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것으로 치자면 그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을 것 같은 서울이지만
왠지 북촌에서의 시간만큼은 조금 천천히 흐르는 듯 느껴진다.
골목마다 이야기가 있고 오래된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북촌의 계동을 찾았다.
이 길의 끝에는 1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중앙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발길 닿는 곳마다 한국 근대사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중앙고등학교는
아름다운 근대 건축물을 여러 개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드라마 <겨울연가>, <도깨비> 등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에게 관광명소로 사랑받고 있는 중앙고등학교. 그곳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올랐다.
걷고 또 걷고 싶은 아름다운 골목길, 계동
계동은 청계천과 종각의 북쪽에 위치한 북촌에 있다. ‘계동’이라는 명칭은 1914년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본래 이 지역은 조선시대 서민 의료기관인 제생원이 위치해 있어 제생동으로 불리다가 이후 계생동으로 바꾸어 불렀고, 계생동을 계동으로 줄여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안국역 3번 출구 현대사옥 옆길에서 시작해 그 길의 끝자락에 위치한 중앙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900여 미터의 나지막한 언덕길이 바로 계동길이다. 이 길은 우리에게 과거를 향유케 하고, 또 순간순간 어릴 적 추억으로 살포시 데려다 놓기도 한다. 과거의 풍경이 현재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기름집, 세탁소, 미용실, 목욕탕 등 이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오래된 가게들과 간판들이 그저 정겹다.
추억을 자극하는 공간들 사이 사이에는 옛 것에 새로움을 입힌 상업 공간도 눈에 띈다. 목욕탕 간판을 단 선글라스 매장, 주인장의 개성을 담은 소규모 독립 서점, 계동을 더욱 계동스럽게 만드는 다양한 상점과 카페 등이 계동 산책을 더욱 즐겁게 만든다. 계동은 지금까지도 옛 한옥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선 골목 양쪽으로 한옥이 밀집되어 있는 마을이 펼쳐진다. 이러한 한옥마을 풍경이 계동의 멋스러움을 더한다.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한 중앙고등학교를 만나다
계동길의 매력에 푹 빠져 걷다 보면 어느새 중앙고등학교 정문에 다다른다. 중앙고등학교 교정은 학생들의 수업이 있는 평일을 제외하고, 주말과 공휴일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가능하도록 개방하고 있다. 교문 옆으로 한류 스타들의 사진이 다닥다닥 붙은 상점이 눈길을 끈다. 드라마 <겨울연가>와 <도깨비> 등 다양한 작품들의 배경이 되면서 이곳은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에게도 꼭 들러야 할 명소가 되었다. 교문 안쪽에는 500년 정도 된 커다란 은행나무가 객들을 먼저 반긴다. 이 나무는 이 지역의 수호신으로 숭상을 받아 매년 가을 당제를 지냈으며, 1987년 천안 독립기념관 개관을 기념하고자 이 나무를 삼목하기도 했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자 중앙고등학교 본관이 수면 위에 떠오르는 해처럼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언덕을 다 오르면 교정의 풍경이 한꺼번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파란 하늘 아래 중세 시대의 성을 만나 듯한 본관의 풍경은 그야말로 멋스럽기 그지없으며, 이국적인 느낌마저 든다.
중앙고등학교는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된 구한말에 신학문을 통한 교육구국(敎育救國), 교육입국(敎育立國)의 취지에서 1908년 기호지방 우국지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기호흥학회에서 기호학교라는 이름으로 설립했다. 당시 우국지사들에 의해 설립된 호남(湖南), 교남(嶠南), 관동(關東) 등의 학회가 운영난에 빠지자 1910년 11월 모두 통합하여 학회 이름을 중앙학회로 바꾸고 교명도 중앙학교로 개칭했다. 그 뒤 재정난으로 경영이 어렵자 되자 1915년 김성수가 이를 인수했고 1917년에 계산(桂山) 언덕(지금의 서울 종로구 계동)에 교사를 신축하고 이전했다. 현재 교정에는 사적으로 지정된 본관, 동관, 서관이 남아 있다. 세 건물 모두 일제강점기 때 민족 사학의 기치를 내걸고 지어졌다.
위 치 |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길 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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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시간 | 토요일 1�3�5주차 오후 13:00~18:00, 토요일 2�4차 09:00~18:00, 일요일�공휴일 09:00~18:00 * 평일은 학생들 수업이 있는 관계로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음 |
고색창연한 멋을 풍기는 본관의 위용
현재 중앙고등학교 본관은 한 차례 다시 지어진 건물이다. 본래는 일본인 건축가 나마쿠라 요시헤이가 설계했던 붉은 벽돌조의 구본관(1917년 준공)이 있었지만, 1934년 알 수 없는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고려대 본관을 설계한 우리나라 1세대 근대건축가 박동진이 설계해 1937년 9월 완공한 건물이 현재의 본관이다.
이 건물은 H자형 평면에 고딕풍 성곽식의 중앙탑이 있는 2층 석조건물로, 중세 시대 건축물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본관의 튜더 아치(Tudor Arch)를 지나면 정원이 보이고, 그 좌우로 붉은 벽돌조 동관(東館)과 서관(西館), 그리고 석조 신관이 있어, 모든 교사(校舍)가 중앙의 축을 중심으로 대칭의 형태로 둘러져 있다. 또, 건물 중앙에는 4층의 중앙탑을 높이 세워 위엄을 드러냈다. 이 건물은 당시 유럽과 미국 학교 건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전해진다. 본관 앞에는 1915년 중앙학교를 인수한 인촌(仁村) 김성수(1891~1955)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 건물은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1호로 지정되었다.
안정과 균형을 자아내는 쌍둥이 건축물, 서관&동관
본관 앞 정원을 한 바퀴 둘러본 후 본관 뒤에 자리 잡고 있는 서관(사적 282호)과 동관(사적 283호)으로 향했다. 쌍둥이처럼 닮아있는 두 건물 모두 구본관을 설계한 나카무라 요시헤이의 작품으로, 두 건물은 서로 비슷한 구조로 마주 보고 있는데, 이로 인해 교정의 전체적인 안정과 균형을 자아내는 듯 보였다. 두 건물 모두 본관만큼이나 건축학적으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1921년, 고딕 양식의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서관은 T자형 구조다. 화강암과 붉은 벽돌을 엇물려 지은 점, 뾰족한 아치형 창틀, 가파른 고딕식 지붕 등은 20세기 우리나라의 초기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동관은 뒤이어 1923년 10월에 완공되었고 서관보다 면적이 조금 더 넓다. 두 건물 모두 현재까지 학생들이 실제 수업을 하는 교실로 사용되고 있다.
역사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긴 교정
중앙고등학교 곳곳에는 배움으로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학생들의 의지와 역사적 숨결이 그대로 남아 있다. 중앙고등학교는 3.1운동을 처음 계획한 곳으로, 이를 기리는 삼일운동 책원지 비가 본관 서쪽에 자리해 있다. 본관 동쪽으로는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인산일에 태극기를 뿌리며 독립만세를 외치던 학생들을 기리는 6.10만세 기념비가 위치해 있다.
교정 동북쪽 담장 주변에 자리한 ‘삼일 기념관’도 꼭 둘러보아야 한다. 1919년 1월 일본 도쿄 유학생 송계백이 교사 현상윤, 교장 송진우를 방문해 유학생들의 거사 계획과 준비 상황을 알리고 ‘2·8 독립선언서’ 초안을 전달함으로써 3.1운동의 도화선을 놓은 중요한 장소다. 그 당시 숙직실은 없어졌고 현재는 삼일 기념관이 역사의 현장을 대신하고 있다. 이 외에도 대한제국 고위 장교이자 독립운동가인 노백린의 집터 등도 만날 수 있다.
우리 근대사의 한 페이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중앙고등학교를 거닐고 있노라면 마치 거대한 야외 박물관을 걷는 듯하다. 근대 건축물과 우리의 아픈 역사가 공존하는 곳, 중앙고등학교를 거니는 시간은 그래서 더 아름답고 특별하다.
본관을 거쳐 서관, 동관을 지나면 푸른 잔디밭의 운동장이 보이고, 이곳에서 오른 편으로 가면 창덕궁 후원의 신선원전이 내려다보인다. 신선원전은 1921년에 건립된 조선 왕실의 전각으로, 조선 태조에서 순종에 이르기까지 조선 국왕 12명의 어진(왕의 초상화) 48본이 봉안된 곳이다. 신선원전은 조선 왕실의 마지막 사당이라는 점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현재 이곳을 볼 수 있는 곳은 중앙고등학교 운동장이 유일하다. 오래된 교정과 현대식 운동장, 창덕궁 후원의 삼각구도가 오묘하면서도 이색적이다.
계동 72번지에 자리한 배렴 가옥(등록문화재 제85호)은 전통 수묵 산수화를 추구한 한국 화가 배렴(1911~1968)이 1940년대 지어서 살았던 곳이다. 배렴은 청전 이상범에게 그림을 배웠고 전통적 화풍에 따라 온화하고 유연한 필치로 산수화와 화조화를 그렸으며, 미술계의 거목이라 불리던 화가다. 배렴 가옥은 아담한 전통 한옥 구조의 목조 기와집으로, 3동의 건물이 ‘ㅁ’자형 구조를 이루고 있어 전통적인 운치가 가득하다. 서울시에서 2001년 매입해 올해 8월까지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다가 현재는 서화 전문 전시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배렴 가옥 마루에 걸터앉아 햇빛이 든 아늑한 정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보다 더 좋은 힐링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현대사옥에서 약 500미터 정도를 걷다 보면 왼편으로 왕짱구식당이 보인다. 외관이 말해주듯, 이곳은 30년 가까이 가정식 백반을 고집하고 있는 식당이다. 허름한 한옥이라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마을 주민 모두가 단골인 맛집이라고. 밑반찬이 매일 달라지는데, 당일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 맛깔스럽다. 뚝배기 순두부와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은 엄마의 손맛을 느끼게 해준다. 고구마 맛탕과 어묵도 빼놓을 수 없는데, 종이컵에 담아주는 부드럽고 달콤한 맛탕과, 시원한 어묵 국물이 조화를 이뤄 그 맛이 일품이다.
오리엔탈 무드의 인테리어가 매력적인 타이 레스토랑, 화양연화. 철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붉은 조명 아래 놓인 나무 테이블과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는 벽면 등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진다. ‘화양연화’라는 상호명은 이곳 대표가 좋아하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제목에서 따왔다. 단지 이름뿐만이 아니라 실제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공간이라서 더욱 특별하다. 그의 팬이라면 더욱 반가울 공간이다. 태국 현지의 맛을 순화해 태국 음식 초보자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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