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옛날 옛적의 이야기다.
“유정이, 너 오늘도 물에 가냐?”
연이가 더 놀지 못해 아쉬운 듯 내 낡은 치맛자락을 슬며시 당기며 물었다.
“응. 이젠 안 가면 괜히 서운하고 그러더라.”
“언제나 돼서야 안 갈 생각인데?”
연이의 물음에 나는 공연히 하늘을 보았다. 그건 내가 답을 해줄 수 없는 물음이었다. 연이는 내 얼굴을 한 번 쓱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치맛자락을 놓아주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나는 발걸음에 속도를 내어 늘 가던 폭포수 아래 천으로 향했다. 도착해서는 물가의 큰 바위를 힘주어 들춰보기도 하고 눅눅한 흙들을 파내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찾는 것은 도통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것만 찾는다면 연이의 물음에도 답해줄 수 있을 텐데. 그리고 나와 어머니도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면 없던 힘이 다시 솟았다. 나는 으� 하면서 또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날개옷 한 벌. 그 한 벌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될 터였다.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반짝반짝 빛이 나는 나의 어머니. 그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하는 주막에 오신 손님들도 어머니를 보면 “세상 곱다”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에 딱 반대되는 게 바로 아버지였다. 나무꾼을 하는 아버지는 술을 자주 드셨다. 술을 드시지 않는 낮엔 가만가만 조용하니 말씀도 없으신 분이 술만 들어가면 화를 버럭 내셨다. 언제 한 번은 아버지가 술병을 던지기도 해서 깨진 조각을 밟아 발바닥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 적도 있었다.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시기도 했는데 나에게는 때리는 시늉만 하셨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조만간 열두 번째 생일을 맞을 나도 얼마 안 있어 직접 맞게 될 날이 곧 오리라는 걸.
유독 무슨 이유에선지 아버지의 화가 커진 날이면 집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되었다. 그럴 때의 아버지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포악한 성질을 가진 하나의 커다란 검은 짐승처럼 보였다. 짐승에겐 말이 통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는 그저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화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얼른 밤이 지나가길 바라면서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우리는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는 일찍이 주막에 올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먼 길을 떠나온 행상들이 주막에 찾아와 어머니는 국밥을 바쁘게 날랐다. 행상들은 피곤해하면서도 국밥이 정말 맛있다며 칭찬을 했다.
“이야, 여기 주막 국밥 맛이 대단허이.”
“그리 말해주니 고맙소. 많이들 잡숫고 가시오.”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말하니 손님들은 늘 그렇듯 들릴 듯 말 듯하게 한마디씩 했다.
“거, 여기 주모는 사람이 참 고우네. 무슨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 같어.”
손님들이 떠나고 난 뒤, 잠시 숨을 돌릴 때쯤 어머니는 자연스레 여름 해를 피해 지붕 아래 마루에 걸터앉았다. 마당엔 선명한 여름 햇살이 내려앉았고 마루엔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어머니의 무릎에 누워 눈을 감았고 어머니는 내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듯 쓰다듬어주셨다. 밤의 일들이 잊힐 정도로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유정아, 내가 아주 오래전 이야기 하나 해줄까.”
“좋죠. 해주세요.”
“옛날에 말이다….”
옛날 옛적에 인간 세상에 관심이 많던 한 선녀가 살았다. 그 선녀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하늘나라 사람들 몰래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그리고 오랫동안 쌓아뒀던 호기심을 해결하느라 인간 세상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한참을 돌아다녀본 뒤, 선녀는 인간들은 무얼 먹고살고 무엇을 하고 살며 무엇을 즐기는지 알 수 있었다.
호기심이 해결되자 그제야 선녀는 돌아다니는 동안 자신의 몸이 꽤 지쳐있음을 깨달았다.
선녀는 폭포수가 떨어지는 천에서 깨끗이 몸을 씻고 다시 하늘나라로 돌아가야지 했다.
선녀는 날개옷을 고이 접어 폭포 아래 바위 위에 올려두고 목욕을 즐겼다.
시원하고 맑은 물 아래서 혼자 물장구도 치며 노는데, 그러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음을 뒤늦게 눈치챘다.
선녀는 황급히 옷을 접어둔 바위로 돌아갔다. 그런데 꼭 있어야 할 날개옷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괜히 바위 아래를 살펴보기도 하고 주변의 바위란 바위는 다 뒤져 보았지만, 날개옷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차가워진 물속에서 선녀는 몸을 떨었다. 그때였다. 한 사내가 나타났다. 사내는 나뭇가지들을 진 지게를 메고 있었는데 나뭇가지 위에는 선녀가 그토록 찾던 날개옷이 올려져 있었다. 나무꾼은 선녀에게 날개옷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법한 낡은 옷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 집에 갑시다.”
선녀에겐 어떤 선택지도 없었다. 결국, 나무꾼이 준 옷을 주섬주섬 입고 선녀는 나무꾼을 따라갔다. 그때만 하더라도 선녀는 알지 못했다. 그 길이 아까 있던 물보다 더 차고 깊은 물속 같은 곳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걸.
어머니가 해준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었다.
“그 후에 이야기 더 없어요? 원래 옛날이야기는 행복하게 끝나잖아요.”
“모든 이야기가 행복하게 끝날 수는 없는 법이란다.”
어머니는 자기가 그렇게 말했으면서 나보다 더 아쉬운 듯 슬픈 얼굴을 하고 계셨다. 당장이라도 고개를 푹 숙여 눈물을 흘릴 거 같은 얼굴이었다. 왜 이렇게도 슬픈 얼굴을 하실까 하다 나는 무언가 내 머리를 꽉 채우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우리 어머니가 어쩌면… 어쩌면… 어머니의 이야기 속 선녀가 아닐까. 그럼 여태까지 말이 되지 않았던 것들이 말이 되었다. 날개옷을 잃어버려서 하늘로 갈 수 없었을 테니까, 어쩔 수 없이 고된 인간 세상일을 하면서도 아버지와 같이 산 거라고.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아버지가 날개옷을 돌려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라 하면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명쾌한 답이 나오자 잠이 솔솔 밀려왔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무더운 여름 낮이 그렇게 가고 있었다.
그 후, 나는 틈만 나면 집을 뒤졌다. 혹시나 집에다 아버지가 숨겨둔 날개옷이 있을까 봐서였다. 하지만 집에선 도통 무언가 발견될 듯한 낌새가 전혀 없었다. 하긴 그 오랜 시간을 집에다 숨겨놓았으면 진즉에 어머니에게 발견되었겠지. 그렇담 어디에다가 숨겨놨을까.
아버지는 멀리 돌아가는 걸 좋아하는 분도 아니었고 귀찮은 건 딱 질색인 분이니 날개옷을 생판 엉뚱한 곳에 감추었을 리는 없었다. 그럼 어딜까…. 어쩌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처음 만난 폭포수에다가 날개옷을 숨겨두시지 않았을까.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나쁜 기억이 있는 장소에 어머니가 가시지 않으리라 생각하셨다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처음 만났던 장소가 어딘지 들어본 적은 없으나 이야기 속 선녀가 어머니라면, 우리 마을에서 제일 가까운 폭포에 가면 될 일이었다. 나는 그 후로 시간만 나면 마을 어귀 폭포로 향했다.
산길이라 가는 길이 조금 멀어 자연스레 소꿉친구 연이와 노는 시간도 줄었는데, 연이는 그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또 물에 가게? 그 근처에 있을 거라는 물건 찾으러?”
나는 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참 날도 더운데 고생이다. 도대체 그 물건이란 건 무엇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언젠간 다 말해줄게. 물건만 찾으면 다 설명해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아, 그런데 연아 너는 우리 어머니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냐?”
“그냥 참 고우시다 싶지. 원체 고우신 분이잖아.”
“그거 말곤? 뭐 다른 느낌은 없더냐?”
“다른 느낌? 그냥 요즘은 안색이 예전보다 더 피곤해 보이신다는 거 정도? 우리 어머니도 해가 가면 갈수록 자주 피곤해하시더라고.”
“무슨 소리야! 우리 어머니가 언제 안색이 안 좋아지셨다고. 우리 어머니는 뭔가 다른 분이란 말이야. 보통 사람들처럼 나이 든다고 더 피곤해지거나 하지 않는다고.”
“유정이, 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연이가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물었다.
“됐어. 평범한 넌 몰라도 된다!”
난 연이에게 어떤 인사도 없이 길을 나섰다. 역시나 목적지는 폭포 아래 천이었다. 나는 늘 그랬듯이 근처 바위 밑이나 고목 밑을 샅샅이 뒤지고 흙을 파보기도 했다. 보통 땐,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힘을 내던 게 오늘은 연이의 말을 떠올리며 짜증 삼아 힘을 내게 됐다.
‘우리 어머니는 선녀인데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되는 게 말이 돼?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연이 걔는….’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화가 났다. 나는 혼자서 “뭘 알지도 못하면서….” 하고 중얼거리며 날개옷 찾는 일에 열중했다.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고 바위와 나무에 긁힌 상처들에선 피가 조금씩 묻어났다. 그래도 오늘은 꼭 찾고 싶었다. 하루라도 빨리 나와 어머니를 여기서 벗어나게 해줄 날개옷이 필요했다. 한참을 뒤적거리는데 물가와 멀지 않은 곳에 쓰러진 썩은 고목 아래 초록색 무언가가 보였다. 다가가서 살펴보니 그것은 옷이었다. 흙과 이끼가 지저분하게 잔뜩 묻어있었지만 분명 어른들이 입는 치마였다. 물가에서 옷을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게 날개옷이 아니면 말이 되지 않았다. 이 치마는 분명 날개옷이었다. 아니, 날개옷이어야만 했다. 나는 치마를 들고 한달음에 어머니가 계신 주막으로 뛰어갔다. 막 국밥에 쓸 재료들을 손질하고 있던 어머니는 한껏 지저분해진 내 모습에 놀란 눈치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옷을 건네주며 말했다.
“어머니, 제가 찾았습니다. 찾았다고요!”
“그게 무슨 소리인 게냐?”
“어머니, 사실 어머니는 선녀시지요? 어머니가 전에 해주었던 선녀 이야기. 어머니 이야기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저, 오늘 내천에서 옷을 찾았어요. 다 낡고 헤졌지만 분명 날개옷이 맞습니다. 어머니가 이 옷을 입으시면 돼요.”
“이건 누가 봐도 누가 버리고 간 옷가지 아니냐….”
“아니에요! 이건 어머니 옷이 분명해요. 날개옷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걸 입으시고 저도 하늘나라로 데려다주세요. 그럼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나와 옷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리셨다. 갓 태어난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내는 울음이었다.
“유정이, 우리 불쌍한 아가….”
어머니는 눈물을 멈추지 않고 나를 꼭 안아주셨다. 어느새 내 눈에도 눈물이 한아름 고여 흘러내렸다. 눈물방울 사이로 어느새 붉은빛으로 달아오른 어머니의 피부와 마른 풀처럼 푸석해진 머릿결이 보였다. 여러 번 뵈었던 연이 어머니와 비슷한 모습, 내가 그토록 보고 싶지 않던 보통의 어머니 모습이었다.
- 글
- 전여울(1993년생)_동화작가
제16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동화 『오, 로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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