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재생이 안 될 경우 FAQ > 멀티미디어 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베토벤에게 인생은 결코 달콤하지 않았을겁니다. 항상 고통이 따라다녔고 그에게 인생은 받아들이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의 하나였습니다. 26살 때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발진티푸스를 앓으면서 후유증으로 청력에 이상이 생깁니다. 음악가에게는 사형 선고와 같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황, 그는 죽는게 더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오랜 시간 연주한 덕분에 그는 자신의 내면에 떠오르는 악구들을 악보에 적어낼 수 있었습니다.
빈에 정착한 베토벤은 인기도 얻고 귀족의 후원을 받으면서 성공한듯 보였으나 내면적으로는 마음과 정신이 무너져내리는 상태였습니다. 이 시기 28살 청년의 슬프고 기가 막힌 심정을 나타내는듯 자신이 직접 <비창>이라는 부제를 붙인 작품을 발표합니다.
베토벤이 죽은 후 그의 유물에서 편지 한 통이 발견됩니다. 1802년에 그가 두 동생들에게 쓴 편지, 이 편지는 사실상 내용이 유서였습니다. 잦은 복통과 귓병으로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요양 중, 그는 점점 희망을 잃고 고통과 고독으로 힘들어하죠. 창조주에 대한 원망이 커지고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갈등합니다. “나를 붙잡아둔 건 오로지 나의 예술 뿐이야. 가슴 속에 있는 창작의 욕구를 다 채우지 못하고서는 세상을 떠날 수 없었다… 나는 운명의 끈을 붙잡겠다.” 베토벤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삶과 성공에 대한 미련이 아닌 오직 내면에 불타오르는 예술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이후 그의 창작열은 불타오르기 시작합니다.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죠. 음악은 훨씬 격정적으로 변하고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을 시도합니다. 1809년 <열정 소나타>가 나오고 약 2년 후 교향곡 <운명>이 탄생합니다. 사실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베토벤의 비서였던 쉰들러의 얘기로는 베토벤이 이 곡의 주제에 대해 “마치 운명이 문을 이렇게 두드리는 것 같지 않나?”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운명처럼 찾아온 고통과 죽음에 굴복하지 않고 승리하겠다는 베토벤의 의지가 읽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