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쉬인사이드

정약전과 홍어회 한 접시

디쉬인사이드 : 정약전과 홍어회 한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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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영화의 매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문학이나 음악, 회화 등과 같이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예술매체로는 표현이 안 되는,
영화라야만 가능한 묘사와 서술방법이 있다.
그래서 생겨난지 백년 밖에 안 되는 영화가 전 세계의 사람들을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발명은 프랑스에서 했지만 이를 산업으로 발전시킨 건 미국이었기에
미국은 ‘헐리우드’라는 브랜드로 자국의 대중문화를 전 세계에 퍼뜨리며
미국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이 미국의 상품을, 미국의 생활방식을 동경하게 만들었다.
한국영화도 이제 영화를 가지고 세계에 한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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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 백과사전, 정약전의 <자산어보>

영화 <기생충>이나 <미나리>가 전 세계 영화 팬들이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했다는 점은, 두 작품이 유명세를 타며 기록한 흥행 수입의 수십 배 아니 그 이상으로 큰 수확이라고 봐야 한다. 두 편 모두 영화만의 매력을 마음껏 발휘한 작품들이다. 오늘은 해외에 크게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영화의 매력이란 게 바로 이런 것입니다, 라는 것을 보여준 한국영화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자산어보>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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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은 재주도 많지만 참으로 부지런한 덕목도 갖춘 이다. 깔깔 웃음 속에 뼈 있는 풍자가 들어간 사극 코미디 <황산벌>로 반짝이는 재기를 선보인 그는 그 다음 작품인 <왕의 남자>로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1천만 관객을 기록한다. 그리고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사도>, <동주>, <박열> 등 크고 작은 작품 13편을 연출하는데, 한국 감독으로 이렇게 쉬지 않고 많은 작품을 연출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영화를 크고 작음으로 분류를 하는 건 별로 타당한 방법이 아닌데, 굳이 크고 작은 작품이라고 표현한 건 그의 영화세계를 이해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작자로서도 경험이 풍부한 그는 상업성, 흥행성을 미리 고려하여 작품의 규모와 예산을 짠다. 내용은 좋지만 일반 관객에게 크게 어필하지 않을 것 같은 작품에는 무조건 예산을 퍼붓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점이 그로 하여금 다양한 주제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역사 속에 묻혀있던 무명의 박열이라는 사람을 재조명하기도 하고, 시 한편으로 교과서에 박제된 듯한 시인 윤동주를 살아 숨쉬는 청년으로 되살려 내기도 한 그의 업적은 대작 <사도>, <왕의 남자>를 빼고서도 차고 넘친다. 오늘의 본론을 이야기하기 전에 다소 설명이 길어진 건 바로 <자산어보>에 그가 과거에 시도하고 체험한 것들이 농축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나는 언젠가 그의 사무실에 걸려있는 멋진 동양화 작품이 그 자신의 것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였다는 사실을 그 뒤에 알았다. <자산어보>는 흑백으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 전반에 걸쳐 전통의 수묵화를 보는 것 같은 장면이 많아서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한다. 동양화가가 될 수도 있었던 그의 재능이 이 영화 이전에 시도했던 두 편의 흑백영화에서 체득한 노하우와 결합한 결과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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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는 실학파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를 가 있는 동안에 저술한 책이다. 정약전은 <목민심서>의 저자 다산 정약용의 형이다. 형제는 천주교를 받아들였다는 ‘큰 죄’를 지어서 각각 강진과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숱한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당시의 박해 상황을 생각하면 목숨을 부지한 것만도 다행이었던 시절이었다. 그의 저서 <자산어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 백과사전’으로 알려져 있다. 예와 법도 같은 형이상학을 다루는 주자학이 학문의 주류를 이루던 조선시대에 실사구시를 실행한, 말그대로 실학파의 저술이기도 하다. 배경 설명은 간단히 이 정도로 하고 영화 <자산어보>를 따라가 보기로 하자. 물론 이 칼럼의 성격상 음식에 초점을 맞춰 따라간다.

유통과 보관의 어려움 때문에 남도의 별미가 된 홍어회

잘 삭힌 홍어회는 그 특유의 쏘는 냄새와 맛으로 인하여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과 아주 싫어하는 사람들 두 부류로 나뉜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니아답게 홍어회를 최상급 요리로 칭송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며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할 정도로 싫어한다. 홍어회는 막걸리와 궁합이 잘 맞는다. 그래서 홍어회를 잘 한다는 남도음식 전문점에는 홍어와 탁주, ‘홍탁’이라는 메뉴가 있고, 묵은지와 돼지수육을 곁들인 삼합이라는 메뉴도 인기다. 이 홍어회의 내력이 영화 속에 나오는 첫 번째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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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이 유배를 가서 처음으로 맛보는 생선회로 홍어회가 등장한다. 약전(설경구)은 유배 뒷바라지를 하는 마을 과부 가거댁(이정은)이 차려준 홍어횟상을 받는다. 그는 “내가 생물 홍어는 처음 먹어보는데, 이런 맛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막걸리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흡족해 한다. 홍어류는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어 잡은 후 요소가 분해되며 암모니아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특유의 불쾌하고 톡 쏘는 냄새와 맛이 난다. 그 맛이 좋아 마니아가 생기니 ‘불쾌하고’라는 표현은 주관적이라 하겠다. 영화에서 마을 사람들은 “나주에서는 삭혀서 먹는데 생으로 먹으면 이렇게 맛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이준익 감독이 책 <자산어보>에 적힌 불과 몇 줄의 서술을 바탕으로, 이렇게 화면으로 멋지게 묘사한 것이 바로 영화적 상상력의 힘이다.

옛날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 당연히 상하기 쉬운 생선은 유통에 있어 커다란 제약이 따랐다. 말려서 수분을 없애서 보관기간을 오래 늘린 것이 어포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명태를 말린 북어다. 암모니아처럼 불쾌한 생선의 비린내는 생선살에 들어있는 트리메틸아민이라는 성분이다. 고등어, 꽁치, 청어 같이 등푸른 생선일수록 더 많이 함유하고 있고, 흰살 생선은 상대적으로 적다. 대구나 명태처럼 우리가 비리지 않고 담백하다고 여기는 생선에는 함유량이 적은 것이다. 그런 명태를 말린 북어는 긴 유통기간 덕분에 전국으로 유통될 수 있었다. 이는 북어포가 제사상에 올리는 제수물품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반면, 고등어 자반이나 간고등어는 소금을 많이 사용하여 염도를 높여서 부패를 방지한 염장식품으로 해안가에서 뭍으로 이동이 가능했던 경우다. 경상도도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대구와 부산이 아니라 경주와 상주가 대표 도시였기에 경상도로 불렸듯이 전라도라는 명칭은 전주와 나주를 합한 이름이다. 광주가 아닌 나주가 번성했던 이유는 영산강이 흐르는 곳에 자리잡고 있어 물류가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흑산도처럼 어업이 가능했던 포구에서 나주까지 운반하는 동안에 홍어 같은 생선은 삭아버리고 만다. 트리메틸아민 말고도 암모니아로 분해되는 요산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그나마 썩어버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래서 나주 사람들은 삭은 홍어회를 먹으며 별미를 즐겼고, 더 이상 운반이 불가능한 더 위쪽 지방 사람들은 홍어를 맛볼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에 오늘날 남도의 별미로 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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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의 저술 <자산어보>를 조금 인용해 본다.

‘... 동지 뒤에야 잡기 시작한다. 입춘 전후가 되면 크고 살이 올라 맛이 좋다. 삼사월이 되면 다시 몸이 말라서 맛이 떨어진다. 회, 구이, 국, 포에 좋다. 나주와 그 인근 사람들은 홍어를 삭힌 것을 좋아하니 그 기호가 다르다고 하겠다(羅州近邑之人 好食其�者, 嗜好之不同也). ...’

이 뒤로 홍어를 약에 쓰는 민간요법, 뱀을 피하는데 홍어 씻은 물을 사용하는 법 등을 소개하고 있으니, 이처럼 항목마다 박물지에 더하여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 나의 상상인데, 당시 나주 사람들이 싱싱한 생물 홍어를 먹을 방법이 있었다면 오늘날 홍어회라는 음식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다.

관객의 미각을 자극하는 다양한 해산물의 등장

영화에서 정약전은 유배를 온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여 만취한 채로 바닷가에 나갔다가 그만 바닷물에 빠지고 만다. 마침 밤낚시를 나왔던 마을 청년 장창대에 의해 구조되지만 몸져눕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청년 창대(변요한)는 실제로 <자산어보>에서 약전이 서문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언급을 하는 인물로, <자산어보>가 완성되는데 큰 공헌을 한 실존인물이다. 자세한 내용은 영화를 감상하기를 권하며 생략한다. 창대는 약전이 기운을 차리도록 커다란 문어와 전복을 잡아다 준다. 영화는 엄청 큰 문어로 화면을 가득 채우며 관객들이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가마솥에 끓인 문어와 전복탕을 먹고 약전은 입맛을 되찾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창대에게 부탁하여 그와 함께 해산물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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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처녀 복례(도희)가 청어를 잡았다고 가져오자 약전은 서해바다에서도 청어가 잡히냐고 신기해 하는데, 창대는 “물론 잡히는데 동해바다 청어와 서해바다 청어는 뼈마디 숫자가 다르다”고 대답한다. 그의 박학함을 나타내는 장면인데, 이는 <자산어보>에 그대로 나온다. 그리고 관아에서 치도곤을 치르게 된 창대를 약전이 구해주는데, 창대는 그 답례로 커다란 가오리를 잡아다 바친다. “일전에 먹었던 홍어와 막걸리 맛이 생각났는데 잘 됐다”며 좋아하는 약전에게 창대가 설명한다. 이건 홍어가 아니라 가오리라고. 하지만 맛은 비슷하니 그런대로 드시면 된다고.

이 대목은 창대의 해산물에 대한 박학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면서 동시에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말해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현재 전 세계에서 잡히는 홍어와 가오리의 거의 전부가 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세계 어디에서도 안 먹던 생선을 한국에서 먹으니 남미의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미국을 비롯해서 여러 나라들이 잡아 수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분류학으로 따지자면 엄밀하게 홍어와 가오리는 다른 생선인데, 국내에서 소비되는 홍어류의 대부분을 지금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홍어와 가오리의 구분이 모호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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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창대가 도미를 잡고 약전이 도미에 대한 내용을 배 위에서 기록하는 대목이 나오기도 하고, 갯벌에서 기어 나온 짱뚱어를 보고 신기해하다가 그걸 닭이나 먹이고 사람들은 안 먹는다는 설명에 약전이 기이하게 여기는 대목도 나온다. 나중에 마을 사람들이 선비 나으리 덕에 짱뚱어의 맛을 알게 되었다고 고마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학파 선비의 계몽이 백성들의 삶에 도움이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해산물 이야기에 제한하여 말하자면, 이 영화의 백미는 엄청나게 커다란 돗돔을 잡아오는 장면이라고 하겠다. 이 대목이야말로 영화만이 가능한, 영화의 매력을 마음껏 발휘한 장면이다. 창대는 몇 날 몇 일을 벼르다가 상어를 잡아 그걸 미끼로 써서 수 미터가 넘는 돗돔을 잡는데 성공한다. 엄청난 청새치를 잡느라 사투를 벌이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컬러풀하고 다이내믹한 카메라 워크로 묘사한 노인과 청새치의 싸움보다 절제된 구성으로 그려낸 수묵화 같은 <자산어보>의 돗돔 포획 장면이 한 수 위 같았다.

한 편의 수묵화처럼 아름다운 흑백 영화

정약전의 <자산어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덧붙이자면 조선 말기로 들어서면서 실학자들이 써낸 박물지 같은 기록이 여럿 있다. 가령 명태에 대한 기록은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무태어(無泰魚)’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것이 최초라고 한다. 그리고 그 후에 <방약합편(方藥合編)>이라는 책에서 ‘무태어라는 생선은 명천에서 나는 북어라는 생선을 말한다’고 기술되어 있다고 한다. 또, 1652년(효종 3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임금님과 중전에 올리는 진상품이 상하여 악취가 나고 했는데, 대구알 속에 명태알을 섞어서 넣었다’는 대목이 있다고 한다. 1800년대에 들어와서는 조재삼의 <송남잡식(松南雜識)>에 ‘명천 사는 태씨 성 가진 사람이 북어를 잘 잡았는데 크고 통통하여 맛이 좋으니 그 이름이 명태다(明川太姓人, 釣如得北魚, 大而肥美, 故名明太)’라는 대목도 있다고 한다. 역시 1800년대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날 것은 명태요, 말린 것은 북어다’라는 기술이 있으며,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명태 말린 것은 일상 반찬으로, 또 제수용으로 전국에 보급된다’고 써있다고 한다.

생선 이야기를 꺼낸 김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덧붙인다. 왜 물고기 이름은 붕어, 잉어, 숭어, 농어, 고등어, 방어, 오징어, 광어 등등 앞에 이응(ㅇ) 자가 들어가는 이름이 많을까? 그건 뒤에 붙는 고기 어(魚)자가 옛 이응, 그러니까 이응자에 뿔이 난 것 같은 고어로 표기하는 ‘어’자로, 발음이 [ŋ�:응어]에 가까운 ‘어’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자로 부어(�魚)가 붕어로, 노어(�魚)가 농어로, 이어(鯉魚)가 잉어로, 고도어(古刀魚)가 고동어(고등어)로 발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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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서적을 보면 생선 이름을 한자로 표기해 놓는데, 당시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흔적이 많이 나온다. 물고기는 지리적으로 조금만 떨어져도 모양이 다른 것이 많고, 부르는 이름도 제각각이다. 이는 일본, 중국 그리고 서양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자산어보>에서도 어촌에서 글 없이 말로만 불리던 물고기 이름을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한자 발음을 빌리는 이두식 표기를 많이 쓰고 있다. 같은 생선을 놓고 책마다 표기한 한자도 다르고, 또 그런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영화 <자산어보>를 아직 보지 않은 독자를 위해서 생선 말고 다른 부분들은 소개를 생략하고 아껴놓는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개봉을 하여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아쉬운 작품이다. 이제는 어떤 경지에 오른 듯한 이준익 감독의 숨겨진 걸작을 감상하고, 홍어회 한 접시와 막걸리를 곁들여 즐기면 참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자산어보>와 같은 저술, 그리고 영화 <자산어보> 같은 명작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위대한 유산이다. 그럼 홍어회는? 호불호가 워낙 갈리는 음식이니 ‘우리 문화의 독특한 유산’이라고 해두자.

* 본 콘텐츠에서 내용 설명을 위해 삽입한 이미지는 해당 영화와 드라마 장면을 활용하였음을 밝힙니다.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 이주익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적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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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8-12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