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길이 있다.
길 위에 놓인 풍경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다 보면 시간 가는 것도 잊게 되는 그런 길 말이다.
월악산 자락에는 무려 2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하늘재가 있다.
문헌상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이자 충북 충주와 경북 문경을 잇는 길이다.
구름이 휘감은 월악산의 신비로움과 정취 가득한 숲길의 아름다움에 빠져 굽이굽이 이어진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하늘과 맞닿은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우리 땅에 처음으로 생긴 백두대간 고갯길
충주의 옛 이름인 ‘중원’은 ‘넒은 들의 가운데’라는 사전적 의미와 ‘나라의 중심’, ‘천하의 중심’이라는 정치•군사적 의미를 지닌다. 하늘재는 한반도의 중원인 충주에서 영남의 관문인 문경으로 들어가는 옛 고갯길로, 신라시대에는 ‘계립령’, 고려 시대에는 ‘대 원령’으로 불렸는데, 대 원령을 우리말로 옮기면 ‘한울재’가 된다. 이것이 조선시대에 와서 ‘하늘재’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늘재는 원래 영토 확장을 위한 군사의 길로 개척되었지만 이후 불교가 전파된 문화의 길, 보부상과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삶의 길로 변화했다. 또, 우리나라 양대 수계(水系)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하늘재에 내린 빗물이 문경으로 떨어지면 낙동강이, 충주로 떨어지면 한강이 된다.
하늘재는 지금으로부터 약 1860년 전인 156년 신라 제8대 아달라왕이 북진을 위해 개척한 길로, 신라가 북진정책을 펼치며 한강 유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그리고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는 주요 전략 거점이기도 했다. 1361년, 고려 31대 왕인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으로 안동까지 피난을 떠날 때에도 이 고갯길을 넘었다. 그러다가 태종 14년(1414)에 문경새재 길이 개척되면서 하늘재는 점점 잊혀 가는 고갯길이 되었다가 최근 들어 트래킹 코스로 주목받으며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하늘재로 향하는 597번 지방도를 타고 충주 미륵대원지 주차장까지 가는 숲길은 멋스럽기 그지없다. 숲을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는 느리고 비밀스러우며, 안개 자욱한 도로 끝은 고요함으로 가득하다. 597번 지방도 드라이브는 수안보에서 출발해 월악산으로 방향을 잡으면 아늑한 숲길이 이어지게 되는데, 왼편으로는 북바위산, 오른쪽은 조령이다. 차창을 열고 달리면서 맘껏 심호흡을 해보자.
중원의 땅 충주를 상징하는 위대한 문화유산
하늘재로 향하는 길목, 월악산 준봉으로 둘러싸인 산골짜기에 조성된 미륵대원지(彌勒大院址)는 베일에 싸인 폐사지(廢寺址)다. 초석들이 어지러이 흩어진 폐사지는 대개 애잔함이 들기 마련이지만, 미륵대원지는 그렇지 않다. 미륵불(보물 96호), 5층 석탑(보물 95호)과 석등, 큼지막한 귀부(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와 당간지주 등이 어우러진 풍경은 여느 대찰 못지않은 볼거리로 충만하다. 쓰러져 누운 당간지주에도, 마구잡이 놓여 있는 주춧돌에도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특히, 보물 96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불입상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불상이다. 신라 말 마의태자가 나라의 멸망을 서러워하며 이곳까지 와서 불상을 만들고 개골산으로 들어갔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하지만 현재는 보호석실 해체 보수 작업이 한창이라 미륵불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는 없었다.
소백산맥을 넘는 하늘재 들머리였던 미륵대원은 순수 불교 사찰의 성격 외에도 소백산맥을 넘나들던 관리와 말들이 쉬어가던 숙소 기능을 해온 것으로 짐작된다. 공민왕의 피난 행렬 또한 이곳에 머물며 고단한 몸을 쉬어가지 않았을까.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니, 그저 짐작해볼 뿐이다. 미륵대원지 옆에는 역원(驛院) 터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넓게 펼쳐진 대지는 초록의 봄기운으로 가득하다. 잠시 서서 이곳을 조망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진다.
주 소 |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사지길 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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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장 료 | 무료 |
문 의 | 충주시청 관광과 (043-850-6713), 충주종합관광안내소 (043-842-0531) |
이용시간 | 상시 개방 |
때묻지 않은 자연과 오롯이 마주하는 기쁨
미륵대원지를 오른 편에 끼고 5분 정도 걸으니 ‘하늘재’라고 커다랗게 적힌 비석이 길을 일러준다. 여기서부터가 실질적인 들머리다. 이름에 ‘하늘’이 들어가지만, 실제로는 고갯마루의 높이가 해발 525m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오르는 길도 험하지 않아 천천히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장승의 마중을 뒤로하고 오르다 보면, 구름다리 앞에서 또 한번 길이 양쪽으로 갈라진다. 왼쪽 구름다리 너머로는 상대적으로 좁은 역사 • 자연관찰로가 이어지고, 오른쪽은 일반 등산로다. 두 길은 얼마 뒤 다시 만나 합쳐진다.
약 3.5km의 오솔길을 따라 정상까지 가는 길은 유순하다. 푹신한 흙길은 평지에 가까울 정도로 경사가 완만하다. 운치 가득한 이 길의 나이가 2천 년이 다 되어간다고 생각하면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길은 내내 전나무, 떡갈나무, 소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길가의 봄꽃과 들꽃들이 걷는 이들을 반긴다. 마침 하늘재를 방문한 날은 봄비가 내린 직후여서 청량함이 한층 더 강하게 느껴졌다. 송계 계곡의 맑은 물소리와 끊임없이 지저귀는 새소리가 온몸을 휘감는 듯하다. 하늘재는 아기자기한 길이 많아 산책자에게 더욱 풍성한 느낌을 갖게 한다. 특히 연아를 닮은 나무, 연리목 친구나무 등 특이한 모양의 나무들이 숲길을 걷는 재미를 더해준다.
월악산의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는 고갯마루
미륵대원지를 나선 지 한 시간 남짓 지났을까.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는 넓게 뻗은 아스팔트 길이 곧바로 문경 관음리로 연결된다. 서쪽으로 문경 대미산(해발 1,115m) 정상이 시야 안에 아스라이 들어온다. 나무 계단을 올라 정상에 도착하자 ‘백두대간 하늘재’라고 씌어진 커다란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평지가 나타난다. 그곳에 발을 디디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손을 뻗으면 만져질 듯 가까운 하늘과 가슴이 뻥 뚫릴 듯 시원한 장관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우뚝 솟은 기암절벽의 아름다운 월악산경(月岳山景)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명산의 기운이 느껴져 저절로 손을 뻗고 크게 심호흡을 하게 된다. 팔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활짝 열린 하늘의 끝자락이 손에 닿을 듯하다. 정상이라고 해봐야 해발 525m에 불과한 이곳이 왜 ‘하늘재’라는 이름을 당당히 꿰찼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다. 이곳에서는 문경 방향으로 시원하게 트인 절경도 함께 감상할 수 있는데, 개경이 함락되어 피난길에 올랐던 공민왕과 노국공주 역시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주 소 |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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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 무료 |
문 의 | 월악산국립공원사무소 (043-653-3250), 충주종합관광안내소 (043-842-0531) |
이용시간 | 상시 개방 |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하늘재에 오르기 전 배고픔부터 달래보자. 미륵대원지 초입에 자리한 월악가든은 각종 백숙과 전골이 맛있는 집으로 꼽힌다. 특히 만가닥 버섯, 오이꽃 버섯 등 당일에 직접 채취한 버섯을 가득 넣어 끓여주는 모둠 버섯전골을 추천한다. 다양한 종류의 버섯들이 조화를 이뤄 깊은 향을 내고, 쫄깃쫄깃한 버섯의 식감이 그대로 살아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갖가지 자연산 나물을 마음껏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 찌그러진 주전자에 담겨 나오는 동동주 한 잔과 함께라면 이보다 좋을 수 없을 것이다.
그윽한 커피향이 그립다면 충주 커피 박물관에 가보자. 1870년대 미국에서 만든 높이 170cm, 지름 70.5츠 크기의 초대형 그라인더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모은 커피 용품과 고풍스러운 찻잔, 티스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카페에서 꼭 마셔봐야 할 음료는 여주와 우엉을 볶아 만든 일명 ‘여 우커피’다. 커피와 함께 볶은 스페셜과, 맛의 강약에 따라 미디엄과 라이트 중 선택할 수 있다. 커피와 가까운 맛이 나는데, 강하고 풍부한 향을 즐기고 싶다면 미디엄을, 부드러운 맛을 원하면 라이트를 추 천한다. 충주 커피 박물관은 원두 로스팅, 커피나무 묘목 심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충주 탄금호를 끼고 자리하고 있는 세계 술 박물관 리쿼리움은 위스키로 유명한 ‘시바스 리갈’의 제조에 사용됐던 증류기로 꾸며진 박물관 입구에서부터 세계 술 문화의 향연이 펼쳐진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면 와인의 역사와 제조법을 비롯해 각 나라별 유명 와인, 보관법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와인관, 대중의 술 맥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볼 수 있는 맥주관, 한국의 술에 관련된 유물과 탁약주, 소주 제조 모형이 전시된 전통주관 등 다양한 술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작지만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와인 오프너부터 와인 브랜디 위스키 등을 담았던 오크통,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증류기까지 술의 모든 것을 만나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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