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으로 다시 한번 주목받는 곳이 있다.
서대문에 자리한 경교장이 바로 그곳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쓰였고,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한 생생한 현장이기도 한 경교장은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해방 후 정치 활동에 대한 편린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평생 온 몸을 바쳤던 독립운동부터 남과 북으로 분단된 나라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한 김구 선생의 활동과 삶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 한 켠이 숙연해진다.
한국 근현대사에 길이 남을 상징적 공간, 경교장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에서 광화문 방향 언덕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보이는 강북삼성병원 내에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장소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경교장이다. 2층 규모의 고풍스러운 석조건물은 1945년부터 1949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쓰인 곳이자 백범 김구 선생이 안두희가 쏜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한 역사의 현장이다. 어떻게 이런 건물이 병원과 함께 위치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경교장은 현대식 병원 건물과는 다소 부조화를 이루는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본래 경교장은 해방 후 임시정부 요인들이 돌아왔을 당시 금광 개발로 부를 이룬 친일 기업인 최창학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친다는 의미로 본인의 별장으로 사용하던 이곳을 임시정부 요인들에게 제공했다고 한다. 원래 명칭은 죽첨장(竹添莊)이었으나 일본식 색채가 강한 이름이라 하여 서대문 근처의 다리 이름을 따 경교장(京橋莊)으로 바꾸었다.
백범이 암살되자 최창학은 유족 측에 돈을 요구했고, 이를 거절한 유족은 경교장을 다시 최창학에게 반납했다. 한국전쟁 이후 최창학에 의해 처분된 경교장 건물은 여러 번 주인이 바뀌다가 1967년 삼성재단에서 매입해 건물 뒤편에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본관을 붙여 건축하면서 오랜 기간 병원 현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된 것은 2011년 3월부터 시작된 복원공사 후 2013년 3월 1일 개관하면서부터다.
주 소 |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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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의 | 02-735-2038 |
이용시간 | 매주 화요일~일요일 09:00~18: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무) |
입 장 료 | 무료 |
전면 분할의 비례가 아름다운 고전주의풍 건축물
경교장은 경성공업전문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김세연(1897~1975)이 설계한 것으로, 1939년 고전주의 풍으로 완공됐다. 좌우대칭의 지상 2층, 지하 1층, 연건평 872.7m2 규모의 이 건물은 단아한 2층 양관으로 전면 분할의 비례가 아름답다. 1층의 좌우창을 원형으로 돌출시키고, 그 상부를 의장의 중심체로 하였다. 현관 2층부에는 6개의 원주를 사용하여 5개의 들임 아치(Arch) 창을 냈고, 좌우는 완전 대칭의 형태를 띠고 있다. 당시에는 보기 드물게 정면 중앙 1층에 승·하차 시설을 갖춘 현관을 설치했으며, 당구실과 이발실까지 둔 초호화 건물이었다고 한다.
경교장이 현재처럼 일반인에게 공개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김구 선생이 서거한 이후 경교장은 중화민국 대사관저, 미군 특수부대 주둔지, 월남 대사관 등 실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후 1967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이 매입해 병원건물로 사용하면서 헐릴 뻔 한 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였던 경교장을 복원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고, 1990년대에는 시민단체의 문화재 지정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이에 힘입어 서울시가 강북삼성병원과 오랜 시간 협의한 끝에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대대적인 복원공사가 이뤄질 수 있었다.
공사는 1949년 백범 김구 서거 이후 오랜 기간 대사관 및 병원시설로 사용되면서 변형된 내부 평면을 철거하고, 이 과정에서 옛 모습이 잘 남아있는 부분은 최대한 원형을 살려 진행했다. 그렇지 않은 부분은 <조선과 건축(朝鮮と建築)>(1938년 8월호)에 수록되어 있는 경교장 도면을 근거로 하여 진행했다.
경교장과 임시정부가 함께해온 역사와 마주하는 시간
지하는 당시에 보일러실과 부엌으로 사용되었다. 보일러실 북측에 문이 있었는데, 1948년 4월 19일 김구 선생이 남북협상을 하기 위해 평양으로 가려 할 때, 이를 만류하는 사람들을 피해 정문이 아닌 지하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고 전해진다.
현재 지하 공간은 경교장과 임시정부의 역사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경교장의 건립부터 오늘날 복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제1전시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을 담은 제2전시실,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을 소개한 제3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이 공간에서는 특히 김구 선생의 유품들이 눈길을 끈다. 총탄을 맞은 김구 선생이 입고 있었던 피 묻은 옷과 바지는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는 생생한 증거로 남아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서거 당일 조각가가 뜬 데드 마스크(복제품)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숱한 변화 속에서도 당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1층
1층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오리엔테이션실이 자리하고 있다. 처음 방문한 사람은 이곳에서 경교장과 백범 김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등에 대한 영상을 시청한 후 응접실, 임시정부 선전부 활동 공간, 귀빈식당을 차례로 돌아보면 된다. 깔끔하게 정리된 1층 응접실은 조국으로 돌아온 임시정부 요인들의 공식적인 회의 공간이자 백범이 국내외 주요 인사들을 만났던 공간이다.
경교장의 1층 공간은 1967년 고려병원 시설로 개조되면서 많은 변형이 일어났다. 귀빈 응접실을 비롯해 복도, 화장실, 욕실과 이발실은 하나로 통합되어 원무과로 사용되었고, 북측의 썬룸은 홀과 통합돼 북측에 연접하여 지은 또 다른 병원 건물로 가는 통로가 되었다. 그나마 선전부 사무실과 식당, 계단실은 현재까지 부분적으로나마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날, 총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슬픈 공간을 목도하다
당시 2층은 주거 및 집무실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2층으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은 동측과 북측 2개소에 있었으나 병원 시설로 개조되면서 북측 계단은 철거되었고 현재는 동측 계단만 남아 있다. 비좁은 계단을 통해 2층에 오르면 임시정부 요인들과 김구 선생의 숙소가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2층에도 응접실이 있는데, 이곳은 임시정부가 환국한 이후 여운형, 안재홍, 송진우, 허헌 등 국내 4당 주요 당수와의 회담과 1945년 12월 10일 통일정부 수립방법을 논의한 제4차 국무위원회가 열린 장소로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다.
복도 끝에는 김구 선생이 집무실로 사용한 조그마한 거실이 있다. 거실 벽면 내부에는 선생의 흉상이 세워져 있고, 창가 쪽에는 선생이 사용한 책상이 그대로 놓여 있다. 안두희에게 총탄을 맞은 곳도 바로 이곳이다. 김구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창가에서 책을 읽던 중 대한민국 육군 소위이자 주한 미군방첩대(CIC) 요원인 안두희에게 세 발의 총격을 맞고 서거했다. 이곳에는 암살범 안두희가 총을 쏠 때 선생이 서 있던 위치가 표시돼 있고, 총알이 관통했던 유리창 모형도 재현돼 있다. 선명한 두 발의 총탄 자국만이 그날의 비극을 증언하고 있다.
서대문형무소(사적 제325호)는 조국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민주화운동가들이수감되어 옥고를 치르고, 고난을 당했던 역사적 현장이다. 3.1운동 직후에는 유관순 열사가 투옥되어 지하 옥사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1908년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1987년까지 약 80년 동안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된 비극의 장소다. 이에 서대문에서는 보안과 청사와 옥사, 사형장, 망루, 담장 등 일제강점기 건물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1998년 11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개관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옥사 7개동, 감시탑, 고문실 등이 복원돼 있으며, 벽관과 독방 등의 옥중생활을 방문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다.
< 사진 출처: 서대문 구청 홈페이지 >
외관부터 예사롭지 않은 한옥집의 대표 메뉴는 김치찜과 김치찌개다. 잘 익어 새콤한 맛을 내는 묵은지와 부드러운 돼지고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집의 ‘김치찜’을 먹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손님이 몰려든다. 포기 채 나오는 김치와 큼직한 돼지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밥 위에 얹어 먹으면 그야말로 밥도둑이 따로 없다. 김치의 진한 풍미와 고소한 돼지고기가 입안 가득 즐거움을 전하고, 오랜 시간 약한 불에 졸여낸 국물은 진하면서도 깊다. 부드러운 계란말이를 주문해 김치찜과 함께 먹는 것도 조화롭고 좋다.
백범 김구 선생의 삶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
역사학자 도진순 교수가 수년간의 수정 집필과 역사적 검증, 학술적인 보완을 거쳐 펴낸 대중용 백범일지다. 문장도 현대어로 교열해 쉽게 읽을 수 있을 수 있도록 만들었고, 원문의 오류를 바로잡았다는 점도 강점이다. 원문의 착오와 시기의 혼선을 바로잡아 질서정연하게 다시 쓰고, 100컷이 넘는 사진과 지도를 삽입해 백범일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꾸몄다. 또한, 백범이 일지에 적었던 장소와 지명들의 정확한 명칭과 관련 인물, 유적, 유물 자료들을 함께 담았다.
조국의 독립과 민족 통일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백범의 생애와 신념을 백범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책이자 김구 선생의 호인 ‘백범(白凡)’의 뜻이 ‘평범한 백성’이라는 데 착안해 ‘전문 연구가’가 아닌 ‘보통 사람’의 시선으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Q&A 형식으로 질문 뒤에 나오는 답변은 저자가 직접 쓴 것이지만, 3년간 매일 같이 효창공원 내 백범 묘소와 백범 좌상을 마주하며 김구의 삶과 사상, 시대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공을 들인 저자의 노력 덕분에 마치 김구 선생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저자가 시대 상황 등에 대한 추가 설명을 더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김구의 인간적인 모습도 함께 조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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