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문학 기행

진짜 셰익스피어는 누구인가?

다큐 문학 기행 : 진짜 셰익스피어는 누구인가? 셰익스피어 다큐 문학 기행 : 진짜 셰익스피어는 누구인가? 셰익스피어

1987년 9월 25일 미국 워싱턴에서 모의재판이 열렸다. 대법원 판사 세 명이 배석한 이 재판은 400여 년 전 죽은 한 사람의 정체를 밝히는 자리였다. 그는 바로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유명 희곡을 남긴 윌리엄 셰익스피어. 재판은 정말 그가 그 작품들을 썼는지를 가리는 자리였고, 문학 관련 전문가들은 배제한 채 순수하게 법률적 견지에서만 증거들이 검토됐다. 그리고 판사는 결론을 내렸다. 셰익스피어가 작가가 아니라는 음모설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결론은 명확했지만 이후에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정체를 둘러싼 의심은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셰익스피어에 대한 구구한 추측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87년 9월 25일 미국 워싱턴에서 모의재판이 열렸다. 대법원 판사 세 명이 배석한 이 재판은 400여 년 전 죽은 한 사람의 정체를 밝히는 자리였다. 그는 바로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유명 희곡을 남긴 윌리엄 셰익스피어. 재판은 정말 그가 그 작품들을 썼는지를 가리는 자리였고, 문학 관련 전문가들은 배제한 채 순수하게 법률적 견지에서만 증거들이 검토됐다. 그리고 판사는 결론을 내렸다. 셰익스피어가 작가가 아니라는 음모설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결론은 명확했지만 이후에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정체를 둘러싼 의심은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셰익스피어에 대한 구구한 추측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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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400년 전 사망한 작가를 둘러싼 끊임없는 논란

다큐 문학 기행 : 셰익스피어는 평민 집안 출신으로, 대학 교육도 받지 못했다.
셰익스피어는 평민 집안 출신으로, 대학 교육도 받지 못했다.
영국인들에게 있어 셰익스피어는 그냥 문호가 아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영국인마저도 해설서를 놓고 봐야 할 정도로 셰익스피어의 영어는 넓고 깊다. 하지만 오늘날의 막대한 명성에 비해 그에 관한 기록은 드물다. 한편의 시나 편지, 희곡, 그 어떤 자필 원고도 발견되지 않았다.
셰익스피어 회의론자들은 통속적인 글을 쓴 것이 부끄러웠던 어느 귀족 지식인이 셰익스피어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철학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이 진짜 작가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의 출발은 바로 셰익스피어에 대해 알려진 사실들이었다. 런던에서 120km 떨어진 시골 마을,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평민 집안 출신. 사람들이 그의 이런 배경을 두고 풍부한 지식과 교양을 글로 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시골 청년이 위대한 작가가 되기까지

다큐 문학 기행 : 셰익스피어가 서른 살 이전에 발표한 세 편의 희곡들
셰익스피어가 서른 살 이전에 발표한 세 편의 희곡들
셰익스피어는 1564년 4월 영국 중부 농촌 마을 스트랫퍼드에서 태어났다. 당시 영국 계급사회에서 셰익스피어의 집안은 평민이었는데, 아버지 존은 아들이 상류층으로 성장하길 바라며 학교에 입학시켜 라틴어를 배우게 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가세가 기울면서 셰익스피어는 생계를 위해 법률사무실에 취업을 하게 된다. 그 무렵 그는 서가에 꽂힌 책들을 모두 읽고 연극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열여덟 살에 8세 연상인 앤 해서웨이와 결혼하지만, 딸과 쌍둥이를 낳은 뒤에는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상경한다. 그리고 떠도는 생활을 이어가던 중 극단에서 조연급 배우로 활동하다 희곡을 쓰기 시작한다. 당시는 관객층이 얇아 같은 연극을 장기 공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거의 매일 새로운 연극을 올려 관객을 끌어야 했는데, 작가들은 기존 희곡의 줄거리와 대사만 조금 새롭게 다듬어 무대에 마구잡이로 올렸다. 이런 상황에서 셰익스피어는 자신만의 순수 창작극을 써서 발표해 단연 돋보였다.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그는 <베니스의 상인>, <한여름 밤의 꿈>, <헨리 4세>와 같은 수많은 희곡을 썼다.

연극이라는 무대 위에 인생을 재현한 셰익스피어

다큐 문학 기행 : 세상을 무대에 비유하며 우리 인생에서 소재를 찾은 셰익스피어
세상을 무대에 비유하며 우리 인생에서 소재를 찾은 셰익스피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죽은 듯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에 맞서 싸워 물리쳐야 하는가.”
- <햄릿> 중에서


햄릿의 유명한 독백처럼 그는 인생을 관통하는 촌철살인의 명대사를 많이 남겼다. 당시에도 주인공들의 대사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유행하면서 그의 연극은 왕실의 인정을 받고, 런던 사교계에서도 유명인사에 오른다. 특히, 엘리자베스 여왕 1세는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셰익스피어를 아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귀족들의 사랑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글을 몰랐던 문맹들, 난생처음으로 극장 구경을 나온 시골 촌부들까지도 매료시켰다. 이렇게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계급이나 학력에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사랑받은 것은 부패하거나 몰락한 귀족, 늙어가는 왕, 재산을 노리는 아들,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 등 우리의 인생에서 소재를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의 내면을 다양하고 예리하게 그려낸 셰익스피어는 세상을 무대에 비유했고, 연극이라는 무대 위에서 인생을 재현했다.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 형편없는 연기자에 지나지 않아. 무대에 주어진 시간 동안 거들먹거리고 조바심치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들리지 않지.”
- <맥베스> 중에서

인류 역사상 길이 남을 4대 비극을 완성하다

다큐 문학 기행 : 셰익스피어의 유고를 모아 ‘퍼스트 폴리오’를 출간한 해밍과 콘델
셰익스피어의 유고를 모아 ‘퍼스트 폴리오’를 출간한 해밍과 콘델
셰익 스피어는 1590년부터 1613년까지 24년간 극작가 활동을 하며 극단 안에 있는 작업실 책상에 앉아 끊임없이 써 내려갔고, 그곳에서 <햄릿>, <오셀로>, <리어 왕>, <맥베스> 인류에게 길이 남을 4대 비극을 포함한 명작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살아생전 이미 유명한 극작가였지만 따로 책을 출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그의 걸작이 오늘날까지 남아 전해지는 것은 셰익스피어 연극 전문 배우이자 동료였던 존 해밍과 헨리 콘델, 두 사람 덕분이다. 해밍과 콘델은 셰익스피어가 죽은 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유고를 모으기 시작했고, 7년 뒤 ‘퍼스트 폴리오(First Folio)’라 불리는 희곡 모음집을 발간했다.
셰익스피어의 초상화를 비롯해 36편의 극본이 수록된 퍼스트 폴리오는 현재 228권이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지며, 셰익스피어 별세 400주년 기념으로 열린 2016년 경매에서는 250만 파운드, 한화 약 43억 3천만 원에 팔리기도 했다.
다큐 문학 기행 : 진짜 셰익스피어는 누구인가? 셰익스피어

“한번 가면 나는 온 세상에서 죽은 몸이지만 자네 이름 지금부터 영성을 얻으리니, 땅은 내게 흔한 무덤 줄 수 있을 뿐이나 자네는 사람들 눈앞에 묻혀 있을 것이네.”
- 셰익스피어 묘비명

1616년 4월 23일 셰익스피어는 세상을 떠났고 고양은 스트랫퍼드에 묻혔다. 그리고 그의 묘비명대로 대영제국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작품은 살아남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본 셰익스피어 작품집 서문을 쓴 벤 존슨은 셰익스피어를 이렇게 정의한다.

“셰익스피어는 한 시대가 아닌, 모든 시대를 관통한다.”
- 벤 존슨

“숨이 가장 강한 곳, 바로 사람 입 속에서 자네는 내 글의 힘으로 계속 살 것이네.”
- <셰익스피어 소네트 8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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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6-08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