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자연과 역사, 문화가 어우러진 경기도 여주에는
세종대왕과 효종대왕이 영면해 있는 영릉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능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면 복닥복닥한 삶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고요한 풍경이 펼쳐질 뿐이다.
그리고 세종과 효종의 능 사이에는 오래된 숲길이 이어진다.
경건하고 엄숙하며, 푸르러서 더 아름다운 숲길.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걱정이 사라진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숲의 푸르름이 유달리 빛났던 날, 그곳 ‘왕의 숲길’을 찾았다.
세종과 효종, 조선의 두 왕이 잠든 곳으로 향하다
여주 능서면 왕대리에 위치한 두 개의 능, 영릉(英陵)과 영릉(寧陵). 영릉(英陵)은 세종대왕의 능이고 영릉(寧陵)은 효종대왕의 능이다. 두 영릉은 각각 입구가 다르면서 야트막한 숲길로 이어져 있다. 어느 쪽에서 들어가든 숲길을 따라 두 영릉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지만, 현재는 세종대왕릉 일부 구역이 정비 공사 중이라 관람을 제한하고 있어 효종대왕릉에서만 출발이 가능하다(2018년 12월까지 공사 예정).
흔히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하여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물을 내려다보는 지세를 갖춘 터가 명당이라 하는데, 이곳은 조선의 두 왕을 모신 자리니 명당 중의 명당일 터. 왕릉이 자리하게 되자 당시의 이곳 지명이었던 여흥군은 인접해 있던 천령현(川寧縣)과 합쳐져 현재의 이름 ‘여주’로 승격되었다고 한다. 효종대왕릉으로 향하는 길은 세상이 온통 초록빛으로 물든 듯한 모습을 자랑했다. 키 크고 늠름한 나무그늘 아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이 되는, 홀로 걷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주 소 |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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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화 | 031-880-4700 |
이용시간 | 2월~5월, 9월~10월 09:00-18:00 / 6월~8월 09:00-18:30 / 11~1월 09:00-17:30 (월요일 휴무) |
입 장 료 | 개인 500원 / 단체 400원 (단, 2018년 12월 31일까지는 무료 개방) |
주 소 |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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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화 | 031-885-3123 |
이용시간 | 세종대왕릉과 동일 |
입 장 료 | 세종대왕릉과 동일 |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한없이 고즈넉한 아름다움
소나무 숲이 잔잔히 이어지는 효종대왕릉 일대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듯 초록 기운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입구를 지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효종대왕릉 재실은 방문자에게 고즈넉함을 선사한다. 재실은 제관의 휴식, 제수 장만, 제기 보관 등 제사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 건물인데, 이곳 효종대왕릉 재실은 유난히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짜임새가 느껴지는 구조를 갖추고 있어 산책자의 마음을 끈다.
재실 입구를 지나 중문에 들어서면 규모가 그리 크지 않으면서 아늑한 느낌의 마당이 펼쳐진다. 이어서 마당 한 켠에 깊게 뿌리 박힌 커다란 느티나무와 독특한 결 무늬를 가진 향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 생물학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천연기념물 제459호로 지정된 회양목은 전국에 있는 회양목 중 가장 키가 큰 보기 드문 노거수라고 한다. 조선왕릉 대부분의 재실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원형이 훼손된 경우가 많지만, 이곳은 조선왕릉 재실의 기본 형태가 아직까지 잘 남아 있을 뿐 아니라 공간구성과 배치가 뛰어나 현재 보물 제1532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나의 언덕 위에 나란히 자리한 왕과 왕비의 무덤
재실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효종대왕릉이 시야에 들어온다. 정자각을 두고 금천교를 지나 왕릉의 주인이 있는 세계로 발을 디딘다. 능이 있는 곳까지 오르는 길은 파란 하늘과 초록의 대지가 조화를 이뤄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 풍경에 매료되어 감탄사가 절로 쏟아진다. 효종대왕릉은 왕과 왕비의 능을 합장하지 않고 하나의 언덕에 위아래로 봉분을 배치한 동원상하릉 양식을 취하고 있다. 즉, 언덕 위쪽에는 효종대왕이, 아래에는 왕비가 있는 것이다.
효종은 고단한 역사를 살았던 임금이다. 인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효종은 병자호란 이후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가서 8년을 살았다. 귀국 후 소현세자가 갑자기 사망하자 조선의 제17대 왕이 됐다. 비록 준비된 왕은 아니었지만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해 화폐개혁을 하는 등 전후 개혁과 안정의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그 역시 재위 10년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효종대왕릉은 좌우 봉분 능침 주변에 석양과 석호 두 쌍씩 여덟 마리를 배치해 능을 수호하는 형상을 띠고 있다. 봉문 앞 낮은 단에 문인석 한 쌍을, 가장 아랫단에는 무인석 한 쌍을 세우고 문무인석 뒤에 석마를 두었다. 효종대왕릉에서 인선왕후의 능을 바라보면 무덤을 지키는 석상과 봉분이 겹쳐 보이고 그 아래 정자각이 내려다보인다.
울창한 소나무들이 우거진 비밀의 숲을 만나다
효종대왕릉에서 세종대왕릉으로 가기 위해서는 소나무 숲이 울창한 ‘왕의 숲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688년 숙종, 1730년 영조, 1779년 정조가 직접 행차해 효종대왕 영릉을 먼저 참배한 후 이 길을 이용해 세종대왕 영릉을 참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숲길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사방이 청량감으로 가득하다. 계절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수많은 나무들이 선사하는 초록 기운에 뜻하지 않은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다. 저마다 모양이 다른 나무들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크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오른 키다리 나무가 있는가 하면, 왕릉을 향해 고개를 숙인 형상의 나무, 마치 춤을 추듯 구불구불한 나무까지 모양도 멋도 제 각각이다.
비포장된 숲길 역시 구불구불 아름답게 이어진다. 수시로 작은 언덕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산길 치고는 폭이 넓고 정비도 잘 되어있어 걷기에도 무리가 없고 완만한 산책 코스로 제격이다. 이 길은 일년 중 5월부터 10월까지만 일반에 개방한다고 하니 알아두자. 또 하나, 길 초입에는 '멧돼지 출몰지역'이라는 경고 문구가 붙어있는데, 사람이 드문 길을 홀로 걷다 보면 그 문구가 한번씩 신경이 쓰일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거 리 | 약 700미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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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시간 | 도보로 약 15분 |
개방시기 | 5월 ~ 10월 09:00-17:00 |
조선의 국운을 100년 더 연장한 천하의 명당
왕의 숲길로 대략 20여 분 정도를 천천히 걸어 세종대왕릉에 도착했다. 세계유네스코에 등재된 세종대왕릉의 과거 원형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현재 대대적인 복원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올해 말까지는 세종대왕릉의 정자각, 수라간, 수복방, 신도비 등을 관람할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세종대왕릉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1397~1450)과 소헌왕후(1395~1446)의 능으로, 하나의 봉분 아래 석실 두 개를 붙여 왕과 왕비를 함께 안치한 조선왕릉 최초의 부부 합장릉이다. 세종대왕릉 역시 효종대왕릉과 마찬가지로 능침 가까이까지 개방을 허락하고 있다. 세종대왕릉은 효종대왕릉에 비해 조금은 단출한 모습이다. 능 주위에는 능을 지키는 문인석 2기와 무인석 2기가 놓여져 있고, 석양과 석호들이 능을 둘러싸고 있다. 무인석은 말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 위엄이 느껴지며, 하나의 봉분에 두 개의 혼유석이 놓여있어 이곳이 합장릉임을 말해준다.
앞으로 내다보면 북성산이 바라다 보이고, 뒤로는 칭성산을 두고 있는 이곳은 원래 민간인 무덤이 있던 자리였는데, 예종 원년(1469)에 헌릉(서울시 서초구 내곡동)에 있던 세종대왕릉을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 당시 지관과 풍수지리가들 사이에서는 영릉을 여주로 옮긴 이후 조선의 국운이 100년이나 더 연장되었다는 의미의 ‘영릉가백년’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이곳을 천하의 명당으로 꼽았다고 전해진다.
2017년 5월 정식 개관한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은 세종대왕릉 주차장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세종대왕과 효종대왕의 생애부터 주요 업적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에 대한 전시까지 다양한 볼거리를 관람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종대왕이 후손들에게 남긴 훌륭한 업적과 그 업적의 바탕이 된 애민정신을 느껴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이밖에도 조선시대 왕과 공주가 쓴 한글편지, 인선왕후의 어보, 효종 때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의 이야기도 전시되어 있어 공간 전체가 흥미로운 볼거리, 읽을거리로 가득하다.
세종대왕 관광순환버스: 2016년 개통된 경강선 여주역에 내리면 이곳에서 세종대왕 관광순환버스를 만날 수 있다. 이 버스를 이용하면 신륵사와 세종대왕릉 등의 주요 유적지와 박물관, 수목원 등은 물론 막국수촌과 여주 5일장, 여주아울렛 등 여주를 대표하는 먹거리와 즐길 거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또, 세종대왕 관광순환버스는 현재 가 노선과 나 노선 두 가지로 운행되고 있는데, 세종대왕릉과 신륵사, 한글시장(5일장)에서는 서로 환승이 가능해 양 노선을 교차 탑승할 수도 있으니 꼭 알아두자.
< 사진 출처: 여주시청 >
‘죽은 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싹을 틔운다’는 뜻의 목아박물관은 1993년 개관했다. 설립자 박찬수 관장은 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으로, 박물관에서는 그의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전통 목공예 작품과 불교미술이 집약되어 있다. 행복의 문을 통과해 이어지는 야외조각공원에서는 마치 천년 고찰을 찾은 듯 미륵삼존대불, 백의관음, 3층 석탑 등 40여 점에 이르는 불교 조각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단군신화와 관련된 조각상을 모은 한얼울늘집, 사천왕상이 있는 마음의 문 등 불교 이전 민속신앙에서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종교의 변천사를 약식으로나마 접할 수 있다.
미식가의 별미는 뭐니 뭐니 해도 매운 갈비찜. 야채와 감자 등을 곁들여 끓여내는데, 보글보글 끓는 국물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오감이 자극된다. 매운 갈비찜을 주문하면 이천 쌀로 지은 가마솥밥이 나오는데, 윤기가 흐르는 이 집의 밥맛은 그야말로 꿀맛! 가마솥에 물을 넣고 불려두면 식사 후 구수한 숭늉을 맛볼 수 있다. 국물이 자작한 매콤달콤 갈비찜은 국물에 밥을 비벼 먹어도 맛있고, 기본 찬으로 나오는 나물과 절임 등도 입맛을 돋운다. 세종대왕릉과는 조금 거리가 있으므로 여주여행 루트를 짤 때 동선에 유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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