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동화

수능이 벼슬

생각하는 동화 : 수능이 벼슬 생각하는 동화 : 수능이 벼슬
“수능이 벼슬이냐? 우리 경기는 안 중요하냐고?”
체육관을 나서며 다솔이가 투덜거렸다. 고3 언니의 수능이 가까워질수록 집안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변해간다는 것이다. 다솔이는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이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숨 막힌다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그 심정을 백 번 천 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집에도 수험생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집 수험생은 열아홉 살이 아니라 서른세 살, 늦깎이 수험생이라는 거다.
“언니는 수능날 아빠 승용차 타고 간대. 나는 내일도 엄마 오토바이 타고 가는데.”
어젯밤 엄마와 다퉜던 일이 떠올랐다. 나는 치킨 배달 오토바이는커녕 혼자 버스를 갈아타고 경기장에 가야 했다. 엄마는 내 경기를 보러 오지 못한다. 사실 보러 ‘못’오는 건지 ‘안’오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1순위가 아니라는 거다. 지금 엄마에게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자신의 수능인 것 같았다.

엄마가 수능을 보겠다고 선언한 건 반 년 전이었다. 어깨가 축 처진 채 퇴근한 엄마는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냉동실에 얼려둔 피자 두 조각을 해동해 방문을 두드렸다. 엄마는 맵고 짠 음식 앞에서 늘 엄지를 세우곤 했다.
“한주야, 엄마 회사 잘렸어.”
엄마가 피자를 한 입 베어 물다 말고 말했다. 엄마는 TR전자 서비스센터의 유명한 상담원이었다. ‘이달의 친절왕’을 다섯 번 넘게 받았고, 회사 홈페이지에는 칭찬 글이 줄을 이었다. 그런 엄마가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하다니.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한숨을 쉬며 피자를 내려놓았다.
“어떻게 상담원만…… 상담원은 사람도 아니니?”
며칠 전 저녁을 먹으며 보았던 뉴스가 떠올랐다. TR전자의 잘못된 투자로 회사가 휘청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엄마와 동료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일 먼저 정리해고를 당했다.
“이참에 나도 제대로 공부해서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고 싶어. 전기과에 입학해서!”
식구가 둘뿐인 우리집에서 전구 교체나 전자제품 수리는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무언가를 고칠 때 엄마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수능을 보겠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누구라도 그 표정을 보고 반대표를 던질 순 없었을 거다.

처음엔 나도 엄마를 응원했다. 공부하는 엄마를 위해 설거지를 대신해주기도 했고, 주말엔 오전 운동을 마치고 엄마와 함께 도서관에 가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성질이 나기 시작했다. 수능이 가까워오자 엄마는 부쩍 예민해졌다. 내가 방에서 점프 연습이라도 할라치면 쏜살같이 달려와 주의를 줬다. 점프 연습을 편하게 하라고 일부러 일층 집을 알아봤던 엄마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조용히 하라니? 엄마는 내가 장애물 달리기 선수라는 걸 잊어버린 것 같았다. 심지어 엄마는 내가 메달을 노리고 있는 소년체전에도 못 올 것 같다고 말했다.
“너무한 거 아니야? 이번에는 꼭 오겠다고 약속했잖아.”
“미안. 학원에서 미적분 핵심정리를 해준대서…… 수능도 며칠 안 남았고……”
“엄마는 나보다 미적분이 더 중요해? 그놈의 대학은 갑자기 왜 가겠다는 건데? 언제는 대학 안 가고도 잘 살 수 있다며. 엄마도 대학, 대학거리는 어른들이랑 똑같아. 속물이야!”
나는 그동안 쌓인 말들을 우르르 내뱉곤 밖으로 나갔다. 더 이상 엄마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경기 시간이 다가오자 관중석이 시끄러웠다. 선수들이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한빛초등학교 5학년 이슬아 힘내라!’, ‘우리 아들 김성안 파이팅!’ 등 관중석은 직접 제작한 플래카드로 가득했다. 다솔이 것도 있었다. 치킨집 전화번호가 큼지막하게 적힌 플래카드였다.
“참나. 플래카드에 치킨집 번호가 웬 말이야. 딸 응원을 온 건지, 치킨집 홍보를 온 건지.”
다솔이는 투덜거렸지만, 나는 다솔이가 부러웠다. 이번에도 내 이름만 없었다. 나는 쪼그려 앉아 신발 끈을 조이면서 다짐했다. 응원 없이도 보란 듯이 메달을 따낼 거라고. 엄마는 엄마 인생만 중요한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나도 내 인생만 생각할 거다.
“팔십 미터 장애물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준비해 주십시오.”
방송이 울리고 나랑 다솔이를 포함한 여섯 명의 선수들이 앞으로 나갔다.
“준비, 출발!”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집중력이 흐려졌다. 앞만 보고 달리려고 했는데 관중석 플래카드들이 눈에 들어왔다. 만약 엄마가 수능을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저기 내 이름도 있었을까? 그럴 것 같았다. 엄마는 내 경기를 위해서라면 회사에 반차를 내고서라도 참석했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더 열심히 달리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늘 경기는 일 년 중 가장 큰 경기였다. 여기서 순위권 안에 든다면 체육중학교 입학을 노려볼 만도 했다. 나도 그 학교 교복을 입어볼 수 있을까? 다솔이네 언니가 오래전부터 수능을 준비했듯, 나 역시도 오늘 경기를 위해 밤낮으로 연습했다. 엄마 공부를 방해할까봐 겨울 이불을 겹겹이 쌓아놓고 점프 자세를 연습했던 날들이 떠오르자 더욱 서러워졌다.

드디어 장애물 구간이었다. 나는 발 앞부분에 힘을 주며 뛰어올랐다.

통과!

착지할 때마다 쌓여있던 게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 기분을 느끼기 위해 장애물을 넘었다. 엄마 손을 잡고 처음으로 맨홀 뚜껑을 넘었던 다섯 살 무렵에 처음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눈앞의 장애물을 볼 때마다 뛰어넘었다. 엄마랑 둘이 살아서 느꼈던 쓸쓸함도, 본격적으로 운동부 선수가 되면서 느꼈던 조급함도 내겐 한낱 장애물일 뿐이었다. 아무리 높은 장애물도 훅 뛰어넘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장애물에 대한 엄마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내가 ‘장애물을 뛰어넘자!’ 주의라면, 엄마는 ‘장애물을 피해 가자!’ 주의였다. 엄마는 늘 모험보단 안전을, 정면승부보단 양보를 택했다. 목적지만 확실하다면 돌아가도 상관없다는 주장이었다. 엄마는 목적지로 가는 동안 주변도 둘러보고 잠시 쉬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랬던 엄마가 대학에 가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확 변했다. 더 이상 뒤돌아보거나 쉬지 않았고 앞만 보고 달렸다. 밥을 먹으면서도, 화장실에 가면서도 단어장을 놓지 않았다. 잠꼬대로 수학 공식을 외우는 건 덤이었다. 엄마는 수능에만 집중했다.

결승선이 코앞이었다.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다. 딴 생각을 하느라 일등을 놓칠 순 없었다. 나는 몸을 앞으로 굽히며 도약했다. 그래, 이것만…… 이것만 넘는다면……! 힘차게 발을 구르며 점프하자 몸이 휙 떠올랐다.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우리 딸 파이팅!”
그때였다. 어디선가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엄마는 못 온다고 했는데…… 엄마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힐끗 관중석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재빨리 눈동자를 굴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엄마를 찾았다. 내 몸이 고꾸라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아득해졌다.

‘쿵.’

눈을 떴을 땐, 울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조심스레 손가락을 움직이자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아이처럼 울었다. 얼마나 운건지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엄마의 얼굴을 보자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한주, 괜찮아? 너 사흘 만에 깨어났어.”
다솔이의 목소리였다. 어쩐지 고소한 치킨 냄새가 난다 했더니 다솔이와 다솔이 엄마가 와있었다. 경기장에서 다친 나를 병원까지 데리고 온 것도 다솔이 엄마였다. 내가 깨어난 걸 듣고 의사선생님도 왔다.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에요.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네요.”
엄마는 의사선생님께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도 인사를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는데 병실 한쪽에 있던 티브이가 보였다. 아침 일곱 시 뉴스가 한창이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오늘 전국 1,190개 고사장에서 일제히 치러집니다. 모든 수험생은 반드시 수험표와 신분증을 챙겨 아침 8시 10분까지 시험장에 입실해야 합니다.”
마이크를 든 기자 뒤로 교복 입은 수험생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국체전 며칠 뒤가 수능이었다. 바로 오늘이다.
“엄마, 수능 보는 날 아니야?”
이렇게 기회를 날릴 순 없었다. 엄마가 얼마나 열심히 준비한 수능인데. 내가 벌떡 일어나려고 하자 링거 줄이 나를 잡아당겼다.
“움직이지 마. 아직 안 돼.”
거울을 볼 새도 없었는지 엄마의 옷은 엉망이었다.
“수능 봐야지. 얼른 가.”
“수능이 뭐가 중요해? 네가 다쳤는데!”
엄마는 여전히 눈물범벅이었다.
“나 이제 안 아파. 빨리 시험 보러 가. 응?”
나는 일부러 오버하면서 몸을 움직였다.
“됐어. 널 두고 어딜 가.”
“나 진짜 안 아프다니까? 지금이라도 차 타고 가면 시험 볼 수 있어. 엄마, 열심히 했잖아.”
나는 엄마가 수능을 못 볼까 봐 속이 타들어가고 있는데 이 와중에도 엄마는 내 걱정을 했다.
“가! 얼른!”
내가 발을 동동 구르자 엄마가 시계를 한번 쳐다보았다. 지금 당장 출발해도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조금만 더 지체한다면 엄마의 기회는 저 멀리 날아가고 말 것이다.
“한주 엄마, 괜찮으시다면 제 오토바이 타고 가실래요?”
우리 얘기를 듣고 있던 다솔이 엄마가 물었다. 맞다. 치킨집 오토바이! 수능날 아침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들을 뉴스에서 본 적 있었다. 다솔이 엄마는 무려 10년 경력의 베테랑 배달부였다. 지름길도 다 꿰고 있으니 걱정할 게 없었다.

고민은 끝났다. 엄마가 부랴부랴 가방을 챙겼다.
“꽉 잡으세요. 출발합니다!”
“잘 보고 와, 엄마. 만점 받아!”
엄마가 엄지를 번쩍 치켜들었다. 엄마는 다솔이 엄마 등에 딱 붙은 채로 빠르게 사라졌다. 엄마가 작아질수록 내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이건 익숙한 기분이었다. 마음속에 쌓여있던 것들이 사라지는 기분. 장애물을 넘을 때마다 느꼈던 그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 막 마지막 장애물을 넘은 것이다.

이제는 엄마가 장애물을 넘을 차례였다. 나는 엄마가 더 높이 날 수 있기를 바라며 주먹을 꼭 쥐었다.
글 / 김소휘
동화작가, 1995년생
제18회 대산대학문학상 동화부문 수상자
동화 「최장순 할머니 찾아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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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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