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꽃, 전주 향교
전주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전주 향교였습니다. 전주는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조상들이 있던 곳이고 전라도에서도 손꼽히는 큰 도시였기 때문에 향교 역시 규모가 컸습니다. 아름다운 오목교와 남천교가 가로지르는 전주천 근처에 있는 향교는 고려시대 때부터 존재했다고 전해지는데요. 원래는 경기전 근처에 있었는데 경기전이 세워지면서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전주천을 따라 걷다가 한옥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면 2층 누각으로 된 만화루가 나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그야말로 고즈넉하고 조용한 향교를 볼 수 있답니다. 공자를 비롯한 성인들을 모셔 놓는 곳이자 선비들이 공부를 하는 교육기관이기도 한 향교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 공부를 하는 명륜당, 선비들이 머무는 곳인 동무와 서무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1904년 증축되었다고 알려진 명륜당입니다. 일반적인 한옥과는 달리 양쪽으로 마치 날개를 단 것처럼 공간이 붙어있고, 지붕이 내려와 있습니다. 눈썹지붕이라고 부르는 이 형식은 한옥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고, 특히 향교에서는 잘 쓰지 않는 건축기법이라 더 눈길을 끕니다. 향교 바로 옆에는 일제에 의해 사라질 뻔 했다가 60여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전주동헌이 있습니다.
걷는 것이 행복한 한옥마을 거리
향교와 동헌을 둘러보고 본격적으로 전주 한옥마을을 둘러봤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은 전주시 완산구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이 모여 있는 곳을 뜻합니다. 이곳은 한옥뿐만 아니라 풍남문과 경기전, 전동성당, 전주 향교나 오목대 같은 볼거리들이 많은 곳으로 한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관광객들이 찾는 곳으로 대략 1930년대에 조성되었습니다. 전주를 둘러싼 성곽을 일본이 허물어버리면서 일본인들이 전주 시내로 진출하게 됩니다. 이에 반발한 조선인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모여 살면서 한옥들이 속속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1977년에 한옥마을 보존지구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으로 보호를 받게 됩니다. 이후 전주 한옥마을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됩니다. 회색의 높은 빌딩과 차들로 빽빽한 도로 대신 야트막하고 구불구불한 담장과 정겨운 한옥이 경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태조로 같은 큰 길 말고 거미줄 같이 이어진 좁은 골목길 안에 고풍스러운 한옥이 정겹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새와 꽃이 그려진 담장이 아름답고, 그 담장 위에서 열심히 돌아가는 바람개비도 눈길을 끕니다. 최명희 문학관의 담장은 먼저 자리잡고 자라는 나무에게 자신의 몫을 양보해주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존중 받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걸어도 걸어도 지치지 않고 행복해집니다. 전주 한옥마을은 볼거리들이 많지만 오목대와 최명희 문학관은 꼭 둘러보길 권합니다. 특히 최명희 문학관 옆으로 난 구불구불한 길은 빠름과 경쟁 대신 존중과 보존을 택한 전주 한옥마을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약간 높은 곳에서 올라가서 바라보면 우아한 곡선을 자랑하는 한옥의 지붕이 바다처럼 펼쳐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통과 서구의 만남, 경기전과 전동성당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인 어진이 모셔진 곳으로 태종 이방원이 세웠습니다. 전동 성당과 길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는데 한 곳은 전통 한옥이 있고, 다른 한곳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 건축물이 있어서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원래는 경기전과 전동성당 사이에 전주성의 성벽이 지나갔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성벽을 허물면서 이제 길 하나를 두고 서로 마주보게 된 것이죠.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있는 정전과 전주 이씨의 조상인 이한의 위패를 모신 조경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가 자리잡고 있답니다. 저는 이곳을 보면서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공간이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종묘를 떠올렸는데요. 비록 규모는 작지만 경기전 역시 의미 있는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원래는 규모가 더 컸는데 일제 강점기에 철거와 훼손이 거듭되면서 규모가 축소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천천히 걸어보면서 이것저것 보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야트막한 굴뚝이 있는 한옥과 그 너머에 보이는 전동성당의 뾰족한 첨탑은 전통과 서구의 만남이 얼마나 급격하게 이뤄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경기전과 마주보고 있는 전동성당의 이미지는 하늘 높이 치솟은 첨탑과 비잔틴 양식의 돔입니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고딕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전동성당이 이곳에 자리잡기까지는 온갖 우여곡절들이 많았습니다. 전동성당이 들어선 곳은 1791년 신유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목숨을 잃었던 곳으로 1914년 완공되었습니다. 붉은색과 회색의 벽돌을 섞어서 쌓아 올린 성당은 매우 견고해 보이는데 내부는 지붕을 지탱하는 기둥 사이로 스탠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빛이 감돌고 있답니다. 성당의 첨탑은 하늘과 맞닿아있어서 그런지 흘러가는 구름과 몹시 잘 어울립니다. 전동성당 옆에는 붉은 벽돌로 만든 사제관이 있는 이 건물도 1926년에 지어진 꽤 오래된 문화재입니다.
밤이 더 아름다운 풍남문
전동성당과 경기전 길 건너편에 있는 풍남문은 전주성의 남문으로 유일하게 남은 성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풍남문은 낮에 봤을 때는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한 곳입니다. 서울의 숭례문이나 수원의 장안문처럼 옹성에 둘러싸이고 2층 누각이 있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 때문이었죠. 거기다 주변에는 차와 상점들이 많아서 조용히 구경하기도 힘들었답니다. 하지만 이곳은 해가 떨어질 시간에 가게 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조명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늘의 한쪽 끝으로 사라져가는 석양과 어우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풍남문에 밤에 와야 하는 이유는 전주 남부 시장의 야시장 때문이기도 합니다. 풍남문과 붙어있는 전주 남부 시장에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야시장이 들어섭니다. 시장의 통로에 판매대가 세워지고 다양한 음식들을 판매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을 끌게 된 것입니다. 떡갈비 같은 전통 음식부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음식 같이 다양한 국적의 먹거리들이 밤을 잊고 찾아온 손님들을 줄 세우게 만듭니다. 야시장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나면 2층에 있는 청년몰로 발걸음을 돌려보세요. 전통 시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센스 만점의 상점들과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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