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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시

내가 언제나 지는 게임을 하는 이유

생활의 시 : 이재무의 시 배드민턴과 사랑 생활의 시 : 이재무의 시 배드민턴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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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시 : 항상 지는 게임을 연출해야만 했던 아버지와의 배드민턴

항상 지는 게임을 연출해야만 했던
아버지와의 배드민턴

지난 주말 베란다 대청소를 하다가 낡은 셔틀콕 하나가 나왔다. 어느 구석에 박혀있었는지 깃털이 다 빠지고 모양도 찌그러져 있었다. 나는 셔틀콕을 보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함께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하던 때를 떠올렸다.

나이 들수록 근육이 필요하다며 예순을 기점으로 운동을 시작했던 아버지는 한동안 배드민턴을 즐기셨다. 야심 차게 출전했던 동네 배드민턴 대회에서 수상 한 번 못했지만 나이에 비해서 단단한 몸, 그리고 단단한 자존심을 가지고 계셨다. 나는 아버지와 내기 게임을 할 때마다 어머니의 부탁에 못 이겨 항상 아슬아슬하게 지는 게임을 연출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기분 좋게 웃으시며, 패자를 위로하는 여유를 부리곤 하셨다.

생활의 시 : 아버지를 꼭 닮은 아들을 위해 다시 지는 게임을 시작한 나 생활의 시 : 아버지를 꼭 닮은 아들을 위해 다시 지는 게임을 시작한 나

아버지를 꼭 닮은 아들을 위해
다시 지는 게임을 시작한 나

세월이 흘러 크고 단단했던 몸은 작은 병마도 이기지 못할 만큼 쇠약해졌지만 언제나 아들한테 지지 않는 아버지라는 자존심만큼은 굳건하셨다.

“배드민턴 연습은 좀 하고 있냐? 평생 한 번은 나를 이겨봐야 안 되겠어?”

“저 연습 많이 했어요. 날 풀리면 나가서 한 게임해요, 아버지.”

그 자존심을 지켜드리는 것이 어머니와 내가 마지막까지 해드릴 수 있는 사랑이었다. 나는 그때 생각이 난 김에 아들 녀석을 데리고 공원에 나가 배드민턴을 치기로 했다. 나갈 채비를 하는 나에게 아내는 귓속말을 건넸다.

“여보 쟤 성격 알지? 이런 게임에서 지면 종일 운다니까? 누굴 닮은 거야? 아무튼 알아서 잘 져줘.”

“알았어. 내가 일부러 지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할 수 있다니까!”

그렇게 나는 다시 배드민턴을, 그리고 언제나 지는 게임을 시작했다.

주말이면 아이와 나는
집 앞 공터에서 배드민턴을 쳤습니다.
5전 3선승제.
1세트는 내가 이깁니다.
2세트는 가까스로 집니다.
이때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부러 진 것을 알면 아이가 화낼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트에 가서 듀스를 거듭하다가 힘들게 집니다.
그리고는 연기력을 발휘하여 분하다는 듯 화를 냅니다.
마른 미역처럼 구겨진 얼굴을 하고 있는 내게
아이는 미안한 표정 지으면서도 한결 업된 기분 참을 수 없는지
탄력 좋은 공처럼 통통 튀면서 경쾌하게 집으로 돌아갑니다.
배드민턴을 치면서 나는 들키지 않게 져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의 셔틀콕이 네트를 넘어 널리 멀리 퍼져나가면
그것처럼 큰 사랑은 없겠지요?

이재무의 시 <배트민턴과 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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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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