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대 영화

봉준호의 설국열차

[설국열차] 봉준호 영화가 ’영화’ 인 세가지 이유
봉준호는 ‘영화 감독’이다.
이 지극히 당연하고 뻔한‘정의’가 새삼스러운 것은 영화《설국열차》 때문이다. 그렇다. 봉준호는 소설가가 아니다. 만화가도 아니다. 그렇다고 기자는 더 더욱 아니다. 물론 사회운동가도 아니다. 이 말을 뒤집어 보자. 소설가가 아니기에 봉준호는 이야기를 억지로 만들 이유가 없다. 만화가가 아니기에 만화를 그리지 않아도 된다. 기자가 아니기에 ‘사실(fact)’에만 충실할 이유가 없다. 사회운동가가 아니기에 거리에 뛰어나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된다.
봉준호는 ‘영화’를 만들면 된다. 그것이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연쇄살인범 《살인의 추억》의 이야기든, 어처구니없게도 한강에 괴물이 나타나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이야기《괴물》든, 엄마의 끔찍한 자식 애착이 가져온 비극《마더》이든, 미래의 일이라서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 모든 생명체가 죽은 지구에서 유일한 삶의 공간이 된 기차가 멈추지 않고 달리는 황당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설국열차》도 결국은 영화니까. 때문에 봉준호 감독에게는 소설도, 만화도, 희곡도, 사건의 기록도 자신의 것이 아니다.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되거나, 오롯이 존중해야 하는 ‘교과서’도, 성역도 아니다.
그저 영화를 위한 아이디어이거나, 아니면 재료나 참고자료일 뿐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영화다운 첫 번째 이유다.
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직접 쓰는 상상의 시나리오든, 만화나 희곡이든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얽매이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히 장르변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얘기다.
왼쪽 이미지 : 만화 설국열차 표지, 오른쪽 이미지 : 영화 설국열차 포스터
“이 영화는 원작에 충실했다”는 감독의 말보다 더 한심하고, 스스로 ‘바보’임을 드러내는 고백이 어디 있을까. 원작의 명성이, 작품성이 뛰어날수록 감독들은 곧잘 그런 말을 한다. 마치 그것이 원작에 대한 ‘오마쥬’라도 되는 양. 이럴 때, 영화의 모습은 뻔하다.
맞지도 않은 옷을 입고 원작을 따라 가느라 헉헉대고 비틀거리다 끝나거나, 원작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쓰러지거나, 그 무게를 덜어내고는 겨우 흉내만 낸 헐거운 영화제목만 남기거나, 사회학도 출신인 봉준호는 적어도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다. 그의 영화는 원작이 무엇이든, 그것이 어디에 있든 현재로 끌고 와서는 자기만의 상상과 방식으로 지금의 세상을 이야기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원작에 갇히거나, 어떤 이야기를 하든 허탈한 허구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이자 봉준호 영화가 영화다운 두 번째 이유다.
봉준호 영화는 결국 세상, 그것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과 세상을 보는 ‘창(窓)’이다. 그 창을 통해 관객들이 보는 풍경들은 상상이면서도 현실이고, 미래이면서도 현재이고, 타자이면서도 자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미처 자신이 보지 못한 ‘세상’을 확인하고, 혹시라도 자신이 놓친 ‘세상’이 없나 다시 한 번 영화를 본다.
영화의 한장면 : 애초에부터 자리는 정해져있어! 나는 애초에부터 앞좌석. 당신네들은 꼬리칸! 당신들의 위치를 잘 알으라고! 당신들 자리나 지켜! 크로놀! 문 열지마 문 잠궈!!
그리고는 감독이 숨겨놓은 포착한 섬뜩하고, 날카로운 ‘세상’에 새삼 놀라곤 한다. 조금만 세월이 흘러도 낡은 유행처럼 보이는 다른 영화와 달리, 봉준호의 영화는 언제든 현재성을 가지고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이를 위해 봉준호 감독이 추구하는 것은 ‘디테일’이다. ‘봉테일’이란 별명이 그냥 붙여진 것이 아니다. 그의 디테일은 사건, 구성, 인물, 대사는 물론 작은 역의 배우에서 소품 하나하나에까지 미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영화인 세 번째 이유다.
그것에 관한 일화 하나. 《살인의 추억》을 준비하던 그가 찾아왔다. 기자(당시 필자)에게 자신의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서이거니 했다. 그런데 조심스럽게 출연을 부탁했다. 뜬금없었다. 연기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에게, 엑스트라도 아닌 단역이지만 영화에서 빠지면 안 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최 박사 역을.
영화의 한장면 : 니팔 내팔보다 짧게 만들거야!
그의 놀라운 ‘디테일’은 그 다음에서 확인됐다.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큼지막한 가방에서 엄청난 양의 서류를 꺼냈다.
모두 ‘화성연쇄살인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당시 수사기록, 신문기사, 그리고 관련인물을 자신이 직접 인터뷰한 것들도 있었다. 그런 그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기자 같다. 기자 해라”라고. 《살인의 추억》이 지금도 왜 살아있는 영화로 남아있는지 이 에피소드 하나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에게 디테일은 영화적 설득력이고, 생명력이다. 원작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도, 탄탄 구성, 영화의 밀도도 결국은 디테일이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관객들은 처음에는 모른다. 영화 중간에 열차 맨 뒤 꼬리 칸에서 폭동을 일으킨 주인공 커티스(크리스 에반스)가 노인에게 자기처럼“ 두 팔이 있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봉준호 감독은 치밀하게 시간을 계산해 나중에 그 의미를 반드시, 그것도 가장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열차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의 성냥도 마찬가지다. 의도적으로 보여준 하나 남은 성냥개비를 봉준호 감독은 그냥 버리지 않고, 열차 문을 폭파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쓰기 위해 아껴두었다. 작은 눈발 하나, 열차 유리창 너머 보이는 추락한 비행기 하나도 그에게는 우연이 없다. 그와 함께 작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지나가는 엑스트라도 그냥 허전한 공간을 메우는 구색이 아님을 안다.
영화의 한장면
아마 십중팔구는 원작인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를 보면 더욱 봉준호의 영화가 대단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크 로브와 뱅자맹 르그랑의 글, 장마르크 로세트의 그림이 형편없어서가 아니다. 만화가 가진 이질감 때문도 아니다. 적어도 봉준호 영화는“결코 멈추지 않은 열차가 영원한 겨울의 광활한 백색 세상을 지구 이편에서 저편 끝까지 가로 지른다.

바로 1001량의 설국열차다”란 설정으로 시작해 중간중간 “그들은 재앙이 미치지 않은 곳을 찾아 탈출했지만 언제나 눈과 추위가 앞서갔다”, “거룩한 기관차는 무를 향해 맹목적으로 돌진하고 열차가 지나간 자리에는 폭력과 질병이 맹위를 떨친다” 같은 인간사회에 대한 풍자와 동양적 사상(주역)을 바탕으로 한 진실과 거짓에 대한 철학적 탐색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이다.

3편(탈주자, 선발대, 횡단)에서 처음 1편만, 그것도 인물부터 다르게 시작했지만 만화 《설국열차》가 없었다면, 아무리 봉테일이라 하더라도 영화 《설국열차》를 달리게 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마치 소설가 김훈이 말한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장대를 버리고 힘차게 날아오르듯 그것을 발판으로 봉준호 감독이 《설국열차》에 세계인들을 태우고 달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달리는‘설국열차’는 미래이지만, 그 미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결코 다르지 않으며, 제한된 공간의 열차 역시 우리가 살고 있는 차별과 폭력과 갈등과 분열로 얼룩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지구촌과 하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설국열차》는 귀신의 세상이 인간 세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닮았고, 음습하고 비장한 분위기와 날카로운 풍자 속에서도 여자 총리 같은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유머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은 팀 버튼 감독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연상시킨다. 그러면서도 현실의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고 늘 도전하고,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상상적 리얼리스트의 세상보기. 봉준호 감독의 영화다.
영화다운 영화란 현실은 아니지만, 과거의 이야기든 미래의 이야기든 생생한 디테일로 그것이 마치 지금 내가 사는 세상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닐까. 이런 영화에 원작이 있느냐 없느냐, 원작과 얼마나 다르냐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이대현(영화평론가)『15세 소년, 영화를 만나다』 『열일곱, 영화로 세상을 보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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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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