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1588년 4월 리스본에서 영국을 향해 출항했습니다. 총사령관 알폰소 페레스 데 구스만이 이끄는 함선 130척, 함포 2,300문, 선원 8,000명에 병력 19,000명의 대규모 군대가 영국 정벌에 나선 것이지요. 하지만 세 차례 벌어진 전투는 치열한 양상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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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령 네덜란드에는 스페인 육군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해군이 강하고 육군은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에 스페인 입장에선 지상전이 유리했죠. 그러나 영국 해군에 가로막혀 영국 상륙은 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무적함대가 영국의 마게이트까지 진격하여 영국 해군을 유인하면, 네덜란드에 있던 스페인 육군이 그 틈을 타 영국 람스게이트에 상륙하여 런던으로 진격한다는 작전을 세웠죠. 그리고 무적함대는 템즈강을 따라 런던까지 진격하여 해군과 육군이 합작하여 런던을 함락한다는 시나리오였습니다.
첫 전투 - 폴리머스 전투리스본에서 출항한 무적함대는 영국 폴리머스에 다다르자 초승달 대형의 횡렬진을 펼칩니다. 중앙엔 구스만이 이끄는 80척, 좌익엔 알폰소의 30척, 우익엔 레칼테의 20척이 대형을 이루었죠. 영국은 종렬진으로 대형을 만들며 등장하여 함포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양 측의 함선은 단 한 척도 부서지지 않았고, 첫 교전의 결과 영국의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스페인 함선 한 척을 나포하게 됩니다.
두 번째 전투 - 포틀랜드 전투폴리머스 전투 후 조금 더 진격한 무적함대는 포틀랜드에 다다랐습니다. 여기서 무적함대는 두 줄 대형으로 진을 펼쳤죠. 영국 해군은 폴리머스에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이 전투에서도 양쪽 모두에게 함선 피해는 없었습니다.
세 번째 전투 - 와이트섬 전투세 번째 와이트섬 근처에서 벌어진 전투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진영이 맞선 상황에서 드레이크가 와이트섬을 돌아 무적함대 진영 포위를 시도하자 무적함대는 바로 후퇴했고 전투도 끝나게 되었죠. 그리고 무적함대는 전쟁의 막바지 칼레를 향해 이동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