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설의 처음과 끝

한강 저 <소년이 온다> - 그날, 광주

그 소설의 처음과끝 : 그날,광주
그 소설의 처음과끝 : 그날,광주
그 소설의 처음과끝 : 그날,광주 소년이 온다
소설의 처음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그 소설의 처음과끝 : 그날,광주 소년이 온다

그날, 광주에는 아침 한때 비가 내렸다. 강수량 0.1mm, 평균기온 14.5℃. 늦봄치고 쌀쌀한 날씨에 아침부터 내린 비가 전라남도청 광장에 모여든 3만여 시민들의 머리 위에도,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던 2만여 계엄군의 머리 위에도 공평하게 떨어졌다. 그날, 1980년 5월 26일에서 27일로 넘어가던 순간, 시외전화선을 차단한 계엄군에 의해 광주는 철저히 고립되었다.

새벽 3시경, 최후의 항전을 다짐하던 시민군의 마지막 방송이 시내로 퍼져나갔다. 새벽 4시, 진압이 시작되었다. 새벽 5시를 조금 넘긴 시각, 도청을 비롯한 시내 전역이 함락되었다. 5월 18일 아침, 계엄 해제를 외치던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공수부대원들에 의해 짓밟히며 시작된 열흘이 그렇게 종료되었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아는 사실이다.

최후의 날 도청에서 희생당한 이들 중 동호 나이의 중학생은 없다. 그러니 작가 스스로 개인사가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고 밝힌 에필로그(눈 덮인 램프)의 몇몇 지점들, 예컨대 아버지가 선생으로 재직했던 ㄷ중학교와 관련한 진술 등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20일 밤부터는 계엄군이 총기를 꺼내 들었고, 본격적인 조준 사격은 21일 오후 1시 정각 도청 옥상 스피커에서 울려 퍼진 애국가를 배경으로 시작되었다. 총격의 희생자들을 구하러 뛰어간 이들에게까지 사격이 가해진 것은 여럿의 진술을 통해 확인되는 엄연한 사실이나, 동호가 가공의 인물이니만큼 그의 친구 정대가 총탄에 쓰러졌다는 것도 허구다. 그러니까 이것은 소설이지 역사가 아니다. 역사에는 역사의 몫이 있듯 소설에는 소설의 몫이 있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역사도 소설도 다 필요하다.

그 소설의 처음과끝 : 그날,광주 소년이 온다
그 소설의 처음과끝 : 그날,광주 소년이 온다
영상 이미지 제공: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한강의<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이다. 다시,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한강의 소설이다. 어순이 바뀌면 의미도 완전히 달라진다. 앞의 것은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는 그날 새벽 가두방송의 염원에 화답했던 수많은 서사들의 목록에 더해질 소설이라는 뜻인데, 물론 이 정도 설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뒤의 것은 한강이 어떤 작가인지 아는 독자에게는 더 설명할 것도 없는 문장이다. 2016년 맨부커상 수상으로 새삼스레 거듭 화제가 되었던 <채식주의자>에서도 확인되듯 한강 소설의 초석은 언제나 통증과 그것을 느끼는 육체다. 찔리면 당연히 아픈 법이지만, 찔리면 아프다는 그 당연한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한강만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가는 없다.

작가가 항쟁의 그해 초 열 살의 나이로 가족과 함께 서울로 거처를 옮긴 것은 사실이다. 열세 살 때 아버지인 한승원 소설가가 가져온 광주 사진집을 몰래 펼쳐본 것까지도 사실이다. 그러자 인간이 무섭게 느껴졌다고 그는 회고한 바 있다. 나아가 저 또한 인간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고도. 그날, 광주에서는 찌른 이도 찔린 이도 모두 인간이었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그럴 수 있는지 도무지 믿기지가 않지만, 인간에게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인간뿐이라는 잔인한 진실을 외면할 수도 없다. 출발점이 이러하니만큼 <소년이 온다>는 역사의 한 장면을 복원하는 것을 목표하지 않는다. 역사의 한 극점(極點)을 거칠 때면 첨예해지곤 하는 질문, 곧 인간은 무엇인가를 묻고 또 묻는 게 이 소설의 목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p. 95

그래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한강의 소설이므로 가장 먼저 제출되는 답은 역시 ‘육체’다. 영원한 소멸인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 최후의 순간을 예감하게끔 하는 통증을 외면하려 안간힘 쓰는 존재. 이렇듯 생명의 항상성 유지를 위한 자연스러운 활동일 뿐인 것이 타의로 그것을 중지당한 이들 앞에서는 사치와 수치가 된다. 도청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인 3장(일곱 개의 뺨), 4장(쇠와 피), 5장(밤의 눈동자), 그리고 동호를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인 6장(꽃 핀 쪽으로) 모두에서 그들은 어김없이 숨 쉬고 먹고 잔다. 그러면서 그 구차한 육체의 생을 부끄러워한다. 잊으려 하나 잊지 못하고,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떠오르는 기억에 몸서리친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초과분이, 그 참혹한 고통이 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부여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이런 말들과 오래 싸우는 중이다.

그 소설의 처음과끝 : 그날,광주 소년이 온다
그 소설의 처음과끝 : 그날,광주 소년이 온다
영상 이미지 제공: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 p. 119

그 소설의 처음과끝 : 그날,광주 소년이 온다
영상 이미지 제공:518 민주화운동기록관

이 싸움에 누구보다도 치열한 이는 다름 아닌 작가 자신이다. 여섯 개의 장과 에필로그까지 각기 다른 시점(視點)을 취한 소설의 형식 자체가 증거다. 비교적 익숙한 삼인칭 시점의 2장도 있지만, 동호를 ‘너’로 칭하는 1장(어린 새)이나 마지막 밤 도청을 떠난 진숙을 ‘당신’으로 부르는 5장은 이인칭이라 할 만한 시점으로 서술된다. 당사자인 그들과의 불가피한 거리감 때문일 터이다.

그런가 하면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킨 진수의 이야기를함께 수감되었던 이의 입을 통해 전하는 4장(쇠와 피)이나 동호 어머니의 사투리를 그대로 옮긴 6장은 강력한 증언의 형태를 띤다. 특히 2장(검은 숨)은 항쟁 초기에 희생당한 정대의 혼을 화자로 설정해 놓았다. 이러한 장들에서 작가는 저 자신의 몸, 펜을 손에 쥔 그 몸을 빌려주는 이다. 기록하는 이로서 더는 좁혀질 수 없는 거리에서 오는 고통과 생존자로서 제 육체를 내어줄 때 생생히 실감되었을 고통, 이 이중의 고통을 감내하는 동안 그는 소설가 이전에 한 인간의 몫을 치르고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이 초혼극(招魂劇)은 그런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죽어 없는 이들의 혼과 살아있되 살아있는 게 아닌 이들의 혼을 좀처럼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힘겹게부르며.

어이, 돌아오소.
어어이, 내가 이름을 부르니 지금 돌아오소.
더 늦으면 안되오. 지금 돌아오소.
(…)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 p. 100
그 소설의 처음과끝 : 그날,광주 소년이 온다

지난 2월,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는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꺼져갔는지를 정확히 헤아리지 못한다. 그날 광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죽은 자는 침묵하며 떠났으니 우리가 역사를 고쳐가며 다시 쓰는 것은 그들을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만도 아닐 것이다. 우리가 인과의 시간 중에 살고 있다는 것, 지난 시공간의 결과를 통과하는 중이며 또한 그렇게 살아낸 시간들의 결과가 앞으로의 시공간에 펼쳐지리라는 것, 이를 새기기 위해 우리는 거듭 뒤를 돌아본다. 아니, 반대다. 돌아보다 보면 자연스레 그러한 인과의 감각이 우리에게 새겨진다.

그 과정에 회고의 장르인 소설만큼 훌륭한 길잡이는 없다. 그렇게 소설은, 허구는, 이 그럴 법하게 꾸며진 가짜 이야기는 과거형의 진실을 현재진행형으로, 그들의 진실을 우리의 진실로 되살린다. 기도도 묵념도 없이 묵묵히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순간에 그 진실이 천천히 스며들어 온다. 그렇게 소년이 온다.

소설의 끝

“기도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묵념하지도 않았다. 초들은 느리게 탔다.
소리없이 일렁이며 주황빛 불꽃 속으로 빨려들어 차츰 우묵해졌다.
한쪽 발목이 차가워진 것을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의 무덤 앞에 쌓인
눈 더미 속을 여태 디디고 있었던 것이다.
젖은 양말 속 살갗으로 눈은 천천히 스며들어왔다.
반투명한 날개처럼 파닥이는 불꽃의 가장자리를 나는 묵묵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소년이 온다>는 어떤 책?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로,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거쳐 저자 특유의 정교하고도 밀도 있는 문장으로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게 된 중학생 동호와 주변 인물들의 고통 받는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중학생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매일같이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며,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히던 동호는 순간순간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날, 돌아오라는 엄마와 돌아가라는 형, 누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동호는 도청에 남는다. 동호와 함께 있던 형과 누나들은 5·18 이후 경찰에 연행되어 끔찍한 고문을 받으며 살아 있다는 것을 치욕스러운 고통으로 여기거나 회복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진다. 저자는 5·18 당시 숨죽이며 고통 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그날의 광주를 고통스럽게 되살려내고, 다시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준다.

<소년이 온다>의 또 다른 문장들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 p. 57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 p. 79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 p.134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 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 p. 192

 

문학평론가 황현경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2012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평론 <반격! 김사과>로 등단 / 현재 명지대, 서울예대, 추계예대 등에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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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5-10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