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하 서고에서 책만 보던 그가 아르헨티나의 대표 작가가 되기까지
20세기의 도서관, 사상의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그는 1899년 8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열렬한 독서가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덕분에 집안의 서재는 도서관이 무색할 만큼 책이 가득했고, 보르헤스에게 독서는 언제나 미지의 세계로 가는 모험을 안겨주었다. 이런 환경에서 보르헤스가 아홉 살 때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를 에스파냐어로 번역해 신문에 투고할 정도의 문학적 재능을 보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물려받은 것은 책과 문학적 소질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에 이어 시력이 악화되다 결국 실명하는 유전적 질환도 갖게 된 것이다. 독서는 눈에 치명적이었지만, 보르헤스는 멈추지 않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라는 첫 시집과 소설 <불한당의 세계>를 발표하며 문단에서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한다.
1937년 보르헤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소재 미겔 카네 시립도서관에 사서로 취직한다. 하지만 간단한 업무에 월급도 그리 많지 않은 데다, 문학에는 무지한 동료들의 냉대까지 감수해야 했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보르헤스는 지하 서고에서 혼자 책을 읽으며 창작에 몰두할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이듬해, 보르헤스에게 중요한 사건 두 가지가 일어난다. 하나는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또 하나는 보르헤스 자신이 머리를 크게 다치게 된 것이다. 병석에 누운 보르헤스는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쓴 단편소설 <바벨의 도서관>,<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작가>를 비롯해 본격적으로 창작된 보르헤스적 단편소설들은 그의 증보판인 1944년<픽션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돼 보르헤스의 명성들을 굳혀주었다.
도서관이라는 낙원은 되찾았으나 시력을 잃다
1940년대의 아르헨티나는 정치적 격변을 연이어 맞이하고 있었다. 군인 후안 도밍고 페론이 1943년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1946년에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지식인들은 페론에게 반대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고, 보르헤스도 여기에 참여했다. 그리고 결국 일종의 본보기로 특별히 모욕적인 대우를 받게 되는데, 도서관 사서였던 그에게 동물 시장의 가축 검사관이라는 엉뚱한 직책으로 전보 발령이 내려졌던 것이다. 이에 승복할 수 없었던 보르헤스는 사직서를 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마흔일곱의 나이로 갑자기 실직자가 된 그는 생계를 위해 대중을 상대로 문학 강연을 시작한다. <픽션들>에 담긴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의 주인공처럼 보르헤스는 기억력이 아주 비상해 원고 없이도 강연을 할 수 있었다.
온갖 고전과 수많은 작품들에서 이끌어낸 인용문으로 예를 들며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그의 강연은 점차 명성을 얻고, 곧 안정된 생활을 가져다주었다. 동시에 활발한 집필활동으로 돌입했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단편집 <알렙>과 산문집 <또 다른 심문>이 있다. 1961년 보르헤스는 국제출판인 협회가 수여하는 제1회 포멘터 작가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그 이후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수상과 강연 제의가 이어지고, 보르헤스는 어머니와 함께 지칠 줄 모르고 세계를 여행했다.
그 사이, 페론 정권이 무너지고 보르헤스는 새로운 정권의 배려로 국립도서관장에 임명된다. 자신의 낙원인 도서관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보르헤스는 이미 거의 시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시력이 안 좋은 유전적 질환에도 그의 삶은 독서를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여덟 번이나 수술을 받았지만 시력은 회복되지 않았고, 독서와 책 집필은 이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했다. 도서관장이 되어 80만 권의 책을 관리하게 되었지만, 정작 단 한 권의 책도 읽을 수 없게 된 안타까움을 그는 시를 통해 이같이 적었다
“여명마저 열정으로 굴복시키는 몰상식한 구절 구절을 내 눈은 꿈속의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을 뿐.”
– 축복의 시
‘바벨의 도서관’을 지키는 영원한 사서, 보르헤스
많은 책을 읽었던 보르헤스의 소설은 그의 강연처럼 인용과 방대한 주석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독자들은 다소 어려워하지만 작가들은 더 높게 평가를 한다. 보르헤스는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끼워 넣고, 책 속에 책을 삽입하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다 1986년 6월 87세 되던 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망한다. 그리고 그곳의 묘지에 묻히면서 그의 이야기는 끝난 듯했는데…
하지만 거울, 위로, 백과사전으로 요약되는 보르헤스의 문학적 상상력은 지식인들과 푸코와 데리다와 같은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까지도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바벨의 도서관>에서 도서관은 우주를 상징하며, 육각형의 열람실은 하늘 끝까지 무한히 이어진다. 비록, 눈이 보이지 않아 책을 읽을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있는 바벨의 도서관에서 그곳을 지키는 영원한 사서로 남아있다.
“우주는 부정수 혹은 무한수로 된
육각형 진열실들로 구성되어
있다.”
- 바벨의 도서관
백석이 말하길 시인은 온갖 슬프지 않은 것에도 슬퍼할 줄 아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으로 슬픔으로 마음이 가득 찰 때 백석의 시 한 줄을 꺼내 읽으면서 위로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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