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 후 이야기

우리들은 마음대로- 김태용

기획특집 날개 그후이야기 04 날개, 이어쓰기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이상의 대표작 <날개> 6명의 작가가 모여 다양한 상상력으로 펼쳐 보았습니다. 이상의 소설에서 감동과 여운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4화 김태용 작가 기획특집 날개 그후이야기 04 날개, 이어쓰기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이상의 대표작 <날개> 6명의 작가가 모여 다양한 상상력으로 펼쳐 보았습니다. 이상의 소설에서 감동과 여운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4화 김태용 작가
여보,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따위는 없소.
세기말과 현대자본주의를 비예 하는 거룩한 철학인도
밥상의 밥풀을 뜯어먹고 변소의 파리와 싸워야만 하오.

생각하면 오월이 아니냐.
오월엔 화장을 곱게 하고 여름 모자도 하나 사고 어딘가로 놀러 가는 게다.
배 타고 바다 건너. 기차 타고 국경 넘어. 굿 빠이.
나는 거리를 걸으며 되는대로 생각한다. 발에 차이는 돌멩이가 지나가는 포드구루마 가까이 떨어진다. 귀여워. 빠르기도 하고. 보이는 모든 풍경이 영화 같을 거야. 언제쯤 저걸 타고 경성 시내를 구경할 수 있을까. 차창 안으로 단발머리에 고양이 눈 화장을 한 여자의 옆모습이 보인다. 최근 모던걸 사이에서 유행하는 화장법이다.

나도 어머니가 일본놈팡이를 만나 야밤에 도망가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노름과 술독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생활을 놓고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타령을 하며 빈궁 연구에 골몰하느라 나를 뭇 사내의 바지 주머니나 노리는 첨단(尖端)의 악처(惡妻)로 만든 지금의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진명여고보를 무사히 졸업한 뒤 오피스걸이 되어 저 차에 타고 있거나, 책을 옆에 끼고 이화여전 가사과(家事科) 쯤은 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꿀방구리처럼 야무지고 앵무 같이 총명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기에 충분히 가능한 또 다른 미래의 내 모습이다. 포드가 나의 헛된 바람을 짓뭉개버리듯 굉음을 내며 멀어져 간다. 그래, 잘 가라. 굿 빠이.

포드의 뒤꽁무니를 향해 보란 듯이 입술을 삐죽 내밀어 실룩거렸다. 진솔버선 속의 발을 꼼지락거리며 걸어간다. 건물들이 나날이 새로 들어서고 있다.


‘공지(空地)가 없다는 말이외다. 숨을 쉴 수 없다는 말이외다.’
공지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이는 경이로운 눈으로 거리를 둘러보며 비칠비칠 걸어 다닐 것이다. 도대체 요즘 어디에서 어디로 그렇게 들입다 쏘다니고 있는지 모르겠다. 도둑질에 계집질까지 하고 다니는지 내 어찌 알겠는가. 물어뜯어도 시원찮을 의뭉스러운 쭉정이. 피죽도 못 먹은 울상을 하고 지금은 또 어디를 헤매고 다니고 있는 거야.

종로의 관철여관을 지날 때 발길이 자연스럽게 멈춰졌다. 남편과 처음 같은 베개를 베고 누운 곳이다. 베개에 난 머리 자국을 보며 남편은 「머리모양」이라는 시를 지어 아랫배를 움켜쥔 채 벽 쪽으로 돌아누워 있는 나에게 읊어주었었다. 보릿가루를 한 움큼 삼킨 텁텁한 목소리.


나는 이제 머리가 두 개요.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하나
하나는 안드로메다에서
하나는 오리온에서 왔소
어느 게 더 빛날지 모르오
어느 게 더 슬플지 모르오
모르오
정말 모르오
잠깐, 모르오의 오자는 숫자 5로 바꿀 까닭이 있소
모르5
정말 모르5
그래도 나는 지금 안드로메다 머리를
더 사랑하고 있는 것만 같소
머리모양이 예쁘기 때문이외다


관철여관 옆에 쌓아 놓은 목재가 갑자기 와르르 무너진다. 줄무늬 양말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양구두를 신은 소년이 발로 차버린 것이다. 뒤미처 옴팡져 보이는 여인이 여관 문을 열고 나와 소년에게 소리를 지른다. 소년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아주 깡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다. 마음에 드는 얼굴이다.

“내래 집 나가겠습네다.”
“간나 새끼, 니 지금 뭐라 했나?”

둘의 악다구니를 뒤로 하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천변을 따라, 5월의 투명한 햇살 속에서 정처 없이 걷고 있자니 나란 사람이 누군가 꾸고 있는 꿈속의 작은 오점만 같다. 오점은 점점 커져 총천연색 얼룩이 되어 꿈을 더럽힌 뒤 머리 밖으로 오색나물의 형태로 터져 나오고 말 것이다. 한창때는 이런 기이한 생각들을 주고받으며 남편과 강아지, 고양이 소리를 내며 깔깔 대고 웃은 적도 있었다.

그때는 그이가 남편이 아니라 해경氏였다. 남편이 된 해경氏는 자신의 이름을 잊은 사람처럼 존재를 망실해 무력과 게으름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애초에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가보다. 미모사마냥 섬세해 내 마음을 흔들기도 했었는데 이제 퀴퀴한 이불 속 쉬척지근한 쭉정이가 된 것이다. 그냥 어디 가서 콱 뒈져버렸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값싼 측은심이 들어 어리석은 내 머리끝만 잡아당기곤 한다.

약속이 없어도 외출을 하는 것은 나의 황홀한 사업(事業)이다. 한낮의 거리를 걷다 보면 안면이 있는 사내들을 우연히 만날 수 있고, 그들을 골려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밝은 거리에서 만나면 대개 덴겁해 나를 피하거나 모른 척 한다. 혹은 뭔가를 사주기 위해 나를 끌고 남대문시장으로 가려고 하지만 어림도 없다. 내편에서 미스꼬시, 화신, 히로다, 조지야, 미나까이 백화점에 가자고 하면 꽁무니를 빼기 일쑤다. 그들의 생활난을 알기에 한심하고 퍽이나 불쌍해 보여 혀끝을 찰 뿐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한낮의 외출이 없다면 이 숨 막히는 삶을 어찌할 도리가 없고, 나 역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빈궁한 연구에 빠져 미상불 삼정(三停)과 오악(五岳)이 고르지 못한 빈상(貧相)이 되고, 몸의 수분이 다 빠져 말라 죽게 될 것이다.

“여보,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우주의 먼지구덩이인 인간 영육의 비루함과 나의 레종데트르(raison d’être)를 실험하고 있는 거외다. 나는 유쾌하오. 정말 유쾌하오.”

며칠 전 남편은 신열에 들떠 헛소리를 하다 내가 아끼는 아코디언 치마에 얼굴을 묻고 침을 흘리며 울었다. 그러니까, 아스피린 대신 아달린을 먹여 진정시킬 수밖에 없다. 레종데트르가 무슨 구겨진 담뱃갑 이름이라고.

어느새 미스꼬시 근처까지 오게 되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것들과 향기 좋은 것, 맛나는 것을 탐하기도 하지만 가끔 미스꼬시 옥상정원에 올라 인공연못의 금붕어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내가 사랑하는 일 중의 하나이다. 덕수궁 연못의 금리어에 비할 바는 없지만, 흐늑흐늑 허비적대는 금붕어가 꼭 회탁의 거리 속에 갇힌 내 처지만 같아 잠시 위안이 되기도 한다.

오랜만에 금붕어와 눈을 맞출까, 하고 미스꼬시 앞에 다다르니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다. 남편이 보여준 입체파니 미래파니 뭔가 하는 한 폭의 난잡스런 그림처럼 각양각색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쓰개치마, 미쯔조로이, 도리우찌, 깨끼저고리, 고무신, 오페라백, 헌팅캡, 경제화, 칠보구두, 란도셀, 데파트걸, 지게꾼, 얼금뱅이, 인력거꾼, 부랑아, 숍걸 등이 모여서 저마다 탄식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차들의 경적 소리, 자전차의 딸랑이 소리도 한몫한다. 그 한 귀퉁이에 황구 한 마리가 무심하게 아래를 열어 보이며 퍼질러져 있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참으로 산란한 봉두난발과 칼면도가 필요한 도둑 수염의 사내가 몸이 뒤틀린 채 땅 바닥에 엎드려 있다. 다 떨어진 코르덴 양복 바지통 밖으로 한없이 허옇고 마른 발목이 삐져나와 있고, 구두 한 짝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어깨뼈가 툭 튀어나와 마치 기이한 생물체의 날개가 이제 막 돋아나오려다 멈춘 것만 같다.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손을 들어 미스꼬시의 옥상을 가리켰다. 그들의 말을 고양이의 하품마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고 했지만, 메밀껍질로 띵띵 찬 베개에 얻어맞은 듯 휘청거리고 말았다. 머릿속에서 레코오드판이 돌아가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리기 시작했다. 풍각쟁이의 뿔피리 소리가 울리고 잔망스런 음표들이 쏟아졌다.

진정해. 연심아. 진정해. 심장 속에서 입이 삐뚤어진 금붕어 한 마리가 미친 듯이 팔딱댔다. 거리와 사람들이 내뿜는 소음의 껍데기가 벗겨지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얼굴에 구두칠을 한 아이가 이상한 말을 노래처럼 내뱉고 있었다. 아마 사내의 마지막 말인지도 몰랐다.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맑스, 말사스, 마도로스, 아스피린, 아달린, 연심이, 벙어리 연심이.’

아니외다. 아니외다. 내가 아니외다. 몇 해 전 조선극장에서 본 불란서 영화 <몽 파리>에 나온 여배우마냥 나는 입을 막고 뒷걸음질 치면서 사람들 틈에서 벗어났다.

그래, 당신은 천재가 맞아. 하지만 당신은 도망자, 사기꾼, 야웅, 이매망량의 천재야. 유쾌해. 이런 때 유쾌해.
삽화 속 말 풍선 같은 말들이 머리 위로 부풀어 올라 터지고 있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잡으며, 연심 씨 어디가, 라고 말할 때에야 온몸이 땀에 젖도록 빠르게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지야 백화점 양장점에서 일한다는 황 모였다. 나에게 분홍 슈미즈(chemise)를 건네며 월미도 조탕(潮湯)으로 여행을 가자고 졸랐는데, 젖비린내가 풀풀 풍기는 녀석이고, 조지야 양장점 근처에도 못 가는 염천교 구둣방에서 수선공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귀여운 구석이 없잖아 있어 찾아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진작에 싸구려 슈미즈를 변소에 버렸고, 기회가 되면 등짝을 발로 차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구세요?”
“연심 씨 아닌가요?”

대놓고 눈을 쏘아보자 타고난 소심함으로 겁을 먹고 물러선다.

“죄송합니다. 너무 닮아가지구. 헤헤.”

머리를 긁적이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저 녀석이 오늘 밤 33번지의 칼표 딱지가 붙어 있는 내 집으로 찾아 들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속이 메슥거렸다. 조갈이 난 입속의 마른 침을 모아 바닥에 뱉었다.

이마의 땀을 닦고 요사스러운 꿈속에서 빠져 나온 것마냥 눈을 비비며 앞을 보았다. 경성역이 보였다. 그제야 거리의 소음들이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미스꼬시에서 어떻게 경성역 앞까지 왔는지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망할 신들의 계략인지도 몰랐다. 언젠가 책보만한 빛이 드는 남편의 방을 뒤적이다 떨어져 펼쳐진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신들의 계략이 무슨 말인지 아오? 가끔 찾아오는 연희전문대 법학부 출신이라는 나부랭이에게 물어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잊고 있다 지금에야 생각이 난 것이다.

쳇, 망할 신들의 계략이라니. 그게 도대체 뭐란 말이야. 망할 아랫도리들. 뒈져버려라. 줄줄이 뒈져버려라. 아랫도리를 가진 신들도 뒈져버려라. 박제도, 천재도 다 뒈져버려라. 그리고 이제 나는 뭐 될 대로 되라지.


여러번 자동차에 치일번하면서 나는 그래도 경성역을찾어갔다. 빈자리와 마조앉어서 이 쓰디쓴입맛을거두기위하야 무었으로나 입가심을하고싶었다. 커피—. 좋다.


경성역 티룸의 대각선 건너편에 앉아 있는 단구(短軀)의 척신(瘠身)인 여자는 왠지 낯이 익다. 브이넥 스웨터에 테일러 재킷, 머리에는 베레모를 쓰고 있다. 무릎 치마와 에나멜 구두가 새것처럼 날이 서 있고 반짝인다. 미용실 잡지에서 본 일명 보니룩(bonnie look)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저 차림보다는 흑백 저고리 치마에 눈깔비녀를 꽂은 쪽진 머리가 더 잘 어울릴 것만 같다.
기획특집 날개 그후이야기 04 날개, 이어쓰기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이상의 대표작 <날개> 6명의 작가가 모여 다양한 상상력으로 펼쳐 보았습니다. 이상의 소설에서 감동과 여운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4화 김태용 작가
여자가 오페라백에서 분홍색 케이스를 꺼내 열고 담배를 하나 입에 문다. 지포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여고보 시절 미술 시간에 따라 그린 혜원의 <미인도>를 연상케 하는 얼굴에 기이할 정도로 가느다랗고 긴 눈썹을 움직이며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는 여자를 보니, 나도 이제 행복한 과부, 메리 위도(merry widow)처럼 다리를 꼬고 앉아 구름꼭지를 하나 입에 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담배 정도는 나도 필 줄 안다. 다만 어릴 적부터 폐가 좋지 않아 안 피우고 있을 뿐이다.

티룸의 사운드박스에서 귀에 익은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온다. 베토벤의 미뉴에트 G장조. 미샤 엘만(Mischa Elman)의 연주인가. ‘내년, 내년이 온다면 부민관에서 미샤 엘만의 연주를 꼭 듣고 싶소.’ 몹시 추웠던 올 1월의 어느 날, 남편은 낡은 외투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파고다 전파사 앞에서 한참 동안 축음기의 음악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내년은 1937년이다. 미샤 엘만이 부민관에서 바이올린 독주회를 연다. 경성의 멋쟁이들과 예술가 나부랭이들이 모두 모일 것이다. 지금 남편은 33번지 문 앞의 칼표 딱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1937년이 온다면, 1937년에 남편이 살아 있다면, 1937년에도 여전히 같이 살고 있다면 그에게 부민관 연주회 티켓을 사줄 수도 있다. 티켓을 사서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도 있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뭐라 하기 어려운 커피 맛이 입 안에 맴돈다.

베토벤의 음악이 끝날 때쯤 건너편에 앉아 있는 여자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걸음걸이가 예사롭지가 않다. 가까이서 보니 더 낯이 익다.

“여기 앉아도 되우?”
“앉으시지요.”

나도 모르게 허리를 쭉 펴게 된다.

“참 볼만한 미엽(媚�)을 갖고 있어요.”
“네엥?”
“보조개가 눈을 홀립디다.”

왜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알 수 없었다. 거울을 보고 싶었다. 아니 거울을 슬쩍 훔쳐보고 싶었다.

“담배 피우지요?”

고개를 끄덕이자 담배를 하나 꺼내 준다. 칼표가 아닌 웨스트민스터이다. 입으로 가져가 물자 지포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준다. 오랜만에 구름꼭지를 물고 있으니 좋다. 푸른 술이라도 한 모금 마시면 어느 황혼의 저녁으로 돌아가 이런 창가를 흥얼거릴 수도 있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 버려라.’

담배 한 개비로 내 방은 물론 33번지를 다 태워버릴 수도 있다. 이왕이면 미스꼬시도 태웠으면 한다. 더러운 것, 아름다운 것, 다 불에 타버리면 좋겠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여자와 나를 흘끔 째려보거나 혀끝을 차고 지나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담배를 피우며 날카로운 코끝을 찡긋거리는 여자의 표정을 보니 이제야 누구인지 알 것 같으다. 영화, 영화에서 본 여자다. 쪽 찢어진 내 눈이 조금 커지는 것을 보고 여자는 검지를 세워 자신의 입술에 댔다. 영화 속 동작처럼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다.

“내 본래 이름은 문정원(文丁元)이라우. 송아지도 한 번 보면 내 이름을 쓸 수 있지요. 예봉은 너무 어렵지. 어려워. 이름이 뭡네까?”
“연심이요. 안연심.”
“연심 양은 영화 좋아하우?”
“물고기 다음으로요.”
“머리를 좀 더 짧게 자르면 좋을 것 같으네. 다음 영화에 데파트걸로 출연시켜 줄게요. 바보 같은 내용이지만 내가 좀 미친 연기를 잘 하면 아주 성공할 거라고, 감독이랑 제작자랑 다 그럽디다.” “난 연기를 해 본 적이 없어요.”
“해본 적이 없으니까 할 수 있씨오.”

희한하게도 평양과 서울 사투리를 섞어 말하는 문예봉이 오페라백에서 동경 카라멜 하나를 꺼내 나에게 건넨다. 곱게 싸인 포장지를 벗겨 입에 넣자 달콤한 맛과 치아를 건드리는 부드러운 감촉이 몸을 붕 뜨게 한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만 같다. 영화는 꿈의 예술이라고 쓴 글을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이미 영화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가 등장하던 영화는 이제 끝났고 새로운 영화가 시작된 것이다.

“정원 언니라고 부르라우.”

그 이후 정원 언니와 나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방금 남편이 죽었다고 하니까 깔깔대고 웃었다.

“남자들은 원래 다 죽지요. 그래서 억울해 영화에서 자꾸 여자를 죽이는 거라우.”

이번엔 내가 깔깔대고 웃었다. 정원 언니와 나의 웃음이 티룸 안을 울렸다. 한 남자가 다가와 아는 체 하자 정원 언니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이번에도 나는 깔깔대고 웃었다.

“함께 가자우. 함흥에서 수박 냉면을 사 줄게요. 수박 껍데기 고명을 얹힌 냉면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인데 맛이 기가 막히다우. 그걸 먹고 나야 영화를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니까.”

기차표와 숙식을 해결해 준다는 정원 언니의 제안으로 나는 언니의 고향인 함흥에 가기로 했다. 먼저 평양행 기차를 타야 한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우리는 몇 개비의 담배를 더 피우고 드문드문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군가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탁자 위에 돌돌 말린 카라멜 포장지가 굴러다닌다. 정원 언니는 10년 전의 일이라며 김우진과 윤심덕 이야기를 해주었다. 현해탄에 몸을 던진 연인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한 편의 소설이나 영화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했다. 하지만 정원 언니에게서 들으니 전혀 새롭게만 들린다.

“그날 이후 몇 쌍의 커플이 에이더블 쑤싸이드를 했는지 모른다우. 남과여는 물론 남남과 여여도 있지요. 우리들은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연심과 나도 함께 기차에서 몸을 던질 수 있다우.”

표정을 보면 농담을 던진 것이지만 정원 언니의 말에 이상하게 얼굴이 화끈거리고 아랫배가 뜨뜻해졌다. 누군가를 처음 좋아하게 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그게 누구였는지 잊어먹었지만 말이다. 알파벳 정도는 나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탁자에 adouble suleide라고 손가락으로 써 보았다. 정원 언니의 손가락 끝이 내 손가락 끝과 닿을 듯 말 듯 하고 있다.

미스꼬시 옥상에서 몸을 던진 구두 한 짝을 잃은 사내의 이야기는 10년 뒤에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을까. 에이론리 쑤싸이드(ALonely Suicide). 지금쯤 33번지에 순사들이 찾아와 방 안을 뒤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티룸의 시계는 정확하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곧 평양행 열차가 출발할 것이다. 정원 언니와 기차에서 몸을 던질 수 있을까. 함흥에 가서 수박 냉면이라는 것을 먹어볼 수 있을까. 순간 지금까지의 비루했던 내 삶이 영화의 필름처럼 어딘가로 휘감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짧은 북쪽 기행을 마치고 나는 정원 언니와 함께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와 데파트걸이 되어 영화에 출연할지도 모르지만, 또 다른 미래의 나는 평양으로 가 사라질 것이다.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아름다운 옷감들이 유난을 떨고 있는 또 다른 도시, 평양의 거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영영. 이름을 바꾸고. 굿 빠이. 한 번만 더. 굿 빠이. 다시는 이 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나는 여기에 없을 것이다.

평양행 기차가 곧이어 플랫폼으로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이 들린다. 정확하다. 정원 언니가 옷매무새를 고치며 떠날 채비를 한다. 일어나자. 가자. 나는, 우리들은 이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김태용 작가 사진

〃 작가소개 〃

김태용 소설가

소설집 『풀밭 위의 돼지』 『포주 이야기』,
장편소설 『숨김없이 남김없이』 『벌거숭이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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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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