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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시

파도소리를 소리 나는 대로 쓰시오

생활의 시 : 김수열의 시 <파도소리 /> 생활의 시 : 김수열의 시 <파도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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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시 : 정답을 찾기 위해 길어지는 고민의 시간 생활의 시 : 정답을 찾기 위해 길어지는 고민의 시간

정답을 찾기 위해
길어지는 고민의 시간

“음… 애매한데…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다시 살펴보도록 합니다.”

며칠째 이어지고 회의. 마땅한 답이 보이지 않아 ‘다시 처음부터’를 반복하는 동안 팀원들도 많이 지친 듯했다. 특히, 이 상황이 답답하고 못마땅한 이 대리는 나 몰래 이런 하소연도 늘어놓고 있었다.

“팀장님이 이쪽으로 정말 빠삭하긴 하지. 그럼 뭐 해. 확신을 못 하시는데! 이미 답은 나와 있는데 왜 저렇게 헤매시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이 대리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동안 팀원들이 열심히 준비해온 자료와 아이디어로도 충분히 좋은 결론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관련 업계 지인들을 통해 듣는 시장 상황이나 근거 없는 회사 내부 상황에 대한 얘기까지 고려하다 보면 무엇이 더 나은 결정, 옳은 판단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것이 팀원들은 모르는 내 입장이었다.

생활의 시 : 왜 틀렸는지 알수 없는 아들의 시험문제 생활의 시 : 왜 틀렸는지 알수 없는 아들의 시험문제

왜 틀렸는지 알 수 없는
아들의 시험 문제

그렇게 오늘도 나는 답을 찾지 못한 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해야 했다. 집에 들어가는데 평소엔 현관부터 달려들던 아들 녀석이 오늘은 시무룩하게 앉아있었다. 왜 그러나 싶어 아내에게 물었더니 아내가 시험지 한 장을 가져와 내밀며 말했다.

“오늘 동훈이 수업 끝날 때맞춰서 데리러 갔었거든. 근데 다른 애들 다 나오는데 동훈이만 안 나오더라고. 알고 봤더니 시험 문제 답을 하나 못 써서 낑낑대고 있지 뭐야.”

문제는 단순했다. 파도소리를 소리 나는 대로 쓰시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게 왜 틀렸어? 철썩철썩, 출렁출렁 이런 게 답 아냐?”

“나도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이따가 교과서 한 번 보려고. 무슨 그런 문제가 다 있대?”

나는 시험문제와 맥없이 앉아있는 아들 녀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끝까지 교실에 남아 저 조그만 머리로 골을 내고 있었을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아내가 아들 곁에 앉아 그 작은 어깨를 감싸면서 말했다.

“훈아, 철썩철썩. 엄마도 파도소리가 그렇게 들리는데? 네 생각에 그렇게 들리면 그게 정답인 거야. 아니라고? 그럼 엄마가 선생님한테 따져야지. 왜 맞는데 틀렸다고 하냐고 말이야.”

지나가며 그 말을 듣는데 순간 머릿속이 번뜩했다.

생활의 시 : 결국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는 깨달음

결국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는
깨달음

지나가며 그 말을 듣는데 순간 머릿속이 번뜩했다. 내가 내놓는 것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면 된다. 그리고 정답으로 만들면 된다.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 나와 우리 팀이 함께 고생하며 준비해 왔지 않은가! 다음날, 나는 응어리져 있던 고민들을 내려놓고, 나와 우리 팀에 주어진 답안지를 작성하기로 했다.

“이 방향으로 가는 걸로 합시다. 박 과장, 이 대리 이따 오후에 디벨롭할 수 있게 준비하고! 여기까지 오느라 다들 수고했으니 오늘 점심은 내가 한턱 내지!”

“우와, 정말요?”

그리고, 며칠 후 아내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힘들게 산 비타민 잘 좀 챙겨 먹으라고!”

“여보, 그 시험문제 답 있잖아. 말 그대로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거였어. ‘파돋쏘리’ 이렇게 말이야.”

“……”

아들이 국어 시험을 봤대나?
다른 애들은 답안지 받자마자 룰루랄라
콧노래 부르면서 내고 가는데
하, 이 녀석만 꿍꿍대더란 말이지
무슨 문제인고 하니
파도소리를 소리 나는 대로 쓰라는 거야


바다에서 나고 자란 녀석이라
꿈속에서도 들었던 게 파도소린데
막상 그 소리 떠올리려니
덜 여문 머리통에 쥐가 나더라는 거야


교실에 저 혼자 남았는데
선생님은 자꾸 눈치 주지
애들은 유리창에 매달려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하지
고추 꼭 잡아도 찔끔찔끔 오줌은 지려오지
에라, 모르겠다
처얼썩 처얼썩이라 후다닥 쓰고 나왔대
근데, 그게 아니래. 틀렸대


아니라고?
그럼, 쏴아 쏴아?

김수열의 시 <파도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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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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