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시

내겐 너무 소중한 당신

생활의 시 : 박제영의 시 아내 생활의 시 : 박제영의 시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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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시 : 일상 곳곳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익숙한 잔소리 생활의 시 : 일상 곳곳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익숙한 잔소리

일상 곳곳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익숙한
잔소리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나 마무리하고 모처럼 만에 여유가 생긴 주말이었다. 야구 경기나 실컷 보자 싶어 TV 리모컨을 들고 소파에 누웠는데,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던 아내의 잔소리가 들려왔다.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안 된다니까! 근데, 식탁 위에 꺼내놓은 비타민은 먹었어?”

“아차, 깜박했다. 지금 먹을게.”

아내는 늘 비타민 영양제를 챙겼다. 밥, 반찬 잘 먹고 제철 과일만 먹어도 건강할 수 있다면서도 비타민을 하루라도 거르면 큰일 날 듯 어찌나 극성인지. 아침 식사 후 한 알, 그런 일상이 십여 년 정도 됐으면 알아서 챙겨 먹는 습관이 들 만도 한데, 난 오히려 꼭 그렇게 아내에게 한 소리를 듣고 나서야 먹는 게 더 당연해지고 있었다. 냉큼 비타민 한 알을 먹고 돌아와 다시 티브이 야구 경기를 보고 있는데, 아내가 마른 셔츠를 한 아름 안고 소파 아래 앉았다. 그리고 다림질 판을 펼치며 말했다.

“여보 내가 어제 책에서 봤는데, 한 여자가 사고로 눈이 멀었대. 그런데 남편이 매정하게 그러더래. 계속해서 당신을 돌봐줄 수 없으니까 이제 당신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되지 않겠냐고 말이야. 여자는 그 말이 섭섭했나 봐. 그래도 어쩌겠어. 혼자 시장도 가고 버스도 타고 해야지.”

나는 야구 경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아내의 말을 대충 넘겨들으며 답했다. “남편이 잘 했네. 좀 섭섭해도 나중에 보면 그게 잘 한 거야.”

생활의 시 : 아내가 들려준 부부 이야기만큼이나 내겐 너무 소중한 당신 생활의 시 : 아내가 들려준 부부 이야기만큼이나 내겐 너무 소중한 당신

아내가 들려준 부부 이야기만큼이나 내겐
너무 소중한 당신

“아니, 마저 들어봐. 그렇게 일 년 정도 지난 어느 날이었는데, 여자가 버스를 타고 운전사 뒷자리에 앉아서 어딜 가고 있었대. 그러다 라디오 사연을 하나 듣게 됐는데, 어떤 남자가 지극한 사랑으로 아내를 보살피는 얘기였나 봐. 여자가 그걸 듣고 ‘저 여자 참 부럽다’하고 넋두리를 하게 된 거지. 근데, 그 말을 들은 버스기사가 뭐라는 줄 알아? “아줌마는 부러울 것도 많소! 아줌마 남편이 더 대단하지. 하루도 안 거르고 아줌마 뒤만 졸졸 따라다니잖아요. 뭐가 그렇게 좋은가 몰라.” 글쎄 눈먼 아내 뒷자리에 남편이 타고 있었던 거야. 완전 감동적이지 않아? 말은 그렇게 해도 항상 염려되고 걱정돼서 혼자서도 잘 다니는지 쫓아다니면서 봐주고 있었다는 거잖아.”

나는 그제서야 아내를 돌아보았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더라. 내가 이래라저래라 왜 제대로 안 하냐 잔소리하는 것도 다 그렇게 언제까지 당신을 돌봐줄 수 없으니까 하는 말 같아서.”

“나는 주야장천 자기 잔소리가 있어야 움직이는 로봇인 거 몰라? 잔소리 없으면 나 출근도 안 해. 나 출근 안 해봐라. 우리 뭐 먹고살아? 자기가 그렇게 챙기는 비타민도 못 사요.”

나는 주절주절 괜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건 진심이었다. 늘 뒤에서 챙겨주는 아내가 없다는 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웃으며 다림질을 계속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힘들게 산 비타민 잘 좀 챙겨 먹으라고!”

다림질하던 아내가 이야기 하나 해주겠단다
아내가 사고로 눈이 멀었는데,

남편이 그러더래.
언제까지 당신을 돌봐줄 수는 없으니까
이제 당신 혼자 사는 법을 배우라고
아내는 섭섭했지만
혼자 시장도 가고 버스도 타고
제법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대.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버스에서 마침 청취자가 사연을 읽어주는
라디오 방송이 나온 거야.
남편의 지극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아내가 혼잣말로 그랬대. 저 여자 참 부럽다.
그 말을 들은 버스 기사가 그러는 거야.
아줌마도 참 뭐가 부러워요. 아줌마 남편이 더 대단하지.
하루도 안 거르고 아줌마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구만.
아내의 뒷자리에 글쎄 남편이 앉아 있었던 거야.
기운 내 여보,
남편의 어깨를 빳빳이 다려주는 아내가 있다.

박제영의 시 <아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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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5-08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