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지혜

공공의 적을 물리친 사냥꾼 ‘산척’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공공의 적을 물리친 사냥꾼 산척)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공공의 적을 물리친 사냥꾼 산척)
  • 이동통신망을 이용하여 영상을 보시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네트워크 상황에 따라 재생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동영상 재생이 안 될 경우 FAQ > 멀티미디어 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원나라가 호랑이 사냥터라고 불렀을 정도로 한반도는 아주 오래 전부터 호랑이의 서식지로 유명했다.
이후 조선시대 때까지도 호랑이가 곳곳에서 수시로 출몰함에 따라 조선 전역은 두려움에 빠져있었다.
이때, 조선의 산과 들을 다니면서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공공의 적, 호랑이를 소탕한 사람들이 바로 ‘산척’이라 불리는 직업 사냥꾼들이었다.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공공의 적을 물리친 사냥꾼 산척)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공공의 적을 물리친 사냥꾼 산척)

조선의 산과 들을 다니며 야생동물을 잡았던 직업 사냥꾼

경기도 양주의 어느 마을, 사내 둘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휴, 엊그제 박가네 아들이 새벽녘에 돌아오다가 봉변을 당했다지? 쯧쯧.”
“밤낮없이 출몰하니 마음 놓고 밭일도 못 하고. 우리도 당하기 전에 빨리 집으로 돌아갑시다.”

사내들은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떴고, 마을은 인기척 하나 없이 스산한 기운만 감돌았다.

“전하, 양주에서 한 달 동안 30명이나 죽었다고 하옵니다. 며칠 전에는 청량동에도 출몰했다고 하니 이제 궁궐 안도 위험하옵니다.”

조선 전역을 두려움에 빠뜨렸던 것의 정체는 바로 호랑이. 원나라 황실에서 고려를 호랑이 사냥터라고 부르며 호랑이 사냥꾼을 두 번이나 파견했을 정도로 한반도는 오래 전부터 호랑이의 서식지였다.

“흠, 각 지역에 산척을 모아 착호인 부대를 창설하도록 하라.”

산척이란 조선 시대 직업 사냥꾼을 말한다. 조선의 산과 들에 야생동물들이 많았기에 이들을 사냥하는 산척의 수가 1만 명에 이르렀다. 산척은 기골이 장대하고 말을 잘 타며, 화살을 잘 쏘아 사냥에 능했다. 조정에서 호랑이를 소탕하고자 이들 산척을 모아 착호인 부대를 만든 것이다.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공공의 적을 물리친 사냥꾼 산척)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공공의 적을 물리친 사냥꾼 산척)

여럿이 힘을 모아 공공의 적 호랑이를 소탕한 산척들

이른 새벽 산척들은 창과 목궁을 쥐고 호랑이가 나타나는 길목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어제 놓아둔 함기와 궁노는 확인해 보았는가?”
“에휴, 오면서 확인했는데 허탕이야.”

함기는 나무 우리에 미끼를 넣어 사냥감을 유인하는 일종의 덫이었고, 궁노는 장치를 건드리면 쇠뇌가 자동으로 발사되는 사냥기구였다.

“놈이 나타났소!”

수풀 속에서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산척들은 활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화살 하나가 명중했지만 호랑이는 개의치 않고 산척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두 발의 화살이 연이어 몸에 박히자 비로소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지금이오! 창으로 찌르시오!”

근처에 숨어 있던 산척들 몇몇이 창으로 찌르자 결국 호랑이는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공공의 적을 물리친 사냥꾼 산척)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공공의 적을 물리친 사냥꾼 산척)

호랑이를 잡은 자에게 주어진 막대한 포상과 혜택

산척들은 쓰러진 호랑이 주위로 모여들어 박혀있는 화살을 확인했다.

“하하하, 범을 맞힌 첫 번째와 세 번째 화살은 내 것이오.”
“두 번째 화살은 내 것이외다. 첫 번째로 맞힐 수 있었는데 아깝군.”
“보아하니 중호는 되겠네. 한동안 먹고 살 걱정은 없겠소.”


호랑이를 잡은 자에게는 막대한 포상이 주어졌는데, 호랑이의 크기 및 활을 쏜 순서에 따라 포상 규모가 달라졌다. 대호를 처음 쏜 자에게는 면포 6필이 지급되었는데, 이는 당시 성인 남성의 2년치 노동에 해당하는 대가였다. 게다가 잡은 호랑이는 포획자의 몫이었기에 가죽을 팔아 큰 돈을 벌 수도 있었다.

“옆 고을에도 범이 출몰했다 하니 이제 그만 가볼까?”
“암 그래야지. 또 전쟁터에 불려갈지 모르니 부지런히 벌어 두어야지.”

고전의 지혜 : 조선 직업인의 하루 (공공의 적을 물리친 사냥꾼 산척)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도 크게 활약한 숨은 영웅들

조정에서는 산척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전란이 발생하면 이들로 군을 조직하곤 했다. 산척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큰 활약을 펼쳤으며, 조선 말에는 프랑스와 미국군대와 용맹하게 맞서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 시대 조선인들의 총기 소유가 금지되고, 맹수를 사냥하는 해수구제작전의 영향으로 조선의 호랑이는 멸종되면서 자연스럽게 산척의 존재 또한 사라졌다.

“출신이 천하다는 이유로, 포상만 밝힌다는 이유로 우리 산척을 무시하는 자들도 많았소. 하지만 우리는 늘 목숨을 걸고, 이 나라 이 백성을 지켰소.”

조선의 직업 사냥꾼, 산척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단양 군수(丹陽郡守) 성진묵(成進�)의 첩정에 “본군 서면(西面)에 사는 어보(御保) 박득손(朴得孫)의 아들 25세 박정운(朴丁云)이 이달 초3일 밤에 호환을 당하여 사망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호(惡虎)가 제멋대로 다니며 인명(人命)을 해쳤다니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포수(砲手)를 많이 징발하고 또 함정과 노(弩)를 설치하여 반드시 악호를 잡아서 백성들에게 피해가 없게 하라고 각 해당 진(鎭)의 토포사(討捕使)와 지방관에게 각별히 엄히 신칙하였습니다. 연유를 치계합니다.” - 충청병영계록(忠淸兵營啓錄) (순조 20년(1820))

평상시에는 맹수를 사냥하는 착호인으로, 전시에는 용맹한 전사로 활약을 했던 조선의 사냥꾼 산척. 그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도 참전하여 큰 역할을 하였으며, 백성들의 가장 큰 적이었던 호랑이를 물리쳐준 주역이기도 했다. 그들은 단순히 호랑이 사냥꾼이 아니라 조선의 이름 없는 영웅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분단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 군은 얼마나 국가와 국민을 위한 조직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여기저기서 군 비리 문제가 터져 나오는 요즘,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진정한 영웅의 부재가 아쉽기만 하다. 조선시대의 산척들이 그랬듯, 공명심과 사명감을 가진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하루 빨리 거듭나길 바란다.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 무단복제와 수정, 캡처 후 배포 도용을 절대 금합니다.
작성일
2018-08-07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