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설의 처음과 끝

줄리언 반스 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내가 내가 되는 시간

그 소설의 처음과끝 : 줄리언 반스 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내가 내가 되는 시간
그 소설의 처음과끝 : 줄리언 반스 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내가 내가 되는 시간
그 소설의 처음과끝 : 줄리언 반스 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내가 내가 되는 시간
소설의 처음

특별한 순서 없이, 기억이 떠오른다.
(…)
잠긴 문 뒤의, 오래전에 차갑게 식은 목욕물.

마지막 것은 내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그 소설의 처음과끝 : 줄리언 반스 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내가 내가 되는 시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포토 스틸 컷

줄리언 반스의 장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예순 살 화자 토니가 기억 속 사십여 년 전 장면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장면들에는 고등학교 친구 콜린과 앨릭스도 등장하지만, 역시 주연은 ‘나’에게 기억 속으로의 초대장이나 다름없는 유언장을 보내온 포드 여사의 딸, 대학 시절의 연인 베로니카다. 더불어 이 모든 기억을 관통하는 이, 고교 시절에 만나 친구가 되었고 나중에는 ‘나’와 이별한 베로니카와 사귀었다 돌연 욕조에서 손목을 긋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 에이드리언이 또 하나의 주연이다.

아직 베로니카와 연인이었던 시절 딱 한 번 만났을 뿐인 포드 여사가 세상을 뜨며 오백 파운드의 돈과 함께 보내온 그 유언장에 언급된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의 행방을 쫓는 토니의 여정이 그렇게 시작된다.

사라진 일기장을 마침내 찾아내기까지의 이야기가 길게 펼쳐진다는 말은 아니다. 토니가 보게 되는 것은 일기의 복사본 한 장일 뿐이고, 문제의 일기장을 보관하고 있던 베로니카는 정작 그것을 태워버렸다고 토니에게 말한다.

그러한지라 자연 이 여정은 일기장이 아니라 그것의 주인인 에이드리언에게로 방향을 틀게 된다. 그 종착지에서 토니는 에이드리언이 베로니카가 아닌 포드 여사와의 사이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얻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 충격적인 결말은 이야기상에서 반전으로 작동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 사실이 에이드리언의 짧은 삶과 이른 죽음에 대해 무언가 더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가 정말로 누구였는지, 죽어 없고 남긴 기록도 사라진 그 부재로부터 그의 존재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그가 여전히 살고 있는 곳으로 향해야만 할 터, 토니의 기억 속이 바로 그곳이다.

“나는 살아남았다. ‘그는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과거, 조 헌트 영감에게 내가 넉살좋게 단언한 것과 달리,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p.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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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포토 스틸 컷

‘전체 분량의 삼 분의 일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1부의 주인공은 단연 생전의 에이드리언이며, 각별하게 떠올려지는 것은 그 천재적인 소년이 역사 수업 시간에 헌트 선생과 나누었던 문답들이다. 이 대목들은 소설의 도입부에서 행해지게 마련인 캐릭터 소개이면서, 동시에 이 소설이 기억과 시간 그리고 역사(history)와 ‘그의 이야기(he’s story)‘에 대한 것이 되리라는 점을 강하게 암시한다. ‘나’가 역사를 승자들의 거짓말이라 단언하자 선생은 “그게 또한 패배자들의 자기기만이기도 하다”(33쪽)고 지적한다.

에이드리언의 대답은 이렇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34쪽).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Leopold von Ranke)의 실증주의적 역사관과 (언제나 함께 거론되곤 하는) 영국의 역사학자 카(Edward Hallet Carr)의 해석주의적 역사관 모두를 회의(懷疑)하던 그의 답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의 토니는 알지 못했다. 깨달음은 저 자신이 직접 에이드리언을 회고하는 지금, 불충분한 문서들에 의존한 채 부정확한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의 이야기’를 복원하려는 지금에서야 찾아온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 p.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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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포토 스틸 컷

미리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깨달음이라고는 하나 너무 늦게 찾아왔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차라리 늦었기 때문에 비로소 찾아오게 되었다고 한다면 모를까. 서로의 결속을 다지겠다는 허세를 부리며 콜린, 앨릭스와 함께 손목시계의 앞면을 손목 안쪽으로 돌려서 차고 다녔던 그 시절에, 그 우스꽝스러운 짓을 통해 시간을 “사적인 것으로, 심지어는 내밀한 것으로”(16쪽) 오인했던 그 시절에, ‘시간은 내 편(Time is on my side)’이라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마음껏 젊음을 탕진하던 그 시절에 ‘나’가 그걸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사십여 년에 걸친 시간이 더해지고서야 찾아온 이 깨달음에 즈음하여 초점은 ‘그’가 아니라 ‘나’로, 줄곧 자신의 인생을 저 자신에게 이야기해왔으되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곱씹어본 적은 없던 긴 시간들을 다 흘려보낸 후에야 뒤늦게 제 삶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 토니 자신에게로 옮겨온다. 말하자면 토니는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찾는 것에서 출발해 마침내 자기 자신을 찾기에 이른다.

그 소설의 처음과끝 : 줄리언 반스 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내가 내가 되는 시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포토 스틸 컷

그 과정에 결정적인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이 베로니카가 보관해온 편지다. 토니 자신이 사십여 년 전에 쓴, 축복받아 마땅한 시작하는 연인들을 향해 쏟아낸 무시무시한 저주가 담긴 한 장의 편지. 벽난로 속에 넣고 태웠다고 제멋대로 기억해온 그 편지가 시간을 넘어 최종 수신인인 저 자신에게 도착하면서 토니는, 물결치며 상류로 거슬러 오르던 세번강의 밀물처럼, 시간을 따라 흘러온 지금까지의 삶을 다시금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즈음에 이르러 그간 토니의 곁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전처 마거릿은 말한다. “토니, 이제 당신은 혼자야.”(185쪽) 그 일은 혼자서 할 수밖에 없다고, 제 인생을 다시 떠올리고 그리하여 그것을 다시 사는 일은 온전히 토니 자신만의 몫이라고 말해주려던 것이리라. 자책과 회한과 뒤늦은 상처와 고통을 혼자 다 짊어지는 것만이 제 삶을 제 것으로 살아내는 방법일 테니까. 그것이 이 긴 여정의 진정한 종착지다.

“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따져봐야 할 일이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흔치 않은 회한에 시달렸다.
것은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인간이 비로소 느끼게 된 고통,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느끼게 된 고통이었다.”

- p. 242~243

그 소설의 처음과끝 : 줄리언 반스 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내가 내가 되는 시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포토 스틸 컷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분명 길다고는 할 수 없는 소설이다. 그러나 모르고 한 번 살았던 삶을 토니가 다시 살게 되었으므로 적어도 두 번은 반복된 그 삶은 참으로 길고 길다. 그 거듭된 삶에도 빈자리는 여전히 있다. 가령 에이드리언이 베로니카의 어머니와 동침한 이유나 자살을 택한 그가 정말로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토니도 우리도 다 알 수 없다. 이에 대해서라면 역사 수업에서 토니를 매료시키고 만 에이드리언의 대답 이상은 없을 것이다.

“모든 역사적 사건-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까지도- 에 대해 우리가 진실되게 할 수 있는 말은 ‘뭔가 일어났다’는 것뿐입니다.”(15쪽) 그는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인용하며 “자살이 단 하나의 진실한 철학적 문제”(29쪽)라 했지만, 삶이라는 선물을 책임지고 지휘하고 온전히 포착하다 끝내 스스로 놓아주는 권리까지 행사하기도 했지만, 같은 책에서 카뮈는 삶이 부조리임을 알면서도 전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삶을 산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뭔가 일어났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었다.”(245쪽) 뭔가 또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삶은 지금껏 그랬듯 부조리하고 혼란스러운 모습 그대로 또 계속될 것이다. 틀리는 법 없는 그 슬픈 예감을 받아들이는 것, 그 정도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소설의 끝

“거기엔 축적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어떤 책?

전후 영국이 낳은 가장 지적이고 재치 있는 작가 줄리언 반스가 2011년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기억과 윤리를 소재로 한 한 편의 심리 스릴러로, 출간된 그 해 영어권 최고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1960년대 영국, 1인칭 화자인 주인공 토니 웹스터가 대학에 진학하여 베로니카라는 여자친구와 사귀게 되지만, 결국 성적 불만과 계급적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진다. 그러던 중, 장래가 촉망되던 케임브리지 장학생 친구 에이드리언 핀이 욕실에서 자살하는 일이 벌어진다. 언제나 철학적이고 총명했던 그가 자살한 이유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40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은퇴한 노인이 된 토니는 자신이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이제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한 통의 편지가 엄청난 파국을 불러왔음을 알게 된다. 결국 기억과 삶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2017년 리테쉬 바트라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또 다른 문장들 곱씹어보기

 

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 - p. 141

어느새 나는 내 인생과 에이드리언의 인생을 비교하고 있었다. 윤리적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에 대해, 자살을 감행한 정신적, 육체적 용기에 대해. 한 구절로 표현하자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에이드리언은 자신의 삶을 책임졌고, 그것을 지휘했으며, 온전히 포착했다. 그리고 놓아주었다. 우리- 살아남은 우리- 중에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는 살면서 좌충우돌하고, 대책 없이 삶과 맞닥뜨리면서 서서히 기억의 창고를 지어간다. 축적의 문제가 있지만, 에이드리언이 의미한 것과는 무관하게 다만 인생의 토대에 더하고 또 더할 뿐이다. 그리고 한 시인이 지적했듯, 더하는 것과 늘어나는 것은 다른 것이다. - p. 153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이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 p. 162

평균치. 학교를 떠난 후 나란 인간은 줄곧 그랬다. 대학에서, 직장에서 평균치. 우정과 성실과 사랑에서 평균치. 섹스에서도 의심할 여지 없이 평균치였다. 몇 년 전 영국의 자동차 운전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설문에 참여한 운전자 구십오퍼센트가 스스로 ‘평균 수준보다 양호한’ 운전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평균치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는 불가항력적으로 평균치가 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렇게 생각해봐도 마음은 결코 편해지지 않았다. 평균치란 말이 메아리쳐 울려 퍼졌다. 평균치 인생, 평균치 진실, 평균치 윤리관. - p. 164

인성의 깊이와 세월의 흐름은 비례하는 걸까? 소설에선 물론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 인생에선 어떨지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우리의 태도와 견해가 바뀌고, 새로운 습성과 기벽이 생기긴 하지만, 그건 뭔가 다른 것, 이를테면 장식에 가까운 것이다. 어쩌면 인성이란 다소 시간이 지나서, 즉 이십대에서 삼십대 사이에 정점에 이른다는 점만 빼면, 지성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 시기가 지나면 우리는 그때까지 쌓은 소양에 여지없이 고착되고 만다. 우리에겐 우리 자신뿐이다. 그렇다면 그걸 통해 여러 인생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폼 잡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우리의 비극까지도. - p. 180

우리의 기억은, 아니 우리가 기억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은 얼마나 자주 우리를 기만하고 농락하는가. 그런 기억에 의존해 진리를 만들어가는 우리의 이성이란 얼마나 얄팍하고 안이한가. - p. 263

 

문학평론가 황현경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2012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평론 <반격! 김사과>로 등단 / 현재 명지대, 서울예대, 추계예대 등에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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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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