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길라잡이

굽이굽이 영겁의 시간을 품은 옛길

왕의 길을 가다 제2편 : 공민왕의 피난길
왕의 길을 가다 제2편 : 공민왕의 피난길
굽이굽이 영겁의 시간을 품은 옛길

걷다 보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길이 있다.
길 위에 놓인 풍경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다 보면 시간 가는 것도 잊게 되는 그런 길 말이다.


월악산 자락에는 무려 2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하늘재가 있다.
문헌상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이자 충북 충주와 경북 문경을 잇는 길이다.
구름이 휘감은 월악산의 신비로움과 정취 가득한 숲길의 아름다움에 빠져 굽이굽이 이어진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하늘과 맞닿은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 하늘과 맞닿아 있는 듯한 하늘재 정상(명승 제49호)>

< 하늘과 맞닿아 있는 듯한 하늘재 정상(명승 제49호) >

우리 땅에 처음으로 생긴 백두대간 고갯길

초록의 봄기운을 가득 머금은 하늘재 고갯길
초록의 봄기운을 가득 머금은 하늘재 고갯길

초록의 봄기운을 가득 머금은 하늘재 고갯길

충주의 옛 이름인 ‘중원’은 ‘넒은 들의 가운데’라는 사전적 의미와 ‘나라의 중심’, ‘천하의 중심’이라는 정치•군사적 의미를 지닌다. 하늘재는 한반도의 중원인 충주에서 영남의 관문인 문경으로 들어가는 옛 고갯길로, 신라시대에는 ‘계립령’, 고려 시대에는 ‘대 원령’으로 불렸는데, 대 원령을 우리말로 옮기면 ‘한울재’가 된다. 이것이 조선시대에 와서 ‘하늘재’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늘재는 원래 영토 확장을 위한 군사의 길로 개척되었지만 이후 불교가 전파된 문화의 길, 보부상과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삶의 길로 변화했다. 또, 우리나라 양대 수계(水系)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하늘재에 내린 빗물이 문경으로 떨어지면 낙동강이, 충주로 떨어지면 한강이 된다.

하늘재는 지금으로부터 약 1860년 전인 156년 신라 제8대 아달라왕이 북진을 위해 개척한 길로, 신라가 북진정책을 펼치며 한강 유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그리고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는 주요 전략 거점이기도 했다. 1361년, 고려 31대 왕인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으로 안동까지 피난을 떠날 때에도 이 고갯길을 넘었다. 그러다가 태종 14년(1414)에 문경새재 길이 개척되면서 하늘재는 점점 잊혀 가는 고갯길이 되었다가 최근 들어 트래킹 코스로 주목받으며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산책자를 위한 가이드   

잘 걷고 잘 놀기최고의 힐링 드라이브 코스, 597 번 지방도

597 번 지방도

하늘재로 향하는 597번 지방도를 타고 충주 미륵대원지 주차장까지 가는 숲길은 멋스럽기 그지없다. 숲을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는 느리고 비밀스러우며, 안개 자욱한 도로 끝은 고요함으로 가득하다. 597번 지방도 드라이브는 수안보에서 출발해 월악산으로 방향을 잡으면 아늑한 숲길이 이어지게 되는데, 왼편으로는 북바위산, 오른쪽은 조령이다. 차창을 열고 달리면서 맘껏 심호흡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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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율
사진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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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5-08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