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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지혜

내가 조선의 셰프다! ‘숙수’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내가 조선의 셰프다! ‘숙수’)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내가 조선의 셰프다! ‘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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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궁중 음식을 담당하는 관청인 사옹원이 있었다. 이곳에는 한 명의 주방장과 열두 명의 조리사가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조선을 대표하는 요리사, 숙수였다. 숙수는 뛰어난 조리 실력과 함께 강인한 체력까지 요하는 힘든 직업이었다. 하루 다섯 차례 올려지는 왕실의 밥상은 물론, 궁궐에서 연회라도 열리게 되는 날이면 수천 명의 음식을 조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내가 조선의 셰프다! ‘숙수’)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내가 조선의 셰프다! ‘숙수’)

궁중의 음식을 담당하는 사옹원, 그리고 조선의 요리사들

“전하, 곧 명나라에서 사신이 방문한다 하옵니다.”
“그래, 어서 사신을 맞을 준비를 하라.”

조선시대 인조 3년, 이에 따라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기 위한 영접도감이 꾸려졌다.

“사신 방문이 코 앞인데, 요리를 담당할 이를 아직 구하지 못해 걱정이오.”
“사옹원 소속의 천해남이라는 자가 그렇게 솜씨가 뛰어나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어떠시오?”
“사옹원이 워낙 바쁜 곳이라 과연 사람을 내어줄지, 내 전하께 직접 청해보겠소.”
“전하, 사신이 돌아갈 때까지만 사옹원 소속의 천해남을 영접도감에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하도록 해라.”

사옹원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한데, 숙수님이 가시면 여긴 어찌하옵니까?”
“허허, 그러게 말이요. 왕명이라 거절할 수도 없으니, 내가 없는 동안 수고 좀 해주시오.”

조선 조정에는 궁중음식을 담당하는 사옹원이란 관청이 있었다. 사옹원에는 한 명의 주방장과 열두 명의 조리사가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조선의 요리사 ‘숙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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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 실력은 물론 노련함과 강인한 체력을 요하는 고단한 직업, 숙수

숙수는 수백 명의 각색장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물을 끓이는 자, 생선을 굽는 자, 그릇 관리자 등 각자 제한적인 일만 담당했다. 숙수는 조리 실력이 뛰어나야 함은 물론, 수백 명의 각색장을 부리는 노련함과 강인한 체력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천해남은 사옹원 소속의 숙수로, 세자궁 수라간에 배정되어 세자의 음식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영접도감에서 천해남을 데려가려 하자 난리가 났던 것이다.

왕명에 의해 영접도감으로 파견되었던 천해남은 며칠 후 사옹원에 복귀했다.

“사신들 입맛이 무척 까다로워 며칠 동안 여러 음식을 하느라 고생했다네.”
“고생 많으셨습니다요. 그나저나 내일 오전 세자 저하께 어떤 음식을 올려야 될지요.”
“우선 재료를 확인해 봐야겠네. 빨리 소주방으로 갑시다.”

왕실에는 하루 다섯 번 밥상이 올라갔다. 수라상에 올라간 음식은 12첩 반상이 기준이었는데, 음식 배치도 정해져 있었다. 앞줄 왼쪽에 밥, 오른쪽에 국을 놓고, 그 옆으로 수저 두 벌을 놓았다. 뒷줄에는 토구와 각종 장류, 중앙에는 구이와 편육, 젓갈, 채소, 장아찌, 그 다음 줄에는 마른 찬과 조림, 전유어, 가장 뒷줄에는 김치 종류와 동치미 등을 놓았다. 궁중 요리는 가짓수도 많거니와 조리과정도 복잡한 고된 작업이었다.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내가 조선의 셰프다! ‘숙수’)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내가 조선의 셰프다! ‘숙수’)

나랏님의 속이 편안해야 나라와 백성들도 편안해진다

“모두들 수고 많았네, 내일부터는 한 달 후 궁에서 있을 연회를 준비할 것이요. 6천 명 분을 만들어야 하니, 단단히 각오하시게나.”

조선 궁궐에서 연회가 열리면 숙수들은 수천 명의 음식을 조리해야 했다. 갑자기 야식을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들은 24시간 대기조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백성들은 궁중의 요리사가 되는 것을 기피했다. 급여도 적어 숙수들이 도망가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일정 기간 부역을 면하게 해주는 정책을 실시하기도 했다.

“며칠 밤을 새며 음식을 만든 적이 있었을 정도로 일이 참 고되었지. 허나, 나랏님의 속이 편안해야 나라가 편안해지고, 백성들도 편안해질 것이 아닌가.”

구한말, 왕조의 몰락으로 숙수는 사라졌지만 숙수 출신의 요리사가 요리집을 운영하면서 궁중요리가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그 명맥이 지금의 한정식집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선의 셰프, 숙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본원의 각 색장(色掌)은...... 소임이 매우 중요하고 꼭 필요합니다. 여염(閭閻) 간에 한가한 숙수가 매우 많은데 어찌 궐내 하인을 옮겨갈 수 있습니까. 천해남과 다른 각 색장 및 본원의 등록(謄錄)에 있는 숙수 등을 절대로 침범하여 잡아가지 않도록 승전을 받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인조 3년 을축(1625)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는 마치 요리 광풍이라도 불어닥친 듯 각종 요리 프로그램과 쿠킹을 가미한 예능들이 미디어 콘텐츠로 대세를 이루고 있다. 소위 집밥보다 외식의 빈도가 급증하면서 맛있는 외식을 책임져줄 셰프의 존재 또한 사회적 지위와 함께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에 반해 왕의 음식과 건강을 담당하며, 밤샘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조선의 셰프, 숙수에 대한 당시의 처우는 실로 열악했다. 오늘날 우리의 식탁에 올려지는 수많은 음식들은 어쩌면 그 시절 이름 없이 살다간 이들의 열정과 노력의 결과물일 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이것이 곧 우리의 건강과 행복에 직결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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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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