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3시 경이었다. 호젓한 교문 앞에 인력거 한 대가 다가와 멈추더니 두 여자가 보퉁이를 들고 내려섰다. 한복을 입고 숄을 두른 여자는 어디를 바삐 다녔는지 값싼 새 당혜에 흙이 함부로 묻어 있었다. 끝을 지진 단발머리에 최신 유행 원피스를 입고 하늘색 봄 코트를 걸친 여자는 통통한 얼굴에 고운 화장을 했지만 억눌린 화와 슬픔이 매끈하게 그린 눈썹만큼이나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운동장 가장자리를 지나 목련 나무 몇 그루가 늘어선 좁다란 기숙사 길로 접어들자 한복 차림의 여자가 사각사각 비단 치마 스치는 소리를 내며 앞서 걸었다. 환한 햇빛 아래 목련꽃이 지는 중이었다. 꽃향기는 있는 듯 없는 듯 그윽하고 서글펐다. 두 여자는 눈썹을 찌푸리고 보도에 덮인 목련 꽃잎을 자근자근 밟았다. 흩어진 꽃잎들이 잘게 찢어진 편지조각 같았다.
B사감은 기숙사 문 앞에 서 있다가 두 여자를 발견하자 반색하며 걸어 나갔다. 셋이 만나고 보니 흰 피부와 매끈한 눈썹과 반듯한 콧등, 뺨을 감싼 선이 영락없이 닮은 얼굴이었다. 양장을 입은 여자는 눈물을 왈칵 쏟더니 홱 돌아서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수습하다 오히려 어깨를 떨며 울었다.
“희순아 왜 그러니? 왜 그래요, 희덕 언니?”
“반가워서, 반가워서 그러지.”
희덕도 눈물을 다급하게 찍어내며 얼버무렸다. 여자들의 등 뒤에서 목련이 등불을 끄듯 연이어 흰 꽃잎을 떨구었다.
희덕은 금색 보퉁이를 풀고 제 손으로 지은 실내 옷 한 벌과 꿀단지와 간장에 조린 밑반찬들과 간식거리를 꺼내 놓았다. 희순은 종이 상자를 싼 보퉁이를 풀지 않고 슬그머니 창턱 위에 올려두었다. B사감은 창턱에 놓인 녹색 보퉁이에 눈길이 갔으나 개의치 않는 척했다. B사감은 희순이 터뜨린 울음을 떠올리며 차와 희덕이 가져온 한과로 상을 차렸다.
“남편 찾아다니려니 남부끄럽고, 찾지도 않고 살려니 내 인생이 너무 불쌍하고.”
희덕의 한탄을 듣다가 B사감은 희순에게 눈으로 물었다. 희순이 고개를 저었다. 못 찾았다는 뜻이었다. 희덕은 살이 말라 얼굴은 더 작아졌는데, 일에 시달린 손바닥과 손마디는 더 굵어져 더욱 외로워 보였다. B사감은 희덕의 손을 잡았다.
수원 시내에 자리 잡은 방앗간 집이라고 시집 잘 간다고들 했지만, 애초부터 새신랑은 혼례 후에 일본 유학을 가기로 정해져 있었다. 희덕은 남편이 유학하던 5년 동안 일꾼들 밥까지 열 식구를 해먹이며 시부모를 도와 방앗간 일을 하고 딸을 낳아 키우고 두 시동생 뒷바라지를 하고 시누이 둘을 시집보냈다. 그래도 그땐 희망이 있었다. 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기만 하면 소원이 다 이루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뒤로 일이 생각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무슨 사업체를 만든다고 서울에 눌러앉아 수원에는 내려오지도 않았다.
나중에 보니 일본에서 사귄 여학생과 종로 어디에다 살림을 차린 것이었다. 돈이 떨어지자 수원 집으로 왔지만, 아내를 일꾼 보듯 하고 허구한 날 화성 아래 술집에 틀어박혀 사내로 태어나 할 일이 없다고 가슴팍을 쥐어뜯었다. 그러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기다렸다는 듯 방앗간을 팔아치우고 서울로 가버렸다. 첩살림을 한다고 소문이 났는데 예전 여자가 아니고 또 다른 여자였다. 희덕은 시어머니와 쌀집을 열어 생계를 유지하며 딸 하나를 키우고 사는데 봄이 오면 서럽기도 하고 화가 치밀기도 하고 그립기도 해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봄마다 남편을 찾아다니지만 찾는다 해도 축첩은 엄연히 법이 허용하고 있어 집에 데리고 갈 방법이 없었다. 시가 식구들과 동네 사람들도 편들기는커녕 오히려 흉을 보았다.
자기 뜻대로 간 시집도 아니고 보니 부모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당시 친정 가세가 갑자기 기울자 집안에선 세 딸을 치우기에만 급급했다. 어머니가 몸져누운 데다 큰오빠는 아직 공부 중이었고, 작은오빠는 제 친구와 연해주로 가버렸을 때였다. B사감과 막내 희순은 큰언니가 시집가 사는 모양을 보고는 친척들이 맺어준 중신을 요리조리 피했다. B사감은 작은오빠와 신흥무관학교에 들어간 준휘를 일찍부터 사모했다. 준휘가 떠날 때,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치라고 당부했는데도 B사감의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B사감은 가정교사를 해가며 여전을 마치고 직장까지 구했다. 그러다가 인편으로 연락할 방법이 생기자 모아둔 편지를 한꺼번에 상해로 보내곤 했다. 준휘가 상해 임시정부 산하의 소규모 공격대에 들어갔을 때였다. 준휘는 처음엔 연락이 없다가 차차 한 해에 두세 번 회신을 보내왔다.
B사감은 속 깊이 감춘 마음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지만 저절로 물이 배어나오듯 희망을 비치는 때가 있었다.
“늦어도 돼. 아주 늦은 뒤에라도 만나 잠시라도 같이 살고 싶어.”
신이 있다면 그 정도는 들어줄 것만 같은 겸손한 꿈이었다. 희덕은 B사감을 가여워하면서도 제 사랑을 지키고, 직장 생활하며 독신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부러워했다.
자매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누군가 사감실 문을 노크했다. B사감이 복도로 나가보니 집에 다녀온 여학생이 서 있었다.
“송주야, 그래 어떻게 되었니?”
“제 말은 못 들은 척하세요. 선생님께서 편지를 써서 좀 설득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래 알았다. 지금 손님이 와 있으니 나중에, 저녁 먹고 8시에 와.”
B사감이 들어오자 희순이 궁금해했다.
“무슨 일인데 편지를 써 달래?”
“3학년에서 성적이 최상위권인 아이야. 전문학교에 진학하려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셔.”
“왜?”
희순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여자가 공부 많이 하면 팔자 사나워진다는 게 이유야. 시집 잘 가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딸 가진 부모의 목표거든.”
“에구……”
희덕과 희순이 동시에 탄식했다.
“여학생들이 가여워. 밤낮없이 기숙사 담을 기웃거리고 휘파람을 불고 편지를 던져 넣는 남학생들도 가엾고. 그런 자들일수록 이 땅에 송곳 꽂을 자리도 없는 제 처지를 알고 나면 노력할 줄 모르고 더 방탕해지지. 그래도 집안에서 밀어붙이니 장가들고 애 아빠가 될 테고. 술에 취해서는 사내로 태어나 할 일이 없다고 울분을 터뜨리겠지. 여학생들은 시집 감옥에 갇혀 조상과 시가 어른 공양하고 친척과 동네 사람 눈치 보고 시가 형제에게 치이며 아이 낳아 키우는 사이에 남편은 징집을 당하거나 첩을 얻겠지. 일에 시달려 녹초가 되고 남편 기다리다 정신 차릴 틈도 없이 그 집 귀신이 되겠지.”
“전문학교는 몇이나 진학해?”
희순이 물었다.
“해마다 다르지만 겨우 서너 명 정도야. 그래도 인재를 키우려면 편지를 보내고 방문도 하고 계속 설득해야지. 설득 전은 해마다 3학년 학생 부모들과 벌이는 싸움이야.”
“뭐라도 하려면 싸워야하니 이래저래 싸움판이야.”
희순이 고개를 저으며 진저리를 냈다. B사감은 습관처럼 창밖의 토종 목련을 바라보았다. 가녀린 검은 가지 끝에 맺힌 꽃봉오리 몇 개가 먼저 열려, 희고 여린 꽃잎을 성글게 펼치고 있었다. 3년 전 후부키 교감이 부임한 뒤로 말더듬이 수위가 몇 번이나 긴 톱을 들고 후원에 왔었다. 수위가 불쑥 나타날 때마다 B사감은 나가서 싸웠다. 후부키 교감은 토종 목련꽃은 소복 입은 노처녀같이 보잘것없다고 B사감에 빗대었다. 독해서 음지에서도 핀다느니, 여학생들의 정서에 해롭다느니, 기숙사 전망을 가린다느니 하며 12가지 이유를 붙여 베려 했지만 진짜 이유는 조선 토종 목련이라는 한 가지뿐이었다. 매번 톱날을 막아섰더니 후부키 교감은 그녀를 교진[狂人] B사감이라 불렀다.
“내일 아침엔 많이 필 거 같네.”
희덕은 B사감을 살피며 무슨 힘든 말을 하려는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희순이 B사감의 팔을 툭 쳤다.
“언니, 백비차 끓여줘. 목도 아프고, 감기 기운이 있어.”
B사감은 희순의 이마에 손을 대보았다. 미열이 있었다. B사감은 숯불 곤로에 불을 붙이고 아침에 후원의 샘에서 길어둔 물을 팔팔 끓였다.
희순도 속이 말이 아닐 터였다. 여전에 다니던 중에 엘렌 케이의 자유연애 사상에 물들어 곽윤수를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졌었다. 희순이 보기엔 희덕처럼 결혼하는 것도, B사감처럼 일만하는 것도 인생 실패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희순은 이 풍진세상에 영육 일치의 사랑만이 구원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곽윤수는 사랑은 사랑이고 결혼은 결혼이라며 태연하게 집에서 정한 여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희순이 대구의 신혼집까지 쳐들어갔지만 소용없었다. 여관에 유서를 남기고 사라지는 바람에 B사감이 대구에 내려가 희순을 찾아 헤매기도 했었다. B사감이 겨우 어르고 달래 정신을 차리는 듯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곽윤수가 상경했다. 헤어질 바에야 같이 죽겠다고 난리를 쳐 살림을 차렸지만 대구 집에서 돈줄을 끊는 바람에 희순이 양장점 보조 일을 해 먹고 살아야 했다. 둘은 겨우 1년을 살았다. 곽윤수는 그의 아버지가 사업체를 동생에게 맡기겠다고 엄포를 놓자 온다간다 말도 없이 내려가 버렸다. 그 뒤로 희순은 조선 남자들은 사랑할 능력도 없는 미성년자고 제 몸이 제 것도 아닌 담보물들이라고 깎아내렸다. 사랑에 눈이 멀어 시작한 양장점 보조 일이 경력이 되어 의상실을 옮겨 다니더니 최근에는 종로거리에 제 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하고 도무지 실속은 없어 보였다. 희순은 돈을 모아 파리로 떠날 거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곳까지 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다 헛소리로 들렸다.
말없이 백비차를 마시는 세 자매는 목련꽃을 닮아 희고 성글고 애잔해 보였다. B사감이 백비차를 다 마시고 잔을 내려놓자 희순은 창턱에 올려두었던 보퉁이를 가져와 풀었다. 상자 속에서 두 개로 나뉜 편지 뭉텅이와 횟가루 같은 것이 든 유리병이 나왔다. B사감은 얼어붙은 듯 쳐다보기만 했다. 묻지 않아도 그것이 다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고무줄로 묶인 새 편지 겉봉에 준휘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 다른 뭉치의 편지들은 그간 자신이 인편으로 보낸 것이었다. B사감은 그 순간이 두 달 전부터 반복해서 꾼 악몽 속의 장면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악몽에서 깨면 놀란 가슴을 진정하기 위해 지난 편지를 꺼내 읽었고, 다음 날엔 잠들기가 무서워 여학생들에게 온 편지들까지 샅샅이 읽으며 기나긴 밤들을 이겨냈다.
“언니. 마지막 편지야.”
희순은 B사감을 만났을 때처럼 눈물을 왈칵 쏟았다.
“어찌 되었니?”
B사감은 표정에 아무 변화도 없이 물었다.
“두 달 전, 소규모 공격조를 짜 기습 작전을 수행하던 중에 일본군의 급습을 당했대. 그 자리에서 총을 맞고 죽었다고 해.”
희순은 손수건 꺼낼 정신도 없는지 아이처럼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다행이다. 놈들에게 잡혀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B사감이 중얼거리자 희덕이 팔을 잡고 흔들었다.
“그렇지. 모진 고초를 당하지 않아 천만다행이지.”
“준휘 오빠가 평소에 늘 부탁했대. 자기가 죽으면 뼈 한 줌은 언니에게 보내달라고.”
B사감이 유리병을 끌어다 안았다. 눈물이 꾸역꾸역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정리하고 가려고 했는데, 내가 그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B사감이 울음을 터뜨리자 두 자매는 체기라도 내리듯 그녀의 등을 다급하게 쓸어내렸다.
밤 8시에 실내 옷을 입은 여학생 하나가 방에서 나와 발뒤꿈치를 들고 사감실로 향해 갔다. 쌀벌레 같은 흰 발가락이 곰실곰실 기어가는데,
사감실이 가까워질수록 흐느끼는 소리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 여학생은 귀를 기울였다. 사감실 앞에 선 여학생은 문에 귀를 바짝 대보았다.
이번에는 조용했다. 여학생은 노크할까 망설이다 우선 문을 빠끔히 열어보려고 손잡이를 살쩍 당겼는데 마침 찬바람이 휙 불어 문짝이 벌컥 열리고
말았다. 그와 함께 침대와 바닥에 널려있던 편지가 밖으로 날려 왔다. B사감은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양손에 편지 뭉치를 들고 뒤돌아보았다.
흰옷 차림에 귀신처럼 창백하고 뾰족한 얼굴이 눈물에 젖어 번들거렸다. 여학생은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괴소문이 맞는구나, 설마 했는데 괴소문이 맞았어.”
여학생은 한 손으론 입을 틀어막고, 한 손으로는 제 심장을 누르고 쿵쿵 소리가 나도록 내달려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고요한 밤중에 일어난 소란에 놀란 여학생들이 방마다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긴 복도에 새하얀 편지 몇 장이 펄럭펄럭 날려가고 있었다.
〃 작가소개 〃
전경린 소설가
소설집 「염소를 모는 여자」 「바닷가 마지막 집」 「물의 정거장」
장편소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열정의 습관」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황진이」 「엄마의 집」등