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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과거 음악가들은 상당수가 교회, 궁정, 귀족에 고용되어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예술의 자유를 누리기 어려운 현실이었죠. 천재 모차르트도 교회와 궁정이 권위와 돈으로 자신의 예술과 삶을 컨트롤하는 것이 싫어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온 후 가난한 말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베토벤은 자신의 예술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았습니다.
베토벤은 귀족의 니즈에 맞추지 않고 자신의 음악과 개성을 그들이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마침 프랑스 혁명 후 귀족의 문화를 향유하려는 경제력을 갖춘 중산층의 등장도 기회였습니다. 베토벤은 인맥을 통해 귀족의 후원을 얻고, 한편으로는 돈을 벌 수 있는 시장 기회를 찾아냅니다.
교향곡 300만원, 소나타 300만원, 협주곡 150만원…. “교향곡이 훨씬 더 길고 값어치 있는데 왜 소나타와 가격이 똑같냐고? 소나타가 훨씬 더 잘 팔리거든. 기억하게나. 내가 자네를 위해 아주 좋은 가격으로 매겼다는걸...” 베토벤이 자신의 작품을 출판사에게 주면서 가격을 흥정하는 내용입니다. 아주 당당하죠. 베토벤은 시장 원리도 잘 아는 음악가였습니다.
베토벤은 최초로 작품에 작품 번호를 매긴 음악가입니다. 오퍼스 넘버(Opus Number)를 붙여 수월하게 관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당시에는 저작권 제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작곡가들은 초판 작품에 대해서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부당하게 여긴 베토벤은 6개월 또는 12개월 동안 자신을 후원한 귀족에게 독점 사용을 허락하고, 이후 3,4년간은 특정 출판사에 독점 판매를 허락합니다. 기간이 만료되면 다른 출판사와 비슷한 계약을 하는 것이죠. 이런 비즈니스 마인드는 후대 작곡가들이 저작권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첫걸음이 됩니다. 어릴 때부터 의지할 곳 없이 직업 음악인으로 일을 해야 했던 베토벤, 일찍 세상을 깨우쳐 고군분투하며 살아야 했던 그가 한층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