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의 전투를 치를 스페인 무적함대는 플랑드르 지방에 주둔해있던 지상군과 합류하기 위해 칼레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플랑드르 지상군과의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설상가상으로 칼레의 낮은 수심 때문에 함대가 안정적으로 정박해서 방어를 하기에도 매우 부적합한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영국 입장에선 큰 기회가 아닐 수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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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무적함대는 칼레 앞바다에 밀집대형으로 정박해있었습니다. 영국 입장에서는 밀집해있는 스페인 함대를 향해 화공을 가하면 매우 유리하게 전쟁을 이끌 수 있는 상황이었죠. 때마침 남풍이 주로 불던 칼레 지역에 북풍이 불어왔습니다. 일명 프로테스탄트의 바람이 불어 영국의 화공이 가능하게 된 것이죠. 영국의 화공을 받은 스페인 함대는 우왕좌왕 흩어졌고 영국 함대의 투입으로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반 토막 난 무적함대무려 9시간에 걸친 포격전 끝에 포가 바닥난 영국 함대가 퇴각하고 전투도 끝이 납니다. 스페인 함선 2척이 격침되었고 인명피해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그리 심각한 피해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정박할 곳을 잃어버린 스페인 함대는 영국을 한 바퀴 돌아 귀환길에 오르게 되었죠. 문제는 귀환길에서 발생합니다. 아일랜드 근방에서 태풍을 만난 무적함대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절반의 병력만이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영국 승리의 숨은 원동력영국군의 승리는 높은 기술력과 함포 성능 때문이었을까요? 영국의 승리에는 몇 가지 숨은 원동력이 있습니다. 첫째로 스페인 군대가 전술을 짜는 과정에서 우유부단함을 보였습니다. 두 번째로 영국은 일원화되고 전문화된 지휘체계를 갖추고 있었죠. 세 번째로 영국의 앞바다에서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먼 길을 항해해온 스페인에 비해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칼레 해전은 왜 세계 3대 해전인가?칼레 해전 자체는 그리 치열하지 않았지만 칼레 해전을 기점으로 세계 해전의 양상이 변화합니다. 즉 인력전투에서 함포력 전투로 변모한 것이죠. 이러한 양상은 이후 비대칭전력 개념이 등장하기 전까지 450년 간 지속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