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동화

손등이 가렵다

생각하는동화 : 손등이 가렵다 생각하는동화 : 손등이 가렵다
철창 안에 흑곰은 손발이 묶인 채 배를 드러내고 누워있었다. 배 한가운데에 기다란 호스 가 빨대처럼 꽂혀 있었다. 곰 몸속에서 흘러나온 액체는 호스를 타고 연결된 작은 병 안으로 한 방울씩 떨어져 내렸다. 늘어선 철창마다 곰들이 갇혀있었다. 어떤 곰은 호스를 매단 채 힘없이 늘어져 있거나, 어미 곰과 함께 철창에 갇힌 새끼 곰도 보였다. 웅이는 할 말을 잃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문 사장은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약병을 이리 가져오게.”
옆에 서 있던 비서가 재빨리 움직였다. 비서는 반쯤 채워진 병을 호스에서 뽑아내어 가져왔다. 작은 병을 흔들자 끈적끈적한 액체가 출렁거렸다.
“자, 먹어, 너를 튼튼한 곰처럼 만들어 줄 거야.”
문 사장은 웅이에게 작은 병을 내밀었다.
“싫다니까요.”
“아빠를 봐. 이렇게 곰처럼 튼튼해졌잖아.”
문 사장은 단단하고 우람해진 팔뚝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벌써 몇 개월째 꾸준히 마셔온 효과라 생각했다.

문 사장은 한때 돈만 쫓아다녔다. 그 덕에 유럽풍의 커다란 저택과 아름다운 정원, 집주 위의 산과 땅이 모두 문 사장 것이었다. 재산은 그렇게 불려 나갔지만, 결국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다. 죽다가 겨우 살아났다. 그제야 몸을 돌보기 시작했다. 건강을 위해 규칙적인 운동과 식단, 좋은 보약을 챙겨 먹었다. 점점 몸이 좋아졌지만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돈 은 얼마든지 있었다. 문 사장은 더 건강해지기 위해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구해서 먹었다. 결국 집 가까이에 곰 사육장을 만들었다.
“저는 안 먹어요.”
웅이는 아빠의 손을 뿌리치며 집 쪽으로 달아났다. 비쩍 말라 휘청거리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문 사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하나뿐인 아들이 문 사장의 가장 큰 걱정이었다.
“약해 빠진 놈!”
문 사장은 작은 병에 있던 액체를 단숨에 삼켜 버렸다.
‘꿀꺽 꿀꺽’
목구멍을 타고 쓸려 내려가는 미끄덩한 느낌에 온몸의 근육들이 꿈틀거렸다. 그는 약병을 비울 때마다 몸이 점점 더 튼튼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잇.”
갑자기 손등이 가렵기 시작했다. 문 사장은 ‘박박’ 손톱을 세워 긁어 보지만 가려움은 그 대로였다. 손등은 금방 발갛게 달아올랐다. 빨개진 피부 위로 검푸른 작은 점들이 올라왔다.
“이게 뭐야!”
문 사장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손등을 자세히 내려 봤다. 금방 깎아낸 턱수염처럼 파릇 한 털들이 손등 위에 점점이 박혀 있었다.
늙으면 없던 곳에도 털이 자란다더니 제법 굵은 털들이 손등을 덮을 모양이다. ‘에잇’ 그는 손등을 허리춤에 비벼 대었다.

저녁 식탁에는 문 사장과 웅이 단둘뿐이었다. 사람들은 요리를 커다란 식탁으로 날랐다.
소고기, 닭, 오리, 갖은 야채와 따뜻한 수프로 식탁은 금방 가득 찼다. 둘이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었다.
‘우적우적’
문 사장은 며칠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음식들을 먹어대었다. 금방 식탁에는 빈 접시들 만 남았지만, 아직도 배를 채우기엔 부족했다.
가을이 되고부터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빨리 연어를 가져와.”
하필 연어라니, 문 사장은 비릿한 냄새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던 연어가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
“연어를 요리하려면 30분 정도는 걸린답니다.”
비서가 다가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기다릴 수 없어. 그냥 그대로 가져와. 당장.”
문 사장은 식탁을 주먹으로 ‘쾅’ 내려쳤다. 비서는 깜짝 놀라며 부엌으로 달려갔다. 연어 생각으로 입속은 벌써 침이 가득 고였다. ‘꿀꺽’ 목젖이 힘차게 출렁였다. 비서와 함께 요리사가 두 손에 접시를 받쳐 들고 들어왔다. 접시 위에는 커다란 연어 한 마리가 올려져 있었다. 연어의 비릿한 냄새가 문 사장의 콧속을 파고들었다.
“어서 이리 내.”
문 사장은 벌떡 일어나 연어를 빼앗다시피 두 손에 움켜쥐고, 두툼한 몸통을 한입 베어 살점을 뜯어내었다. ‘쩌업 쩝쩝’ 허겁지겁 날 생선을 씹어댔다. 비릿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씹을수록 뱃속은 더 꿀렁거리며 재촉했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살덩이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이번엔 연어의 머리를 베어 물고 뜯어내었다. 문 사장은 ‘오드득 오독오독’ 생선뼈까지 씹어가며 고개를 들었다.
“아빠!”
웅이가 커다래진 눈으로 문 사장을 쳐다보았다. 비서와 요리사의 눈도 동그래져 있었다. 문 사장은 오물거리던 입을 멈추었다. 입안에 남은 것을 한꺼번에 꿀꺽 삼켜버렸다. 손에 들고 있던 연어를 식탁에 천천히 내려놓고 입 주위에 지저분하게 달라붙은 살점을 손바닥으로 쓸어내었다. 그리고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만 모두 치워.”
문 사장은 사람들의 따가운 눈길을 피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끼이익’ 의자가 바닥에 밀려 비명을 질러대었다. 문 사장은 거실에 앉아 정신없이 날 생선을 뜯어 먹던 모습을 떠올리자 얼굴이 화끈거렸 다.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저었다. 손바닥에 남은 연어 냄새가 코끝을 찔러대었다. ‘흐읍’ 냄새를 깊이 빨아들였다. 비린내가 온몸을 바르르 떨게 만들었다. 고인 침이 ‘꿀꺽’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목으로 넘어갔다. 문 사장은 신선한 공기를 맡기 위해 정원으로 달려 나왔다. 유럽풍의 넓은 정원을 지나 참나무 숲속으로 뛰어갔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 탓에 하얀 입김이 쏟아져 나왔다.

문 사장은 떡갈나무 아래에 서서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이번엔 손바닥이 간질거렸다.‘탁탁’ 손바닥을 털고는 나무 기둥으로 폴짝 뛰어올랐다. 나뭇가지를 잡고 팔의 힘만으로도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었다. 한동안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졌다. 한참 만에 나무에서 내려왔다.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겠지?”
처음으로 오른 나무에 뭔가 표시를 해 두면 좋을 것 같았다. 문 사장은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오줌을 누었다. ‘또르르’ 나무 기둥을 타고 오줌 줄기가 흘러내렸다. 따뜻한 오줌 줄기에서 김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어! 눈이다.”
문 사장의 얼굴로 제법 굵은 눈이 떨어졌다. 올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첫눈이었다. 눈은 조금씩 더 굵어졌다. 문 사장은 눈을 피해 나무가 우거진 숲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수풀을 비집고 헤매다가 작은 동굴을 발견했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을 우연히 찾아낸 것이다. 입구의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보니 안은 제법 넉넉한 공간이 나왔다. 밖에 비해 서 훨씬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마저 들었다. 문 사장은 몸을 웅크리고 바닥에 앉았다. 볼록 한 배 때문에 조금 불편했다. 온몸에 몰라보게 살이 올라와 있었다. 문 사장은 무리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요즘 그렇게나 먹어댔으니 살이 찌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아잇, 가려워.”
문 사장은 또다시 손등을 긁어댔다. 이번엔 팔뚝과 등에 이어 온몸으로 가려움이 번져 나갔다. ‘닥닥 닥닥닥’ 몸을 긁어대면서도 ‘아하함!’ 입이 찢어져라 하품이 나왔다. 점점 잠 이 쏟아졌다. 바위 평평한 곳에 머리를 기대었다. 몸을 긁어 대던 손에 점점 힘이 빠져 나 갔다. 눈꺼풀이 자꾸 무겁게 내려앉았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잠깐만 자고 일어나자 생각하고 문 사장은 그대로 잠을 청했다. 행복하고 편안한 느낌은 꿈속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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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잤을까? 배고픈 뱃속이 꼬르륵거리며 잠을 깨웠다. 문 사장은 힘겹게 감긴 눈을 떴다. 입구 쪽에서 밝고 따뜻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벌써 아침이 온 것이다. 배가 고파서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으이차!”
동굴 밖으로 나와 늘어져라 기지개를 켜고, 얼굴을 손으로 쓱 문질렀다. 수북이 올라온 까칠한 수염이 손바닥 가득 만져졌다.
“그새 수염이 자랐네. 얼른 가서 면도부터 해야겠다.”
문 사장은 꼬르륵거리는 배를 문지르며 집으로 향했다. 배는 고팠지만, 몸은 가볍고 기분은 날아갈 듯 좋았다.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을 향할 때였다.
“까악! 곰이다.”
누군가 소리쳤다. 문 사장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려갔다.
“사람 살려!”
문 사장을 피해서 사람들은 도망쳤다. 사람들 틈에서 엽총이 보였다. 누군가 총구를 문 사장을 향해 겨냥했다.
‘탕!’
날아온 총알이 문 사장 옆에 있던 나무 기둥에 박혔다. 주사기처럼 생긴 마취용 총알이었다. 문 사장은 나무 뒤로 몸을 피하며 소리쳤다.
“나야 나라고! 어흐응 캬앙.”
당황한 탓일까? 이상한 소리까지 튀어나왔다.
‘탕, 탕!’
총을 든 사람들이 조금씩 가까이 다가왔다. 이대로 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문 사 장은 겁을 먹고 일단 숲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헉! 헉!’
숨이 턱에 차도록 수풀을 헤치고 나무숲까지 달렸다.
‘컹컹’
사람들은 개들을 앞세워서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문 사장은 숨을 곳을 찾아 점점 높은 언덕 쪽으로 달아났다. 높이 자란 수풀을 헤치며 나가다 갑자기 발을 디딘 땅이 푹 꺼졌다.
“으아악!”
문 사장은 가파른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한참을 뒹굴어 언덕 아래 질퍽한 진흙더미 위에 멈춰 섰다.

온몸이 쑤셔왔지만, 움직여야 했다. 문 사장은 땅에 배를 끌며 기었다. 힘겹게 수풀 속으로 몸을 숨길 수 있었다. 땅에 코를 박고 꼼짝없이 엎드려 주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 참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긴장했던 몸에 힘을 뺄 수 있었다.
“휴우.”
한숨을 내쉬던 문 사장의 눈앞에 얼음을 뚫고 자라난 꽃이 보였다. 노란 복수초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연초록빛 새싹들이 땅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문 사장의 등에 내려앉은 햇살 이 따스했다.
“벌써 봄?”
한숨을 내쉬던 문 사장의 눈앞에 얼음을 뚫고 자라난 꽃이 보였다. 노란 복수초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연초록빛 새싹들이 땅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문 사장의 등에 내려앉은 햇살이 따스했다.
‘꼬륵 꼬르륵’
뱃속이 제일 먼저 신호를 보냈다. 문 사장은 벌떡 일어났다. 우선 배고픔부터 해결하기 위해 마을로 발길을 옮겼다. 문 사장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도심 골목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식당가 뒷골목 허름한 곳으로 냄새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가까이 갈수록 달달한 냄새는 문 사장의 온몸을 안달이 나게 만들었다. 냄새가 풀풀 풍겨나는 곳은 쓰레기통 속이었다.
‘쓰레기? 아무리 배고파도 쓰레기를 먹을 수는 없어.’
마음은 그랬지만 이미 쓰레기통 뚜껑을 열어젖힌 후였다. ‘와그장창’ 요란스럽게 철 뚜껑 이 바닥에 떨어지자 누군가 골목 쪽으로 나와 소리쳤다.
“거기 누구요?”
문 사장은 음식을 맛도 못 보고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다음 골목에서는 망설임 없이 쓰레 기통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누군가 먹다 남긴 생선이었다. 남은 것은 머리와 가시뿐이었다. ‘오독오독 쩌업접접’ 생선 머리를 한입에 베어 물고 씹었다. 고소하고 맛있었다. 문 사장은 문득 벽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으악, 고...곰?”
그 곳 어둠속에 곰이 숨어 있었다. 문 사장은 너무 놀라 그 자리에 바짝 엎드렸다.
“.......”
제발 살려달라고 눈을 감고 빌었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문 사 장은 천천히 얼굴을 들고 벽 쪽을 다시 돌아봤다. 그곳엔 버려진 거울이 있었다. 거울 속에는 털로 뒤덮인 곰이 그대로 있었다. 생선뼈를 들고 있는 곰은 바로 문 사장 자신이었다. 커다란 덩치에 털이 수북한 모습은 누가 봐도 곰이었다.
‘탕’
그때 뭔가가 날아와 문 사장의 엉덩이에 박혔다. 이내 불꽃을 지지는 아픔이 느껴졌다. 엉덩이에 주사기가 대롱거리고 있었다. 문 사장은 숲속으로 도망 치려했지만 몸이 말을 듣 지 않았다. 힘없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자꾸 잠이 쏟아졌다.
“안 돼! 잠들면 안.......”
또다시 문 사장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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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잉 이잉잉’
낯선 기계음이 조금씩 선명하게 들렸다. 문 사장은 잠에서 깨어났지만, 정신은 여전히 몽 롱 했다. 눈을 뜨는 것도 힘겨웠다. 눈앞에 커다란 철창이 보였고, 사람들이 그 앞을 바쁘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몸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손과 발이 모두 묶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풀어줘.’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입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자, 어서 빨리 작업해.”
누군가 소리쳤다. 낯익은 목소리였다. 얼굴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비서였다. ‘나야, 날 모르겠어?’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비서의 명령에 사람들은 뭔가를 들고 철창 안으로 들어왔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문 사장은 저항도 못하며 사람들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지이이잉’
기계음이 들리고 한 사람이 뾰족한 물건을 손에 집어 들었다. 아주 굵고 기다란 주삿바늘처럼 보였다. 바늘의 날카로운 끝이 문 사장의 배를 향했다.
‘설마 설마......, 아니야.’
뾰족한 주삿바늘이 두꺼운 뱃가죽을 뚫고 들어왔다.
“흐어억!”
배가 불이 난 것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정신은 몽롱했지만 아픔은 그대로 전해졌다. 벌어진 입으로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아픔이었다. 얼마 후, 문 사장의 배에는 기다란 호스가 박혀 있었다. 몸에서 액체가 조금씩 빠져나가 호스를 타고 작은 병으로 흘러 들어갔다. 몸을 움찔거릴 때마다 뱃속을 후벼 파는 고통이 몰려왔다.
“마을에 내려온 곰을 잡았어요. 자연에서 자라서 아주 튼튼합니다. 훨씬 약 효도 좋을 테니 이건 꼭 드세요.”
잠깐의 정적. 비서는 다시 말을 이었다.
“사장님이 실종된 지 벌써 3개월입니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도련님이 튼튼해야죠.”
비서가 내민 약병을 받아든 것은 웅이였다. 문 사장의 눈이 번쩍 떠졌다.
‘아들, 아버지야. 나라고.’
문 사장은 배를 쑤셔대는 고통을 참아가며 발버둥 쳤다. 이빨로 호스를 끊어버리고 철창을 붙들고 울부짖었다. 갑작스러운 소동에 웅이는 두려움을 느끼고 더 멀어질 뿐이었다. 총을 든 사람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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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엉덩이에 전해지는 뜨거움. 문 사장은 철창을 쥔 손에 힘이 풀리며 바닥에 웅크려 앉았다. 웅이는 자꾸 뒤돌아보며 멀어져 갔다. 웅이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감겨가는 눈을 치켜떴지만, 쏟아지는 잠을 이길 수 없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새벽 동이 트기 직전이었다. 한동안 허공을 보고 멍하니 있던 문 사장 이 고개를 돌렸다. 옆 철창에는 어미 곰과 새끼가 함께 있었다. 자꾸 엄마 품을 파고들며 뒤척이는 새끼 곰. 어미 곰은 새끼를 다독이며 꼭 안아줬다. 그런 어미 곰의 배에도 기다란 호스가 꽂혀있었다.

문 사장은 고개를 돌려 몸을 일으켰다. 배에 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커허엉’ 크게 울어대며 바닥에 쓰러졌다. 손에 잡히는 아무거나 끌어안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조금씩 고통이 가라앉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에 먹이를 담아주는 스테인리스 그릇이 찌그러져 있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철창 안을 살폈다. 커다란 곰 하나 눕고, 일어설 만한 공간이었다. 문은 쇠사슬을 여러 번 감은 자물쇠로 잠겨있었다.
‘탈출하자!’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저택에 불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 이 없었다. 서서 미는 것은 힘을 주기 어려운 자세였다. 거꾸로 철창에 매달려 아래로 힘껏 당겼다. ‘끼익 끼이익’ 엇갈리는 쇳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철창이 조금씩 휘어져 내려왔다. 다시 한 번 힘껏 당겼다. 투툭! 고리 한쪽이 풀리며 철창이 휘어졌다. 빈틈이 생겼다. 그 부 분을 다시 힘껏 거꾸로 밀어 올렸다. ‘끼이익’ 철창이 휘어지며 넓은 공간이 생겼다.

저택에서 일꾼들이 몇 명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나왔다. 저택과의 거리는 대략 400미터.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또 기회는 없다. 천정으로 기어올랐다. 철봉을 붙들고 바닥으로 내려 가려 했다. 철창이 한쪽으로 쏠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울며 쓰러졌다. 나무판의 올려져 있던 철창이 땅으로 떨어졌다. ‘우당탕탕’ 아침 햇살에 먼지가 뿌옇게 일어났다. 다행히 철창이 옆으로 떨어져 다친 곳은 없었다. 하지만 요란한 소리 때문에 저택 쪽이 바빠졌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문 사장이 아픈 배를 움켜쥐고 숲 쪽으로 뛰려 할 때였다.
“커어헝”
어미 곰이 새끼를 문 앞에 세워두고 문 사장을 보며 울어댔다. 새끼 곰을 보자 웅이가 생 각났다. 하지만 도와줄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된다 해도 자물쇠를 뜯어낼 수는 없었다. 열 쇠가 있다면 모를까? 문 사장은 울어대는 곰들을 그냥 지나쳐 숲으로 달아났다. 저택에서 총을 들고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아!’
문 사장은 우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열쇠가 있었다. 철창 한쪽에 열쇠를 걸어두는 곳을 알고 있었다. 머뭇거리던 문 사장은 다시 몸을 돌려 곰들에게 달려갔다. 열쇠를 찾았다. 손을 뻗어 열쇠를 잡았다. 뚝! 열쇠는 자꾸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두 손에 권투 글러브를 낀 것 같았다. 두툼한 곰 손가락은 말을 잘 듣질 않았다. 어렵게 열쇠를 들고 어미 곰이 있는 철창 앞에 섰다.
“곰이 탈출했다.”
사람들이 소리쳤다. 문 사장은 양손바닥으로 열쇠를 움켜쥐고 자물쇠에 꽂으려 했지만, 자꾸만 빗나갔다. 열쇠는 그때마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제발, 제가 잘못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다시 돌려놓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문 사장은 울부짖었다. 떨어진 열쇠를 줍고 다시 또 줍길 반복하다 보니 손가락이 조금씩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커덕’ 자물쇠가 풀렸다. 어미 곰이 새끼를 데리고 철 창을 빠져나와 숲으로 달아났다. 어미 곰이 멈춰 서서 돌아봤다. 문 사장은 도망치지 않고 다른 곳 철창 자물쇠를 열고 있었다.
‘탕!’
두 번째 총소리가 들렸다. 총알은 문 사장의 어깨를 관통했다. 진짜 총알이었다. 문 사장 은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몸을 비틀어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개들은 짖어대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소란스러워졌다.
“도련님이 끝내셔요. 사장님은 도련님이 강하게 크길 원하셨어요.”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희미하게 총을 든 웅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 사장을 향해 총을 겨눈 웅이. 문 사장은 웅이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사람과 개들의 소리가 사라지 고 세상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탕!’
총소리가 들렸다. 먼 숲속에 새들이 푸드득 날아올랐다. 웅이는 허공을 향해 쏜 총을 던져버리고, 집 쪽으로 빠른 걸음을 걸었다. 그 옆에 얼굴이 빨개진 비서가 따라갔다.
“왜 그렇게 약하세요. 사장님도 실망하실 겁니다.”
비서의 말에 웅이가 멈춰 섰다.
“곰의 손봤어? 털은 좀 길어도 진짜 사람 손 같았다고. 그런데 어떻게 죽여.
잘 보살피다가 숲에 풀어줘. 다른 곰들도다. 이제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줘.”
웅이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은 강렬했다. 비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문 사장은 손등이 가려웠다. 힘없이 손등을 비벼 대었더니 털 사이로 피부가 느껴졌다.
문 사장은 감겨오는 눈을 감았다. 다음에 깨어났을 때는 다시 사람이 되어있길 간절히 바라며.
김태호(1972년생)_동화작가
그림책 『아빠놀이터』, 『삐딱이를 찾아라』, 동화 『네모돼지』, 『제후의 선택』, 『신호등 특공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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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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