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히스토리

존재하지 않는 문, 서대문의 아픈 역사

최태성의 역사산책 리얼 히스토리 : 존재하지 않는문 서대문의 아픈역사 최태성의 역사산책 리얼 히스토리 : 존재하지 않는문 서대문의 아픈역사

흔히 서울 도성 안의 사대문이라 하면, 동대문은 흥인지문, 남대문은 숭례문, 북대문은 숙정문, 서대문은 돈의문을 말한다.
그 중 현존하지 않는 유일한 문이 바로 서대문이다. 무엇이 서대문을 사라지게 만들었을까?
서대문은 왜 아직까지도 복원되지 못하고 있을까?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국사 전문가 최태성 작가와 함께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서대문의 슬픈 역사를 지금 바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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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최태성의 역사산책 리얼 히스토리 : 존재하지 않는문 서대문의 아픈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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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태성의 역사산책 리얼 히스토리 : 존재하지 않는문 서대문의 아픈역사
  • 01. 서대문구에는 서대문이 있다? 없다?

    서대문의 터는 현재 강북삼성병원 입구인 정동 사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은 행정구역상 어디에 속할까? 이름 그대로 서대문구일까? 정답은 서울시 중구에 속한다. 1975년까지 서대문 터는 서대문구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해 서울시 중구 정동을 비롯한 서쪽 지역이 서대문구에서 중구로 편입이 되면서 오늘날까지 서대문은 서대문구가 아닌 중구에 있게 된 것이다.

  • 02. 사대문 중에서 서대문이 가장 막내일까?

    조선 건국 후 서대문은 원래 지금의 독립문 근처인 사직동 고개 쪽에 처음 세워졌다. 그러나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건의가 올라오자 태종은 1413년 서대문을 폐쇄한다. 문이 문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서대문의 슬픈 ‘이동의 역사’는 시작된다. 이후 경희궁이 있던 서쪽 언덕으로 이동한 서대문은 1422년 다시 세종에 의해 또 한번 이동하게 되는데, 이 자리가 바로 현재의 서대문 터다. 이 때문에 서대문은 다른 사대문과는 달리 세종 때 ‘새로 세워진 문’이 된 것이다.

  • 03. 신문로 명칭은 언론사가 있어서 신문로일까?

    신문로는 서대문 터를 관통하고 있는 도로의 이름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 곳에 경향신문사 건물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여기서 ‘신문(新門)’이란 세종 때 새로이 문을 열었다는 의미로, 현재 이곳 도로명으로 쓰이고 있는 새문안로 역시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 04. 근대화의 상징, 전차가 서대문을 사라지게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서대문과 동대문 사이를 오가는 전차를 복선으로 운행하기 위해 서대문을 철거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동대문은 그대로 놔두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입성한 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전차는 대한제국 시절,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당시 쓰나미처럼 밀려오던 근대화의 물결이 500년 동안 서울 땅을 지켰던 서대문을 덮친 격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태성

최태성

강사
  • 모두의 별★별 한국사 연구소장
  • EBS, 이투스교육 등 한국사 대표 강사
  • 前 대광고 역사 교사
  • KBS <역사저널 그날>, tvN <어쩌다 어른> 등 다수 출연
  • <최태성 한국사 수업> 등 다수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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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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