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시

내가 살아본 가장 많은 나이 가장 적을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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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다시 만날 연말 송년회 친구,
그가 보여준 건 모두 한없이 무거운 ‘나이’

분주한 연말에 한사코 꼭 참석해야만 한다는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참석한 고교 동창 송년회, 적게는 십수년, 많게는 40년이나 못 보고 지냈던 십수명의 동창생들이 모였습니다.

설날을 보내고 봄기운 가득한 날에 우리가 함께 졸업했던 학교 앞에서 만나자 했던 고교동창 ‘경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학창시절, ‘음악과 시를 좋아하는 사춘기 미소년 같았던 그가 반백의 머리, 창백한 표정에 수줍고 늙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었죠.

교내 음악실과 화실의 가구와 집기를 옮기며 음악회와 전시회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던 나와 경호.

그와의 봄 약속은 부디 서로에게, 켜켜이 쌓여, 견디기 버거운 삶의 고된 기억과 삶의 짐들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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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거운 짐
'나이'

큰 테이블 같은 무거운 것을 여럿이 들고 옮길 때 이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저 사람의 위치에 있다면 덜 무겁지 않을까.

상대방도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하겠지요. 그렇게 누구나 자신이 든 짐이 가장 무겁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도 마찬가지가 아닐 까요. 자기 자신의 나이가 가장 무겁게 느껴집니다. 지나고나면 그 무거웠던 나이가 지금 나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게 되는 이치. 그래서 우리는 좋을때다 라는 말을 종종 씁니다.

칠순 노인네도 환갑때면 뭘 입어도 예쁠 때지 그나이면 한창이지 라고 말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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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주는
삶의 지혜

7살짜리가 유치원생 후배에게 해 주는 충고는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물어보면 할머니라고 말하는 게 편해.” 여대생이 여고생에게 주는 지혜는 “책상에 팔꿈치 대고 있지만 팔꿈치는 한번 까매지면 끝이거든.”

우리 모두에게 지금이라는 시간은 내가 살아본 시간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나이입니다. 그러니 후배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지금은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 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선배의 조언이 필요하기도 하지요.
우리는 이렇게 가장 무거운 나이를 다 함께 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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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아무리 해도
늦지 않은 것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는데 어느 날 식사 자리에서 어떤 여성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40대 초반이었지요.
“3년 전에 라식수술을 했는데 왜 진작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3년만 일찍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근데요, 3년전 이라도 3년만 더 일찍 할 걸 이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조금만 더 일찍 하는 후회는 참 많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코 늦은 시작이란 없습니다.
늦었다 늦었다 생각이 들어도 안 하는 것보다 빠르지요.

지금아니면 안될것 같았지만 지금이 아니어도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빠릅니다. 아무리 빨리 시작했어도 “더 빨리할걸”하며 후회를 할 수 없는 우리에게 시작은 아무리 늦어도 늦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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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청춘

“아르케(Arche)”

그리스어로 시작을 뜻하는 말 입니다.
시작이라는 뜻 외에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 입자라는 물리적 의미도 있습니다.

시작이 곧 우리 삶을 구성하는 근본 요소라는 뜻이 아닐까요.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늦었더라도 무언가를 시작해야 삶을 채워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지금이 바로 청춘일 것입니다.

칠순 여인네가 환갑내기 여인네한테 말했다지
“환갑이면 뭘 입어도 예쁠 때야!”
그 얘기를 들려주며 들으며
오십대 우리들 깔깔 웃었다

나는 왜 항상
늙은 기분으로 살았을까
마흔에도 그랬고 서른에도 그랬다
그게 내가 살아본 가장 많은 나이라서

지금은,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
이런 생각, 노년의 몰약 아님
간명한 이치

내 척추는 아주 곧고
생각 또한 그렇다(아마도)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황인숙의 시 <송년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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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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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