃 작가소개 〃

최제훈 소설가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
장편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 『나비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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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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