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스캔들

비운의 명작 <닥터 지바고>와 노벨상 스캔들

희대의 스캔들 : 비운의 명작 닥터지바고와 노벨상 스캔들 희대의 스캔들 : 비운의 명작 닥터지바고와 노벨상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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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윈스턴 처칠의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

희대의 스캔들 :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윈스턴 처칠의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 />
1901년부터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상. 히틀러에 맞서 전생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또한 1953년 노벨상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전 세계는 그의 노벨상 수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노벨평화상이 아닌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기 때문. 그가 6년 동안 야당을 이끌면서 집필한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이 수상 작품이었다. ‘역사적인 묘사의 탁월함과 최고의 인간적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작가가 사용한 화려한 웅변술’이 선정 사유였다. 왜 노벨위원회는 이렇게 복잡한 이유를 들어 기어이 처칠에게 상을 주고 싶었을까? 나치의 야만성에 단호히 맞서 싸운 처칠에게 상을 주고 싶었던 노벨위원회. 그러나 노르웨이에서는 처칠에게 노벨평화상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신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것.
처칠에게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는 즉시 어느 부문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스탈린 사후에 세계 질서를 논의해야 한다는 이유로 시상식장에 참석하지 않고 아내를 대신 보낸 처칠. 만약 노벨평화상이 주어졌더라도 시상식장에 참석하지 않았을까?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기 위해 활용된 노벨문학상

희대의 스캔들 :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기 위해 활용된 노벨문학상
노벨상을 받은 대부분의 학자들은 전 세계적인 명성과 부를 얻으며 ‘노벨상 효과’를 톡톡히 보게 된다. 그러나 여기, 화려한 영광스러운 광채 뒤 노벨상 역사에 다시없을 스캔들을 일으키며 역사 속에 스러져간 한 남자가 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한 노벨문학상의 수상 배후에 CIA의 음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1958년 의문의 소포가 CIA 본부에 배달된다. 영국 정보국 MI6가 보낸 소포에 담긴 것은 바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 <닥터 지바고>를 찍은 사진 필름 2통. 어떤 정치적 선택도 가능하지 않던 시기에 끊임없이 자유를 추구하며 새로운 삶을 갈망하는 닥터 지바고의 이야기. 러시아 혁명과 공산주의에 대한 환멸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소련 당국에게 출판 금지를 당한 이 책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기 위한 선전 수단으로 안성맞춤이었다.
CIA는 즉각 <닥터 지바고>를 인쇄해 전 세계에 배포하는 작전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 해, 파스테르나크는 노벨문학상에 선정됐다. 그러나 노벨문학상 최초로 작가가 노벨상을 거부하는 초유의 스캔들이 발생한다. 노벨문학상의 수상을 거부한 이 사건은 당시 전 세계에 커다란 스캔들을 일으켰다.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비운의 명작 <닥터 지바고>

희대의 스캔들 :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비운의 명작 <닥터 지바고 />
1890년 유대인 부모의 아들로 태어난 파스테르나크. 그의 아버지는 톨스토이, 릴케가 자기 책의 삽화를 부탁할 정도로 유명한 화가였다. 예술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하며 시인으로 성장한 파스테르나크. 그러나 1917년 일어난 러시아 혁명은 그를 영광과 고통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냈다. 처음에는 러시아 혁명에 열광했지만, 그 잔혹함에 상실감을 느끼고 만 파스테르나크. 그는 최초이자 유일한 장편소설의 집필에 들어간다. 비인간적인 거짓이 전쟁의 속성과 혁명 전후에 겪은 갈등을 묘사한 소설, 바로 <닥터 지바고>였다. 여주인공 라라의 모델은 바로 그의 오랜 연인이었던 올가 이비스카야.그녀는 소설 속 라라처럼 파스테르나크를 스파이로 몰려는 소련 정부의 음모에 휘말려 연인 대신 4년 동안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1956년 위대한 소설이 완성되었지만, 러시아에서 출판을 금지당한 <닥터 지바고>. 이때, CIA가 러시아어판 출판과 유통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먼저 네덜란드 정부 당국의 협조 속에 헤이그에서 러시아판 <닥터 지바고>를 출간했다. 그리고 전 세계 배포를 위해 벨기에에서 세계 북 페어까지 개최한 CIA. 동서 간의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때 서방에서는 반공산주의적 소설로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파스테르나크는 이런 평가를 사절했다. “그 작품에게 모두들 그런 식으로 글을 쓴다. 하지만 그들이 인용하는 구절은 뭔가? 700쪽이 넘는 분량 중에서 세 쪽이 고작일 게다.”
- 파스테르나크

노벨상의 영광보다
고국을 선택한 파스테르나크

희대의 스캔들 : 노벨상의 영광보다 고국을 선택한 파스테르나크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 노벨문학상에 선정된 <닥터 지바고>. 이 작품을 정치적 선전으로 이용하려던 CIA로서는 최고의 성과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노벨 문학상 선정 소식에 고국에서는 그를 위대한 10월 혁명의 적, 반역자, 비루먹은 양이라며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소비에트 작가동맹은 그를 제명했고, 공산당 청소년 조직은 밤낮으로 “유다는 이 땅을 떠나라!”를 위치며 테러를 가했다. 결국, 국외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파스테르나크. 그 해 10월 그는 스웨덴 한림원에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다는 전보 한 통과 함께 흐루시초프에게 직접 사죄편지를 보내게 된다. 노벨상의 영광보다 고국에 남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결국, 노벨문학상을 최초로 수상을 거부하며 희대의 스캔들을 일으킨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그러나 1960년 그가 사망했을 때 소련의 언론은 아무런 소식도 싣지 않았다. 노벨상은 문학가로서 최고의 영광이었지만 동시에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이다. 죽기 직전 그는 ‘노벨상’이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을 남긴다.
희대의 스캔들
이젠 지쳤다. 그물에 갇힌 동물 밖으로 빠져나갈 수가 없다. 저들에게 무슨 죄를 지었던가. 살인자? 도깨비? 내 나라의 아름다움에 온 세상을 울게 하였을 뿐. 내 오른손은 이제 없다. 나의 영혼이 흘리는 눈물을 내 오른손이 닦을 수만 있다면! - 파스테르나크의 시 <노벨상>

시대의 변화와 함께
재평가되고 있는 노벨상 수상자들

희대의 스캔들 : 시대의 변화와 함께 재평가되고 있는 노벨상 수상자들
국가 간의 이해관계 속에서 수많은 논쟁과 스캔들을 낳고 있는 노벨상. 노벨상은 철회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파스테르나크는 사후 30년이 지나서야 아들을 통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다. 199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는 수상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작가는 자기 자신을 동시대인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변화에 내맡겨진 존재로 인식해야 하며 어디에 참견하고 누군가의 편을 들어야 합니다. 위험성이 없다면 작가라는 직업은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시대. 그 속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은 계속해서 재평가 받고 있다. 노벨의 위대한 유산은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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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5-08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