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설의 처음과 끝

무라타 사야카 저 <편의점 인간> -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그 소설의 처음과끝 : 편의점 인간
그 소설의 처음과끝 : 편의점 인간
그 소설의 처음과끝 : 편의점 인간
소설의 처음

“편의점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손님이 들어오는 차임벨 소리에, 가게 안을 흐르는 유선방송에서 신상품을 소개하는 아이돌의 목소리.
점원들이 부르는 소리, 바코드를 스캔하는 소리. 바구니에 물건 넣는 소리,
빵 봉지 쥐는 소리, 가게 안을 돌아다니는 하이힐 소리.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편의점의 소리’가 되어 내 고막에 거침없이 와 닿는다.”

그 소설의 처음과끝 :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은 편의점을 가득 채운 소리들을 들려주며 시작한다. 주인공은 1998년부터 이 스마일마트 히이로마치 역전점에서 18년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서른여섯 살의 후루쿠라 게이코. 그녀는 손바닥이나 주머니 속에서 짤랑거리는 동전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그 손님이 담배나 신문을 재빨리 사서 돌아가려는 이임을 짐작하고, 완전히 몸에 밴 규칙들로 물 흐르듯 움직이며 상품을 진열하거나 계산을 한다. 요컨대 그녀는 편의점이라는 작은 세계의 부품 하나로 톱니바퀴처럼 회전하는 이이며, 오직 그럴 때만 더 큰 세계인 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자신을 인지한다.

출근하면 편의점 빵으로 아침을 먹고 휴식 시간에 편의점 주먹밥과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때우며 저녁을 위해 종종 그곳에서 음식을 사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 하물며 자신을 편의점 점원으로 ‘태어났다’고까지 말하는 그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편의점 인간’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러한 자기인식은 다소 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회가 그에 속한 누군가를 직업이라는 매개를 통해 구성원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이 별다른 것은 아니지만, 오로지 편의점에서 일하는 동안만 제 스스로 ‘인간’임을 받아들인다는 건 좀 너무한 것 아닐까. <편의점 인간>은 후루쿠라에게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설정을 부여하며 이 지점을 해결한다. 말하자면 그녀는 경증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앓는 일종의 소시오패스이며, 여동생의 말마따나 ‘사회 복귀’ 곧 리허빌리테이션(rehabilitation)을 위한 훈련을 하는 중이다. 이를테면 그녀는 같이 일하는 이즈미, 스가와라, 점장 등의 말투와 행동을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들이 언제 기뻐하거나 화를 내는지, ‘정상’인 이들은 어떻게 말하고 움직이는지를 끊임없이 관찰해 베끼며 그녀는 가까스로 ‘정상’적인 인간의 행세를 한다.

“특히 말투에 관해서 말하자면, 가까운 사람들의 말투가 나에게 전염되어
지금은 이즈미 씨와 스가와라 씨의 말투를 섞은 것이 내 말투가 되어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 내 말투도 누군가에게 전염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전염하면서 인간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p. 39~40

그 소설의 처음과끝 : 편의점 인간

남들의 시선을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이 나뉘는 것을 우리는 즉시 부당하다고 느낀다. 이는 다름을 너무 쉽게 틀림으로 치부하곤 하는 이 사회에 대한 염증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면 틀리지 않고 다르기가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간과하기 쉽지만 ‘사회’는 미리 완성된 형태로 존재해 있던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우리 서로 다른 인간들이 모여 살기 위해 함께 개발하고 오랜 시간 다듬어온 하나의 시스템이다.

유치원 시절 공원에서 발견한 죽은 새를 불쌍하다는 마음도 없이 구워 먹자고 말하거나, 초등학교에서 싸움이 붙은 남자아이를 말리기 위해 삽으로 그의 머리를 후려쳤던 후루쿠라의 반사회성은 ‘다름’으로 인정하며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길 수준이 아니다.

부모가 걱정했듯 분명 사회에 나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그녀가 편의점에서 다시 ‘태어나’ 공동체의 질서를 위협하지 않는 이로 자라는 과정은 우리가 ‘사회화’라고 부르는 과정과 완벽히 일치한다. <편의점 인간>이 일단 여기까지를 인정한다는 것을 놓치지 않아야만 이게 무슨 소설인지를 더 이야기할 수 있다.

“빨리 편의점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편의점에서는 일하는 멤버의 일원이라는 게 무엇보다 중요시되고, 이렇게 복잡하지도 않다.
성별도 나이도 국적도 관계없이, 같은 제복을 몸에 걸치면 모두 ‘점원’이라는 균등한 존재다.”

- p. 54

그 소설의 처음과끝 : 편의점 인간

휴무를 이용해 고향을 찾은 후루쿠라에게 친구 유카리는 여전히 결혼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는 거냐고, 연애해본 적은 있냐고 묻는다. 편의점 안에서 그녀는 ‘점원’이라는 균등한 존재로 자연스레 인정받지만, 그곳에서 한 발만 벗어나면 이런 질문들이 무시로 그녀를 침범해온다. 비록 그녀가 ‘정상’이라고 하기에는 결격인 이가 틀림없다 할지라도 그녀에게 “흙발로 쳐들어와 그 원인을 규명할 권리”(74쪽)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사람과 장소와 환대에 관한 아름다운 저술인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에 기대어 말하자면,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만이 그 누군가를 사회의 일원으로 환대하는 방법이다. 그런 환대를 받지 못한 이는 끝내 괴물이 되는 법, 편의점의 손님이나 동료에게 추파를 가장한 폭력적 접근을 거듭하다 쫓겨난 아르바이트생 시라하가 바로 그런 이다.

“모두가 보조를 맞춰야만 하는 거죠. 30대 중반인데 왜 아직도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왜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가.
섹스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태연히 물어봅니다. ‘창녀와 관계한 건 포함시키지 말고……’ 하는 말까지 웃으면서 태연히 하죠,
그놈들은. 나는 누구한테도 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데,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만으로 다들 내 인생을 간단히 강간해버려요.”

- p. 109

그 소설의 처음과끝 : 편의점 인간

시라하가 보기에 이 세상은 “현대사회의 거죽을 쓴 석기시대”(113쪽)에 불과하며, 그곳에서 “무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은 삭제되어”(112쪽) 간다. 서른다섯 살의 남성으로 ‘아직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가정을 꾸리지도 ‘못한’ 그에게 가해진 모욕으로 그는 세상을 혐오하기에 이른다. 흥미로운 점은 그 혐오가 그런 자신을 거두어 부양하는 것으로 ‘정상’에 조금이나마 다가서보려던 후루쿠라를 향해서까지 표출된다는 것이다.

그녀를 통해서는 자신의 “성욕을 처리”(131쪽)할 수 없다거나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기생충이 되는 게 용납되는 것들한테”(150쪽) 복수하기 위해 오기로라도 그녀에게 계속 붙어살 거라는 식의 말들에서 느껴지는 혐오는 너무 선명해 소름이 끼칠 정도다. 여기까지를 읽고 나면 후루쿠라가 여성임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나 그녀나 ‘흙발’로 마구 침범해오는 이들의 간섭에 시달리기로는 마찬가지인데, 그렇듯 같은 처지의 피해자인 그들 사이에서도 혐오가 한 방향으로만 다시금 작동한다는 것. 하필 2016년에 발표된 이 소설이 우리의 지금 여기를 비추고 있는 이 우연은 그저 우연이기만 한 걸까. 이는 일본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함부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문제이긴 하나, 하필 지금이라면 여기서 더 읽혀야 마땅하다는 말 정도는 선뜻 해도 좋으리라.

그 소설의 처음과끝 : 편의점 인간

저를 먹여 살려야 하니 돈을 더 벌어오라는 시라하의 독촉에 편의점을 관두고 새 직장에 면접을 보러 가던 길, 우연히 들른 편의점에서 이제 손님일 뿐인 그녀가 편의점의 ‘목소리’를 듣고 십팔 년 동안 계속해왔던 그 일들을 하는 것이 소설의 결말이다. 거기 그녀를 말리던 시라하에게 뱉는 한 마디에 <편의점 인간>이 무슨 소설인지 요약되어 있다. “나는 인간인 것 이상으로 편의점 직원이에요.”(192쪽) 인간이기 이전에도 아니고 인간임과 동시에도 아니고 인간인 것 이상으로 편의점 직원이라던 그 말. 기껏해야 부품일 수밖에 없는 그녀의 한계가 혹 안쓰러워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내게는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재발견한 그녀의 모습이 전에 없이 확신으로 가득 차 보인다.

오로지 편의점 직원일 때만 스스로를 인간이라 느끼는 거라면, 그러한 그녀만의 정체성 서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만이 우리의 몫이지 않을까. 아마 그게 맞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그녀가 행복해한다면 더더욱.

소설의 끝

나는 문득, 아까 나온 편의점의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손도 발도 편의점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자, 유리창 속의 내가 비로소 의미 있는 생물로 여겨졌다.

“어서 오세요!”

나는 갓 태어난 조카를 만났던 병원의 유리창을 생각하고 있었다.
유리창 저편에서 나와 아주 비슷한 밝은 목소리가 들린다.
내 세포 전체가 유리창 저편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에 호응하여
피부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편의점 인간>은 어떤 책?

이 책은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작가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소설로, 2016년 일본의 권위 있는 순수문학상인 제155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무라타 사야카는 시상식 당일에도 편의점에서 일하다가 왔다며, 자신에게 성역 같은 곳인 편의점이 소설의 재료가 될 줄은 몰랐다고 수상소감을 밝혔을 정도다. 모태솔로에 대학 졸업 후 취직 한 번 못 해보고 18년째 같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서른여섯 후루쿠라 게이코는 매일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정해진 매뉴얼대로 정리된 편의점 풍경에서 마음의 평안과 정체성을 얻는다.

사회가 인정하는 ‘보통 인간’이 되기 위해, 사회가 정해놓은 정상의 범주, 즉 규격에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보통 인간’인 척 살아가는 우리 시대 청년층의 이야기를 기괴하게 담아내고 있다.

<편의점 인간>의 또 다른 문장들 곱씹어보기

 

지문이 묻어있지 않도록 깨끗이 닦은 유리창 밖으로 바쁘게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루의 시작. 세계가 눈을 뜨고, 세상의 모든 톱니바퀴가 회전하기 시작하는 시간. 그 톱니바퀴의 하나가 되어 돌고 있는 나. 나는 세계의 부품이 되어 이 ‘아침’이라는 시간 속에서 계속 회전하고 있다. - p. 9

아침에는 이렇게 편의점 빵을 먹고, 점심은 휴식 시간에 편의점 주먹밥과 패스트푸드로 때우고, 밤에도 피곤하면 그냥 가게 음식을 사서 집으로 돌아올 때가 많다. 2리터들이 페트병에 든 물은 일하는 동안 절반쯤 마시고, 그대로 에코백에 넣어 집으로 가져와서 밤까지 마시며 보낸다. 내 몸 대부분이 이 편의점 식료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나 자신이 잡화 선반이나 커피머신과 마찬가지로 이 가게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 p. 31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으면 그런 곳에서 일한다고 멸시당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나는 그게 몹시 흥미로워서 그렇게 깔보는 사람의 얼굴 보는 걸 비교적 좋아한다. 아, 저게 인간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 p. 81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서 삭제된다. 가족이 왜 그렇게 나를 고쳐주려고 하는지, 겨우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p. 98

그래서 깨달았어요. 이 세상은 석기시대와 다를 게 없다는 걸. 무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은 삭제되어 갑니다. 사냥을 하지 않는 남자,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 현대사회니 개인주의니 하면서 무리에 소속되려 하지 않는 인간은 간섭받고 강요당하고, 최종적으로는 무리에서 추방당해요. - p. 112

몸 속에 편의점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와서 멈추질 않아요. 나는 이 목소리를 듣기 위해 태어났어요. 이제 깨달았어요. 나는 인간인 것 이상으로 편의점 직원이에요. 인간으로서는 비뚤어져 있어도, 먹고 살 수 없어서 결국 길가에 쓰러져 죽어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내 모든 세포가 편의점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요. - p. 188

 

문학평론가 황현경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2012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평론 <반격! 김사과>로 등단 / 현재 명지대, 서울예대, 추계예대 등에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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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6-21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