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길 위에서 풍경을 보고 소리를 듣고 길을 먼저 길을 걸었던 이들의 숨결을 느낀다.
이 길은 특별한 길이다. 정조가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화성 융릉을 향해 걸었던 길 고 긴 여정이 묻어 있으니 말이다. 현재는 과거의 누군가가 치열하게 살았던 흔적이다.
정조대왕 능행차길에서 마주한 우리의 소중한 유산들.
그 속에 담긴 세월의 무게와 시간의 깊이가 바로 그것을 증명하는 흔적들이다.
1795년 윤2월 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 정조(1752~1800)는 능행차에 나선다.
1795년은 정조가 왕위에 오른지 20년이 되는 해였다.
능행차는 서울 창덕궁을 출발해서 수원 화성을 거쳐 정조의 아버지 세도세자가 있는 화성 융릉까지의 참배길로, 그 길이만 무려 59.2km에 달하는 조선 최대 규모의 왕실 행렬이었다. 정조는 화성행차를 통해 효심을 보여주고 왕권을 강화하는 한편, 개혁정치를 통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는 의지를 펼쳐 보이려 했다.
그 길에서 정조는 백성을 만났고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살폈다고 한다.
정조가 갔던 길, 정조가 머물렀던 공간, 정조의 꿈을 향해 걸어본다.
정조가 가장 사랑한 산책길, 아름다운 궁에서 미리 만나는 봄
복잡한 서울 도심 속에는 서울 5대 고궁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창덕궁이 있다. 창덕궁은 1405년(태종 5년) 경복궁의 이궁으로 창건됐다. 전염병이 돌거나 궁궐이 불타는 등을 대비해 만든 것이 이궁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창덕궁은 경복궁과 함께 잿더미로 변해버리는데, 광해군 때 가장 먼저 복원되었다.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창덕궁은 조선왕조의 정궁(正宮) 역할을 했다. 조선왕조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궁궐인 셈이다.
창덕궁은 돈화문(敦化門)에서 시작된다. 돈화문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궁궐 정문으로는 가장 오래됐다. 돈화문으로 들어가 600년 역사를 품은 금천교를 지나면 임금이 신하들의 조하를 받던 인정전(仁政殿), 임금이 집무를 했던 선정전(宣政殿), 국왕 부부의 침실인 대조전(大造殿)과 임금의 침전인 희정당(熙政堂)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각 궁궐의 아름다운 자태를 둘러보는 일이 이처럼 즐거운 일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창덕궁의 백미는 정조대왕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후원을 둘러보는 일이다. 후원은 굴곡진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정원을 만들어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곳이다. 오솔길을 조금 걷다 보면 한 폭의 그림 같은 부용지와 마주한다. 부용지 왼편에는 두 기둥을 연못에 담그고 있는 부용정(芙蓉亭)’이 있다. 반쯤 물에 담긴 정자가 묘한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언덕 위에서 지붕을 내려다보면 마치 ‘연못 가에 활짝 핀 연꽃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조는 부용정을 가장 사랑했다. 그래서 이곳에 앉아 풍경과 낚시를 즐기고 신하들과 시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부용정의 오른편에는 과거를 보거나 국왕의 연회 장소로 쓰였던 영화당(映花堂)이 있다. 영화당에서 바라보는 부용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부용정 2층에는 규장각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초기 세종이 창설했던 학술 연구기관인 집현전을 본받아 정조는 즉위하던 해인 1776년 후원에 규장각을 짓도록 명령했다. 정조의 원대한 꿈이 시작된 곳이라 생각하니 한번 더 눈길이 간다. 후원의 아름다운 전각과 연못을 감상하노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권력을 가졌지만 고독했을 왕들에게 후원은 요즘 말로 ‘힐링'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고즈넉한 숲길을 거닐고 부용정에서 휴식을 취했을 정조를 상상해본다.
주 소 |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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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의 | 02-3668-2300 |
이용시간 |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입장은 오후 5시에 마감, 매주 월요일 휴관) |
소요시간 | 느린 걸음으로 약 3 ~ 4시간 |
창덕궁 후원은 본래 왕족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현재도 후원 보존을 위해 관람객들의 출입을 제한한다. 약 90여 분 동안 진행되는 ‘해설사와 함께하는 투어’를 신청해야 후원을 돌아볼 수 있다. 관람 시간에 늦으면 입장이 불가능하므로, 입장시장은 꼭 지켜야 하며, 투어 시작 후 개별 이동은 허락되지 않는다. 관람희망일 6일 전 오후 10시부터 관람희망일 전날까지 선착순으로 예약 가능하다.
창덕궁의 봄꽃 감상 명소는 낙선재 부근이다. 4월 초순부터 중순까지는 매화, 4월 하순부터 5월 중순까지는 병아리꽃, 5월에는 모란과 감꽃 등이 아름답게 피어난다. 꽃구경을 겸한 산책이 끝났다면 봄기운 가득한 셀피도 한 컷 남겨보자.
창덕궁 근처 맛집을 찾아라! 호젓한 산책에 이어 건강한 상차림을 원한다면 ‘뭉치바위’를 추천한다. 이곳은 제육쌈밥정식으로 승부를 걸어온 곳이다. 제육볶음은 매일 동네 정육점에서 생돼지 앞다리살을 사다가 만든다. 나물무침, 도토리묵, 멸치조림 등의 밑반찬도 깔끔하다. 이 집의 또 다른 별미는 숟가락으로만 자를 수 있는 대형 달걀말이. 잊지 말고 꼭 맛보길 권한다.
위치서울 종로구 창덕궁1길 10기운을 북돋아줄 음식이 먹고 싶다면 ‘무안뻘낙지’에 들러보자. 이곳의 대표 메뉴는 산낙지철판으로, 양배추와 양념한 콩나물, 팽이버섯 등을 철판에 깔고 산낙지를 볶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4월에는 주꾸미, 5월에는 암컷 꽃게를 제철음식으로 맛볼 수 있다.
위치서울 종로구 율곡로6길 23모르고 지나치면 못내 아쉬운, 나 홀로 걷기 좋은 용양봉저정과 만안교
창덕궁에서 발길을 돌려 도착한 곳은 동작구 본동 나지막한 언덕에 위치한 용양봉저정(龍�鳳�亭). 정조가 능행차를 할 때 휴식을 취하고 점심식사를 할 수 있게 지어진 주정소(晝停所)이다. 지금이야 다리를 이용해 한강을 건너면 되지만, 그 시절엔 배다리를 놓고 한강을 건너야 했으니 시간이 꽤 필요했을 것이다. 정조는 이곳에서 주위를 살펴본 후 “북쪽의 우뚝한 산과 흘러드는 한강의 모습이 마치 용이 굼틀굼틀하고 봉이 나는 것 같아 억만년 가는 국가의 기반을 의미하는 듯하다”는 의미로 ‘용양봉저’로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계단을 오르자 정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건축 당시에는 정문과 누정, 배다리를 관장하던 관아건물들이 몇 채 더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용양봉저정 하나만 남아있다. 용양봉저정의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이며 내부는 마루와 온돌방으로 꾸며졌다. 현재 내부에는 정조의 능행반차도가 그려져 있다. 정조는 재위 24년간 열여덟 번이나 능행차를 했다. 특히, 1795년 능행차 때는 2천여 명의 인원에 800필의 말이 동원됐다고 하니 그 노정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이 간다. 능행반차도가 그 어마어마한 노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용양봉저정 마루에 앉아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워했을 정조의 마음을 느껴본다. 정조는 이곳에서 시원하게 펼쳐진 한강을 보았을 테지만, 지금은 다리와 아파트 등의 고층건물에 가려 한강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안양시 석수동에는 안양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삼막천이 있다. 그 위에 위치한, 그림처럼 예쁜 무지개 모양의 수문 7개를 가진 돌다리가 바로 ‘만안교’다. 정조가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용산, 노량진, 동작, 과천을 통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지만, 남태령 고갯길이 좁고 험난해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수원으로 가는 다른 길을 찾다가 한강을 건넌 후 시흥과 안양을 거쳐 수원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하게 되었고, 이때 만들어진 다리가 만안교다. 정조는 ‘만년 동안 백성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다리’라는 뜻의 이름을 직접 지어주었다. 왕이 행차할 때를 제외하곤 백성들도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했다 하니 정조대왕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는 다리라 할 수 있겠다. 길이가 약 30미터, 폭이 8미터나 되는 다리로 지어져 오고 가는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지 않을 만큼 그 품 또한 넉넉하다.
주 소 | 용양봉저정-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로32길 14-7 / 만안교-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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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시간 | 약 20~30분 (*별도 요금 및 관람시간 없음) |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숨은 비경들, 수원 화성
정조는 세도세자의 묘소를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화성을 쌓기 시작했다. 정조의 효심과 개혁의 꿈이 묻어있는 ‘수원 화성’은 축성될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먼저, 화성행궁으로 향했다.
정문인 신풍루(新豊樓)를 통과하면 봉수당을 만난다. 봉수당은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이 열렸던 곳. 봉수당에서 나와 오른편으로 발길을 돌리면 고풍스럽기 그지 없는 낙남헌이 자리하고 있다. 왕의 집무실이자 과거시험이나 잔치 등의 행사가 행해지던 공간이다. 낙남헌은 일제시대 때 화성행궁이 철거될 당시 훼손되지 않고 유일하게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수원 화성은 자연 속에 녹아 들어 그 자체로도 편안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어디를 먼저 둘러보겠노라고 마음 먹을 필요도 없이 어떤 곳에서든 그저 천천히 성곽을 따라 걸으며 둘러보면 된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정조의 원대한 꿈을 느끼면서 말이다.
수원 화성에서 단연 돋보이는 곳은 1794년(정조18)에 완공된 ‘동북각루’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휴식과 풍류가 깃든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었 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성곽 바깥의 용연(龍淵)과 용머리바위, 그리고 성곽 주위의 버드나무가 어우러져 각루로서의 군사적 기능보다는 호화로운 운치를 풍기는 정자로서의 기능이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동북각루는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으로 불린다. 실로 동북각루에서 용연을 내려 다보고 있노라면 신선이 부럽지 않다. 다른 성곽에서는 보기 힘든 독창적인 건축물로 사랑받는 동북각루는 이곳까지 쉼 없이 걸어온 이들에게 꿈 같은 휴식을 안겨준다.
주 소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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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의 | 031-228-4480 |
이용시간 |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
소요시간 | 약 1~2시간 |
창덕궁 수원 화성의 경관과 전통시장 등을 두루 둘러볼 수 있는 관람열차다. 연무대에서 출발해 화홍문, 장안문, 화서문, 팔달산, 화성행궁, 수원 남문시장을 둘러본 후 다시 연무대로 돌아온다. 약 40~50분 정도 소요되며, 탑승료는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승차 인원은 36명 내외이다.
수원 행궁동에 위치한 ‘왕의 골목’은 역사의 흔적과 문화유적을 둘러보며 걷는 길이다. 테마별로 세 가지 코스로 나뉘며, 코스마다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어느 코스든 출발점과 도착점은 화성행궁이다. ‘이야기가 있는 옛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제기차기와 말뚝박기 벽화가 있고, 바닥에는 사방치기 그림이 있어 재미있는 사진도 찍을 수 있다.
화성행궁과 수원화성박물관 사이로 흐르는 수원천을 중심으로 300m 구간에 조성된 통닭거리는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켜온 가게들이 대부분이다. 현재 10여 곳의 치킨집이 성업 중이며, 주말이나 저녁 무렵엔 ‘치맥’을 즐기려는 이들로 북적거린다. 통닭거리가 조성된 것은 1970년대부터인데, 처음 문을 연 매향통닭을 시작으로 치킨집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4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이어왔다. 대부분의 치킨집에서는 커다란 가마솥에 생닭을 넣고 튀겨내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오래된 단골도 많지만 전통의 맛을 찾아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위치경기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1가 50호젓한 숲길 사이로 부는 바람, 영혼은 맑아지고 마음은 경건해지는 융건릉
화성시 안녕동에 위치한 융건릉은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뒤주에 갇혀 요절한 사도세자와 그의 아들 정조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융릉은 사도세자와 부인 혜경궁 홍씨를, 건릉은 정조와 부인 효의왕후 김씨를 합장한 능이다. 두 능 모두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먼저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으로 향했다. 얼핏 평평한 야산으로 보이는 왕릉 입구에 들어서면 금세 울창한 솔숲이 나타난다. 융건릉은 조선의 왕릉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숲길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높이 20~30m의 소나무와 참나무가 뒤섞인 숲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관을 이룬다.
홍전문을 통과하자 드디어 융릉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지만, 아들 정조의 뜻에 따라 왕의 능침과 같은 모형으로 조성했다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융릉의 인석 위에는 마치 사도세자의 꿈을 달래듯 아름다운 연꽃 봉오리가 조작되어 있다고 하는데, 가까이 갈 수가 없어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힘들다. 능의 외곽에 울타리를 쳐놓아 일반인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저 멀리서 융릉을 바라본다.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 사도세자의 슬픔이 이곳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다시 정조가 묻힌 건릉으로 발길을 옮긴다. 왔던 길로 돌아나가는 대신 융릉에서 건릉 사이로 난 산길을 택해 걸었다. 융건릉 둘레길은 물론 두 능 사이를 잇는 오솔길은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호젓한 숲길이다. 사람이 없는 길을 홀로 걷는 기쁨, 울창한 숲 속에서 느끼는 아름다운 자연이 오롯이 내게 와 닿는다. 숲에 마음을 빼앗긴 채로 걷다 보면 드디어 ‘왕의 길’의 주인공이 잠든 건릉에 도착한다. 규모와 형식이 융릉과 비슷하다. 건릉은 원래 융릉의 동쪽 언덕에 있었으나 효의왕후 승하 후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지금의 이곳으로 옮겨 합장되었다고 한다. 유난히 효심이 깊었던 정조, 그의 유언대로 아버지 곁에 잠들어있는 지금, 그는 행복할까.
주 소 |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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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의 | 031-222-0142 |
이용시간 |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표는 오후 5시에 마감) |
소요시간 | 융릉, 건릉과 함께 숲길까지 돌아보려면 약 2~3시간 소요 |
능행차길의 마지막인 지지대 고개로 향한다. 정조는 참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 지지대 고개에서 능이 있는 풍경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며 궁으로 향하는 여정을 늦췄다고 한다. 의왕시 왕곡동에 위치한 지지대 고개에는 전각이 하나 있다. 정조의 지극한 효성을 추모하기 위해 1807년(순조 7년) 세워진 지지대비가 그것이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곳이라 그런지 그 시절 정조의 그리움과 슬픔이 더 깊이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하루를 꼬박 정조대왕의 길을 따라 걸었다. 어느새 어스름한 저녁이 찾아오고 있었다.
주 소 |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산4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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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시간 | 약 15 ~ 20분 (*별도 요금 및 관람시간 없음) |
정조의 삶이 더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인간 이산과 대왕 정조로서의 다양한 얼굴을 모자이크처럼 맞춰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입체적인 얼굴을 재구성하는데 초점을 맞춘 책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조선의 대표적인 개혁군주로만 정조를 바라볼 때 놓치기 쉬운 다양한 모습과 마주할 수 있도록, 위험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단련시켰던 어린 시절의 절박함, 아버지를 역적으로 몰아 숙청한 정적들에 대한 복수와 군주 로서의 책무 사이에서 갈등했던 인간적 고뇌 등을 흥미롭게 저술하고 있다.
2009년, 300여 통에 달하는 정조어찰첩이 공개되면서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정조의 비밀편지 내용이 화제를 모았었다. 그간 성군으로만 알려졌던 인간 정조의 내면과 신료들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노련한 현실 정치가로서의 정조의 모습이 낱낱이 드러난다. 이 책은 어렵고 전문적으로만 느껴졌던 정조어찰의 내용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해설하고 자세히 그 맥락을 설명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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