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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고갱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 아를에 왔지만 고흐는 고갱에게 심적으로 많이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고갱이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점점 초조하고 불안해했지요.
서로 다른 미학적 견해로 자주 다투었고, 고흐는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에 묘사된 자신의 모습,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들을 고갱이 <밤의
카페>에서 조롱하는듯이 표현했다는 느낌에 서운함과 분노를 갖게 됩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고갱과 논쟁을 하던 고흐가 발작적으로 자신의 귓볼을 자르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회복될 수 없는 갈등으로 고갱이
아를을 떠나면서 공동생활은 2달만에 끝나게 되고, 고갱이 떠난 후 고흐는 몇 번의 발작증세를 더 일으키다가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갑니다.
고흐는 정신병원에서도 마치 기도하는 마음으로 절박하게 그림을 그립니다. 그 때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은 전세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걸작으로, 어두운
병실에 앉아 창 밖의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보았을 고흐가 연상되는 그림이죠. 병실 밖의 풍경에 자신의 고향이었던 네덜란드 누에넌의 풍경을 상상으로 더해
환상적으로 표현했는데, 기억과 상상력을 통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고갱의 영향으로 보여집니다.
고갱은 고흐와 헤어진 후 이국적인 풍광의 퐁타방과 타이티로 향했습니다. 현실의 경험을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고흐와는 달리 고갱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고, 문명과는 최대한 떨어진 삶 속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의 걸작 <설교 후 환영>에서 민속의상을 입고 있는 퐁타방의 여인들과
그녀들의 눈 앞에 성경 속에서 야곱과 천사가 씨름하는 장면이 초현실적으로 펼쳐집니다.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이런 그림은 당시에 매우
혁신적이었죠.
고갱이 아를을 떠난 후 두 사람은 영영 만나지 못했습니다. 한 사람은 질병과 죽음이라는 현실 속에서, 또 한 사람은 세상의 인정에 대한 충족되지
않는 갈망 속에서,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화가의 길을 걸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