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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역사

석촌동에 숨어있는 『백제시대 지배계층의 변화』

석촌동에 숨어있는 백제시대 지배계층의 변화
석촌동 고분군 전경
석촌동 고분군 찾아가는 길, 1. 석촌역 7번 출구에서 직진!, 2.백제초기적석총고분군 입구도착!, 3. 3호분부터 아래로 걸어가면서 차례로 둘러본다., 4. 4호분을 지나 2호분 쪽으로 내려간다., 5.2호분을 둘러보고 알래로 직진!, 6. 아래로 내려오면 5분에 도착!
와! 이곳의 고분들은 생김새가 참 특이해요! 온통 돌로 덮여있고, 게다가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마치 작은 피라미드에서 윗부분이 잘린 것처럼 생겼어요.
아빠 윗부분이 잘린 듯한 피라미드 모양의 고분은 원래 고구려 고분의 대표적인 형태야. 지금도 압록강과 그 지류를 끼고있는, 우리가 흔히 만주라고 부르는 중국의 랴오닝성(遼寧省) 환런현(桓仁縣)지역 그리고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지역에는 무려 1만2천기가 넘는 저런 형태의 고분들이 남아있어. 그 지역의 고구려 고분들은 고고학적 가치를 인정받아서 2004년에 중국이 유네스코에 신청해서 `고대 고구려왕국의 수도와 묘지들`이라는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가 되었어.
아니, 고구려는 우리 민족의 나라인데, 왜 중국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을 해요? 말도 안돼!
아빠 그것이 바로 중국이 노리는[동북공정]이라는거야.
딸:와! 이 곳의 고분들은 생김새가 참 특이해요!, 아빠:윗부분이 잘린 작은 피라미드 같이 생겼네~ , 윗부분이 잘린 듯한 피라미드 모양의 고분은 원래 고구려 고분의 대표적인 형태야.
동북공정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임말인데, 우리말로 살짝 바꾸자면 `동북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과제`이고 좀 더 쉽게 풀이하면 중국의 국경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이다.
[여기서 잠깐]동북공정(東北工程) 이란?

동북공정은 중국동북부 지역의 역사와 현황에 관련하여 2002년 초부터 지금까지 변강사지중심(邊疆史地中心)에서 실시된 연구작업을 뜻하다. 동북공정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에 의한 국책사업이며,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입각한다.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은 중국이 동북공정, 서남공정, 서북공정 등의 역사공정에서 기본으로 삼는 논리이다. 현재 중국땅에 있는(혹은 과거에 지금의 중국땅에 있었던) 모든 민족은 중국인에 속하며, 그들의 역사 또한 중국의 역사라는 것이다.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의하면<조선족>의역사는 중국사에 포함된다. 실제로 중국이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내세우는 것을 반영하는 예로 조선족 자치구 길림성의 만천성국가삼림공원에는 웅녀상이 건립되어 있다. 즉, 웅녀가 한민족의 시조모가 아닌 조선족의 시조모이며, 조선족은 중국인에 속하므로 웅녀는 중국인의 시조모이기도 하다는 논리이다.
중국이 우리의《고조선》과 《고구려》, 《발해》를 중국의 지방자치정부라고 역사 왜곡을 하는 것도 동북공정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우리 역사학계는 그 질문에 합격점을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어 있어서 그런 것일까?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다음과 같은 간단한 역사 질문 몇 개에 답을 함으로써 그 원인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
아빠:우리 역사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반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다투던 시기를 뭐라고 할까?, 딸:그야 삼국시대죠~, 이 정도는 기본이죠~~
아빠:서기 660년과 668년에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어 차례로 고구려와 백제를 쓰러뜨리는데, 그 사건을 우리 역사에서는 뭐라고 할까?,  딸:뭐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리고 삼국통일을 한 거죠~, 나도 이 정도는 안다고요~~
아빠:그런 다음 고구려의 유민들이 다시 옛 고구려 영토에 '발해'를 건국했어. 그렇다면 신라의 이른바 '삼국통일'부터 '고려건국 이전'까지를 무슨 시대라고 하지?,  딸:통일신라 시대라고 역사책에 되어 있던데요?, 음 뭔가 낚이는 기분인데...
아빠:우리 스스로가 신라를 '통일신라'로 부르는 순간, 우리 역사에서 '발해'는 어떻게 되나?,  딸:......!!, 헉 그러게요.....
논리적으로 따져본다면 우리가 `통일신라`라고 부르는 순간, 《발해》는 자연스럽게 우리 역사에서 배제되는 결과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는 `통일신라` 라는 명칭을 주저 없이 사용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이 우리 역사학계가 중국과의 논리싸움에서 밀리게 되는 빌미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 고분들은 모두 고구려의 것인가요?
아빠 아니, 초기 백제의 것이야. 내가 재미있는 퀴즈를 하나 낼게. 만약 고구려 사람들이 표준말을 정했다면 어떤말을 고구려 표준말로 삼았을까?
그야 당연히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한 사투리를 표준말로 삼았겠죠.
아빠 그럼 신라 사람들은 어떤 말을 신라 표준말로 정했을까?
경주가 수도였으니 경상도 사투리를 표준말로 정했겠죠.
아빠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백제사람들은?
그야 당연히 전라도 사투리를 백제 표준말로 썼겠죠. 예전에 TV 개그 프로그램이나 황산벌과 같은 영화에서도 백제군은 전부 전라도 사투리를 쓰던데요.
아빠 과연 그럴까? 백제는 수도의 위치에 따라서 3시기로 구분을 한다.
#1 한성백제시대 : 먼저 시조인 《온조왕》이 백제를 건국한 BC 18년부터 고구려군에게 《개로왕》이 전사한 AD 475년 까지를 제1기`한성백제시대`라고 한다. 수도는 한강유역인데 현재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2 웅진백제시대 : 《개로왕》에 이어 《문주왕》이 수도를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옮긴 475년 이후부터 성왕이 다시 수도를 사비(부여)로 옮긴 538년 까지를 제2기`웅진백제시대`라고 한다.
#3 사비백제시대 : 마지막으로 538년부터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한 660년 까지를 제3기`사비백제시대`라고 부른다.
따라서 백제 사람들은 《한성백제시대》에는 경기도 방언을 사용하다가 《웅진백제, 사비백제시대》에는 충청도 사투리를 썼을 것이다.
석촌동의 고분군은 바로 초기 한성백제 시대의 유적이다. 그렇다면 백제의 무덤이 왜 고구려의 무덤과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은 백제를 세운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면 금방 풀린다. 백제를 건국한 사람은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의 아들, 온조다. 따라서 초기 백제의 지배층은 고구려 계통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지배계층을 형성하고 있던 고구려 계통의 사람들은 남쪽지방의 토착 원주민들과 섞이면서 문화도 서로 융화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바로 그런 현상을 석촌동 고분군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백제와 신라의 초기 지배계층은 북방계통이었다?

백제와 신라의 초기 지배계층은 북방계통이었다?, 백제 뿐만 아니라 신라의 초기 지배계층도 북방계통의 사람들이었다. 경주에 있는 신라고분들, 특히 평지에 있는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은 내부의 핵심되는 부분을 모두 강돌을 쌓아 만든 것만 봐도 북방계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추운 북방 출신 사람들은 평지에 돌무지 무덤을 쓰고, 따뜻한 남쪽 출신 사람들은 구릉지나 산비탈에 흙무덤을 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평지에 있는 신라고분들의 위치나 돌을 많이 사용하는 구조는 비록 신라고분이 기후가 따뜻한 남쪽지방에 있어도 그 고분의 주인공들은 원래 추운 북방계 출신 이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공주가 동부여의 왕녀라는 것과 고구려의 주몽이 알에서 태어난 것처럼 혁거세도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신화(卵生神話)는 초기신라의 지배계급이 북방계 출신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이다.
이곳의 고분은 봉분이 모두 네 개인데, 그 중 세개는 평면이 네모난 피라미드 형태이고, 나머지 한개는 일반적으로 볼 수있는 둥근 모양이에요.
 딸:요 세 개는 평면이 네모난 피라미드 형태이고... 나머지 한 개는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둥근 모양이에요.
우선 이색적으로 보이는 것이 북쪽에 몰려있는 제2, 3, 4호 분으로 중국의 지린성 지안현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고구려의 기단식 돌무지무덤 양식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큰 규모의 제3호분은 만주의 장군총보다 면적이 더 크다. 또한 순수하게 돌만으로 쌓았기 때문에 고구려 혈통에 아주 가까운 인물일 가능성이 많다.
△ 제3호분
반면 제3호분의 남쪽에 있는 제4호분은 같은 피라미드 형이지만 크기도 작은 뿐더러 모양도 약간 다르다. 즉 제일 윗단을 보면 돌이 아니라 흙이 채워져 있다. 또한 제4호분을 발굴한 결과에 따르면, 두 번째 기단의 석축 안에는 긴 사각기둥 형태의 흙 기둥이 있고, 그 위쪽의 세 번째 단 내부에는 흙으로 채운뒤에, 맨 위쪽에는 둥근 형태의 봉분을 쌓아서 마무리를 했다. 순수하게 돌만으로 쌓은 제3호분과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특히 석축 속에 긴 사각기둥 형태의 흙 기둥이 있다는 말은 원래 이 무덤이 흙 무덤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흙 무덤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주변을 깎아내고 석축으로 보강을 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흙 무덤이 돌무지 무덤으로 바뀐것이다. 마치 오래된 건물의 벽을 뜯어내고 새 대리석으로 리모델링 공사를 한 것에 비할 수 있다.
△ 제4호분
△ 제2호분
그럼 왜 그렇게 무덤의 외관을 바꾸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초기 한성백제시대의 사회적 상황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즉, 초기 한성백제 시대에는 북방에서 내려온 고구려 계통의 이주세력과 원래부터 이곳에 살고 있었던 토착세력이 공존하고 있었을 것이다. 추운 북쪽지방에서 온 이주세력은 전통적인 돌무지 무덤을 사용했고, 따뜻한 남쪽 지방 출신인 토착세력은 흙 무덤을 사용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성백제의 최고 지배계층은 남방의 토착세력이 아닌 북방의 고구려계 이주세력 이었다.
그런데 제4호분은 원래 남방 토착세력의 흙 무덤으로 만들어졌지만, 후손들 가운데서 권력을 가진자가 나타나서 자신의 선조가 묻힌 `흙 무덤`을 북방 이주세력의 무덤인 `돌무지 무덤`으로 형태를 바꾼 것으로 추정이 된다. 이것으로 우리는 한성백제시대의 이주세력과 토착세력 간의 국가지배권력을 둘러싼 모종의 변화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제4호분의 남쪽에 있는 제2호분은 바로 위의 제4호분과 모양은 같지만 내부구조는 다르다. 즉, 제2호분은 처음부터 바깥 쪽에 석축을 먼저 쌓은 다음, 그 안쪽을 점토로 메우는 방식을 썼다. 따라서 제4호분이 고구려식의 돌무지 무덤을 단순히 외곽만 흉내를 낸 것이라고 한다면, 제2호분은 고구려식의 돌무지 무덤과 토착세력의 흙 무덤이 완전하게 하나로 합쳐진, 새로운 `백제식 돌무지 무덤`의 완성으로 볼 수가 있다.
와! 고분의 구조만으로 한성백제시대 지배계층의 변화를 알 수 있다니 참으로 놀라워요!
그런데 공원의 제일 끝에 있는 무덤(제5호분)은 갑자기 흙 무덤으로 바뀌었는데 저기에도 숨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 제5호분
봉토분인 제5호분도 겉보기에는 여타의 흙 무덤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매우 특이한 무덤 양식이다. 발굴보고서에 의하면 이 무덤은 흙층 아래 140cm 쯤에 마치 지붕을 덮듯이 한 겹의 돌들로 봉토를 덮고 나서, 다시 그 위에 흙을 얹어 봉분을 마무리 하였다. 이런 식으로 봉토 중간 부분을 돌로 덮은 양식의 무덤을 고고학에서는 즙석봉토분(葺石封土墳)이라고 한다.

그런데 앞선 설명에서 토착세력의 무덤이 고구려의 돌무지 무덤의 영향을 받았을 경우, 제4호분과 같이 흙 무덤의 밖을 석축으로 둘러싼다고 했었는데, 그런데 왜 제5호분은 무덤의 밖이 아니라 속을 돌로 덮었을까?
그에 대한 가설로 초기 한성백제 시대에는 외견상 돌로 만든 무덤은 신분이 아주 높은 고구려계 이주세력의 것이고, 흙으로 만든 무덤은 상대적으로 신분이 낮은 토착세력의 것으로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즉 무덤에서 돌의 사용은 신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런데 중간계층의 사람들은 신분이 높은 사람들을 의식해서 차마 밖으로는 돌을 사용하지 못하고, 또한 일반적인 흙 무덤을 사용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 무덤 속에만 돌을 사용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은 것이 아닐까 하고 추정할 수 있다.
아빠, 기왕 이렇게 멀리 석촌동까지 왔는데 잠실에 있는 놀이공원에서 좀 놀다 가면 안돼요?
아빠 안될 것은 없지. 다만 놀이공원 바로 옆에 있는 `삼전도비`에서 숨은 역사 이야기를 잠깐만 해 줄 테니 일단 `삼전도비`쪽으로 가자.
석촌동 고분군에서 눈으로 장난치는 아빠와 딸
최동군(글로벌사이버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외래교수)
사진/그림
박동현(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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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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