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링 해가 훅, 사라졌다.
백색 어둠이 그 자리를 채웠다.
바람이 눈발을 휘몰며 불어치고 암벽 같은 빙무가 세상을 가뒀다.
성미 사나운 북극 마녀, 화이트아웃이었다.
재형은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작가가 밝힌바 <28 >의 무대 화양은 ‘火陽’, 곧 불볕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가공의 도시다. 모든 것이 불타는 곳. 인수공통전염병으로 눈이 붉게 타오른 이들의 생명이 하나씩 꺼져가는 동안, 향할 곳 잃고 떠도는 욕망들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다 엉뚱한 곳으로 불길을 옮긴다.
말하자면 이것은 원인 불명의 재앙 앞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삶이 불쑥 솟아오른 저마다의 어두운 마음들에 의해 갉아 먹히는 이야기를 담은 ‘아포칼립스 소설’이다. 본디 모든 소설은 ‘무엇이 인간인가’를 어떤 식으로든 묻게 마련이지만, 이런 유의 소설에서 그 질문은 특히 첨예하다.
소중하게 지켜왔던 온갖 가치들이 순식간에 사치가 되어버리는 순간에 우리는 얼마나 인간일 수 있는가. 생과 사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속수무책의 재난에 임하여 하나씩 잃고 버린 후에도 남는 무언가, 우리를 도저히 인간이 아니지 못 하게 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첫머리에 펼쳐진 재형의 과거, 화양이 빨간 눈을 가진 이들의 도시가 되기 시작한 2013년 1월 현재로부터 십일 년 전 알래스카의 설원, 그때 그곳에 답이 있다.
세계 최대의 개썰매 경주 아이디타로드에 개썰매팀 ‘쉬차’를 몰고 참가한 재형은 화이트아웃 속에서 몰려든 굶주린 늑대들에게 열여섯 마리의 썰매견들을 먹이로 던져주고서 목숨을 부지한다. 우리로서는 그래봐야 개들일 뿐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 쉽지 않으나 재형에게만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 순간 교환된 것은 열여섯 마리 개와 제 목숨 하나 이전에 생명과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한지라 그가 화양의 백운산 기슭에서 유기동물보호소이자 동물병원인 ‘드림랜드’를 운영하며 개들의 생명을 구해온 것은 속죄이기도 할 터이다. 물론, 생은 그리 간단치 않기에 그 순간 재형에게 각인된 진실은 한층 더 복잡한 것이다.
“그때 살려고 애쓰는 것 말고 무엇이 가능했겠느냐고.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 그가 쉬차를 버리지 않았다면 쉬차가 그를 버렸을 터였다.
그것이 삶이 가진 폭력성이자 슬픔이었다. 자신을, 타인을,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건 그 서글픈 본성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로 보듬으면 덜 쓸쓸할 것 같아서. 보듬고 있는 동안만큼은 너를 버리지도 해치지도 않으리란 자기기만이 가능하니까.”
p. 345 ~ 346
삶의 폭력성과 슬픔을 초과하는 무언가, 그 무언가를 ‘살아갈 이유’로 지니고 있는 동안만 우리는 인간이다. 모두 여섯 개의 시점(視點)으로 나뉜 이야기들이 모여 전체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에서 인간이라 불릴 자격을 지닌 이들에게는 모두 저마다의 ‘무언가’가 있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회생의 기약도 없이 쓰러져가는 중에도 119 구조대원으로서의 임무를 멈추지 않는 기준도, 제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든 격무 속에서도 간호사로서 환자들을 돌보는 수진도. 마치 “풍랑은 풍랑에 맡겨두고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거”(193쪽)라던 수진 아버지의 말을 따르기라도 하듯 그들은 기어이 그 지옥에서도 ‘살아갈 이유’를 찾아내고 만다. 더욱이 생판 모르는 이들을 거두느라 제 가족을 잃기까지 하는데도 그러하다는 것은 곧 그들이 감히 생명의 경중을 저울질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묘지 여기저기를 랜턴으로 살피고 있었는데 뭘 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에는 그렇게 집중해서 살필 만한 뭔가가 보이지 않았다.
“뭘 그렇게 정신없이 봐요?”
재형이 고개를 들고 그녀를 봤다.
“이야기.”
(…)
그녀는 비로소 눈 위에 뿌려진 작은 핏자국들을 볼 수 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새하얀 눈길로만 보였는데.
시력의 문제는 아니었다. 시선의 차이였다. 그것은 한 인간이 속한 세계의 차이와도 같았다.”
- p. 236
그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재형을 ‘개장수’로 모는 기사를 써 그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던 윤주의 변화가 선명하게 눈에 띈다. 외부인으로서 화양에 고립된 그녀는 애초에 재형이라는 한 인간의 삶, 나아가 화양 시민들의 죄 없는 죽음을 그저 기사를 위한 ‘사건’으로만 취급하던 이였다. 그랬던 그녀가 재형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의 인도(引導)를 따라 꺼져가는 생명들의 살려달라는 울음을 듣기 시작하면서 이것이 ‘사건’이 아닌 수많은 개별적 생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그 과정은 재형이 자신의 생명까지 내던져가며 십일 년 전 과오를 현재에서 마침내 바로잡게 되는 과정과 함께 <28 >의 이야기를 지탱한다. 그렇다면 그 둘이 끝내 서로를 향해 손을 뻗게 되는 것을 ‘사랑’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차라리 그 지옥불조차 미처 다 태우지 못한 희나리 같은 이들 모두가 가슴에 품고 있던 ‘무언가’이므로.
“사람들은 왜 가만있지 않는지.
안전한 자기 집을 두고 감염의 위험과 무장 군인, 추위와 허기가 기다리는 광장에 모이는 진짜 이유가 뭔지.
이 방에 홀로 남은 지금에야 그녀는 답을 알 것도 같았다. 그들은 ‘누군가’를 향해 모이는 것이었다.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확인시켜줄 누군가.
시선을 맞대고 앉아 함께 두려워하고 분노하고 뭔가를 나눠 먹을 수 있는 누군가,
시시각각 조여드는 죽음의 손을 잊게 해줄 누군가를 만나고자 그곳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윤주에게 그곳은 재형이었다. 그에게로 가고 싶었다. 그가 그리웠다.”
- p. 404
<28 >에는 동해와 같은 악인도 등장한다. 또 하나의 ‘악의 축’이라 할 수 있는 맹견 ‘링고’가 자신을 해한 이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오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재형의 애견 ‘스타’를 향한 연모만은 소중히 간직했던 반면,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로 말미암아 내면이 온통 악(惡)으로만 가득 차게 된 동해는 도무지 살아 숨 쉬는 인물로 보이지 않을 정도다. 동물에게도 한 생명으로서의 지위를 동등하게 부여하는 이 소설에서, 인간과 동물 모두를 사물인 양 대하며 아무 죄책감 없이 파괴하는 동해만은 모든 인물의 가장 반대편에 서 있다.
인간이려 애쓰는 이들이 간신히 인간으로 머무는 동안, 인간이길 간단히 포기한 그는 이토록 쉽게 인간이 아니다. 그가 없었더라면 <28 >은 어쩌면 휴머니즘 소설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존재로 인하여 이것은 결국 (전염병 자체는 ‘리얼’한 설정이 아닐지라도)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돌고 돌아 다시 이 질문이다. 우리는, 혹은 당신은 어느 쪽인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등을 통해 우리에게는 주로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참고하자면 우리는 최악의 순간에도, 최악의 순간에야말로 끈질기게 인간이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한 다섯 건의 대형 재난을 연구한 그 책은 우리가 재난이라는 지옥을 관통해 연대와 이타주의와 즉흥성이 살아 숨 쉬는 낙원에 도달한다고 결론 내린다. <모든 것은 빛난다> 식으로 말하자면 바로 그러한 어둠의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빛’을 눈부시게 내뿜는 순간일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정말로 어떤가. 진심을 다해 ‘우리’라 답해줄 당신이길 바란다. 당신도 나도 아직은 여기 이 세상에 함께 머무는 중이므로.
“서재형, 인간 없는 세상으로 가다.”
<7년의 밤>의 작가 정유정이 2013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불볕’이라는 뜻의 도시 ‘화양’에서 펼쳐지는 28일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존을 향한 갈망과 뜨거운 구원에 관한 극한의 드라마이자, 치밀하고 압도적인 서사, 숨 쉴 틈 없이 달려가는 문장들로 그려냈던 전작보다 혹독하고 가차 없이 생생한 이야기다. 작가 정유정은 리얼리티 넘치는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무저갱으로 변해버린, 파괴된 인간들의 도시를 독자들의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다섯 명의 인물과 함께 한 마리 개의 시점을 서로 맞물려 배치함으로써 총 6개의 서사가 톱니바퀴 형태로 흘러가게끔 구성되어 있으며, 작가의 의도가 강하게 느껴지는 극도의 단문들은 생생한 묘사와 이야기의 폭발성에 힘을 실어준다. 절망과 분노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숨쉬는 인간의 모습에서 진한 감동이 밀려오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그때까지도 링고는 도망칠 마음은 먹지 않았다. ‘인간을 믿지 않는다’와 ‘인간에게서 도망친다’는 다른 문제였다. 늑대의 혈통을 받았지만 링고는 개로 길러졌다. 개에게 인간은 곧 세계였다. 먹이와 거처, 안전을 보장하고 운명을 관장하는 세계. 인간을 벗어난다는 건 자신의 세계를 버린다는 말과 같았다. 떠돌이가 된다는 의미였다. 링고는 스스로 물었다. 어느 쪽이 더 두려운가. 떠돌이와 송장 중에서. - p. 51
이 개는 당신의 ‘마리’야. 마리라는 이름을 붙여준 자가 바로 당신이라고. 그게 무슨 뜻인 줄 알아? 책임진다는 거야. 편의에 따라 관계를 파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야. - p. 210~211
춥고, 숨차고, 귀가 아프고 어깨고 덜그럭덜그럭 떨렸다. 몸 안에서 터지는 참혹한 울음 때문에, 분노와 자책에서 오는 절망으로, 저 생때 같은 생명들을 차떼기로 쓸어다가 생매장할 권리를 누가 인간에게 주었더란 말인가. - p. 220
대원들 대부분이 기준처럼 혼자가 됐거나 돼가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소방차를 타는 건 도망치기 위함일 거라고, 기준은 생각했다. 현재에 이르게 만든 모든 것들에 대한 분노로부터, 매일 매 순간 밀려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과 홀로 남았다는 외로움으로부터, 다시는 일상을 되찾을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으로부터.. - p. 409~410
빨간 눈은 지옥 불처럼 화양을 태웠다. 용케 불길을 피한 이들은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다른 사람들의 손에 죽었다. 약탈, 총질, 강간, 살인, 방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일들이 매일, 매 순간, 도처에서 일어났다. 서로 죽이고 죽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공포에 떨며 고속으로 공멸해갔다. 남은 자들은 서로를 피해 가시 세계 밑에 숨어 지냈다. - p. 473
목 안에서 뼈가 꺾이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아마도 울음이었을 것이다. 원망이었을 것이다. 왜 그랬어. 그러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해주지 그랬어. 이 무저갱에 혼자 남을 나를 한 번만. - p. 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