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설의 처음과 끝

최은영 저 <쇼코의 미소> - 어떻게든, 다시, 우리

그 소설의 처음과끝 : 최은영 저 <쇼코의 미소 /> -어떻게든, 다시, 우리-
그 소설의 처음과끝 : 최은영 저 <쇼코의 미소 /> -어떻게든, 다시, 우리-
그 소설의 처음과끝 : 최은영 저 <쇼코의 미소 /> -어떻게든, 다시, 우리-
소설의 처음

나는 차가운 모래 속에 두 손을 넣고 검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우주의 가장자리 같다.
쇼코는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의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나서,
역시나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했다.

“언젠가는 바다를 떠나서, 사방을 둘러봐도 빌딩밖에 없는 도시에 가서 살 거야.”

쇼코는 ‘언젠가는’이라고 말했다. 열일곱 살에도, 스물세 살에도.

그 소설의 처음과끝 : 최은영 저 <쇼코의 미소 /> -어떻게든, 다시, 우리-

최은영의 첫 소설 <쇼코의 미소>는 소유와 쇼코가 나눈 긴 우정에 대한 이야기로 기억되곤 하지만, 소설 속에서 13년이 흐르는 동안 정작 둘이 함께 보낸 날들은 딱 열흘밖에 되지 않는다.

열일곱 살 쇼코가 한일 학생 문화 교류라는 주제로 초청을 받아 동갑내기 소유의 집에서 보낸 일주일, 스물세 살 소유가 일본의 바닷가 소읍에 위치한 쇼코의 집을 찾아갔을 때 아주 잠깐, 서른 살이 되어 서로의 할아버지들이 모두 세상을 뜨고 난 후 쇼코가 그간 소유의 할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이백 통 남짓한 편지들을 들고 찾아와 소유의 자취방에 머물렀던 이틀, 이게 전부다. 첫 번째 만남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쳐도 두 번째 만남, 곧 소유가 쇼코를 모질게 대했던 그 일이 없었더라면 세 번째 만남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할 일도 역시 없었을 테고. 만났다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일들의 반복, 최은영의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는 이런 이야기들이다.

여기에 ‘어떻게든’이 붙는다. 어떻게든, 정말이지 어떻게든 다시 만나는 게 최은영 소설이다. 어째서 ‘어떻게든’ 그들이 다시 만나는지를 이야기하려면 그들이 ‘어떻게’ 헤어졌는지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두 번째 만남에서 소유는 쇼코에게 고작 할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제 꿈을 다 포기해버릴 참이냐고 말한다. 후에 자신이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34쪽)에 불과한 ‘꿈’을 꾸게 될 줄을 그때는 꿈에도 몰랐을 테니 저도 어쩔 수 없는 말들이었으리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그 말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 설득하고 말면 그만일 그 일들을 최은영의 인물들은 기어이 곱씹는다. 틀렸음을 뒤늦게 알아버린 지금은 이미 이별하고 난 후, 그래서 그들은 다시 만나야 한다. 어떻게든, 정말이지 어떻게든, 다시.

“이모는 등에서 둥그런 부채 모양의 하얀 날개를 펼치더니 8인용 병실 천장 위를 뱅글뱅글 날아다녔다.
엄마는 날아다니는 이모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 모습이 꽤나 우스워서 애처럼 웃었다.
그러자 이모도 만족한 듯이 날개를 접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너 보니 좋다, 해옥아.”
“참 좋네.”
“우리, 서로 보고 살았으면 더 좋았을까.”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p. 39 ~ 40

그 소설의 처음과끝 : 최은영 저 <쇼코의 미소 /> -어떻게든, 다시, 우리-

‘나’의 엄마 해옥이 할머니의 이종사촌 언니의 딸인 열여섯 살 순애 이모와 함께 살게 된 것은 열한 살이었을 때다. 소유와 쇼코처럼 연애 같기도 우정 같기도 한 사이였던 그들이었으나, 먼저 결혼한 이모의 남편이 좌익 사범으로 몰려 체포되자 이모도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둘의 인연은 홀몸으로 아이를 낳은 이모가 엄마의 결혼 소식을 듣고 연락해온 것을 계기로 희미하게 다시 이어지지만, 제 행복이 이모에게 박탈감을 줄까 두려웠던 엄마는 서서히 이모를 멀리한다. 그런 태도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기만하는 짓이라는 깨달음은 이번에도 너무 늦게 찾아온다. 이모가 찾아오는 것은 그 깨달음이 찾아오고 나서다.

이모의 딸을 통해 엄마에게 전해진 유품으로, 결혼한 이모에게 엄마가 선물해준 가죽지갑 속 오래 간직되어온 둘의 사진으로, 열여섯 살짜리 아이의 얼굴로 이모는 어떻게든 엄마에게 온다.

그 소설의 처음과끝 : 최은영 저 <쇼코의 미소 /> -어떻게든, 다시, 우리-

만났던 이는 헤어지게 마련이며 떠나간 이는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는 정도로는 이 이야기들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쇼코와의 두 번째 만남이 그러했듯 이모와 짧게 이어졌다 끊어진 두 번째 시절이 엄마에게 없었다면 이 아름다운 장면도 없었을 것이다. 최은영 소설에서 재회는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희미하게 느끼면서도 저질러버린 과거의 실수를 오래 뒤돌아보고 오래 후회한 이들에게만 허락된다. 말했듯 그 실수는 저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거나, 심지어는 제 것이 아니기도 하다. <씬짜오, 씬짜오>에서 베트남 출신 투이네 식구들에게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고 무심히 내뱉은 것은 열세 살 여자아이인 ‘나’이고, 투이의 엄마 응웬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학살”(81쪽)을 거론하자 제 형도 그 전쟁에서 죽었다며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은 아빠이지만, 그날의 과오를 바로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은 엄마다. 그러니 세월이 흘러 세상을 떠난 엄마를 대신해 응웬을 찾아가는 게 ‘나’일지라도 마침내 어떻게든 만나지는 건 결코 ‘나’와 응웬만일 수 없다.

빨간 털모자를 쓴 작은 여자가 현관에서 나와 길 건너편에 섰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길가로 걸어갔다.
우리는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내내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고 나는 길을 건넜다.
나는 아줌마의 눈에서 숨길 수 없는 충격을 봤다. 서른셋의 나는 그때의 엄마와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엄마를 빼닮아 있었으니까.
아줌마의 눈에서 나는 나와 함께 여기에 서 있는 엄마를 본다.
응웬 씨, 반갑게 이름 부르며 저쪽 길로 건너가는 엄마의 모습을. 씬짜오, 씬짜오. 우리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한다.
다른 말은 모두 잊은 사람들처럼.

<씬짜오, 씬짜오> p. 92 ~ 93

그 소설의 처음과끝 : 최은영 저 <쇼코의 미소 /> -어떻게든, 다시, 우리-

흔히들 최은영의 소설을 ‘착한 소설’이라고 오해한다. 분명히 말하건대 오해다. 이것은 착한 소설이 아니라 강한 소설이다. 서사적으로는 다른 누군가와 헤어졌다 만나는 일이 반복되지만, 더 자주 반복되는 것은 인물의 내면에서 행해지는 과거의 저 자신과의 만남이다. 이미 지난 일은 무슨 수를 써도 돌이킬 수 없고, 후회나 자책은 지금의 제 삶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그저 잊어버리거나 좋게좋게 기억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다. 그런 우리인데, 그렇다는 걸 좀처럼 시원스레 인정하지도 못하는 게 또한 우리다. 그런 우리는 참 연약하지 않은가. 그러한 지금의 자신과 싸우고, 누군가를 상처 입힌 과거의 자신과 싸우고, 그러면서 끊임없이 저 자신을 갱신하는 저들을 좋게좋게 착하다고만 불러서는 안 될 일이다.

이렇게나 강한 인물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것을 고려하자면, 더 강한 누군가와 싸우고 이기고 정복하며 강해지는 남성적 서사들의 주인공만 여성으로 바꾼다고 그것이 단번에 페미닌한 서사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까지 함께 고려하자면, 이 소설들이야말로 지금 페미니즘 소설의 최전선이라 불러 마땅하리라는 말을 덧붙이도록 하자. 한 마디로 이 인물들은 지금 내가 떠올릴 수 있는 한국문학의 가장 강인한 ‘여성적 주체’들이다.

그 소설의 처음과끝 : 최은영 저 <쇼코의 미소 /> -어떻게든, 다시, 우리-


<쇼코의 미소> 이후의 단편들을 모은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을 내처 읽으면 당신도 이게 무슨 말인지 단번에 알게 될 것이다.

그러하니 저들의 마지막 재회는 일종의 선물 같은 것이겠다. 편집자가 밝힌바 책을 묶으며 작가는 <미카엘라>의 ‘나’의 엄마가 일하는 미용실을 발표 당시 다섯 평에서 일곱 평으로 고쳤다. 하루종일 미용실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다섯 평은 너무 가혹한 것 같다며.

최은영은 이렇게나 강한 사람이다. 최은영 소설에서 느껴지는 그 선물 같이 선한 온기는 바로 그 강함에서 온다. 저 자신에게 엄격한 이만이, 온전한 나 자신인 이만이 비로소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 그래서 우리는 그 마음이 혹여 전해지지 않을 때라도 슬프지만은 않다. 중요한 건 그 마음이 있다는 것이지 지금 어디에 있느냐가 아닐 테니까. “그저 그 마음 안에서, 따뜻했다” <미카엘라, 241쪽>고, 그렇게 적어본다.

소설의 끝

“집배원이 들어갈 수 없다는 그곳으로, 어떤 편지도 배달되지 않는다는 그곳으로,
말자는 지민에게 직접 전할 그 편지를 접어 가슴에 품었다.”

<쇼코의 미소>는 어떤 책?

2013년, <쇼코의 미소>로 등단한 최은영 작가는 동일한 작품으로 바로 다음해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나타났다.

이 책은 <쇼코의 미소>를 포함해 총 7편의 작품을 수록한 그녀의 첫 소설집으로,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진 두 인물이 만나 성장의 문턱을 통과해가는 과정을 그려낸 표제작 <쇼코의 미소>, 베트남전쟁으로 가까운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그저 바라봐야만 했던 응웬 아줌마와 '나'와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씬짜오, 씬짜오>, 프랑스의 한 수도원에서 케냐 출신의 청년 한지와 만나게 된 영주의 이야기를 담은 <한지와 영주> 등 별다른 기교 없이 담백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정통적인 소설의 방식을 통해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쇼코의 미소>는 출간 당시 문학계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서도 10만 부 돌파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쇼코의 미소>의 또 다른 문장들

 

새벽에 눈을 뜨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단단한 땅도 결국 흘러가는 맨틀 위에 불완전하게 떠 있는 판자 같은 것이니까. 그런 불확실함에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주제에, 그런 사람인 주제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쇼코의 미소」 p. 57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에는 누가 떠나고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씬짜오, 씬짜오」 p. 89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p. 115

침묵은 나의 헐벗은 마음을 정직하게 보게 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깊이 결합하여 분리되고 싶지 않은 마음, 잊고 싶은 마음, 잊고 싶지 않은 마음, 잊히고 싶은 마음,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 온전히 이해받으면서도 해부되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아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 무엇보다도 한지를 보고 싶다는 마음을. 「한지와 영주」 p. 174

여자는 옆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노인을 바라봤다. 이 노인은 얼마나 여러 번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렸을까. 여자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미카엘라」 p. 238

 

문학평론가 황현경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2012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평론 <반격! 김사과>로 등단 / 현재 명지대, 서울예대, 추계예대 등에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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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8-07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